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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351)화 (351/500)

351화. 선산(3)

“……뭐야?”

나도 모르게 내뱉은 목소리였다.

두 가지 속성을 다루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여기에 불이라니!

“정체가 뭐죠?”

“내 이름은 지연호.”

화르륵!

지연호가 온몸에 불길을 휘감으며 말했다.

“이 몸의 먼 조상이자, 사희와는 각별했던 사이요.”

각별했던 사이라니!

“설마…….”

증조할아버지인 건가?

놀란 눈으로 지연호를 쳐다보자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사희와 이성적으로 얽히거나 그런 건 없었다네.”

아, 다행이다.

후손의 몸을 차지해서 싸움판을 구경하는 선조는 사양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들었으니.

“도대체 우리 할머니를 어떻게 아는 거죠?”

지연호뿐만이 아니다.

12공방의 옛 영혼들 대부분이 그녀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내 말에 지연호가 말했다.

“그건, 나를 이기면 가르쳐 주도록 하겠소.”

거칠게 일던 불꽃이 나를 목표로 삼아 쇄도했다.

그것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좋아,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지연호 님, 제가 당신을 이기면 한 가지 더 가르쳐 주실래요?”

“무엇이든.”

지연호는 내가 자신을 이길 거라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선조께서 자존심 하나는 정말 센 것 같았다. 말하는 걸 보면 그는 제5 공방의 주인인 것 같은데…….

나는 생각을 멈추고는 자세를 낮춰 그림자를 움직였다.

그런 나를 보며 지연호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었다.

“피하지 않는가?”

“피하면 이길 수 없을 것 같아서요.”

“그렇다고 그리 있으면 불꽃에 타 죽어 버릴 텐데?”

“괜찮아요.”

이런 곳에서 죽을 생각 따위 절대 없으니까!

나는 땅을 박차며 불꽃 속으로 몸을 움직였다.

“윤리사 길드장님!”

현원창이 경악하며 나를 불렀지만 괜찮았다.

‘아, 뜨거워.’

뜨겁기는 했지만 버틸 만했으니까.

나는 그대로 내 몸 주위를 맴돌고 있던 그림자를 크게 움직였다.

파아아앗!

검은 그림자가 불꽃을 모두 집어삼켜 버렸다.

“무슨!”

지연호가 당황하여 두 눈을 크게 떴다.

나는 가볍게 땅에 착지하고서는.

처억!

지연호의 목을 향해 창을 겨눴다.

그림자로 만들어진 창이 일렁이며 불길한 연기를 피워냈다.

“지연호 님.”

당황한 낯의 그를 향해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우리 할머니와 무슨 사이였는지 하나하나 자세하게 알려주시기를 바랄게요.”

그리고.

“당신 정체도 알고 싶네요.”

내가 상대한 신인들은 모두 한 가지 속성만 다룰 수 있었다.

그런데 지연호는 달랐다.

물과, 불. 그에 불꽃까지.

우리 할머니와 각별한 사이면서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니.

알아볼 필요가 충분했다.

지연호가 분하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알겠소.”

순순히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이 의외였다.

뭐, 어쨌든 그건 그거고.

“지연호 님을 제외한 다른 분들은 모두 계약에 따라 차지하고 있는 몸에서 나와 주시겠어요?”

계약은 계약이지.

나와 지연호의 싸움을 구경하던 12공방의 옛 선조들이 웅성거리다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영혼이 빠져나간 몸이 힘없이 쓰러졌다.

“아… 안 돼……!”

그들을 보며 현훈이 아연실색하여 외쳤다.

“아버지.”

현원창이 그런 아버지를 안타깝다는 듯 조심스럽게 불렀다.

나는 그들 부자(父子)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가족의 일은 가족이 해결하게 둬야 했다.

적어도 지금은 그랬다.

“자, 그럼. 지연호 님.”

나는 지연호를 향해 미소를 그리며 물었다.

“말씀해 주시겠어요?”

지연호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

“얘, 연호야. 너 혹시 창이 못 봤니? 창이가 보이지 않는구나.”

“모르겠는데요.”

지연호가 뚱하게 말했다.

제 어머니가 말한 ‘창’의 본명은 청창.

청(淸)의 금지옥엽 막내로, 10년 전 잃어버린 딸이었다.

“이것, 참. 오늘 아버지께서 창을 데리러 온다고 하였는데 곤란해졌구나. 나가서 좀 찾아보고 오겠니?”

“싫어요!”

지연호가 목소리를 높였다.

“어머니는 왜 창이만 걱정해요?! 어머니 자식은 나인데!”

“얘가……!”

“몰라! 나 집 나갈 거야!”

지연호가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연호야! 얘, 지연호!”

어머니가 다급하게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지연호는 무시했다.

이건 다 청(淸)에서 온 창이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그 계집을 찾아 보호한 후로 자신은 뒷전이 되어 버렸다.

‘어머니 자식은 나인데!’

그날, 어머니와 함께 아랫마을에 가는 게 아니었다. 또한, 그곳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창을 구해 주는 게 아니었다.

‘짜증 나!’

지연호가 달리기를 멈춘 건, 마을 근처에 흐르는 냇가 앞에서였다.

그는 불퉁한 얼굴로 갈대밭에 풀썩 주저앉았다.

“으아아앙!”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지연호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들려오는 울음소리가 귀에 익은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창이?’

그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분명, 이 울음소리의 정체는 청창의 것이었다. 청(淸)이 가장 아끼는 그의 막내딸.

그 어린 딸이 가까이에서 엉엉 울고 있다니?

‘오늘 할아버지가 온다고 했는데?’

그런데 저 모습을 보면 분명 크게 화를 내고 말 거다.

무려, 10년 만에 되찾은 딸이 울고 있다면 자신이라도 그럴 것 같았다.

지연호가 그렇게 청창의 목소리가 들려오던 곳으로 향했을 때였다.

“으, 으아악!”

“죽었어? 죽은 거야?”

“누가 어른들 좀 불러와!”

“나는 몰라!”

아이들이 비명을 질러대며 마을로 앞다투어 뛰어갔다. 지연호가 그들 중 한 명을 붙잡아 물었다.

“뭐야? 무슨 일인데?”

“이 손 놔!”

하지만 아이는 희게 질린 얼굴로 지연호의 손을 뿌리쳤다.

‘뭐야…….’

지연호가 미간을 좁히고는 청창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청창?”

아이는 물에 젖어 미동이 없었다.

“창아! 야! 청창!”

지연호가 열심히 아이를 흔들었음에도 그랬다.

덜컥, 겁이 났다.

“처, 청창. 야, 창아.”

그 순간 아이는 떠올렸다.

‘으, 으아악!’

‘죽었어? 죽은 거야?’

‘누가 어른들 좀 불러와!’

‘나는 몰라!’

마을로 뛰어가며 내지르던 아이들의 비명을.

죽었다고? 정말로?

“거, 거짓말이지?”

지연호가 말을 더듬으며 청창의 어깨를 흔들었다.

“창아, 야. 청창! 일어나봐! 오늘 할아버지가 온다고 했단 말이야! 네 아버지가 온다고!”

그러나 아이는 미동도 없었다.

“차, 창아.”

지연호가 파르르 입술을 떨 때.

“아가?”

바로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순간, 가장 듣고 싶지 않은 이의 목소리가.

***

“청(淸) 님이셨소.”

지연호가 담담하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분께서는 분노했소이다. 어머니께서 비호해 주지 않으셨다면 나 역시 죽었을 거요.”

지연호가 픽 웃었다.

“실제로 앞장서서 창을 괴롭히던 놈을 제외한 모두가 그분의 손에 죽임을 당했으니 말이지.”

자조적으로 내뱉는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연호 님은 제 생각보다…….”

“옛날 사람이지 않소이까?”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고갯짓에 지연호가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어쨌든, 나는 살아남았으나 내 후손은 청(淸)의 힘을 물려받지 못하게 되었지.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소.”

지연호가 가볍게 바람을 불러일으키고는 말했다.

“이런 힘을 가지고 있어봤자, 청(淸) 가문에서 마뜩잖게 생각했을 테니까.”

그건 그랬다.

청해솔 이전의 청(淸)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아예 제5 공방을 남해 쪽으로 이전시키려고 했을 테다.

제5 공방의 주인에게 청(淸)의 힘이 계속 남아 있다는 가정 하에 말이다.

“어쨌든, 그 일로 나는 잠시 말을 잃게 되었소. 할아버님께서 보여 준 분노는 어린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것이었거든.”

그렇지만 청(淸)에서는 어떤 지원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가 청(淸)의 직계 자식임에도 그랬단다.

“나는 괜찮았소. 내 목숨이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고마웠지.”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12공방의 주인들 사이에서 서로의 실력에 대해 불만을 품은 자가 나타나기 시작했소.”

그 이후의 이야기는 나도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서로에게 부여된 숫자에 대해 불만을 품고 주먹다짐을 시작했다던가, 뭔가 그런 이야기였지.

“우리 12공방은 청(淸)의 분노를 받은 이후 다른 마을과 담을 쌓게 됐소이다. 세간에서는 기술의 유출을 막기 위해서라고 소문이 돌던 모양인데.”

지연호가 픽 웃었다.

“사실은 청(淸)의 분노가 내려졌던 마을임을 숨기기 위해 그런 것이오.”

그런 비밀이 있을 줄이야.

“뭐, 지금 이 상황에서 그건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고.”

지연호가 크흠, 헛기침을 터트리며 물었다.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를 했는지 물어봐도 되겠소?”

“12공방의 주인들 사이에서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까지 했어요.”

“아아, 그렇지.”

지연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 불만이 극에 달했을 때, 사희가 우리 마을을 찾아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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