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348)화 (348/500)

348화. 12 공방(5)

“의외네?”

제1 공방을 나서며 청해진이 건넨 말이었다.

“뭐가?”

내 물음에 청해진이 곧장 말했다.

“바로 받아들일 줄 알았거든.”

“12공방의 일을?”

“응.”

청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려고 여기까지 내려온 거 아니야?”

그건 그랬다.

겸사겸사 윤사해의 코트를 수선해 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도 전하고 말이지.

하지만…….

“문제가 많아 보여서.”

“하긴, 현원창 님께서 문제가 좀 있어 보이기는 했지.”

“그것도 그런데, 그냥 이번 의뢰 자체가 문제가 많아 보이더라고.”

그래서 잠시 생각할 시간 좀 달라 한 거다.

“현원창 님이 그랬잖아. 우리가 저 산에 오를 방법을 모르겠다고.”

“그랬지.”

마을 가까이에 있는 산은 오직 장인의 지위를 가졌거나 가지고 있는 사람만 오를 수 있다.

“그런데 그러지 않은 마을 사람도 지금 저 산에 있다고 하잖아.”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누가 이동시켜 준 건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류화홍과 같은 스킬을 가진 이동계 각성자가 흔한 것도 아니고, 더욱이 그런 사람이 있다면.

‘장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잡혀간 걸 보면,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현원창이 저런 식으로 말할 리가 없었다.

“이거, 우리 힘만으로 해결이 가능할까?”

“모르지.”

애초에 아직 12공방의 의뢰를 받지도 않았다.

“일단, 쉬자. 날이 너무 늦었어.”

청해진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그렇게 현원창이 일러 준 빈집으로 향했다.

***

나는 왼쪽, 청해진은 오른쪽.

우리는 각자 방을 잡고는 거실에 모였다.

마을 사람들의 부재를 알고나니 주변 공기가 꽤 무겁게 느껴졌다. 아닌 게 아니라, 바람 한 점 없는 마을에 속이 답답했다.

이 와중에 청해진은 신이 난 얼굴이었다.

“뭔가 공포 체험하러 온 것 같아.”

“놀러 온 거 아닌 거 알지?”

“당연히 알지.”

그러면서 청해진은 웃었다.

“중학생 때, 네 오빠들이랑 폐가 체험하고 다녔는데 말이지.”

“그런 일을 했다고?”

“응. 참고로 내가 하자고 했던 거 아니야. 네 오빠들이 먼저 하자고 했었지.”

윤리오와 윤리타가 왜 그런 제안을 했는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중학생 때라면 윤사해와 관계가 한창 최악에 달했을 때였을 터.

그의 관심을 얻고자 그런 위험한 짓을 하자고 한 거겠지.

“물론, 리사 네가 걱정된다고 그 녀석들은 폐가 체험 도중에 돌아가고는 했지만.”

그래서 제대로 폐가에서 놀아 본 적은 없다고 청해진이 웃었다.

“다 추억이지.”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 보이는 미소에 나는 말했다.

“다음에 같이 하자.”

“응?”

“리오 오빠가 깨어나고, 리타 오빠가 돌아왔을 때.”

그래, 그때.

“같이 폐가 체험하러 가자.”

청해진이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다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러다 귀신 들려도 모른다?”

“괜찮아. 귀수산에서 심심찮게 보는 게 귀신들인데, 다들 나를 무서워하더라고.”

“거짓말하시네.”

청해진이 키득거리고는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입을 열었다.

“내가 분명 오늘은 쉬자고 했을 텐데?”

“그래도 이야기는 해 봐야지. 무엇보다, 나는 우리 길드장님을 믿지 않거든?”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윤리사 길드장님, 쉬자고 하면서 혼자 또 튀어나갈 거잖아.”

“아니거든?”

저 망할 오빠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물론, 뭔가 일이 생기면 튀어나갈 수도 있지.”

“거 봐.”

청해진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픽 웃음을 흘렸다.

나는 억울했다.

“그런데 그건 해진이 오빠도 마찬가지잖아!”

“죄송하지만, 길드장님. 저는 일개 길드원이라서요. 길드장님 명령이 없는 한 움직이지 않는답니다.”

어린 시절, 무대포로 굴던 청해진은 잊어달라면서 그가 말했다.

“그러니까 말해 봐.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우선, 날이 밝는대로 12공방을 좀 둘러봐야겠어. 현원창 님과 현한 님, 그리고 우암 님과 아영이를 제외한 모두가 사라진 게 맞는지 확인이 필요할 것 같으니까.”

“만약, 모두 사라진 게 맞다면?”

나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가 입을 열었다.

“저 산을 오를 방법을 찾아봐야겠지.”

“결국 의뢰를 받을 생각이네?”

“어쩔 수 없잖아.”

마을 사람들이 산에 올라간 지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다들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을 거다.

청해진이 구시렁거렸다.

“그냥 받아들일 것이지.”

“그러기에는 현원창 님이 너무 못 미더웠거든.”

뒤늦게 산을 올라갈 방법을 찾았다니 뭐니 그렇게 나올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나누자.”

“그래.”

청해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자, 리사.”

“해진이 오빠도.”

나는 그를 향해 굿나잇 인사를 보낸 후 방으로 돌아왔다.

방에 들어서니 마을 사람들의 부재가 더욱 확실하게 느껴졌다.

풀벌레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바깥 풍경에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세상은 도대체 어떻게 이곳에서 일을 처리한 거야?”

『각성, 그 후』에서 12공방에 관한 일은 자세하게 나오지 않았다. 그저 저세상이 12공방이 겪던 사건을 해결해 줬다고만 나왔을 뿐.

‘그리고 그때 12공방은 꽤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고 서술이 되어 있었지.’

주변만 봐서는 12공방은 『각성, 그 후』에서 서술된 것처럼 혼란스럽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적막하고 고요했다.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 사라졌으니 이럴 수밖에 없을 테지만.’

그럼, 여기에서 문제.

『각성, 그 후』는 왜 12공방을 그런 식으로 표현했던 걸까?

‘저세상이 해결한 일도 내가 닥친 상황과 똑같을 텐데 말이지.’

무엇보다 그는 어떻게 저 산을 오른 걸까?

“후우.”

나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이런 의문을 품어 봤자 해결될 일이라고는 전혀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저세상을 불러 이 일 좀 해결해 보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

나는 바닥에 몸을 눕혔다.

지금 필요한 건 휴식이었으니까.

***

얼마나 잔 걸까?

끼익-!

불쾌한 쇳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뭐지?’

나는 조심스럽게 방을 나왔다.

불 켜진 집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마을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저택을 나가고 있는 사람의 뒷모습을 똑똑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해진이 오빠?”

청해진이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밖으로 나가는 게 보였다.

“해진이 오빠!”

나는 허겁지겁 겉옷을 챙겨 입은 후 청해진을 쫓았다.

“오빠, 어디 가!”

내 목소리가 들릴 텐데도 청해진은 멈추지 않았다. 계속 앞으로 걸어가기만 했다.

무언가 잘못됐다.

엄습하는 불길한 감각에 나는 <[S, 숙련 불가] 그림자 사냥꾼>을 이용해 청해진을 제자리에 멈춰 세웠다.

그림자에 묶여 움직이지 못하게 된 그는 아무런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청해진에게 다가가 그를 살폈다.

청해진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정말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보였다.

‘어떻게 하지?’

뒤통수라도 세게 때려 볼까? 그래, 그렇게 해 보자.

자고로 하고자 마음 먹었다면 행동으로 실천을 보여야 한다.

나는 청해진의 뒤통수를 때리기 위해 손을 들었다.

하지만.

“뭐야……?”

이윽곧 나타나는 사람들의 모습에 나는 손을 내렸다.

우암과 우아영, 현한까지.

마을에 남아 있던 넷 중 세 명의 사람들이 청해진과 같은 모양새로 내 앞에 나타났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현원창은 어디 있지?

나는 보이지 않는 그를 찾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현한!”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급하게 아들을 쫓아온건지, 현원창은 맨 발이었다.

현원창이 나를 보고는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그게, 저도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고요?”

“네.”

현원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그 역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아들의 어깨를 흔들고 있었으니까.

“현한, 정신 차려라! 현한!”

하지만 현원창의 아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현한뿐만이 아니라 우암과 우아영도 그랬다.

당연히 청해진도 마찬가지.

나는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아무래도 마을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산에 올라간 모양이네요.”

“의식이 없다고 해서 올라갈 수 있는 산이 아닙니다!”

“만약, 산이 초대를 하면요?”

“네?”

현원창이 멍하니 물었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그의 뒤를 가리켰다.

“저기를 봐요.”

현원창의 뒤로 산의 정경이 보이고 있었다. 이곳에서 보일 산이 아닌데 말이다.

현원창이 입을 뻐끔거리는 순간, 그의 아들이 산을 향해 움직였다.

“현한!”

나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짖는 그의 어깨를 잡았다.

“가 보죠.”

“네?”

현원창이 놀란 얼굴을 보였다.

“사람들 안 구할 거예요?”

그 사이 우암과 우아영이 산으로 사라졌다. 그림자에 묶여 있던 청해진을 풀어 주니, 그 역시 산으로 사라져 버렸다.

내 말에 현원창은 입을 뻐끔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고갯짓에 미소를 그리며 걸음을 옮겼다.

12공방의 의뢰를 받지도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 그들의 일을 해결해 주게 생겼다.

뭐, 좋은 일이겠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