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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337)화 (337/500)

337화. 비상(7)

 

 

 

 

“안녕하세요, 강산에 본부장님.”

“그래. 못 본 사이에 많이 컸구나.”

강산에가 나를 위아래로 살펴 보고는 싱긋 웃었다.

“많이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거든요.”

“그렇구나. 고생 많았다.”

강산에가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꼭 끌어안았다. 내가 어떻게 반응할 새도 없이 말이다.

나는 어색하게 그녀의 품에 안겨 있다가 미소를 그렸다.

“감사해요.”

“나야말로 고맙지.”

강산에가 나를 애틋하게 쳐다보며 목소리를 내었다.

“무너지지 않고, 이렇게 나를 찾아와 줘서.”

그 말에 울컥, 감정이 치밀었다.

사실 나는 몇 번이고 무너질 뻔했다.

윤사해가 그렇게 사라졌을 때, 윤리오가 『각성, 그 후』의 영향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을 때.

그리고 윤리타가 사라졌을 때.

나는 그 순간마다 몇 번이고 주저앉을 뻔했다.

아니, 주저앉았다.

그럼에도 일어났다.

윤사해가 돌아올 곳을 지키기 위해, 그가 그토록 소중하게 여겼던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귀수산에 올라 윤사희의 시험을 통과해 이매망량의 길드장이 됐다.

“자, 그럼 나머지 이야기는 앉아서 진행하자꾸나. 내 차를 내오마.”

“아니에요! 그럴 필요 없어요!”

“그렇게 거절할 필요 없단다.”

강산에가 기어코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내 앞 찻잔을 놓았다.

“편하게 마시렴.”

“감사합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을 드는 순간, 강산에가 물었다.

“그래, 내게 무엇을 원하느냐?”

찻잔을 든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바로 본론을 꺼내 들 줄이야.

‘이야기를 질질 안 끌어서 좋기는 하다만.’

적어도 차는 좀 마시게 해 주시지!

나는 테이블 위에 찻잔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제 힘이 되어 주세요. 정확히는, 제 뒷배가 되어 주셨으면 해요.”

강산에가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내가 묻는 말에 곧장 대답할 줄 몰랐나 보다.

하지만 최애님, 어물쩍거리며 빙빙 둘러 대답하는 거 싫어하시잖아요. 그래서 이런 건데.

괜히 억울해질 때, 강산에가 한숨을 내쉬며 나를 불렀다.

“리사.”

“네, 본부장님.”

“그래, 나는 본부장이란다. 이곳, AMO의. 그리고 AMO는 모든 각성자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란다. 알고 있겠지?”

“네, 당연히 알고 있죠. 저도 각성자잖아요.”

“그런데 네 힘이 되어 달라고 한 것이냐?”

강산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했다.

‘내 뒷배가 되어 줄 수 없다.’

예상한 대답이었다.

강산에가 말했듯, AMO는 모든 각성자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

그 기관이 한 명의 각성자를 위해 움직여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AMO가 나를 위해 움직여 주는 건 바라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건 오직 AMO가 나를 지지한다는 말 한마디뿐.

나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뒷배가 되어달라는 건, 저를 음해하려는 세력을 막아 달라는 말이었을 뿐이에요.”

“그러니까 결국 네 힘이 되어달라는 소리지 않느냐?”

“그렇게 들린다면 유감이지만, 이건 AMO 쪽에서도 그리 아쉽지 않은 제안이 될 거예요.”

“흠?”

강산에가 어디 한 번 말해 보라는 듯 미소를 그렸다.

나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현재 대한민국을 받치고 있던 4대 길드는 아래아를 제외하고 모두 그 힘을 많이 잃어버렸죠.”

이매망량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암만 길드장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해도, 윤사해가 있을 때에 비하면 많이 약했다.

“이 세상에서 국력은 곧 각성자의 수고요.”

그것도 높은 등급의 각성자의 수.

빌어먹게도 세상이 그랬다.

“그런데 아빠가 사라졌어요.”

대한민국의 S급 각성자 중, 가장 영향력이 컸던 그가 말이다.

같은 S급 각성자인 강산에나 최설윤에 비하면 바깥 행보가 꽤 적은 그였지만 윤사해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빠의 딸인 제가 이매망량을 맡게 됐다고 나서 봐요.”

언론이 물고 뜯고 씹어댈 게 분명했다.

언론만 그럴까?

“아마 모두가 궁금해하겠죠.”

대한민국의 국민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나에 대해 궁금해할 거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얕보이면.”

“그만.”

강산에가 내 말을 멈추게 했다.

“리사,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주 잘 알겠단다.”

그녀가 작게 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네가 얕보이게 되면, 우리나라도 얕잡아 보이게 되겠지. 아마, 남은 건 아래아밖에 없다면서 욕심 많은 것들이 이 땅을 노리려 들 거다.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것이지?”

“네, 맞아요.”

역시 우리 최애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바로 알아차리다니!

나는 웃는 낯으로 말했다.

“저는 모두의 앞에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밝힐 생각이에요.”

“리사, 네가 S급 각성자라는 것을 말이냐?”

“네? 아, 네.”

……가 아니라.

“네?!”

나는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무엇을?”

“제가 S급 각성자라는 것을요!”

강산에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단다. 네가 네 아빠의 손을 잡고 AMO를 방문했던 그 날부터.”

“네……?”

내가 처음 AMO를 방문했던 날이라면.

“제가 일곱 살 때요?”

“그래.”

강산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그만 아이한테 어떤 비밀이 있어 네 아빠가 그렇게 싸고도는 걸까 궁금했거든.”

설마, 내가 각성자일 줄 몰랐다면서 강산에가 웃었다.

“그것도 S급 각성자일 줄이야. 네 아빠가 왜 그렇게 널 아끼는지 알겠더구나.”

하하, 그런 이유로 저를 싸고돈 건 아닐 거예요.

어쨌든 간에 나는 신음을 삼켰다.

설마, 강산에가 내게 스킬을 사용했을 줄 몰랐다. 사용한 스킬은 분명 <[S급, 숙련 불가] 탐색꾼의 눈>이겠지.

“놀랐니?”

“네.”

나는 이 자리를 빌러 강산에에게 내 비밀을 모두 말해 줄 생각이었다.

내 정체에 대한 것만 제외하고.

그런데 가장 중요한 비밀을 강산에가 진작 알고 있었다니!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S급 각성자인 걸 알았는데도 비밀로 해 주신 거예요?”

그 사실을 이용해 얼마든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내 질문에 강산에가 웃었다.

“그럼, 비밀로 해 줘야지. 리사, 너는 내가 아이를 이용할 못된 놈으로 보였느냐?”

“아니요!”

나도 모르게 빼액 소리 질렀다.

강산에가 그런 나를 보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어쨌거나, 네 제안을 받아들이마.”

“네?”

“우리 AMO가 리사, 너의 뒷배가 되어 주겠다는 소리다. 손해볼 건 없을 것 같으니.”

그럴 줄 알았다.

“감사해요, 본부장님.”

“그런 인사는 나중에 하거라.”

강산에가 웃는 낯으로 말했다.

“우리 AMO가 아무런 대가 없이 윤리사 길드장의 뒷배가 되어 줄 거라 믿는 건 아니지?”

“네, 본부장님.”

나는 강산에를 마주보며 웃었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겠죠? 무엇을 원하세요?”

강산에가 씨익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대답했다.

***

“후우.”

나는 AMO를 벗어나며 작게 숨을 내쉬었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 훌쩍 넘어 있었다.

“피곤해라.”

최애님 얼굴 보는 건 좋았지만, 그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누는 건 무척 힘들었다.

더욱이.

“그런 걸 원하실 줄이야.”

강산에가 꽤 특이한 걸 원했던지라 대화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그야, 무엇을 원하냐는 내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었거든.

‘평온한 미래.’

훗날, 이매망량이 AMO의 일에 군말없이 따른다거나 그런 것을 요구할 줄 알았는데 말이지.

“평온한 미래라니.”

그게 가능할까?

나는 고개를 들어 물끄러미 밤하늘을 쳐다봤다.

『각성, 그 후』가 동기화된 세상.

크게 바뀐 것은 없는 것 같지만 나는 알았다.

세상은, 암울하기 그지없던 그 이야기와 똑같이 흘러갈 준비를 아주 조금씩 하고 있다는 것을.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감?’

이라는, 시답잖은 대답을 들려줄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최애님이 원하시는 걸 무슨 일이 있어도 들어줄 작정이었다.

말했듯,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이었으니.

나는 명패를 손에 쥐고는 굳게 닫혀 있는 이매망량의 문을 열어젖혔다.

파아앗!

눈부신 빛이 곧장 나를 감쌌다.

“길드장님!”

동시에 나를 반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 비서님, 퇴근 안 하셨어요?”

“길드장님께서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는데 제가 어떻게 퇴근합니까?”

서차웅이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나를 꼼꼼하게 살펴보고는 물었다.

“이야기는 잘 끝나셨습니까?”

“네, 다행히도요.”

“정말 다행입니다.”

서차웅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가 혼자 강산에를 만나러 간 것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나보다.

“죄송해요.”

“그런 소리하지 마십시오. 강산에 본부장님께서도 길드장님 혼자 찾아오시는 걸 반겼을 테니까요.”

서차웅이 싱긋 웃었다.

“그럼, 이제 언론에 흘릴까요?”

“무엇을요?”

“길드장님에 대해서 말입니다.”

서차웅이 좀처럼 보기 힘든 미소를 입가에 내보이며 말했다.

“이매망량이 건재한다는 걸, 모두에게 보여 줘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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