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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335)화 (335/500)

335화. 비상(5)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가야죠.”

이쪽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이제 와 무를 수는 없다.

서차웅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강산에 본부장님께서 내일 밤 9시, 센터에 방문해달라고 했습니다.”

“밤 9시에요?”

“네, 아무래도 저희 쪽을 배려해 주신 것 같습니다. 그 이전에 만나면 사람들 눈이 있을 테니까요.”

하긴, 암만 우리 쪽에 류화홍이 있다고 해도 무턱대고 찾아갈 수는 없었다.

예의란 게 있었으니.

“물론, 윤사해 전 길드장님이었다면 류화홍 헌터를 이용해 그냥 본부장실에 쳐들어갔을 겁니다.”

쿨럭!

나는 헛기침을 터트렸다.

“실제로 그런 적은 없죠?”

서차웅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저기요, 서 비서님? 뭐라 대답 좀 해 주실래요?

나는 어색하게 웃고는 말했다.

“어쨌든, 강산에 본부장님께 내일 찾아뵙겠다고 전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서 비서님.”

“네, 길드장님.”

나는 우물쭈물하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리타 오빠는요?”

“청해진 헌터가 계속 찾고 있는 중입니다. 곧 소식이 들어올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말만 벌써 수십 번은 들은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웃으며 말했다.

“네, 알겠어요. 청해진 헌터한테 계속 수고 좀 해 달라고 해 주세요.”

“네, 길드장님.”

서차웅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방을 나갔다. 나는 곧장 푹신한 의자에 몸을 기대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매망량을 맡은 직후, 마음 편히 쉬어 본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당연히 학교는 가지 못했다.

도윤이나 단예, 단이와 단아한테서 계속 연락이 왔지만 받지 않았다. 친구들이 걱정하겠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앞만 봐야 하니까.’

친구들의 걱정 어린 목소리를 듣는 순간, 어린아이라도 된 것처럼 울음을 터트릴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그들의 연락을 거부하고 있는 거였다.

“오빠한테나 가자.”

자리에서 일어나 명패를 챙겼다.

암만 바빠도 내가 빠지지 않고 하는 일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안녕, 리오 오빠.”

윤리오의 병문안이었다.

***

“아가씨, 저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응.”

명패를 이용해 밖으로 나올 생각이었는데 류화홍이 윤리오의 병실까지 이동해 줬다.

참고로 그가 ‘아가씨’라고 부르는 건, 나를 배려해서였다.

아직 사람들은 내가 이매망량의 길드장이 됐다는 걸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함부로 ‘길드장님’이라고 불렀다가는 어떤 기사가 쏟아질지 몰랐다.

어쨌든 간에.

“리오 오빠, 좋은 꿈 꾸고 있어?”

나는 간의 의자를 빼내 윤리오의 옆에 앉았다.

“해진이 오빠가 다녀갔나 봐?”

병실 한구석에 놓여 있는 꽃이 바뀌어 있었다.

“오빠가 친구 하나는 잘 뒀다니까?”

나는 손을 들어 윤리오의 머리칼을 정리해 줬다.

윤리오가 잠에 든 지도 어느새 석 달이 다 되어간다. 그러는 사이 그의 머리카락은 많이 길어 버렸다.

“정리 좀 해 줘야겠네. 내가 나중에 잘라 줄게. 나, 이제 칼 잘 쓰거든.”

칼이 아니더라도 그림자를 이용해 잘라 주면 됐다.

왜인지 모르게 윤리오가 당장에라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내게 잔소리를 쏟아낼 것 같았다.

칼이라니, 그런 위험한 걸 왜 잘 쓰게 됐냐면서 말이다.

피식, 웃음이 흘러 나왔다.

“리오 오빠.”

나는 그의 매마른 손을 꼭 잡고는 다정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나 열심히 이매망량 지키고 있을 테니까, 어서 일어나. 알겠지?”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쌕, 쌕.

힘겹게 내쉬는 윤리오의 숨소리만 들려올 뿐.

그럼에도 좋았다.

나는 그렇게 한참 동안 윤리오의 손을 잡고 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또 올게.”

내일은 윤리타와 함께 찾아오겠다는 말은 목구멍 너머로 삼키며 나는 윤리오에게 인사했다.

“잘 자, 리오 오빠.”

그 인사를 끝으로 나는 병실을 나섰다.

“화홍이 오빠.”

“아가씨, 벌써 돌아가시게요?”

“응.”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리오 오빠 잠을 방해하고 싶지도 않고, 내일 일로 준비할 것도 있으니까 빨리 돌아가려고.”

“그렇다면야, 뭐 알겠어요.”

류화홍이 내 손을 잡고는 순식간에 이매망량으로 이동했다.

“고마워.”

“고맙기는요.”

류화홍이 능청을 떨고는 나지막하게 나를 불렀다.

“길드장님.”

‘아가씨’라는 호칭이 순식간에 ‘길드장님’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저렇게 불리는 것이 무척 어색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왜 부르냐며 류화홍을 쳐다봤다. 류화홍이 입술을 우물거리다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무리 안 해.”

“거짓말 마세요. 매일 밤늦게까지 일하고 계시잖아요.”

“일하는 게 아니라 일을 배우고 있는 거야.”

“어쨌든요!”

류화홍이 뚱하게 말했다.

“그러다 쓰러지시면 나중에 다 일러바칠 거예요.”

“누구한테?”

“당연히 윤사해 전 길드장님이랑 리오랑 리타한테죠! 아, 세상이도 있네요.”

저세상.

오랜만에 듣는 그 이름에 가슴이 지끈거리며 아파왔다. 하지만 나는 고통을 참으며 웃음을 띄웠다.

“마음대로 해.”

“정말로요?”

“응.”

나는 휙 몸을 돌리며 말했다.

“내가 쓰러질 일따위 없을 테니까.”

“말은 잘해요!”

류화홍이 불퉁하게 말했다.

나는 그를 향해 손을 한 번 흔들어 주고는 곧장 집무실로 올라갔다.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서차웅이 나를 반겼다.

“오셨습니까?”

“강산에 본부장님께 이야기는 전달드렸나요?”

“네, 길드장님. 내일 밤 9시에 찾아뵙겠다고 연락 드렸습니다.”

“좋아요. 수고했어요, 서 비서님.”

“아닙니다. 그리고 여기.”

서차웅이 공손하게 편지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이건 뭔가요?”

“12공방의 대장장이들로부터 온 편지입니다.”

12공방의 대장장이들.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았다.

「말끔히 차려입은 정장, 그 위에 하늘거리는 하얀색 두루마기 코트.

보랏빛이 감도는 검은색 머리칼과 대조적인 그것에는 12공방의 장인들이 혼을 넣어 그려 넣었다는 술식이 새겨져 있었다.」

윤사해의 하얀색 두루마기 코트를 제작한 장인들.

그리고.

‘그 코트를 직접 수선해 주기도 한 사람들이지.’

내가 길드장 자리를 위임받고 나서 며칠이 지난 후, 서차웅은 놀라운 소식을 전해 줬었다.

윤사해의 두루마기 코트를 수선한 건, 자신이 아니라 12공방의 대장장이들이란 이야기였다.

즉, 그들은 이매망량의 길드장이 나로 바뀐 것을 안다.

“설마, 감사 인사를 하러 방문 좀 해 달라는 그런 편지는 아니겠죠?”

“그건 아닐 겁니다. 감사 인사는 제 선에서 충분히 했으니까요.”

“그럼, 도대체…….”

왜 편지를 보냈는지 모르겠다.

“일단, 확인해 볼게요.”

“네, 길드장님. 답장을 전하실 생각이라면 말씀해 주십시오.”

“네, 알겠어요. 이것 말고 제가 확인해야 할 일은요?”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서차웅이 책상 위로 어지럽게 놓여 있는 서류를 챙겨 들며 말했다.

“오랜만에 집에서 푹 쉬십시오. 그간 길드에서 쪽잠을 주무시지 않았습니까?”

“네, 알겠어요.”

라고 대답했지만 집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 따위 없었다.

기다리는 사람이라고는 없는 빈집. 적막하기만 한 그곳에 누가 가고 싶어 할까?

“그럼, 길드장님. 저는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네, 내일 봐요.”

서차웅이 나간 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쳐다봤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는 것이 도무지 앞을 볼 수가 없었다. 뭐, 이게 이매망량의 매력이지.

“단아가 여기 있었다면 매력이 다 죽었냐고 물었겠지.”

애초에 단아라면 이매망량에 접근조차 하지 않을 거다.

단아는 보기보다 겁이 많으니.

“오랜만에 보고 싶네.”

단아도, 도윤이도.

그리고 단예랑 단이도.

“하지만 참아야지.”

말했듯, 지금은 앞만 보며 나아가야 할 때였다.

암만 친구들이 보고 싶어도 그래야 했다.

“나중에 아빠가 돌아오면.”

그때, 이 자리를 윤사해한테 다시 돌려준 후 친구들을 만나러 가야지.

그리고 사과해야지.

그동안 연락을 무시해서 미안했다고, 얼굴을 보이지 않아 잘못했다고.

그렇게 사과할 거다.

나는 창 밖에서 시선을 돌린 후 집무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집으로 가려는 건 아니었고, 연무장에 들려 스킬을 좀 연마할 생각이었다.

연마할 스킬은 당연히 <[S, 숙련 불가] 그림자 사냥꾼>이었다.

나름대로 스킬을 사용하는데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았다.

“후우.”

연무장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그림자를 움직여 보았다.

스멀스멀 올라온 그림자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콰과광!

연무장 벽에 부딪힌 그림자가 짐승이 할퀴고 지나간 자국을 만들어냈다.

“내 마음대로 움직이기는 하는데.”

생각보다 위력이 강한 것 같지가 않았다.

“곤란한데.”

우리 최애님이 내 뒷배가 되어 준다고 해도 나를 의심할 사람들은 넘쳐난다.

그들의 의심을 거두기 위해서는 내 힘을 드러내야 하는데.

‘이대로는 안 돼.’

나는 신경질적으로 앞머리를 쓸어 올린 후 다시 그림자를 움직였다.

“길드장님,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예요?”

쾌활한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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