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4화. 비상(4)
“리사 아가씨!”
사야와 함께 이매망량으로 돌아오자마자 내 이름이 들렸다.
그리고 그 이름은 곧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갔다.
“아가씨가 돌아오셨다!”
“으허허헝! 리사 아가씨!”
“아가씨이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이매망량의 길드원들을 보며 나는 떨떠름하게 물었다.
“사야 언니, 제가 귀수산에 있었던 시간은 하루라고 하지 않았나요?”
이 반응은 한 달은 족히 자리를 비우고 있었어야 나올 반응인데.
내 말에 사야가 웃었다.
“다들 아가씨를 많이 좋아하니까요. 그러려니 해 주세요.”
그러려니 할 정도가 아닌데요?
우다다다!
나를 향해 뛰어오는 길드원들을 보며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누가 보면 사람이 아니라 황소 떼인 줄 알 정도로 이매망량의 길드원들은 나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잘못하면 저 무리에 깔려 죽을 것 같았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그랬다.
‘그럴 수는 없지!’
내가 어떻게 그 빌어먹을 할머니 손에서 벗어났는데!
이대로는 절대 세상을 하직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이매망량의 길드원들의 손을 피해 도망가려는데.
“다들 기다려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길드원들을 멈추게 만들었다.
“나참! 다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기는! 아가씨께서 놀라셨잖아요!”
길드원들을 멈춰세운 여자가 성큼성큼 나를 향해 다가왔다.
“혜원이 언니…….”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광혜원이었다.
“아가씨.”
내 앞에 멈춰선 광혜원이 팔짱을 낀 상태로 나를 노려봤다.
뭐지? 나 뭐 잘못했나?
그런 거 없는데?
괜히 긴장돼서 꿀꺽 침을 삼키는 순간, 광혜원이 두 팔 벌려 나를 와락 끌어 안았다.
“잘 돌아오셨어요.”
놀라 두 눈을 끔뻑이니 광혜원이 내 등을 토닥거리며 말했다.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요? 하루가 정말 1년 같았다고요. 아가씨께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이대로 돌아오지 않으시면 어쩌나…….”
울먹거리며 말하는 목소리에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그래도 아가씨.”
광혜원이 내 어깨를 붙잡고는 활짝 웃었다.
“몸이 많이 탄탄해지셨네요? 바위를 끌어안은 줄 알았어요!”
“그래요?”
“네!”
광혜원이 내 팔뚝을 주물렀다.
“이 근육 좀 봐요! 화홍이는 한 주먹도 안 되겠는데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때마침 류화홍이 나타났다.
“아가씨, 돌아오셨네요?”
“화홍이 오빠.”
익숙한 얼굴들이 차례대로 나타나자 괜히 마음이 울컥해졌다.
“어, 뭐야? 설마 우시는 거예요?”
“안 울어요!”
나는 빼액 소리 지르고는 황급히 코 밑을 훔쳤다.
“사하랑 홍랑이는요?”
“서 비서님께 맡겼어요!”
그래서 서차웅이 안 보였구만?
“좋아요. 안에 들어가죠. 서로 나눌 이야기가 많을 테니까요.”
“네, 아가씨.”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군말 없이 나를 따르는 이매망량의 길드원들을 보니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정말이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며칠 전만 해도 밑도 끝도 없이 땅만 팠었던 나였다.
아마, 이매망량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귀수산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계속 그랬을 거다.
문득, 윤사희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아해야, 그래도 즐겁지?’
‘뭐가요?’
‘나와 이렇게 있는 것이 말이다.’
‘하나도 안 즐거운데요?’
‘거짓말.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아주 죽을 상이더니. 지금은 몰라보게 씩씩해지지 않았느냐?’
그래,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윤사희 덕분에 다시 웃을 수 있게 됐다.
내가 암만 많이 달라졌다고 해도, 윤사해가 그로 인해 슬퍼한다고 해도 그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안개 속에 자욱하게 잠긴 건물을 바라보았다.
이매망량(魑魅魍魎).
윤사희가 만들고 윤사해가 일으켜 세운 곳. 그리고 우리 가족의 또 다른 보금자리인 곳.
나는 그곳을 향해 나아갔다.
***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길드장님.”
윤사해의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들려온 인사였다.
‘아가씨’가 아닌 ‘길드장님’이란다.
나는 멋쩍게 뺨을 긁적이며 서차웅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서 비서님.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에요.”
그에게는 고작 하루였겠지만, 나한테는 아니니까 저런 식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사하, 홍랑.”
사야와 류화홍의 아이들이 서차웅의 어깨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니,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사야의 나지막한 부름에 아이들이 활짝 웃음을 터트렸다.
“엄므아!”
“므아!”
류사하와 류홍랑이 사야의 품에 와락 안겼다. 사야는 그대로 아이들을 류화홍에게 넘겨줬다.
“화홍, 아이들을 부탁할게요. 아무래도 향후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야할 것 같으니까요.”
“네.”
류화홍이 편안하게 이야기 나누라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다.
“그럼, 저도 나가 볼게요.”
광혜원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드의 존망이 달린 중요한 일에 끼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광혜원이 짓궂게 말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남은 사람은 셋.
나와 사야, 그리고 서차웅이었다.
“다른 분들은 부르지 않아도 괜찮나요?”
“태운이라면 괜찮답니다.”
태운은 이매망량의 길드원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다. 동시에 가장 오랫동안 이매망량에 몸을 담은 사람이기도 했다.
사야가 내게 찻잔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태운은 뭐가 됐든 좋다고 생각할 거랍니다. 아가씨가 돌아왔으니 이제 다 해결됐다고도 생각하겠지요.”
“제가 뭐라고…….”
“아가씨.”
아니, 길드장님.
사야가 그렇게 말을 고치고는 입을 열었다.
“리사 아가씨는 이제 이매망량의 길드장님이십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제 이 길드는 당신의 것. 당당해지도록 하십시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야의 말에 틀린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으니까.
“네, 언니.”
내 대답에 사야가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그렸다.
“자, 그럼. 이 사실을 어떻게, 어떤 식으로 알리는 게 좋을까요?”
“언론 매체를 이용하는 게 사실 가장 확실합니다. 그렇지마는.”
서차웅이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과연 그들이 저희 뜻대로 움직여 줄지 모르겠군요.”
“하긴, 자극적인 기사를 쓰는 게 그들 일이니까요.”
사야가 비딱하게 웃었다.
“길드장님의 일만 봐도 그렇지요. 리오 도련님의 일도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사야가 말을 하다 말고 나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말았네요.”
“아니에요, 언니.”
나는 황급히 손사레를 쳤다.
“저는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럴 수는 없답니다.”
사야가 고개를 저었다.
“아가씨는, 아니. 길드장님께서는 이제 세상 밖에 그 존재를 드러내셔야 합니다. 모두가 우러러볼 수 있도록,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도록 말이지요.”
저렇게 말하니 내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럼, 언론이 암만 떠들어대도 제 뒷배가 되어 줄 사람이 있으면 어떨까요?”
서차웅이 살포시 미간을 좁히고는 물었다.
“아래아의 최설윤 길드장님 말입니까? 하긴, 그 분이라면 흔쾌히 뒷배가 되어 주실 것 같습니다.”
“아니요.”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최설윤 길드장님보다 더 강력한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어야해요.”
최설윤이 나를 지지하는 거야 언제든지 환영이었다. 문제는, 다른 사람 눈에 그게 어떻게 비칠 것인가다
.
나는 사람들에게 있어 윤사해의 유일한 딸일 뿐이다.
그런 나를 이매망량과 같은 4대 길드의 길드장, 최설윤이 지지한다?
분명 말이 나올 거다.
당연히 그 말은 좋은 말들이 아닐 게 분명했다.
‘최설윤이 어린 나를 이용해서 이매망량을 먹으려고 한다니 뭐니 그런 말이 돌겠지.’
최설윤이야 그런 말이 돌든 돌지 않든 신경도 쓰지 않을 테지마는.
‘그래도 싫어.’
나는 윤사해가 돌아오기 전까지, 이 자리를 무탈하게 지키고 싶었다.
그걸 위해서는.
“AMO의 강산에 본부장님께 부탁할 생각이에요. 공개적으로 저를 지지해 달라고요.”
“강산에 본부장님께 말입니까?”
“길드장님, 강산에 본부장님께서는 생각보다 까탈스러운 분입니다.”
우리 최애님이 뭐가 까탈스럽다고!
크흠, 나는 작게 헛기침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괜찮아요. 강산에 본부장님이라면 분명 저를 도와주실 테니까요.”
그걸 어떻게 확신하냐는 듯, 사야와 서차웅이 믿기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들의 시선에 나는 말했다.
“도와주지 않겠다고 하시면 뺨이라도 때릴게요.”
“네?! 안 됩니다!”
서차웅이 경악했다.
“장난이에요, 장난.”
황급히 농담이었다면서 말을 고쳤지만 서차웅은 못 미덥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자자, 어쨌든. 강산에 본부장님과의 자리를 좀 마련해 주세요. 그 전까지 언론에 제 이야기가 퍼지지 않게 해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서차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야 역시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혹시 모르니 다른 분들께도 주의를 드리겠습니다.”
“네, 부탁할게요.”
“그럼, 저 먼저 일어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야가 공손하게 내게 인사한 후 자리를 떠났다.
“서 비서님도 그만 나가 보세요.”
“아닙니다, 길드장님.”
서차웅이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사야 님께서 업무 대부분을 처리하셨다고 하지만, 길드장님께서 확인하셔야 할 안건이 남아 있어서 말입니다. 이것저것 알려드리겠습니다.”
윽!
“돌아오자마자 일하라고요?”
“네, 길드장님.”
서차웅이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드릴 선물도 있고 말입니다.”
“선물이라니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 서차웅이 웬 종이 가방을 내게 건넸다.
뭔가 했더니만.
“이건.”
“길드장님께서 항상 입고 다니셨던 두루마기 코트입니다. 길드장님께 맞게 수선을 좀 했습니다.”
나는 멍하니 입술을 달싹였다.
서차웅이 준 선물은, 윤사해가 폭발에 휘말려 사라지기 전에 내게 둘러주고 갔던 두루마기 코트였다.
잔뜩 닳고 헤져 두 번 다시는 입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저씨…….”
이 순간만큼은 ‘서 비서’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준 선물을 보물이라도 된 것처럼 끌어 안고는 울먹였다.
“정말로 고마워요.”
“아닙니다. 앞으로 성심성의껏 곁을 보좌할게요.”
“네, 부탁할게요.”
나는 활짝 웃으며 하얀색 두루마기 코트를 어깨에 걸쳐 입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길드장님, 강산에 본부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AMO와의 접선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