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4화. 재판(1)
〖너, 사희한테 피리를 받은 모양이구나?〗
“피리요?”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대답했다.
“네! 맞아요!”
나는 그림자를 움직여 그 안에 넣어 둔 피리를 꺼냈다.
“이거, 알고 계세요?”
사희한테 받은 피리였다.
〖물론이지.〗
장색이 싱긋 웃었다.
〖그 피리는 바로 이 산의 나무를 깎아 만든 것인걸?〗
“정말요?”
〖응, 사희가 내게 직접 부탁했지. 이 산의 나무를 깎아 도깨비 님을 부르는 피리를 만들고 싶다고.〗
장색이 그리움에 잠긴 얼굴로 산을 둘러보며 말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느냐고 물었었지.〗
사희는, 피리 따위 없어도 도깨비와 이미 계약된 몸.
언제든 그들을 불러 함께 놀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러니 사희가 말하더구나.〗
“뭐라고요?”
〖미래를 위해 만들고 싶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장색이 나를 쳐다봤다.
〖그때는 무슨 의미인지 몰랐는데, 이렇게 너를 보니 알 것 같구나.〗
쏴아아-!
장색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람이 불어와 산을 흔들었다. 그 가운데에서 장색이 웃는 낯으로 내게 물었다.
〖사희가 네게 도깨비 님의 이름을 가르쳐주었니?〗
장색이 가리키는 건 신명(神名)일 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안 가르쳐 주셨어요.”
불퉁하게 말을 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라니 뭐니 그런 알 수 없는 소리만 하셨어요.”
내 말에 장색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설마 알고 있는 거야?
“장색 님, 혹시 할머니가 가르쳐 준 도깨비의 신명을…….”
〖모른단다.〗
장색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닌 거 같은데요?”
〖하지만 정말 모르는걸?〗
장색이 발뺌하며 말했다.
장색은 사희가 알려준 수수께끼의 정답을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신이 거짓말해도 되나요?”
내 말에 장색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너는 정말 재미있는 아이구나.〗
“그럼, 좀 가르쳐 주면 안 돼요?”
사희한테 도깨비를 부를 수 있는 성유물을 받았건만, 그 신명을 몰라 쓸 수 없다니.
‘선조님한테 받은 거라 내다 팔 수도 없고.’
또 그랬다가는 누가 이상한 곳에 쓸까 걱정됐다.
그때, 장색이 말했다.
〖아이야, 내 도깨비 님의 신명은 가르쳐 주지 못하지만 한 가지 도움은 주마.〗
“도움이요?”
〖그래, 받기 싫으면 받지 않아도 된단다.〗
“설마요!”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장색을 쳐다봤다.
장색이 키득거리며 웃고는 말했다.
〖사희가 말했다지? 이 세상의 모든 것이라고.〗
“네.”
고개를 끄덕이니 장색이 내 말을 뒤이었다.
〖이 세상을 이루는 것은 하늘과 땅.〗
장색이 웃는 낯으로 말을 맺었다.
〖자, 나머지는 네가 풀어야 할 문제란다.〗
망할! 수수께끼가 하나에서 둘로 더 늘어났다.
이게 무슨 스무고개도 아니고.
“힌트 더 없어요?”
〖없단다.〗
그러면서 장색이 말했다.
〖자, 이제 돌아가 보렴. 아침이 찾아왔구나.〗
그 말대로 빼꼼 고개를 내밀던 태양이 산 위로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장색이 내 등을 떠밀며 말했다.
〖잘 가렴, 다음에는 도깨비 님과 꼭 함께 만나면 좋겠구나.〗
그걸 말이라고!
도깨비의 신명을 정확하게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수수께끼만 늘어놓았으면서!
하지만 나는 장색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며 말했다.
“네, 장색 님.”
그렇게 선산을 벗어났다.
***
“야! 윤리사!”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양 뺨이 붙잡혔다.
“너 어디 갔었어?!”
“슨산에.”
“뭐?”
“슨산.”
“뭐라는 거야?!”
청해진이 빼액 소리 질렀다.
아니, 이 오빠는 사람 뺨을 붙잡은 채로 대답을 들으려고 하면 어떻게 해?!
나는 내 뺨을 붙잡고 있던 청해진의 손을 매섭게 뿌리친 후 대답했다.
“선산에 다녀왔다고!”
“선산에는 왜?”
“산의 주인이 문을 열어 줬거든.”
그래서 다녀온 것뿐이라며 최대한 말을 아꼈다. 청해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자기가 뭐 어쩔 거야?
“윤리사 길드장님.”
“왜요.”
“선산의 주인이 산에 올라오라고 문을 열어 준 거, 뭐. 믿을게요. 그런데요.”
청해진이 내 손을 덥석 잡고는 물었다.
“이 피리는 어디에서 난 겁니까?”
아, 맞다. 그림자 속에 다시 집어넣는다는 걸 잊고 말았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선산의 주인한테 선물을 받은 거라고 할까?”
“무슨 용도로 사용하는 건데?”
“도깨비…….”
“도깨비?”
청해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청해진한테 모든 걸 말해 줄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입을 열었다.
“알 거 없어.”
“알 거 없다니!”
청해진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상한 거 주워 온 거면 어떻게 해! 버려!”
“버리기는 뭘 버려?! 선산의 주인이 선물 준 거라니까?”
“그 주인이 누구인데!”
“말해도 모르잖아!”
“알 수도 없지!”
어린아이도 아니고, 유치한 말싸움이 계속 이어졌다.
“어쨌든 나는 몰라! 이 피리, 버리지도 않을 거고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 건지 알려주지도 않을 거야!”
“서 비서님한테 다 일러바친다?”
“그러든가! 나는 서 비서님한테 오빠가 멍청하게 귀신들한테 홀렸었다고 일러바치면 되니까!”
“윽……!”
청해진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그에 나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어떻게 할래?”
함께 자멸하거나 서로의 비밀을 무덤까지 들고 가거나.
청해진이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윤리사, 진짜 못됐어.”
“내가 좀 못됐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이며 청해진의 말을 넘겨 버렸다.
“저기…….”
그때, 웬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3 공방의 주인인 우암.
그의 손녀인 우아영이었다.
“안녕, 아영아. 무슨 일이야?”
“할아버지가 데리고 오래. 아니, 데리고 오래요.”
갑자기 웬 존댓말?
놀란 눈으로 우아영을 쳐다보니, 아이가 우물쭈물 입술을 삐죽였다.
“언니랑 오빠가 우리 구해 준 거라면서요? 할아버지가 예의 바르게 말해야 한다고 했어요.”
아하, 한 소리 들은 모양이구나?
나는 키득거리며 웃고는 말했다.
“그래, 가자.”
청해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도대체 언제 이 마을을 떠날 수 있을까?”
“곧 떠날 수 있을 거야.”
12공방의 의뢰는 해결됐다.
옛 영혼들은 모두 돌려보냈고 선산의 주인인 장백에게 그것을 확인받기까지 했다.
잘하면 오늘.
못해도 내일 귀수산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다.
그러니까.
“조금만 힘내자.”
청해진이 입술을 씰룩였다.
길드장인 내 말에 토를 달 수가 없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잘도 달았으면서?
어쨌든, 우리는 우아영의 안내에 따라 제1 공방에 도착했다.
“할아버지!”
우아영이 우암을 향해 뛰어갔다.
우암이 손녀를 번쩍 안아 들고는 물었다.
“손님들께 예의 바르게 잘했느냐?”
“응!”
“정말로?”
“으응! 언니랑 오빠한테 물어봐!”
우아영이 또랑또랑하게 외쳤다.
우리는 아이의 말이 맞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우암이 잘했다며 손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그건 그렇고.
“우암 님, 도대체 무슨 일인가요?”
아침부터 나와 청해진을 부른 거야, 뭐. 무슨 일이 생겼다고 치자.
그런데 제1 공방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니.
더욱이 그 사람 모두 나와 청해진을 흘긋거리며 보고 있었다. 내 물음에 우암이 대답해 주려는 찰나.
“다 모였군요.”
현원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손에 수갑애 채워진 제 아버지와 함께.
현원창이 주변을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그 말에 두 손에 수갑이 채워진 현훈의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그가 왜 저렇게 두려워하는 건지 그 이유는 쉽게 알 수 있었다.
12공방의 재판에서 판결을 받은 자는 ‘장인’에 대한 모든 것을 잊게 된다.
그 지식도, 그리고 기술도.
장인으로 배우고 일깨웠던 모든 것이 사라지게 된다는 말이다.
“재판은 다수결의 원칙으로 이루어집니다. 다들, 제 아버지가.”
아니.
“현훈 님께서 저지른 일은 알고들 있겠지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다수결의 원칙이라니.
죄인을 앞에 두고 판결을 내리는 게 쉽나?
“나는 현훈에게 벌을 내리는 게 옳다고 생각하네.”
“할아버지가 그렇게 생각하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쉽네.
우암을 이어 우아영이 손을 들었다. 두 사람의 말에 현원창이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두 표.”
그 말과 함께 곳곳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저는 현훈 님을 이해해요!”
제9 공방의 주인부터.
“전 이해하지 못합니다. 현훈 님 때문에 공방을 꽤 오랫동안 비우게 되어 처리할 일이 산더미라고요.”
제4 공방의 주인까지.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그렇게 12공방의 모든 마을 사람들이 각자의 의견을 내비쳤다.
“현훈 님의 죄를 묻고자 하는 표가 37표. 그러지 말자는 표가 35표.”
현훈이 고개를 푹 숙였다.
현원창이 그런 아버지를 흘긋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윤리사 길드장님.”
“네?”
“이매망량의 뜻도 말해 주시지요.”
뭐야, 우리도 재판에 참석하는 거였어?
이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
나는 청해진과 함께 두 눈을 데굴 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