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화. 비상(6)
반가운 목소리에 나는 환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해진이 오빠!”
“리사, 그렇게 부르면 안 되지.”
“뭐 어때? 우리 둘만 있는데.”
나는 청해진을 향해 짓궂게 웃어 주고는 물었다.
“언제 돌아왔어?”
“조금 전에.”
청해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구태여 그를 향해 윤리타를 찾았느냐고 묻지는 않았다.
찾지 못해서 돌아온 걸 테니.
더욱이 지금 가장 속이 타는 건 청해진일 터였다.
그에게 있어 친구는 윤리오와 윤리타뿐인데, 두 사람 모두 상황이 좋지 않게 됐으니…….
그런데도 그는 오히려 나를 걱정해 줬다.
지금도 그랬다.
분명 집무실에 내가 없는 걸 확인하고 나를 찾아 돌아다니다 이곳으로 왔을 거다.
아니나 다를까?
청해진이 나를 향해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여기서 뭐하고 있었어?”
“보다시피 훈련.”
“이야, 저거 네가 한 거야?”
청해진이 연무장 벽에 새겨진 흠을 가리키며 질문을 던졌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와, 윤리사. 이러다 너, 윤리타랑 윤리오를 뛰어넘는 거 아니야?”
“말이라도 고마워.”
“빈 말로 하는 소리 아니야.”
청해진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미소를 그렸다.
“우리 길드장님, 도대체 귀수산에서 무슨 일을 겪고 돌아왔길래 이렇게 성장했대?”
“오빠는 상상도 못 할 아주 멋진 일을 겪고 왔지.”
사실, 멋진 일은 개뿔이었다.
윤사희와 있었던 일은 절대 그런 식으로 표현할 수 없었다.
어쨌든.
“마침 잘 왔어, 해진이 오빠.”
“음?”
“내 상대 좀 해 줘.”
“뭐?”
청해진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리사, 진심이야?”
“응, 진심인데?”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는 듯 그를 쳐다보니 청해진이 곤란하다는 듯 난처하게 웃었다.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
그의 걱정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별 걱정을 다하네. 내가 다칠까 무서워?”
“당연히 무섭지!”
청해진이 겁에 질린 얼굴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중에 윤리오랑 윤리타가 나 때문에 네가 다친 걸 알아봐? 나는 그날로 죽을걸?”
더욱이 아저씨가 돌아와서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될 것 같냐면서 청해진이 호들갑을 떨었다.
“오빠. 일어나지도 않은 일 가지고 너무 요란을 떠는 거 아니야?”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지! 내 목숨이 걸려 있는걸!”
“그 목숨, 내가 안전하게 보장해 줄 테니 걱정 말고 어서 덤벼.”
너무 자신감 있게 굴었나 보다.
청해진이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리사, 그 약속 꼭 지켜야 해?”
“지키지 말라고 해도 지킬 거야.”
“좋아.”
쿠구구궁-!
청해진을 중심으로 물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머리카락이 휘날릴 정도로 강하게 이는 바람에 나는 비딱하게 웃었다.
정말 오랜만에 <[특수 스킬] : 청(淸)하리다>를 가까이에서 맛보게 됐다.
‘어떻게 할까?’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스킬을 통해 청해진의 스킬을 똑같이 운용할까?
‘아니야.’
지금 나는 <[S, 숙련 불가] 그림자 사냥꾼>을 운용하고자 훈련 중이었다.
그러니 청해진을 상대하는 데 그 스킬을 사용하는 게 옳았다.
나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좋아.’
결심한 것을 실행으로 옮기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타앗!
나는 곧장 청해진이 있는 곳으로 땅을 박찼다.
물기둥 따위 두렵지 않았다.
그림자를 움직여 조금의 틈이라도 만들면 되었으니.
“리사, 너무 겁 없이 달려드는 거 아니야?!”
“그러는 오빠야말로 나를 너무 얕보는 거 아니야? 그러다 큰 코 다쳐.”
청해진이 내 말에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윽?!”
강하게 바람을 일으켜 나를 날려 버렸다.
연무장 바닥에 발을 딛고 서있고 싶었지만 강한 바람에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황급히 그림자를 움직여 거세게 이는 바람을 조금에라도 잠재워 보고자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바람이 얼마나 강하게 부는지, 검은 연기가 맥도 못 추르고 흩어지고 말았다.
‘망할!’
험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방법을 바꿨다.
그림자를 직접 이용하는 대신 간접적으로 이용하기로 한 거다.
나는 스멀스멀 피어오른 검은 연기를 검의 형태로 단단히 고정시킨 후 다시금 땅을 박찼다.
이번에는 지면 가까이로.
마치, 닌자라도 된 듯한 움직임으로 내달렸다. 그 덕분인지 나는 강하게 부는 바람에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오.”
청해진이 입술을 오므렸다가 싱긋 웃었다.
“우리 길드장님, 대단한데?”
“칭찬 고마워.”
나는 청해진과 가까워지자마자 검을 휘둘렀다.
콰과과광-!
지면을 강타한 검은빛이 도는 검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 연무장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청해진이 사방에서 튀는 파편을 피하며 소리 질렀다.
“리사! 나를 죽일 생각이야?!”
“설마!”
나는 씨익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웃었다.
“나는 길드의 소중한 인재를 함부로 죽일 만큼 어리석지 않아.”
더욱이 청해진은 현재 청(淸)의 가주인 청해솔의 하나뿐인 동생.
절대로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뭐, 그건 그거고.
‘승부는 승부지.’
타앗!
나는 다시금 땅을 박차 청해진의 품을 파고 들었다. 그렇게 그의 목을 향해 검을 드는 순간.
“…….”
날카로운 창이 내 목을 겨눴다.
청해진이 그 짧은 사이에 공기 중의 물을 얼려 창을 만들어낸 거다.
역시 대단하다니까.
나는 그의 목을 향해 겨눴던 검을 내리며 웃었다.
“무승부네?”
“하하, 그러게.”
청해진 역시 웃음을 터트리며 힘을 거둬들였다.
“그나저나, 리사. 대단한데? 우리 리사가 이렇게 겁이 없을 줄이야! 네 오빠들이 봤으면 난리 났을 거야.”
“뭐, 그렇기는 하겠지.”
그래, 윤리오와 윤리타가 두 눈으로 직접 봤다면 그랬을 거다.
“하지만 오빠들은 지금 없잖아?”
윤리오는 여전히 의식을 차리지 못한 채 병실에 누워 있었고 윤리타는 행방이 묘연했다.
그리고 아빠는.
‘생각하지 말자.’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생각을 털어 내고는 말했다.
“어쨌든, 어울려줘서 고마워.”
“고맙기는.”
청해진이 배시시 웃었다.
“길드장님과 한 판 할 수 있어서 크나큰 영광이었습니다!”
말 한 번 잘한다 싶었다.
“그보다 어쩌지? 연무장이 완전히 박살 났는데.”
“으음.”
나는 멋쩍게 뺨을 긁적이고는 활짝 웃었다.
“서 비서님이 알아서 처리해 주지 않을까?”
미안해요, 서 비서님.
미리 사과할게.
어쨌든 간에 청해진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우리는 이만 연무장을 벗어나 볼까?”
“좋아.”
누가 오기 전에 자리를 벗어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청해진과 함께 연무장을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하늘이 어둑했다.
안개가 짙게 깔려 있어 하늘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밤이 된 건 분명해 보였다.
‘연무장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해가 있었는데.’
언제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지 모를 일이다.
“리사, 저녁은 먹었어?”
“응? 으응, 먹었어.”
“거짓말하지 말고.”
“진짜로 먹었어!”
거짓말이지마는.
청해진이 의심 가득한 시선을 보내다가 이내 거뒀다.
내 말을 믿어 줄 생각인가 보다.
‘다행이다.’
청해진은 은근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그 점은 정말 윤리오와 윤리타와 똑 닮아 있었다.
덕분에 나는 시시때때로 청해진의 잔소리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길드장으로서 업무를 볼 때 말고, 그 외의 시간에서 말이다.
“해진이 오빠는 가끔 진짜 내 오빠처럼 구는 것 같아.”
“리사, 나를 네 오빠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거야? 피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서로 본 세월이 있는데!”
“아, 시끄러워!”
질색하며 외치는 내 목소리에 청해진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이렇게 보면 윤리오와 윤리타가 왜 청해진과 친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하여튼 간에 나는 뾰족하게 두 눈을 뜨고서 청해진을 노려보곤 이매망량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 들어가려고 했다.
“리사.”
청해진이 나지막하게 나를 불러 세우지만 않았더라면 그랬을 거다.
“왜?”
“내일 강산에 본부장님 만나러 간다며?”
그 이야기는 어디에서 들은 거래?
윤리타를 찾아다니느라 정신없었을 텐데 말이다.
어찌 됐든 그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부정할 생각 따위 없었다. 나는 벅벅 머리를 긁고는 말했다.
“응, 그렇게 됐어.”
“그래……?”
청해진이 씁쓸한 웃음을 입가에 걸쳤다.
“조심히 다녀와. 강산에 본부장님은 네 생각보다 그렇게 친절하신 분이 아니니까.”
우리 최애님께 뭐라는 거야!
나는 불퉁하게 두 뺨을 부풀리고는 입술을 씰룩였다.
“강산에 본부장님이 얼마나 친절하신데! 오빠가 잘 몰라서 그래!”
“적어도 너보다는 많이 알걸?”
“아니거든? 지금 감히 상사의 말에 토를 다는 거야?”
“어이쿠, 그럴 리가요!”
청해진이 과장된 몸짓으로 나를 놀리고는 입을 열었다.
“리사.”
“또, 뭐!”
“너무 무리하지 마.”
갑작스럽게 건넨 걱정에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청해진이 그런 나를 향해 다정하게 말했다.
“너마저 쓰러지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안 쓰러져.”
이것 하나만큼은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럴 일 없을 거야.”
나는 절대로 쓰러지지 않을 거다.
귀수산에서 그 고생을 하고 돌아왔는데 맥없이 쓰러질 생각 따위 없다.
“그러니까 해진이 오빠는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
“그렇다면야.”
청해진이 싱긋 웃었다.
“믿을게.”
“응.”
나 역시 그를 향해 마주 웃어 주며 약속했다.
쓰러지지 않기로.
***
그렇게 다음날.
“어서 오렴, 리사.”
나는 정말 오랜만에 우리 최애님, 아니. 강산에 본부장님을 만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