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342)화 (342/500)

342화. 짧은 재회(1)

쿵, 쿵.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저세상이라고? 정말로?’

두 손을 꽉 주먹 쥐었다.

‘거짓말.’

하지만 안다.

눈앞의 남자는 정말 저세상이란 것을.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는 검은 머리카락, 눈가 아래의 점 하나. 햇볕이라고는 본 적 없는 것 같은 하얗고 고운 피부.

환상도 아니고 신기루도 아니다.

“……저세상.”

저세상이 정말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내 세상의 주인공은 너야.’

그렇게 말하며 나를, 그리고 우리 가족을 떠나갔던 주인공이 말이다.

와락 얼굴이 구겨졌다.

“네가 무슨 낯짝으로 내 앞에 나타나?”

“윤리사.”

“닥쳐!”

나는 얼굴을 구기며 경고했다.

“그 입으로 내 이름 부르지 마.”

저세상이 나의 경고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나는 말이 없어진 그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너 때문에 우리 가족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

저세상은 아무 말도 없었다.

어차피 그에게서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네가……!”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떨리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네가, 그 빌어먹을 책을 이 세상에 불러온 덕분에 우리 가족은 서로 뿔뿔이 흩어지게 됐어.”

윤리오는 스스로 심장을 찔렀고, 윤리타는 그것을 자신의 탓이라 여기며 종적을 감춰 버렸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그래, 그렇겠지.”

저세상이 단조롭게 목소리를 내뱉으며 인정했다.

“미안하다고 하면 네가 내 사과를 받아 줄까?”

“아니.”

나는 단호하게 부정했다.

“네 사과 따위, 받을 생각 절대로 없어.”

“그래…….”

저세상이 쓸쓸하게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그럴 줄 알았어.”

촤르르륵!

저세상이 나를 향해 팔을 뻗치는 것과 동시에 쇠사슬이 나타났다. 사방에 뻗어진 그것들을 보고서 이운조가 외쳤다.

“리사, 조심해! 저 무기들 무슨 짓을 해도 부서지지가 않아!”

그야, 그럴 거다.

저세상의 무기는 다이아몬드보다 더 단단한 광물로 만들어진 것이니.

‘12공방의 작품이지.’

문득, 그곳의 장인들이 내게 편지를 보냈었다는 것이 기억났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나는 생각을 가볍게 정리한 후, 땅을 박찼다.

“리사!”

이운조가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하긴, 그녀의 눈에는 내가 꽤 막무가내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터.

하지만 저세상의 공격을 피해 그의 품을 파고들려면 이렇게 해야 했다.

어떻게 만난 주인공 새끼인데!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에게 한 방 먹일 작정이었다.

처음, 저세상을 향해 가졌던 살의는 누그러든 지 오래였다. 윤사희 덕분이었다.

그녀에게 여기저기 굴려지며 저세상에 대한 분노를 가라앉히게 되었으니까.

대신, 나는 작은 욕망을 가지게 됐다.

“저세상!”

보육원에서 퇴소해야 한다는 불안감을 떨쳐 내게 만들어 줬던 소설, 『각성, 그 후』.

그 이야기의 주인공과 진솔한 마음으로 대화를 나눠 보고 싶어졌다.

너는 왜 우리 가족을 그렇게 떠나 버렸는지, 왜 그런 식으로 내게 상처를 입혔는지.

도대체 왜.

‘내 세상의 주인공은 너야.’

나를 주인공이라고 부른 건지.

나의 부르짖음에 저세상은 미소를 그렸다.

촤르르륵!

끝이 날카로운 쇠사슬을 움직이면서 말이다.

나는 그림자를 이용해 그것들을 모두 쳐 냈다. 저세상이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술을 오므렸다.

“많이 강해졌네?”

“네 덕분이야.”

귀수산에 오른 것도, 윤사희를 만나 그녀의 고된 과제를 수행한 것도 모두 저세상 덕분이었다.

그를 향한 분노를 가지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저 하염없이 가족을 그리워하며 울기만 했을 테니까.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저세상.”

기어코 그의 앞에 도착한 나는 그 즉시 발을 들었다.

퍽!

저세상이 뒤로 밀려 나갔다.

내심 놀랐다. 설마, 내가 그를 힘으로 압도하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압도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저세상을 바라보며 씨익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내 생각보다 많이 약하네?”

“그렇게 보였다면 유감이야.”

저세상이 어딘지 모르게 씁쓸해 보이는 미소를 입가에 걸쳤다.

“윤리사, 너는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만 해.”

“그 입으로 내 이름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나는 이를 드러내며 경고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나는 강해질 거야.”

지금보다 더.

“네 뺨을 한 대 시원하게 쳐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나는 강해질 거다.

묵묵히 내 말을 듣고 있던 저세상이 싱긋 웃었다.

“좋은 마음가짐이야.”

그의 주위로 검은 연기가 일렁이는가 싶더니 웬 창이 생성됐다. 그 무기가 무엇인지 나는 똑똑히 알 수 있었다.

『각성, 그 후』에서 윤사해를 죽인 무기다.

얼굴이 더더욱 구겨졌다.

“좋아, 윤리사.”

분명 그 입에 내 이름을 담지 말라 했을 텐데, 저세상은 꿋꿋이 나를 불렀다.

어쨌거나 그는 당장에라도 나를 향해 창을 휘두를 듯이 굴었다.

“먼저 덤벼.”

그러면서 그는 나를 도발했다.

선심 쓰듯 말하는 목소리에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기분이 들었다. 입매도 절로 비틀렸다.

“그 자신감이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궁금하네?”

뭐, 선공을 나한테 넘긴다니 감사하게 받아야지.

나는 저세상과 비슷한 방식으로 검을 만들어 낸 후, 그대로 걸음을 박차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카앙―!

날붙이가 서로 맞부딪치며 날카로운 파열음이 주변에 울려 퍼졌다.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저세상의 창을 밀어내고자 했다. 하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분명, 그와 어느 정도 힘으로 겨룰 수 있다고 생각했건만!

‘너무 자만했던 걸까?’

아니, 아니다.

나는 더더욱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부들부들 팔이 떨렸다. 검을 쥔 손도 아릿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저세상의 창을 밀어내고 말겠다고, 그렇게 다짐하는 순간.

“약해, 윤리사.”

캉―!

저세상이 너무나도 쉽게 내 검을 밀어내 버렸다.

갑작스럽게 밀려난 바람에 몸이 휘청거렸다. 저세상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나를 향해 창을 휘둘렀다.

‘젠장!’

이대로 가다가는 크게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저세상의 공격에 살기는 없었지만, 나를 상처 입히겠다는 확실한 의지는 엿보였으니까.

“리사!”

다행히도 때마침 이운조가 푸른 전격을 날려 나를 도와줬다. 저세상이 자신을 향해 날아온 그녀의 공격을 피하며 뒤로 물러났다.

“리사, 괜찮아?!”

저세상이 물러난 틈을 놓치지 않고 이운조가 나를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켰다.

“저는 괜찮아요. 도와줘서 고마워요. 언니 덕분에 살았네요.”

“내가 뭐 한 게 있다고.”

쑥스럽기라도 한 모양인지 이운조가 입술을 씰룩였다.

“네가 다쳤다가는 내가 큰일 난단 말이야. 아저씨가 나중에 돌아와서 지랄하면 골치 아파.”

이운조도 윤사해가 살아 있을 거라 굳게 믿고 있나 보다.

고마웠다.

내가 새롭게 이매망량의 길드장이 된 것을 알고, 대부분의 사람은 윤사해의 사망을 확실시해 버렸다.

그러니 그의 딸인 내가 이매망량을 물려받게 된 거라고 말이다.

무지에서 나온 말도 안 되는 억측들이었다.

그 억측을 이운조는 믿지 않아 정말 다행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를 향해 웃어 주며 말했다.

“안 다칠게요. 설사 다친다고 해도 아빠한테 언니 때문에 다친 거 아니라고 확실하게 말해 줄게요.”

“당연히 그래야지! 그보다 어떻게 할 거야?”

이운조가 저세상을 노려보며 물었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는 말했다.

“제압해야죠.”

“그럴 줄 알았어.”

이운조가 키득거리며 웃고는 입을 열었다.

“아저씨가 돌아오면 피눈물을 흘리겠네. 자식같이 귀하게 키운 놈이 살인이나 저지른 걸 보면.”

“그러게요.”

나는 마셔 본 적 없는 소주라도 삼킨 기분으로 미소를 그렸다.

그럴 수밖에.

윤사해가 귀하게 키운 자식인 나도 살인을 수도 없이 저질렀으니.

비록 어둑시니의 공간에서 그랬다고 하나,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분명, 아빠가 많이 슬퍼할 거예요.”

나도 저세상도 이렇게 손을 더럽힌 것을 보면 말이다.

우리의 대화가 모두 들릴 텐데도 저세상은 아무 말도 없었다. 어떠한 감정도 얼굴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그저 고요히 우리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 시선이 이운조에게는 불쾌하게 다가왔나 보다.

“리사, 사지 멀쩡하게 제압하지 않아도 되지?”

이토록 살벌한 기색으로 물어보는 걸 보니 말이다.

그 질문에 나는 비딱하게 웃으며 대꾸해 줬다.

“언니 마음대로 하세요.”

“좋아.”

파지직!

이운조의 주변으로 푸른 스파크가 튀었다.

“아무래도 팔, 다리 하나 정도는 부러뜨려야 될 것 같네.”

무시무시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잘도 한다 싶었지마는.

“동감이에요.”

나 역시 이운조와 똑같이 생각하는 바였다. 그렇게 저세상을 향해 동시에 움직이려는 찰나.

“어이쿠, 이거 실례.”

누군가 우리 앞을 막아섰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