355화. 재판(2)
현훈의 죄를 묻자는 표가 37표.
그러지 말자는 표가 35표.
나와 청해진이 그러지 말자는 쪽에 손을 들면 동률이 된다.
알아보기로는, 그렇게 되면 현훈의 죄를 묻지 않게 된다고 했다.
다시 재판을 열어서 투표가 진행되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뭐, 어쨌든 간에.
“현훈 님과 따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자리를 만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해야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렇게 말하면서 청해진의 옆구리를 찔렀다. 멍하니 있던 청해진이 황급히 내 말에 덧붙였다.
“아, 네. 길드장님 말이 맞습니다.”
현원창이 물끄러미 우리를 쳐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 말에 마을 사람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현원창 님, 안 됩니다! 현훈 님께서 외지인들한테 어떤 말을 할지 모릅니다!”
“맞아요!”
“그냥 이 자리에서 결론을 내리게 하십시오!”
“옳소!”
다들 맞는 말이었다.
이거, 어쩌면 현훈이랑 따로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하고 표를 던져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저들의 말에 찬성이네.”
우암이 우리의 편을 들어줬다.
“우리야 현훈을 오랫동안 알고 봐 왔지만 외지인들은 아니지 않는가?”
제3 공방의 주인이자, 현훈과 함께 마을의 어른인 우암이 나서자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우암이 조용해진 주변을 둘러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더욱이 현훈의 행동을 생각하면 저들은 곧장 결론을 내렸어야 하네. 현훈의 모든 것을 박탈하는 쪽으로 말이지.”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분명,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거겠지. 나는 저들을 믿네.”
고마웠다.
만난 지 며칠 안 된 우리를 믿는다고 해 주다니.
어쨌든 우리는 우암 덕분에 현훈과 따로 대화의 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제1 공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게 됐지만 말이다.
수갑이 채워진 현훈이 독기 가득한 눈으로 나를 쏘아보며 말했다.
“나는 할 말 없다.”
“그러시겠죠.”
어깨를 으쓱이며 현훈의 앞에 태연하게 앉았다.
“대답하든 그러지 않든 그건 현훈 님의 자유에요. 그러니까 일단 그냥 듣기만 하세요.”
내 질문을 말이다.
“왜 그랬어요?”
현훈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럴 줄 알았기에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현훈 님 때문에 12공방은 모든 사람한테서 잊혀질 뻔했어요. 마을 사람들은 선조들의 영혼에 붙들려 원치도 않은 싸움을 해야 했고요.”
현훈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얼굴에 나는 쐐기를 박아 버리기로 했다.
“현훈 님.”
나지막하게 그를 부르고는.
“마을 사람들이 고통받기를 원했나요? 당신이 그간 무시 받았던 설움을 그렇게라도 풀려고?”
조롱하듯 물었다.
내 말에 현훈이 드디어 반응했다.
“누가 무시를 받았다는 거냐!”
현훈이 분하다는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제1 공방의 주인이다! 12공방의 그 누구도 나를 무시할 수 없단 말이다!”
“그런데 왜 그러신 거예요?”
현훈의 입이 다시 조용해졌다.
“대답하기 싫다면 마세요. 슬프지만, 현훈 님의 모든 걸 박탈하는 쪽으로 손을 들 수밖에요.”
현훈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장인’으로 얻은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다.
나는 그가 다시 입을 열기를 조용히 기다려졌다.
곧, 현훈이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선조님들께서 주먹다짐을 벌이셨다는 그 싸움터를 발견한 건 우연이었다.”
현훈은 알까?
그 싸움터가 우리 증조할머니가 만든 거란 걸.
‘모르겠지.’
안다면 나한테 고래고래 고함을 지를 거다. 나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거지 않으냐고 말이다.
저 괴팍한 성격을 생각하면 분명 그럴 거다.
어쨌든 간에 나는 현훈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곳에서 나는 선조들을 만났다. 그분들은 나의 마음을 이해해 주셨지.”
“어떤 마음이요?”
현훈이 고개를 푹 숙이고는 떨리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설움.”
생각해 보니 현훈은 무시를 받았다는 말에 반응했지, 그에 얻은 설움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수긍한 거겠지.
현훈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을 내뱉었다.
“나는 이 마을을 사랑한다. 그 마음은 모두가 알 거다.”
“그런데 그런 거예요?”
“사랑하니까!”
현훈이 고개를 치켜들며 고함을 내질렀다.
“원래 우리 마을 사람들은 100명이 훌쩍 넘었었다! 100명은 무슨, 300명에 이를 때도 있었어!”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마을 밖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는 등 그런 이유로 다들 마을을 떠났다! 한때, 우리를 위협했던 그 바깥으로 말이다!”
현훈은 정말 마을을 사랑했던 모양이다.
‘과거의 일을 지금까지 붙들고 있다니.’
그것도 먼 과거의 일을 말이다.
“이러다 마을이 사라질까 두려웠다. 나가려는 사람들을 붙잡고, 바깥의 위험을 경고해 봤지만 소용없었어. 다들 떠나 버렸지!”
현훈의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내가 무시 받은 건 괜찮다!”
언제는 무시 받은 적 없다면서?
그러나 나는 조용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그들 말대로 나는 실력이 없으니까! 제1 공방의 주인이라는 말이 우습게도 실력이 없는 건 사실이니 괜찮다! 하지만 이 마을은 안 돼!”
현훈의 두 눈에 광기가 보였다.
“내가 나고 자란 우리 마을이 사라지는 꼴은 보지 못한단 말이다!”
“그래서 그런 거군요?”
마을 사람들을 선조들에게 바쳐 그 산에 묶여 있도록.
그렇게 되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다고 해도, 마을이 사라지지는 않을 테니.
“이기적이네요.”
현훈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나는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훈 님.”
나지막하게 그를 부르며 말했다.
“아무리 마을을 사랑한다고 해도, 그랬으면 안 됐어요.”
현훈의 얼굴이 서글프게 일그러졌다. 금방에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한 그를 내버려 두고 나는 제1 공방을 나왔다.
“어떻게 할 거야?”
청해진이 내 뒤를 따르며 물었다.
“해진이 오빠는 어떻게 한 걸데?”
“나는 네 뜻에 따를 거야.”
“그러면 안 되지.”
“왜 안 돼? 길드원이 길드장님 의견 따를 거라는데.”
픽, 웃음을 흘렸다.
“좋아. 청해진 헌터 마음대로 해.”
“네, 길드장님!”
청해진이 활기차게 대답했다.
“현훈 님과 이야기는 끝났습니까?”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현원창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현훈과의 대화로 결심이 섰다.
내가, 어느 쪽을 향해 표를 던져야 할지 말이다.
나는 그렇게 입을 열었다.
***
“이매망량 분들의 투표로 재판이 끝났습니다.”
현훈의 죄를 묻자는 표가 39표.
그러지 말자는 표가 35표.
나와 청해진이 표를 던지면서 결론이 났다.
“내일 이 시각 현훈 님께서 가진 장인에 대한 모든 것을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잘 됐다며 손뼉을 쳤다. 현훈이 그렇게 사랑한다던 마을 사람들이 말이다.
자업자득이라지만 씁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뭐, 저렇게 된 건 내 책임도 있지.’
그러지 말자고 표를 던져 줬으면, 현훈은 장인에 대한 모든 것을 계속 품고 있었으리라.
하지만 나는 현훈의 죄를 묻자는 데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으면 그가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반성할 수 없을 것 같아서다.
또한, 알아줬으면 했다.
12공방을 벗어난 더 넓은 세상을.
“그럼, 재판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현원창의 말을 끝으로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와 청해진 역시 몸을 일으켰다. 그런 우리에게 현원창이 다가왔다.
“설마, 아버지의 죄를 묻는 쪽에 손을 들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원망하는 건가요?”
“설마요.”
현원창이 담담하게 말했다.
“제가 본 윤리사 길드장님은 인정이 많은 분인지라, 아버지의 죄를 묻거나 그러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이러는 겁니다.”
“현원창 님, 저를 너무 좋게 봐주신 거 아니에요?”
작게 웃음을 흘린 후 말했다.
“저는 현원창 님 생각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더욱이 인정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요.”
그렇다면 이매망량의 길드장이 된 지금, 친구들의 연락을 그렇게 무시할 수는 없었다.
저세상도…….
‘아니, 아니야. 그 자식 생각은 될 수 있는 한 하지 말자.’
머리만 복잡해질 테니까.
“어쨌거나 재판이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요.”
“덕분입니다.”
현원창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저희 12 공방의 의뢰를 끝내주신 것에 대한 보답은 이매망량 쪽으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헉! 잊고 있었는데!
“감사히 받을게요.”
“길드장님 덕분에 저희 마을이 존속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마음에 드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현원창이 예의 바르게 대꾸하고는 물러났다.
아버지가 장인에 대한 모든 것을 박탈당하게 됐는데도 꽤 담담한 모습이었다.
“대단하시네. 나는 부모님이 암만 미워도 막상 벌을 받게 된다고 하면 울 것 같은데.”
“오빠, 부모님 없잖아.”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럴 것 같다는 거지! 아니, 그보다. 야! 너 지금 패드립 한 거야?”
“청해진 길드원은 지금 제게 큰소리를 낸 겁니까?”
“윽……!”
지위로 찍어 누르자 청해진이 한 마디도 못하고 몸을 움츠렸다.
나는 키득거리며 웃고는 그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숙소로 돌아가서 짐이나 챙기자.”
“뭐?”
“이제 이매망량으로 돌아가야지.”
우리 일은 끝났다.
이제, 이곳을 떠날 시간이다.
현훈의 최후를 지켜보고 싶지마는, 그건 가족이 해야 할 일.
그러니까.
“우리 자리로 돌아가자, 오빠.”
청해진이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