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화. 12 공방(1)
무슨 정신으로 길드에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리니 테이커가 벌인 은행 강도 일은 AMO에 의해 정리되어 있었다.
문제는.
[속보! 이매망량의 새로운 길드장에 의해 지하 길드가 붕괴되다!]
[심층 탐구! 윤리사 길드장은 S급 각성자다?]
[AMO의 강산에 본부장, 윤리사 길드장을 향해 감사 인사를 전해… 이매망량, 마땅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밝혀……]
AMO가 상황을 정리하면서 내 이름을 너무 많이 팔았다는 거다.
물론, 일이 이렇게 되기를 바라서 그런 식으로 나섰던 거지만.
“후우, 머리야.”
너무 많이 팔았잖아!
끊임없이 쏟아지는 기사들에 두통이 일었다.
대부분 내가 가진 힘에 대해 떠들어대는 소리였다.
윤사해의 하나뿐인 딸이란 이유로 이매망량을 차지한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며 말을 바꾸는 태도에 웃음이 나왔다.
“길드장님, 지금 웃음이 나옵니까?”
서차웅의 성난 목소리에 헛기침하며 표정을 갈무리했지만 말이다.
서차웅이 그런 나를 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도대체 어디에서 그런 내상을 입고 돌아오셨는지, 알려 주시지 않을 겁니까?”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세상에 의해 이런 내상을 입었다는 건, 절대로 밝힐 수 없었다. 이운조의 입이야 돈으로 진작 막은 상태였다.
나는 서차웅의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다음부터는 다쳐서 돌아오는 일 없도록 할게요.”
“그러셔야죠!”
그렇게 말한 사람은 광혜원이었다.
광혜원이 내 치료를 모두 끝내고는 투덜거렸다.
“길드장님께서 다쳐서 돌아오면 제가 고생이라고요! 아시겠어요?”
“광혜원 헌터, 길드장님께 그게 할 말입니까?”
“뭐 어때요? 윤사해 전 길드장님께도 항상 이랬는데.”
광혜원이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에 할 말을 잃은 듯, 서차웅이 멍하니 입술을 달싹거리다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광혜원 헌터! 그랬다고 해도 이번에도 똑같이 행동하면 안 되지요!”
“왜요?”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겁니까?!”
서차웅과 광혜원이 투닥거리며 목청 높여 다투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을 무시하며 책상 위에 놓였던 편지를 들었다. 12공방에서 보내온 편지였다.
나는 물끄러미 그것을 보다 봉투를 뜯었다.
허무하게 저세상을 놓쳐 버린 지금, 머리를 식힐 만한 일이 필요했다.
<안녕하십니까, 이매망량의 젊은 주인이시여.>
정중한 인사말을 읽어 내려가며 나는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처음에는 평범한 안부 인사로 시작한 편지에, 읽을수록 심각한 내용이 펼쳐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 고로, 그대에게 우리 12공방의 존망이 달린 일을 맡겨 보고자 합니다.>
12공방.
비각성자는 물론, 웬만한 각성자조차 접근할 수 없는 장인들의 마을에서 의뢰가 들어왔다.
***
“도깨비의 따님께서 안동으로 내려간다는 모양이더구나.”
“지금쯤 12공방에서 의뢰가 들어왔을 테니까.”
저세상이 찻잔을 들며 말했다.
“흐음.”
그와 대화 중인 유랑단의 수장이 입꼬리를 올렸다.
“네놈은 도대체 그런 걸 어떻게 아는 것이냐?”
테이커의 일 때도 그랬다.
독단으로 그들을 뒷배가 되어 주겠다고 하더니만, 언제 그랬냐는 듯 그들의 우두머리를 죽여 버렸다.
유랑단의 수장이 보낸 의문에 저세상이 이번에도 심드렁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다 아는 수가 있으니까 알고 있는 거지. 너무 궁금해하지는 마. 어차피 알려 주지도 않을 거니까.”
“네놈이 알려 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단다. 그렇지만.”
유랑단의 수장이 찻잔을 손가락 끝으로 어루만지며 미소를 그렸다.
“네 목적이 궁금하구나.”
“내 목적은 말해 줬을 텐데.”
“네가 말해 준 건, 네놈의 정체뿐이었단다.”
주인공이 처단할 악역.
저세상은 분명 자신을 소개할 때 그렇게 말했었다.
“생각할수록 네 목적이 궁금해지더구나.”
윤사해의 아낌없는 후원을 받으며 장성한 저세상은 그를 배신해 버렸다.
폭발에 휘말려 자취를 감춰 버린 윤사해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분명 피눈물을 흘리게 될 터.
“네 목적이야 편하게 말해 줄 수 있지 않느냐? 어차피 우리는 한배를 타 버렸으니.”
이들은 배가 침몰하지 않게 서로 힘을 합쳐 노를 잘 저어가야 하는 사이였다.
저세상이 나긋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침묵을 지켰다. 아무래도 대답해 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재미없기는.’
유랑단의 수장이 그렇게 생각할 때.
“내 목적은, 그 애가 끝까지 살아남는 거야.”
저세상이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유랑단의 수장이 미간을 좁혔다.
저세상이 말한 ‘그 애’란 윤리사를 가리키는 것일 터.
“도깨비의 따님께서 머지않아 죽기라도 한다는 것처럼 들리는구나.”
“응, 그럴 거야. 내가 당신과 손을 잡지 않는다면.”
저세상이 미소를 그렸다.
유랑단의 수장은 별 이야기를 다 들었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들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
12공방이 있는 안동에 도착했다.
공방의 정확한 위치는 하회 마을.
‘마리아’로 살았던 세계에서 이곳은 유명 관광지이자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이었지만…….
‘세계 문화유산은 개뿔.’
이곳의 안동 하회 마을은 웬만한 사람은 접근할 수 없는 성역(聖域)이란다.
또한, 말이 ‘마을’이지. 그곳의 인구는 12공방의 열두 장인을 비롯해 그들의 가족이 전부라고 한다.
듣기로는 100명도 채 안 된다고 하던데.
“그 사람들 중에 도대체 누가 마중을 나오는 걸까?”
분명, 마을까지의 안내를 위해 사람을 보낸다고 했는데 말이지.
“약속한 시간이 훌쩍 넘었는데 왜 소식이 없는 거야?!”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진정해, 리사.”
청해진이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그래, 나는 그와 함께 안동으로 오게 됐다. 원래 혼자 12공방을 찾아가려고 했지만 서차웅에 의해 가로막혔다.
‘길드원 한 명을 데리고 가십시오. 타지로 갈 때는 윤사해 전 길드장님께서도 길드원을 꼭 대동했었습니다.’
윤사해가 그랬다고 하니 거절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청해진과 함께하게 됐다.
12공방은 청(淸) 가문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각성, 그 후』에서도 그랬으니까.
그래, 그랬었는데 말이지.
“덥다, 너무 더워. 12공방에 도착하면 더 덥겠지? 거기는 왜 이렇게 더운 곳에 마을을 만든 거야?”
청해진은 12공방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는 듯했다.
“에휴…….”
“왜 갑자기 한숨이야?”
“오빠가 너무 한심해 보여서. 그보다 더우면 스킬을 사용하지그래?”
“아, 맞다.”
‘아, 맞다?’ 지금 스킬의 존재를 잊고 있었던 거야?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청해진은 웃는 낯으로 스킬을 시전했다. 살랑이며 이는 바람에 청해진이 헤실거렸다.
“후우, 조금 살 것 같다.”
“나참, 해솔이 언니가 지금 오빠가 하고 있는 꼴을 보면 한심하게 여길 거야.”
“괜찮아. 우리 누나는 언제나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자랑이다, 정말.
그렇게 청해진을 보며 혀를 차고 있던 그때.
“거기, 너! 외지인! 지금 당장 스킬 사용 멈춰!”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청해진도 놀란 얼굴로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쳐다봤다.
“아이?”
양갈래로 머리를 땋은 웬 꼬마가 우리를 향해 삿대질하고 있었다.
나이는 예닐곱 살 정도.
그런데 성질이 장난 아니었다.
“뭘 봐? 그보다, 너! 스킬 멈추라니까? 내 말 안 들려?!”
“아, 응. 알겠어.”
청해진이 떨떠름한 얼굴로 <[특수 스킬] 청(淸) 하리다>의 사용을 멈췄다.
아이는 그제야 삿대질을 멈췄다.
“이래서 외지인은 안 된다니까?! 툭하면 스킬이나 사용하고!”
툴툴거리는 건 계속했지만 말이다.
나는 청해진과 시선을 교환한 후 아이에게 다가갔다.
“얘, 너 혹시 12공방 측에서 보낸다던 사람이니?”
“그런데?”
뭐가 문제냐는 듯이 묻는 질문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혹시, 우리가 약속 시간을 잘못 알고 있었을까? 12공방 측이랑 약속했던 시간은.”
“오후 3시였지.”
아이가 뻔뻔하게 말했다.
“그런데 PC방에서 게임한다고 잠깐 잊고 있었어. 미안.”
아하, 그래서 1시간이 넘을 때까지 감감무소식이었구나.
“사과했으니까 됐지? 그럼, 어서 따라오도록 해.”
아이가 휙 몸을 돌렸다.
유유히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니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길드장님, 진정해. 애잖아.”
청해진이 주먹 쥐고 있던 내 손을 바르게 펴 주며 말했다. 나는 입매를 비틀며 그에게 물었다.
“해진이 오빠, 내가 저 꼬마만 할 때도 저런 식으로 싸가지가 없었어?”
“응.”
아, 그렇구나.
나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다 말고 그의 멱살을 잡았다.
“빈말로라도 ‘아니’라고 대답해야지! 나 엿 먹이는 거야?!”
“으악! 리사, 진정해! 내가 잘못했어! 미안!”
청해진이 우는 소리를 내며 버둥거렸다. 앞서가던 꼬마가 한심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왜 저러는 거람? 이래서 외지인은 안 된다니까!”
그 외지인을 부른 사람이 바로 네 웃어른이거든!
나는 아이를 향해 그렇게 소리 지르려다가 참았다.
“다 왔어.”
12공방에 도착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