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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353)화 (353/500)

353화. 선산(5)

현훈이 왜 그렇게 새파랗게 질린 낯을 보였는지, 오래지 않아 알게 됐다.

“12공방은 마을의 일을 절대 외부로 끌고 가지 않거든.”

“그래서 마을 내에서 자신들끼리 재판을 여는 거야?”

“응.”

청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그는 말했다.

“장인이 재판에 세워져 판결을 받게 된다면, 그는 그 즉시 ‘장인’의 지위를 잃게 돼.”

“현훈은 어차피 장인이 아니잖아?”

“장인이었잖아.”

청해진이 바닥에 드러누우며 말을 이었다.

“장인의 지위를 잃게 되면, 그와 관련된 모든 지식이 봉인된다고 하더라고.”

“오빠는 어디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거야?”

“누나한테.”

“해솔이 언니한테?”

“응.”

청해진이 두 눈을 꼭 감으며 입을 열었다.

“돌아오니 부재중 엄청 쌓여 있더라고. 너도 확인해 봐. 나랑 똑같을걸?”

“헉! 정말이네!”

휴대폰을 확인하니, 서차웅을 비롯해서 이매망량의 모두한테 전화가 와 있었다.

그제야 떠올렸다.

서차웅에게 12공방에 도착하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던 것을.

그것을 마을에 도착한 후 까맣게 잊어버린 거다.

“으아악! 큰일 났네!”

황급히 서차웅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간이 꽤 늦었지만, 그라면 바로 내 연락을 받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길드장님?!

서차웅이 곧장 내 전화를 받았다.

“아, 서 비서님. 죄송해요. 마을에 잠시 일이 있어서 연락이 늦었네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오늘이 지나도 연락이 없으면, 사람을 꾸려 내려갈 뻔했습니다!

우와, 지금 전화 안 했으면 진짜로 큰일 날 뻔했다.

나는 서차웅이 앞에 있는 것도 아닌데,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정말 미안해요! 아마, 내일이면 올라갈 것 같으니까요! 참고로 12공방의 일도 모두 마무리했어요!”

-그렇다니 다행입니다만…….

서차웅이 작게 숨을 내쉰 후 물었다.

-청해진 헌터는 곁에 있습니까?

“네.”

-바꿔 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이죠.”

나는 청해진에게 냉큼 휴대폰을 넘겼다.

“여보세요? 네, 서 비서님. 아니요, 아니 그게 아니라요.”

청해진이 절절매기 시작했다. 서차웅의 잔소리가 시작된 모양이다.

나는 모르는 척 콧노래를 부르며 창밖을 구경했다.

그러다 보게 됐다.

“서 비서님! 저는 진짜 억울해요! 그렇다고 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 아닌데, 야! 윤리사! 아니, 길드장님! 어디가!”

“잠깐 외출 좀 하고 올게.”

“외출은 무슨 외출! 마을 분위기 흉흉한 거 몰라?”

알지만 나한테 그다지 위협이 되지 않았다.

나는 서차웅과 계속 전화를 하라는 제스쳐를 취한 후, 곧장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살랑이며 불어온 바람이 머리칼을 가볍게 스치고 지나갔다.

12공방의 옛 영혼들이 사라지지 않았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자연.

나는 묵묵히 앞으로 걸어갔다.

후웅-!

바람이 불어오고 있는 선산의 입구 앞에서 말이다. 넋이 나간 마을 사람들이 마을 중앙에 모여 있던 때와 똑같았다.

그때도 선산이 이렇게 입구를 열어 줬던 것 같은데…….

“들어가도 되는 거겠지?”

나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내디뎠다.

뒤를 돌아보았을 때, 나와 청해진이 머무는 숙소는 사라진 뒤였다.

선산이 입구를 닫아 버린 거다.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어차피 내려가는 길이야 쉽게 찾을 수 있으니, 뭐.

‘괜찮겠지!’

나는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보다 이제 어떻게 하지? 산을 올라가 봐야 하나?”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얘, 아이야.〗

나긋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니, 양쪽 귀 위로 길게 뿔이 돋아난 여자가 보였다.

그래, 뿔이 돋아나 있었다.

그것도 사슴의 뿔이.

“당신, 사람 아니죠?”

본능적으로 던진 질문.

여인이 내 말에 웃음을 흘렸다.

〖정답이란다.〗

그 말은, 즉.

“미지 영역의 거주자시군요?”

내 앞의 여인은 신이란 뜻.

여인이 눈웃음을 지었다.

〖그렇단다. 네가 생각하는 그들보다는 별 볼 일 없는 몸이지만 말이야.〗

“그래서 저를 이곳에 부른 이유는요?”

여인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너를 부른 걸 어떻게 알았니?〗

“뻔하죠.”

선산의 입구가 갑자기 열리더니, 여인이 튀어나왔다.

어린아이라도 그녀가 나를 부른 거란 걸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혹시,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는 건가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 산에서 날뛰던 12공방의 옛 영혼들을 모두 해방시켜 줬으니까요.”

해방시켜 줬다는 말은, 곧 붙잡혀 있었다는 말이다.

바로, 이 산에.

여인이 멍하니 두 눈을 끔뻑거리다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아이야. 맞단다. 나는 네게 감사 인사를 하고 싶어 너를 부른 거란다.〗

예쁘장하게 웃음을 터트리던 얼굴이 서글프게 일그러졌다.

〖이 땅에서 태어나고 져 버렸던 영혼 모두 내가 붙잡고 있었거든.〗

그럴 줄 알았다.

귀수산 같이 원래 귀신들이 득실거리는 곳이 아니고서야, 그렇게 많은 영혼이 모여 있을 수가 없었으니까.

“왜 그러신 거예요?”

〖내 욕심 때문이지.〗

여인이 씁쓸하게 말했다.

〖내 이름은 장색. 장인의 또 다른 이름으로 이 땅에서 태어난 최초의 대장장이란다.〗

“신이 아니라요?”

〖그래, 나는 원래 인간이었단다. 그러다 이 산의 주인과 계약을 맺어 이곳을 수호하게 됐지.〗

그러면서 그녀는 어렴풋하게 보이는 마을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제자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싶었거든.〗

“제자들이라고 하면…….”

〖열두 장인.〗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

여인이 옅게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세간에서는 열두 장인의 지위가 내가 사랑한 순서이니 뭐니 하는 것 같던데.〗

“아니죠?”

〖그럼, 아니란다.〗

여인이 그건 다 헛소리라면서 씩씩거리고는 말했다.

〖열두 장인의 지위는 내 제자가 된 순서. 나는 모든 제자를 공평하게 사랑했단다.〗

그러니까 열두 장인에 대해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는 모두 지어낸 허구였다는 거다.

“가슴 꽤 아프셨겠네요?”

〖그렇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제1 공방의 주인이니 뭐니 그런 것 따위 정해 주지 않았을 거란다.〗

제자들을, 그리고 그 후손들을 끝까지 지켜보고 싶어 신이 됐단다.

그런데 그 후손들이 ‘제1 공방’이니, ‘제12 공방’이니 하는 것들에 불만을 가지고 주먹 다툼을 했으니.

‘속이 말이 아니었겠네.’

아니, 잠깐만.

“설마, 후손들이 그러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그 영혼들을 붙잡아두고 있었던 거예요?”

〖설마, 그럴 리가 있겠니?〗

여인이 화들짝 놀라서는 말했다.

〖아이들의 영혼을 붙잡아두고 있던 건 내 의사가 아니었단다. 이 몸의 원래 주인인 산신의 뜻이었지.〗

여인이 작게 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고맙단다. 네 덕분에 모든 영혼이 풀려났어.〗

“제가 한 일이라고는 당신 제자 중 가장 강한 열두 명을 때려눕힌 일밖에 없는걸요?”

〖그래도 그 덕분에 이 땅에 평화가 깃들었으니 된 거 아니겠니?〗

그런가?

멋쩍게 뺨을 긁적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여인이 말했다.

〖사희한테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 주겠니? 그때는 그녀가 너무 무서워 숨어 있었기만 했거든.〗

“네? 우리 할머니를 아세요?”

〖그럼, 사희 덕분에 마을을 배회하던 영혼들이 한 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걸?〗

여인이, 아니. 장색이 일러 줬다.

〖내가 말했지, 아이야? 12공방에서 나고 자라 죽은 영혼들은 모두 이 땅에 묶이게 됐다고.〗

“네.”

〖그 영혼들은 자신의 후손들을 계속 부추겼단다. 서로 싸우라고, 저 녀석을 이겨 달라고.〗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옛날에 12공방의 장인들끼리 심심하면 주먹다짐을 벌였다고 말이다.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실체가 없는 것들이 더한다더니.

가볍게 혀를 차는데 장색이 말을 이었다.

〖그 영혼을 한데 모아 준 게 바로 사희란다. 분명, 우리 마을에 들끓고 있는 귀신들을 보고 찾아온 거겠지. 그렇게 그녀는 싸움장을 만들고, 그곳에 영혼들을 묶었단다.〗

꽤 오랜 시간, 12공방을 배회하던 영혼들이 그곳에 정착할 때까지 사희는 지켜봤다고 했다.

〖덕분에 이렇게 됐으니, 네 할머니에게 꼭 감사 인사를 전해 주렴. 나는 이곳을 벗어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장색 님, 할머니는…….”

〖살아 있는 거 다 안단다.〗

장색이 웃었다.

〖물론, 정말 살아 있다고 볼 수는 없겠지. 하지만 있잖니?〗

귀수산에.

덧붙여 말하는 목소리에 나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언제 한 번 찾아올게요.”

〖정말?〗

“네, 궁금한 게 있거든요.”

장색은 신이다.

암만, 인간이라고 해도 그녀는 지금 영락없는 신이었다.

그런데도 미지 영역이 아닌 이곳에 있는 이유가 뭘까? 아니, 도대체 어떻게 이곳에 있는 걸까?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해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이만 돌아갈까 하는데 문을 열어 줄 수 있을까요? 산을 내려가기에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서요.”

〖그럼, 물론이지.〗

장색이 흔쾌히 문을 열어 줬다.

〖조심히 가렴, 아이야.〗

“장색 님이야말로 다시 돌아올 때까지 몸조심하세요.”

〖나를 걱정해 주는 거니?〗

신인, 이 나를?

장색은 마치 그렇게 묻는 것처럼 보였다.

그 때문에 나는 짓궂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여 줬다. 그렇게 걸음을 돌려 장색이 열어 준 입구로 향하려는데.

〖잠깐, 아이야.〗

장색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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