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2화. 비상(2)
윤사희는 어둑시니의 공간에서 벗어난 나를 데리고 곧장 저택으로 돌아왔다.
“먹거라.”
나는 윤사희가 한가득 차린 상을 물끄러미 보다 젓가락을 들었다.
내가 집은 음식은 김치였다.
아무렴, 한국인이라면 김치를 먹어야지.
“어떠하냐?”
“맛있네요.”
사실, 아무런 맛도 나지 않았다.
미간이란 게 상실된 느낌이었다. 어쩌면 정말 잃어버렸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지마는.
나는 밥을 우물거리며 윤사희를 쳐다봤다.
“할 말이라도 있느냐?”
꿀꺽 목구멍 너머로 음식을 삼킨 후 물었다.
“할머니죠?”
“무엇이 말이냐?”
“저를 어둑시니가 만든 공간에 가둔 거요.”
술잔을 기울고 있던 윤사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도록 허락한 건 내가 맞다.”
“역시 그렇군요.”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내 대답에 윤사희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화내지 않느냐?”
“네, 덕분에 성장했으니까요.”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밥상을 엎었다.
우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윤사희가 있는 쪽으로 밥상이 엎어졌다. 동시에 나는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윤사희가 나를 피하며 웃었다.
“아해야, 예의는 어디다 버려두고 왔느냐?”
“글쎄요.”
나는 비딱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어둑시니의 공간 안에 버려두고 왔나 봐요.”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바닥에 놓여 있던 목검을 들었다.
노리는 건, 윤사희.
그녀를 상처입혀 귀수산을 내려갈 작정이었다. 하지만 윤사희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내게서 한 발자국 물러난 그녀의 주위로 그림자가 솟구치더니 나를 향해 쇄도했다.
“윽……!”
가까스로 그것들을 피하며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할머니, 서로 힘은 사용하지 않기로 한 거 아니었나요?”
“그건 너한테만 해당 사항이 있는 이야기였단다.”
“치사하게 나오시네요.”
“아무렴, 그래야지.”
윤사희가 키득거렸다.
“손녀가 죽일 듯이 달려드는데 이래야 하지 않겠느냐?”
나는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이미 죽은 사람이면서 왜요?”
그러니까 내가 살기를 담아 공격하는 것에 왜 그렇게 반응하냐는 질문이었다.
윤사희가 싱글벙글 웃는 낯으로 내 질문에 답해 줬다.
“그렇지만 이 몸은 아주 잘 살아 있는지라.”
어떻게 한마디도 지지 않을까?
정말이지, 얄밉기 그지없는 조상님이었다.
“그럼, 할머니. 우리 룰을 바꿔요.”
나는 윤사희를 향해 목검을 들며 싱긋 웃었다.
“새로 얻은 힘은 마음껏 사용할 수 있도록요.”
우우우―!
윤사희가 그랬던 것처럼, 내 주위로 그림자가 솟구쳐올랐다.
【<[S, 숙련 불가] 그림자 사냥꾼>이 활성화됩니다.】
윤사희가 놀라 외쳤다.
“너! 그 힘을 어떻게!”
“왜 그렇게 놀라세요?”
나는 윤사희의 말을 끊으며 웃는 낯으로 물었다.
“제가 할머니와 똑같이 그림자를 움직이는 게 그렇게 신기하세요?”
윤사희가 얼굴을 찡그렸다.
“언제 일깨웠느냐?”
“이 힘이요?”
“그래.”
어서 대답하라는 듯이 윤사희가 나를 쳐다봤다.
나는 순순히 답해 줬다.
“꿈에서요.”
정확히는 어둑시니의 공간에서 얻은 힘이었다.
“아빠도 이렇게 그림자를 움직일 수 있잖아요. 상대하기 정말 까다로웠거든요.”
제발 그만두라면서 얼마나 애타게 나를 부르던지.
윤사해가 나를 부를 때마다 심장이 뜯겨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어쨌든 간에 윤사해는 나를 막고자 최소한의 힘으로 그림자를 움직였다. 내가 다치는 걸 염려해서 그런 거겠지.
하지만 나는 모든 힘을 쥐어짜 그를 죽이려고 들었다.
아니, 죽였다.
이 힘은 그렇게 아빠를 죽여 얻은 힘이었다.
“그럼, 할머니.”
나는 싱긋 웃으며.
“갈게요.”
윤사희를 향해 땅을 박찼다.
윤사희가 키득키득 웃으며 그림자를 움직였다. 나 역시 그것들을 움직이며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이제, 정말 귀수산을 내려갈 시간이었다.
윤사희가 빼앗은 내 팔찌를 돌려받고서 말이다.
***
쿨럭!
나는 기침을 토해내며 아래에 깔린 여자를 쳐다봤다.
“어때요? 제가 이겼죠?”
내 아래에 깔려 있던 윤사희가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이지, 못 말리는 아해구나.”
나는 어깨에 창이 꿰뚫려 있는 것도 잊고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물었다.
“내가 이렇게 되기를 원한 거 아니에요?”
“그래.”
윤사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렇게 변하는 건 원하지 않았단다.”
그러면서 그녀가 내 어깨를 뚫은 창을 사라지게끔 만들었다. 그림자로 만들어낸 창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밭은 숨을 뱉어내며 그녀에게 물었다.
“어쨌든 제가 이겼죠?”
“이긴 건 아니지.”
짜증나지만 맞는 말이었다.
겉으로만 보면 나는 명백한 패배자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할머니 몸에 상처는 냈잖아요.”
“이거 말이냐?”
윤사희가 뺨에 난 상처를 가리키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상처는 윤사희의 창에 어깨를 꿰뚫리면서 만든 거였다.
육참골단(肉斬骨斷)이라고,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고 하던가?
나는 윤사희에게 빼앗긴 팔찌를 돌려받은 후 귀수산을 내려가기 위해 어깨를 내놓았다.
이런 상처야 치료하면 금방 나을 수 있었으니까.
광혜원한테 잔소리는 좀 듣겠지만, 윤사희가 내건 조건을 충족시키려면 어깨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어둑시니의 공간 속에서 윤사해를 죽여 힘을 얻었다고 해도, 내 앞의 여자는 여전히 괴물 같았으니까.
윤사희가 뺨을 타고 흐르는 피를 닦아내고는 말했다.
“뭐, 이것도 상처라면 상처라고 할 수 있겠지.”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활짝 웃었다.
윤사희가 미소를 그리며 다정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수고했다, 아해야. 여기, 팔찌를 돌려주도록 하마.”
윤사희가 소매 안쪽에서 팔찌를 꺼내 나한테 돌려줬다. 나는 냉큼 그것을 받아 손목에 꼈다.
“그게 그렇게 소중한 물건이느냐?”
“네.”
나도 이 팔찌를 이렇게 소중하게 여길 줄 몰랐다.
윤사해한테 선물받은 것이라 이런다고 하기에는 그한테 받은 선물은 방에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았다.
그러니 내가 이 팔찌를 소중하게 여기는 이유는.
‘저세상.’
아마, 그 녀석 때문일 거다.
저세상도 나와 똑같은 것을 여전히 손목에 착용 중일 거라고 믿어 이러는 거겠지.
이 팔찌가 그 자식한테 데려다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윤사희가 신기하다는 듯이 내 손목에 끼운 팔찌를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조금 쉬도록 하거라.”
“싫어요. 쉴 시간에 귀수산을 내려가도록 하겠어요.”
팔찌도 돌려받았겠다, 이제 볼 일은 끝이었다.
“나한테 아직 볼 일이 남아 있지 않느냐?”
“네?”
“귀수산.”
윤사희가 싱긋 웃었다.
“이대로 내려가면 귀수산은 닫히고 이매망량은 폐쇄되고 말 거다. 너는 아직 내 인정을 받지 못했으니.”
나는 멍하니 두 눈을 끔뻑거리다 빼액 소리를 질렀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어디 있기는? 여기 있지.”
능글맞게 말하는 입을 한 대 때려 주고 싶었다. 씩씩거리며 윤사희를 보는데, 돌연 그녀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 그렇게 화내지 말거라. 내 인정을 받지 못했을 뿐, 과제는 훌륭하게 수행했으니.”
나는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과제만 수행하면 끝 아닌가요? 그렇다고 들었는데요.”
“물론, 원래라면 그렇겠지만…….”
윤사희가 목소리의 끝을 흐리고는 눈웃음을 지었다.
“조금 심술을 부리고 싶어서 말이다.”
정말 성격 안 좋은 조상님이었다.
얼굴을 한껏 구기며 윤사희를 쳐다보는데, 그녀가 내 이마에 아프지 않게 꿀밤을 먹이고는 말했다.
“장난이다. 그보다 일단 들어가서 조금 쉬도록 하거라. 내 너를 인정하기는 할 테니.”
지금 인정해 주면 안 되냐고 물으려던 찰나, 윤사희가 어떻게 알았는지 말했다.
“네게 주고 싶은 선물이 있어서 말이다. 그것만 쥐여 주고 바로 내려갈 수 있도록 해 주마.”
“약속이에요.”
“그래.”
윤사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의 창에 꿰뚫렸던 내 어깨를 때렸다.
“악!”
아파 비명을 지르니, 그녀가 웃는 낯으로 말했다.
“쉬면서 상처나 치료하도록 해라.”
그러고는 나를 그대로 방 안에 밀어 넣었다.
“금방 다녀오마.”
“최대한 빨리 돌아오세요. 알겠죠?”
“그래. 내 최대한 빨리 다녀올 테니 걱정 말고 푹 쉬고 있도록 하거라.”
윤사희가 고개를 끄덕인 후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나는 그녀의 기척을 쫓다 자리에 드러누웠다.
윤사희를 쫓는 거야 지금의 나로서는 무리였다. 그녀는 정말 귀신같이 움직였으니. 내가 괜히 살을 내어준 게 아니었다.
“후우.”
나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어깨의 상처가 욱신거렸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상처가 덧날 것 같지도 않거니와 이런 고통이야 어둑시니의 공간에서 하도 겪어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멍하니 천장을 보다 그림자를 움직였다.
말 잘 듣는 강아지마냥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그림자를 보니 얼굴이 서글프게 일그러졌다.
“아빠가 지금 나를 보면 분명 슬퍼하시겠지?”
분명 그럴 거다.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게 했던 손에 피를 묻히게 됐으니…….
“그러게 왜 그렇게 사라진 거예요?”
괜히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윤사해에게 들릴 리가 없는 목소리로 말이다.
나는 그림자를 움직이다 두 눈을 꼭 감아 버렸다.
윤사희의 말대로 조금 쉬는 게 좋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