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7화. 12 공방(4)
12공방이 있는 안동 하회 마을.
그곳의 주민수는 총 58명.
원래 그 배수는 있었으나 다들 ‘발설 금지’의 서약을 맺고 마을 밖으로 나갔다.
그런 서약을 맺지 않으면, 12공방과 관련된 정보를 함부로 퍼트릴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에 불만을 품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어리석은 녀석들 같으니라고! 이곳을 지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그들 중 한 사람이 바로 현원창의 아버지이자, 이전 제1 공방의 주인이었던 현운이었다.
“아버지, 시대가 많이 바뀌지 않았습니까? 더욱이 이곳을 지키는 사람들은 저희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충분하기는!”
현운이 빼액 소리 질렀다.
현운은 자신의 세대에서 능력이 가장 떨어지는 인물이었다.
그런 주제에 자부심은 넘쳐나 심심찮게 같은 장인들과 싸우고는 했다.
“네 녀석도 문제야. 암만 현한이가 있다고 해도 그렇지. 자식 놈들이 밖으로 나가는 걸 허락하다니!”
현원창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여기에서 제 아버지에게 말대꾸를 해 봤자 좋을 게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현훈은 계속해서 구시렁거렸다.
“요즘 녀석들은 정말이지! 조상들 덕분에 편하게 자란 걸 몰라!”
현원창은 아버지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현훈, 또 바쁜 녀석 붙잡고 투덜거리고 있느냐?”
제3 공방의 주인, 우암이 찾아온 건 그때였다.
현운이 얼굴을 찌푸렸다.
“네 녀석이 여긴 무슨 일로 찾아온 거야?!”
“친구 얼굴 좀 보러 찾아왔네만.”
“친구가 어디 있다고!”
“바로 내 앞에 있지 않은가?”
“내가 왜 네 친구야!”
또 시작이다, 또.
현운과 우암은 같은 세대의 장인들이었다. 문제는, 그들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다는 거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제1 공방의 주인이었던 현운은 장인들 중 가장 실력이 뒤처졌고, 우암은 실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다들 입을 모아 칭찬을 했었으니.
우암을 제외하고 모두 세대가 교체된 지금도 그들은 여전히 앙숙인 상태였다.
물론, 앙숙이라고 여기는 건 현운뿐이었지만 말이다.
현원창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저는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기 전에 공방을 나가는 게 좋았다.
현원창은 그렇게 공방을 나섰다.
***
현원창이 향한 곳은 마을 근처에서 흐르고 있는 하천이었다.
이곳에서 최초의 열두 장인은 결속과 화합을 다졌다고 했다. 그런 보람도 없이, 그들의 후손은 틈만 나면 싸웠지만 말이다.
‘뭐, 그것도 옛날 일이지.’
지금의 열두 장인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했다.
실력이 있든 없든 제1 공방의 주인을 항상 마을의 촌장으로 추대한 것이다.
‘그것 때문에 아버지의 성격이 더 괴팍해진 것 같지마는.’
현원창이 한숨을 푹 내쉴 때였다.
“현원창 님! 여기 있으세요?!”
누군가 그를 찾았다.
“무슨 일입니까?”
“아! 정말 여기 계시구나! 지운휴 님께서 이곳에 계실 거라고 하더니 정말이었네요?”
지운휴는 제5 공방의 주인으로 현원창과는 막연한 친구 사이였다. 그리고 지금 현원창을 찾아온 사람은 그의 제자였다.
“큰일이에요! 현훈 님께서 사라지셨어요!”
“뭐라고요?”
현원창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놀란 건 잠시뿐, 그는 곧 제1 공방으로 달려갔다.
“아버지!”
공방에는 자신의 아들과 제 아버지를 놀리고 있던 우암만 있었다.
“현원창, 왔는가?”
우암이 태연하게 인사했다. 현원창은 표정을 굳히고는 그에게 향했다.
“제 아버지는 어디 가셨습니까?”
“그건 나도 모른다네.”
우암이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혼자서 열불을 내더니만 공방을 뛰쳐나가는 것 아닌가? 그렇지?”
우암의 물음에 현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암 님의 말이 맞습니다, 아버지. 할아버지께서 혼자 화를 내시다가 공방을 뛰쳐나가 버리셨습니다.”
현원창이 이마를 짚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아버지는 제 성질을 못 이겨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린 모양이었다.
“현한, 너는 할아버지께서 그렇게 나가 버리면 쫓아갔어야지!”
엄한 목소리에 현한이 고개를 푹 숙였다.
“네 아들 녀석은 죄가 없다.”
우암이 그를 다그쳤다.
“현운 녀석이 쫓아왔다가는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아주 엄포를 놓는데, 어떻게 따라갈 수 있겠느냐?”
“그렇다고 해도!”
“물론, 네 아버지가 그런 식으로 나가 버린 후 현한은 곧장 쫓아갔단다. 그렇지, 현한?”
현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산을 올라가 버리셨는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현원창이 앓는 목소리를 내었다.
마을 근처 산을 오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장인’의 이름을 달고 있거나, 달았던 사람들뿐.
아직 장인의 자리를 이어받지 못한 현한은 현훈을 쫓아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으리라.
“현운은 알아서 내려올 것이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면서 우암이 싱긋 웃었다.
하지만 현운은 날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현원창이 그를 찾아 나서고자 산을 오르게 됐다.
“원창아.”
“지운휴.”
제5 공방의 주인, 지운휴와 함께 말이다.
“아버님께서는 무사하실 거야.”
지운휴가 사람 좋게 웃으며 현원창을 위로하던 찰나.
“아버지?”
현운이 산에서 내려왔다.
더없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말이다. 현원창은 곧장 제 아버지를 향해 달려갔다.
“아버지! 괜찮으십니까?!”
“하하! 아하하! 원창아, 우리 아들아! 아하하하!”
현원창이 표정을 굳혔다.
현운의 상태가 뭔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버지는 저런 식으로 웃은 적이 없었다. 언제나 표독스럽게 얼굴을 찌푸리기만 했지.
그런데 저렇게 기분 좋게 웃는 모습이라니?
“아버지, 괜찮으십니까?”
“그럼, 괜찮고말고! 그보다 들어보거라. 이제 우리 마을 사람들은 그 누구도 밖으로 나갈 수 없을 거다! 선조들께서 내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거든!”
현운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다 이 아버지가 뛰어난 덕분인 줄 알거라! 내가 선조들을 이기다니! 선조들과의 싸움에서 이기다니!”
아하하하!
광기 섞인 웃음소리에 현원창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원창아.”
지운휴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의원님을 불러오는 게 좋을 것 같아.”
현원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몰랐다.
그것을 시작으로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질 줄은.
***
“처음은 아버지와 의원님이셨습니다. 그다음은 운휴였고요.”
현원창이 담담하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운휴 다음은 그의 제자 녀석이었습니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했죠.”
하지만 그 누구도 그에 대해 의식하지 못했다고 현원창이 말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뭔가 이상하다는 기시감만 느낄 뿐, 마을 사람들이 사라진 것에 대해 아무 관심도 없었습니다.”
사라진 사람 중에 자신의 아버지도 있는데 말이다.
“그러다 마을 앞의 하천에 빠지게 되면서 정신을 차리게 된 겁니다.”
“하천이 흐르고 있는 줄 몰랐는데.”
청해진이 중얼거렸다. 현원창이 그 목소리를 듣고 물었다.
“청(淸)의 사람이지요?”
“네? 아, 네.”
“그럼, 저희 마을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겠군요.”
청해진이 멋쩍게 뺨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글쎄요, 이상한 점이라고 해야 하나? 마을의 대기가 멈춰 있는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 관해서는 자신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고 청해진이 말했다.
그보다.
“사라진 마을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앞서 이야기했던 그곳에 있더군요.”
먼 옛날, 열두 장인이 서로 주먹다짐을 하기 위해 만든 장소.
“바로 그곳에서 서로 주먹다짐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투고 있는 그 광경에 현원창은 경악했다고 한다.
“그들을 말려보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더욱이 그 장소에서 쫓겨나고 말았지요.”
현원창이 괴롭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모두 제 아버지 때문입니다. 왜 그런 곳을 발견해서……!”
“아니에요, 현원창 님. 너무 그런 식으로 자책하지 마세요.”
나는 그를 다독였다.
“지금 중요한 건 마을 사람들을 구출하는 거잖아요?”
현원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청해진이 손을 들고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산을 올라가죠? 산을 오를 수 있는 사람은 장인이었거나 장인인 사람들뿐이라면서요?”
그렇네?
나는 현원창을 쳐다봤다. 내 시선에 현원창이 입을 열었다.
“장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잡혀간 걸 보면,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한 마디로.
“방법을 모른다는 거네요?”
나와 청해진이 산을 올라가는 방법을 말이다.
현원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네에?
지금 그런 대답이 나와?!
“현원창 님…….”
이렇게 대책 없는 사람은 처음 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산을 올라가는 방법 정도는 찾아 놨어야 하지 않나?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현원창은 태연했다.
“마을 사람들을 구조해 주신다면, 12공방의 이름을 걸고 이매망량을 위해 헌신하겠습니다.”
즉, 우리를 위해서만 일을 하겠다는 소리였다.
혹하는 제안이기는 했다.
그렇지마는.
“일단, 생각 좀 해 볼게요.”
아무래도 12공방의 일에 신중하게 접근을 해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