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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333)화 (333/500)

333화. 비상(3)

나의 휴식은 오래가지 못했다.

“일어나거라, 아해야.”

윤사희가 금방 돌아왔기 때문이다.

언제는 쉬라고 했으면서 이젠 또 일어나란다.

“할머니는 정말 제멋대로시네요.”

“내가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지.”

윤사희가 키득거리며 웃고는 내게 뭔가를 건넸다.

“대나무 피리네요?”

“그래. 세상에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은 신물이니 소중하게 쓰도록 하거라.”

“신물이요?”

“아, 너한테는 성유물이란 이름이 더 쉽겠구나.”

성유물이라니!

나는 놀라 윤사희를 쳐다봤다.

“왜 그렇게 보느냐?”

“성유물이 어떻게 할머니의 손에 있어요?”

“그야, 생전 내가 사용했던 것이니 내 손에 있지.”

“아, 그렇지, 참.”

잠깐 잊고 있었다.

윤사희가 한때 ‘신’이었다는 것을.

나는 그녀가 건네준 성유물을 꼭 끌어안고는 입을 열었다.

“할머니는 왜 인간이 됐어요?”

윤사희가 곰방대를 물었다.

“인간이 좋았으니까.”

“고작 그런 이유로요?”

후우, 윤사희가 연기를 뱉고는 말했다.

“그래.”

단조로운 대답이었다.

아무래도 윤사희한테서 이 이상 다른 대답은 듣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니 다른 걸 묻기로 했다.

“이 성유물은 어디에 사용하는 건가요? 무기로는 안 보이는데.”

대나무 피리로 저세상을 때려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윤사희가 내 질문에 순순히 대답해줬다.

“도깨비 녀석을 부르는 용도다.”

“네?”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도깨비요?”

“그래. 나는 그 녀석들과 꽤 친하게 지냈거든.”

그래서 윤사희는 도깨비와 함께 ‘유랑단’으로 전국을 누볐다고 한다.

“내가 신이었을 적에는 미지 영역이고 뭐고 없었으니까 말이지.”

“그렇다고 해도…….”

나는 목소리의 끝을 흐렸다가 꿀꺽 침을 삼키며 물었다.

“어떤 도깨비든 부를 수 있나요?”

“부르고자 하는 도깨비의 이름만 알면 누구든 부를 수 있다. 다만.”

다만?

나는 긴장한 얼굴로 윤사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윤사희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다른 녀석과 계약되어 있는 도깨비는 부를 수 없다.”

“그거야 그렇겠죠!”

미지 영역의 거주자와 이중 계약을 한 인간 따위 들어본 적 없다.

나는 불퉁하게 입술을 씰룩였다.

“애초에 제가 도깨비의 신명(神名)을 어떻게 알겠어요?”

미지 영역의 거주자를 부르기 위해서는 그의 진짜 이름을 알아야 했다.

그러니까 윤사희가 내게 준 성유물은 빛 좋은 개살구란 말.

“예끼, 이 녀석아.”

따악!

윤사희가 들고 있던 곰방대가 내 머리를 때렸다.

“왜 때려요!”

눈물이 질끔 나올 정도로 아팠다.

머리를 부여잡고 윤사희를 쳐다보는데 그녀가 끌끌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어쩜 너는 네 아비와 똑같은 소리를 하느냐?”

“네?”

그게 무슨 소리니?

‘설마…….’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나무 피리네요?’

‘그래. 세상에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은 신물이니 소중하게 쓰도록 하거라.’

‘신물이요?’

‘아, 너한테는 성유물이란 이름이 더 쉽겠구나.’

이 세상에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은 성유물.

그 말인즉슨 나 이전에 누군가 이것과 똑같은 성유물을 들고 있었다는 소리가 된다.

“아빠도 같은 걸 가지고 있어요?”

“그래. 도깨비 녀석들의 이름에 대해 귀띔해 주니 잘도 알아내서 불러내더구나.”

“그럼!”

“당연히 너한테도 가르쳐 줄 거다.”

윤사희가 눈웃음을 지었다.

“단 한 명의 이름만.”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윤사해가 계약한 도깨비만 해도 다섯 손가락이 넘어갈 거다.

그 숫자 모두 윤사희의 힌트로 얻은 계약이란 말인데 나한테는 한 명만 가르쳐 줄 거라고?

“왜요?!”

“그야, 사해 녀석과 같은 이름들을 가르쳐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느냐?”

이 망할 선조님은 도대체 아빠한테 얼마나 많은 힌트를 준 거야?!

나는 머리를 벅벅 긁고는 말했다.

“알겠어요.”

도대체 얼마나 많은 힌트를 줄지 모르겠지만 듣는 게 나았다.

그런데.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것.”

“네?”

“내가 줄 수 있는 건 이게 전부다. 나름대로 꽤 많은 걸 알려줬으니 이제 그만 가 봐라.”

저 망할 할머니가 듣느니만 못한 힌트를 줘 버렸다.

“잠시만요! 그게 무슨 힌트예요! 더 주세요!”

“아해야.”

윤사희가 웃는 낯으로 말했다.

“과유불급이다.”

과유불급이고 자시고 준 것도 없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할머니!”

“시끄럽구나.”

윤사희가 휘휘 손을 젓는 것과 동시에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으악!”

그런 나를 향해 윤사희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인사했다.

“잘 가거라. 다음에 또 보자.”

그녀의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나는 저택 밖으로 튕겨나갔다.

쿠웅!

내 앞에서 닫힌 문을 보며 나는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야, 이 망할 할망구야!”

왜인지 모르게 저택 안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드는 찰나.

“아가씨!”

나는 아예 귀수산을 나오게 됐다.

나는 갑작스럽게 바뀐 주변을 돌아보며 멍하니 두 눈을 끔뻑거리다 눈앞의 여자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사야 언니!”

***

-가 버렸네.

-맞아, 갔어.

-사희 쓸쓸해지겠네.

-안 쓸쓸해?

-쓸쓸하지?

윤사희가 주변에서 떠드는 목소리에 일갈했다.

“시끄럽다.”

순식간에 그녀의 주위가 쥐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윤사희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할머니는 왜 인간이 됐어요?’

‘인간이 좋았으니까.’

사실, 그 대답은 거짓말이었다.

윤사희는 그들을 사랑했다. 물론,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다.

윤사희에게 있어 그들은 원망의 대상이었다.

멋대로 이세계의 신을 죽여 주기를 기원하며 끊임없이 기도하여 자신을 태어나게 했으면서 불길한 힘을 가지고 있다며 핍박하고 억압했었다.

청(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신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기도 전에 소멸하고 말았을 거다. 그렇기에 윤사희는 인간을 꽤 혐오했었다.

그런 그녀가 그들을 좋아하게 된 건 역시 청(淸) 때문이었다.

인간과 사랑에 빠진 청(淸)은 많은 자식을 두고, 그들이 제 힘을 맘껏 누릴 수 있게 만들었다.

더욱이 가장 아끼는 자식이 불의의 사고로 죽자, 그 아이를 죽게 만든 인간에게 저주를 내리기까지 했다.

도대체 뭐 때문에 저렇게 하는 건가 지켜보다 보니 인간이 좋아졌다.

그러다 사랑하게 됐다.

그래서 윤사희는 스스로 신명을 버리고 인간의 삶을 선택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 세상에 어둠이 존재하는 한 영원토록 살 수 있는 그림자의 신이었으니까.

윤사희는 문득, 제 곁에서 쉴 새 없이 떠들어대곤 했던 한 이무기를 떠올렸다.

?사희 아씨의 심장은, 그럼 그림자구려! 이 세상에서 그림자가 지지 않는 한, 우리 사희 아씨는 영원히 존재하겠지!?

제 존재에 대해 알려 주니 그 이무기는 그렇게 잘도 떠들어댔었다.

“그 녀석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뭐, 잘 지내고 있겠지.”

윤사희가 툭툭 곰방대를 털어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거나 이 세상에서 그림자가 지지 않는 한, 영원히 살 게 뻔했기에 윤사희는 신명을 버려 인간으로 사는 걸 선택했다.

사랑했던 인간이 일찍이 죽어 그 뒤를 따라가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제 자식이 남긴 아이가 부모를 모두 잃고 돌고 돌아 자신의 곁으로 왔기에.

“윤사해, 이 녀석아.”

윤사희가 문가에 기대고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어서 돌아오거라.”

네 자식 녀석이 너보다 먼저 먼 곳으로 떠나 버리기 전에.

“어서 돌아오란 말이다.”

윤사해에게는 닿을 리가 없는 목소리였다.

***

“아가씨.”

 “사야 언니!”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야에게 달려갔다.

“진짜 사야 언니예요? 정말로?”

“네, 정말 저랍니다.”

사야가 싱긋 웃었다.

“혹시 몰라 화홍의 손을 뿌리치고 오기를 잘했네요.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찾아온 건데 말이지요.”

다정하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나는 울상을 지었다.

“언니……!”

시도 때도 없이 장난과 시비를 걸어대던 망할 할머니만 보다 사야를 보니 감격스러웠다.

나는 두 팔 벌려 사야를 꼭 끌어안았다.

“우리 아가씨께서 고생을 꽤 많이 하셨나 보군요.”

“네!”

나는 진솔하게 대답해 줬다.

사야가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입을 열었다.

“사희 님의 성격이 좀 괴팍하기는 하죠.”

좀이 아니라 많이 괴팍하던데요.

나는 튀어나오려던 말을 삼킨 후 물었다.

“제가 귀수산에 들어가고 며칠이나 지났어요?”

“하루요.”

“네?!”

나는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루밖에 안 지났다니?

‘족히 한 달은 지난 줄 알았는데!’

나는 어둠이 짙게 깔린 귀수산을 쳐다봤다.

도대체 저기를 어떻게 오른 건가 싶을 정도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아주 풀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귀수산의 시간은 꽤 느리게 흘러가나 보네요.”

“그렇답니다.”

사야가 공손하게 말했다.

“그보다 어서 가시죠. 아가씨께서 돌아오기를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고 계신답니다.”

“리타 오빠도요?”

사야는 대답하지 않고 곤란하다는 듯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괜찮아요. 그냥 물어본 거예요.”

귀수산으로 떠난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은 시간.

그동안에 윤리타가 돌아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어서 가기나 해요.”

나는 고이 간직하고 있던 명패를 꺼내 들었다.

이제, 완전히 내 것이 된 패를.

나는 지금부터 이매망량의 길드장으로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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