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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346)화 (346/500)

346화. 12 공방(3)

쨍그랑-!

시끄러운 소리가 공방 밖에서 들려왔다. 황급히 청해진과 함께 나가니 우암이 쓰러져 있었다.

“우암 님, 괜찮으세요?!”

“소, 소인은 괜찮소. 그보다…….”

지진이 멈췄다.

나는 우암을 부축하며 물었다.

“갑자기 왜 지진이 일어난 거죠?”

“모르겠소.”

우암이 고개를 저었다가 다급하게 말했다.

“아, 아영이! 우리 아영이 녀석을 찾으러 가야 하오!”

“우암 님, 진정하세요!”

언제 다시 땅이 흔들릴지 모른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 없는 지금, 노약자는 최대한 안전한 곳에 있어야 했다.

“아영이는 제가 찾아올게요. 청해진 헌터, 우암 님을 부탁하겠습니다.”

“네, 길드장님. 혹시 모르니 저도 찾아 보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곧장 우아영을 찾고자 나섰다. 아이를 찾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조금 전 지진으로 많이 놀랐는지, 아이는 마을 골목에 쪼그려 앉아서 벌벌 떨고 있었다.

문제는, 우아영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

우아영의 곁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아이한테서 떨어지시죠.”

어차피 이곳은 12공방의 마을.

그와 관련된 사람들만 사는 곳이니 모두가 아는 사이일 테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우아영이 흠칫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다정하게 목소리를 내며 아이를 진정시켰다.

“아영아, 우암 님 부탁으로 찾으러 왔어.”

“저, 정말?”

“응, 정말. 그러니까 언니한테 올래? 우암 님께서 많이 걱정하셔.”

우아영이 우물쭈물하다 내 곁으로 뛰어왔다. 나는 그대로 아이를 보호하며 눈앞의 남자를 경계했다.

“누구시죠?”

“경계가 심하군요. 이곳 마을 사람들끼리는 친분이 있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요?”

댁이 언제 돌변할지.

나는 뒷말을 삼키며 싱긋 웃었다.

남자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다 픽 웃으며 말했다.

“마음에 듭니다. 그대한테 편지를 보내기를 잘한 것 같군요.”

편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현원창 님?”

멍하니 입술을 벌렸다.

남자가, 아니.

제1 공방의 주인인 현원창이 웃는 낯으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이매망량의 새로운 주인이여.”

***

“아영아!”

“할아버지!”

우아영이 우암을 향해 두 팔 벌려 뛰어갔다. 우암이 손녀를 안아 들고는 이곳저곳을 살폈다.

“괜찮으냐? 다친 곳은!”

“없어! 넘어질 뻔했는데, 현원창 아저씨가 잡아 줬거든!”

우아영이 현원창을 가리켰다. 그에 우암이 손녀를 안아 든 채로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뱉어냈다.

“저녁은 되어야 돌아올 줄 알았더니만.”

“생각해 보니 오늘 손님들께서 오신다던 날이더군요.”

그걸 잊고 있었던 거야?

나와 청해진을 골리기 위해 자리를 비운 줄 알았더니.

“잊고 있었지 뭡니까?”

정말로 잊고 있었단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12공방의 존망이 달린 중요한 일을 맡기고 싶다고 하더니만.

‘사실은 별일 아닌 거 아니야?’

그러지 않고서야 사람이 저럴 리가 없었다.

하지만 조금 전에 있었던 지진을 생각해 보면 12공방에 무슨 일이 있는 건 분명해 보였다.

“그럼, 우암 님.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손님 분들을 모시고요.”

“그러도록 하게.”

우암이 고개를 끄덕인 후 나를 향해 고개 숙였다.

“우리 아영이를 찾아 줘서 고맙소.”

“아니에요.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요, 뭘.”

나는 손사래를 치고는 우아영에게 인사했다.

“아영아, 안녕.”

“흥!”

우아영이 제 할아버지의 뒤에 몸을 숨기며 콧방귀를 꼈다. 그러면서도 내게 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이.

‘귀엽네.’

천진난만한 아이 같아 흐뭇했다.

그렇게 현원창과 함께 길을 떠나는데 그가 내게 물었다.

“아이를 좋아하시나 봅니다?”

“네? 아, 뭐. 좋아하죠?”

“제가 알기로는 그대 역시 아직 아이일 텐데요.”

아이라니!

“저는 청소년인데요?”

“어쨌든 어리지 않습니까?”

“현원창 님께서는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을 잘 모르시나 보네요?”

현원창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제1 공방에 도착한 것은 그때였다.

“아버지!”

“현한.”

나와 청해진을 향해 툴툴거렸던 남자가 제 아버지의 안부를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찾으러 가야 하는 건 아닌가 걱정했습니다.”

“보다시피 괜찮다. 공방은?”

“무사합니다.”

“그래.”

그것으로 두 사람 사이의 대화가 끝이 났다. 부자(父子)지간의 대화라고 하기에는 너무 딱딱한 분위기였다.

뭐,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

“들어가시지요.”

현원창의 공방은 우암의 공방보다 훨씬 더 깔끔했다.

“앉으십시오.”

현원창이 나와 청해진에게 자리를 권하고는 인사했다.

“먼저, 저희 12공방에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받은 것이 있으니까요.”

12공방은 윤사해가 입었던 하얀색 두루마기 코트를 내가 입을 수 있도록 수선해 준 곳이다.

현원창이 내가 입고 있는 겉옷을 보고는 말했다.

“마음에 들어하셔서 다행입니다.”

나는 싱긋 웃어 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원창이 입을 열었다.

“이매망량의 길드장님께서는 저희 12공방에 대해 얼마나 아십니까?”

“사실, 부끄럽게도 12공방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남들에 비하면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마는 말이지.

어쨌든 간에 현원창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12공방은 폐쇄적인 곳이니 그럴 만도 합니다.”

그러면서 현원창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열둘의 장인이 있는 것은 아시겠지요.”

“네, 알아요.”

“그럼, 그 열둘의 장인들에게 부여되는 숫자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아십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 고갯짓에 현원창이 답을 알려 줬다.

“먼 옛날, 신의 사랑을 받은 순서대로 정해집니다.”

“신의 사랑이요?”

“그렇습니다. 이매망량의 길드장님께는 신이란 호칭보다 미지 영역의 거주자란 호칭이 더 익숙하겠군요.”

현원창이 담담하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흔히 장인들에게 부여되는 숫자는 실력순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닙니다.”

열두 장인에게 부여되는 숫자는 신, 즉. 미지 영역의 거주자에게 사랑을 받은 순서.

“장인들끼리 마찰을 많이 빚었겠는데요?”

자신의 선조가 신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실력이 뛰어난데 낮은 숫자에 머물러 있으면…….

‘기분 나쁘지.’

나라도 그럴 것 같았다.

내 말에 현원창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에야 다들 그러려니 하지만, 옛날에는 심심찮게 주먹다짐이 일어났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때문에 12공방은 폐쇄적인 분위기를 띠게 되었다고 한다.

“모순적이지만, 열두 장인은 자신들이 부여받은 숫자에 대한 진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하긴, 그런 진실이 알려지면 외지인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장인들을 갈라놓고자 난리였겠지.

신의 사랑을 많이 받았든, 받지 않았든. 실력이 좋든 좋지 않든.

어쨌든 열두 장인이 가진 능력은 누구라도 탐을 낼 만한 것이었으니.

하지만.

“그래서요?”

열두 장인 사이의 비밀 이야기는 관심 밖이었다.

내 관심은 오직 현원창이 보낸 편지의 내용.

“그 이야기를 저희한테 들려주시는 이유는, 12공방의 존망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인가요?”

현원창이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성격상, 저 이야기를 꺼낸 건 분명 편지의 일과 관련이 있기 때문인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역시나였다.

“두 분께 묻겠습니다. 두 분께서는 이곳 마을에서 몇 명을 만나셨습니까?”

몇 명을 만났느냐니.

셀 필요도 없이 우리가 만난 사람은 셋뿐이었다.

“우암 님과 그분의 손주인 우아영, 그리고 현원창 님의 아드님이신 현한 님만 만났는데요.”

“외지인이 잘 드나들지 않는 이곳 마을에서 단 세 명만 만났다는 말씀이시군요.”

“현원창 님을 포함하면 네 명이죠.”

그의 말을 고쳐주는데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죠?”

제1 공방의 주인인 현원창과 제3 공방의 주인인 우암.

둘을 제외하면 열의 장인이 남는다. 그들 가족을 생각해도 숫자가 꽤 될 텐데.

‘본 적이 없어.’

애초에 그들의 부재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청해진 역시 뒤늦게 그 사실을 인지했는지 놀란 얼굴이었다.

현원창이 그런 우리를 향해 담담하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조금 전에 제가 그랬지요. 옛날, 열두 장인들 사이에서는 심심찮게 주먹다짐이 일어났다고.”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여 일어났던 오래된 일.

“그들은 공방에서는 절대 다투지 않았습니다. 그곳은 장인들에게 있어 신성한 곳이니까 말입니다. 그렇다고 마을 사람들 모두가 보는 앞에서도 싸우지 않았지요.”

그 말인즉슨.

“열두 장인은 주먹다짐을 벌일 공간을 따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먼 옛날에 말입니다.”

“혹시, 설마.”

“길드장님께서 예상하신 대로입니다.”

현원창이 내 말을 끊으며 말을 이었다.

“바로 그 공간이 몇 달 전에 발견됐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점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면서 현원창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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