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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331)화 (331/500)

331화. 비상(1)

“그럼, 우리 아빠 살 수 있어요? 리타 오빠도 살 수 있어요? 리오 오빠도 못된 사람 안 되고.”

아이가 우물쭈물하다 물었다.

“다 같이 살 수 있어요?”

“네.”

장천의의 대답에 윤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할래요. 리사 몸 다른 사람한테 줄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당신은 더는 가족과 대화를 나눌 수 없게 될 겁니다.”

“괜찮아요.”

윤리사가 활짝 웃었다.

“리사는 그렇게 돼도 좋아요.”

아빠랑 오빠들이 살 수만 있다면.

그 말을 끝으로 윤리사는 더 이상 ‘윤리사’가 아니게 되었다.

그렇다고 사라진 건 아니었다.

아이는 제 몸을 차지한 ‘마리아’라는 데이터의 깊숙한 곳에서 그녀와 함께했다.

그렇게 지금.

“정말로 고마워, 윤리사. 이 말을 줄곧 하고 싶었어.”

나는 윤리사와 마주하게 됐다. 나는 파르르 입술을 떨며 물었다.

“뭐가 고마운데?”

“뭐가 고맙기는.”

윤리사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아빠랑 오빠들을 화해시켜 줘서.”

그리고.

“내 바람을 대신 이루어 줘서 정말 고마워. 그러니까, 윤리사.”

윤리사가 내게 성큼 다가와서는 나를 꼭 끌어안아 줬다.

“억지로 괴로운 길을 걸을 필요 없어. 나는 네가 행복해졌으면 하거든. 우리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만큼이나.”

얼굴이 일그러졌다.

윤리사가 그런 나를 보며 티없이 맑게 웃어 보였다.

“그럼, 안녕.”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인어 공주처럼 그녀의 몸이 아래에서부터 빛이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잠깐만, 윤리사.”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뱉어내며 그녀를 붙잡고자 했다.

“이렇게 사라진다고?”

싫었다.

그녀에게 묻고 싶은 말도 많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다.

무엇보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 들을 자격 없어. 그런 말을 들을 자격 없다고!”

우리 가족은 해체됐다.

서로 뿔뿔이 흩어져 버린 지금, 저런 인사를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가지 마, 윤리사.”

그러나 윤리사는 그저 미소를 그리며.

“안녕.”

내게 마지막 인사를 고했다.

그녀는 그렇게 빛이 되어 내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동시에 윤리사의 등장과 함께 나타났던 시스템 창이 붉게 변했다.

[<[C급, 숙련 가능] 윤리사는 미운 ?? 살>이 비활성화되었습니다.]

“하, 하하.”

실소가 절로 터져 나왔다.

아무래도 저 스킬은, 나와 함께 있던 윤리사를 유지하기 위한 스킬이었나보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걸 알게 됐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윤리사는 사라졌는데.

“이게 뭐야.”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네 멋대로 그렇게 인사하고 가 버리면 끝이야?”

묻는 말에 대답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두 손을 꽉 주먹 쥐었다.

“원망해야지. 네 몸을 대신 차지해서 살아온 사람인데.”

목소리의 끝이 높아졌다.

“마음껏 미워하고 원망해야지! 왜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건데!”

도대체, 왜.

“내 행복을 빌어 주는 거냐고!”

허망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다 사라졌다.

뚝뚝, 눈물이 떨어졌다.

나는 손을 들어올려 그것을 닦아 내고는 이를 악물었다.

‘그래, 윤리사.’

네가 원하는 게 나의 행복이라면 들어줘야지.

나는 두 눈을 부릅떴다.

이제, 이 빌어먹을 공간을 탈출할 시간이었다.

***

“후우.”

윤사희가 연기를 뱉어내고는 다시 곰방대를 물었다.

“아해가 많이 늦구나.”

늦을 줄은 알았다.

어둑시니의 술수에서 벗어나는 건 꽤 힘이 드는 일이었으니.

더욱이 윤리사는 윤사희에 의해 모든 스킬이 봉인된 상태.

쉽사리 그것의 술수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터였다.

-사희, 괜찮아?

-죽으면 어떻게 해?

-맞아, 괜찮아?

-죽으면 우리가 가져도 돼?

-우리가 먹어도 돼?

사방에서 귀수산의 귀신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윤사희가 와락 얼굴을 구겼다.

“시끄럽다.”

그 말 한마디에 주위가 쥐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윤사희가 짧게 혀를 찼다.

윤리사가 죽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죽게 둘 생각도 없었고. 그야, 그녀는 자신의 손녀였다.

정확히는 증손녀.

정말로 피가 이어진 제 손주 녀석을 윤사희가 죽게 둘 리가 없었다.

“사해, 그 녀석도 참.”

결혼을 한다고 하더라도 아이는 두지 않을 거라고 하더니 기어코 애를 셋이나 낳았다.

“낳은 건 린이지만.”

어쨌든 윤사희는 그것이 정말 신기했다.

세상에 홀로 남은 것처럼 굴던 윤사해가 자식을 봤다는 것이, 그 자식이 저를 만나러 귀수산에 올라왔다는 것이.

윤사희가 다시 곰방대를 물었다.

사실, 그녀는 윤리사가 어둑시니의 공간에 계속 잡혀 있기를 바랐다.

그 공간을 빠져나오는 순간, 그녀는 금방 자신의 조건을 만족한 후 귀수산을 내려가게 될 테니.

윤사희는 윤리사가 하산하지 않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다.

제 핏줄과 오래도록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 때문은 아니었다.

그녀는 윤리사가 귀수산을 내려간 후,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을지 짐작할 수 잇었다.

고통만 받겠는가?

많은 선택을 강요받게 될 거다.

윤사희의 눈에는 한없이 어린 그녀가 말이다.

“후우.”

윤사희가 다시 연기를 뱉을 때.

쿠구구궁-!

귀수산이 크게 흔들렸다.

새들이 깜짝 놀라 날아갈 만큼 큰 진동 속에서 윤사희는 생각이 많은 얼굴로 웃었다.

윤리사가 기어코 어둑시니의 공간을 빠져나왔다.

***

까악! 까악-!

나는 멍하니 두 눈을 끔뻑였다.?

온몸에 진득하게 묻어 있던 피가 사라졌기 때문이기도 했고,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도 현실감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정말 꿈에서 깨어난 건가?”

나는 손을 들어 뺨을 꼬집었다.

“아야.”

아팠다.

하지만 꿈속에서도 고통은 느꼈었기에 나는 다시 한번 더 뺨을 세게 꼬집어 봤다.

“아야야.”

정말 아팠다.

그제야 나는 뺨을 꼬집는 걸 그만두고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정말로 꿈에서 깨어난 거다.

-아… 아아……?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검은 연기를 풀풀 풍기고 있는 괴물이 입으로 보이는 곳을 벌리며 침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물끄러미 그것을 보다 물었다.

“너야?”

저건 내가 과일 서리를 할 때 쫓아온 괴물이었다. 덕분에 윤사희를 만나게 됐었으니 나름대로 고마운 존재였지만.

“너냐고 묻잖아.”

동시에 내게 끔찍한 경험을 안겨 준 괴물이기도 했다.

윤사희가 ‘어둑시니’라고 칭하는 건 들은 것 같지마는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이를 드러내며 다시 물었다.

“마지막으로 묻는 거야. 그딴 꿈을 꾸게 만든 게 바로 너야?”

-아… 아아…….

괴물은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만 계속 낼 뿐, 제대로 된 대답은 하지 않았다.

나는 얼굴을 와락 구겼다가 주위에 굴러다니고 있는 돌을 주웠다.

일단은 형체가 있는 것 같으니 두드려 패면 될 거다. 그렇게 괴물을 향해 걸음을 내디딜 때.

“그만.”

윤사희가 내 앞에 나타났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은 그녀가 웃는 낯으로 내게 물었다.

“어둑시니의 술수에서 어떻게 빠져나온 것이냐?”

“역시, 저 괴물이 한 짓이었네요.”

“내 말에 먼저 대답이나 하거라.”

나는 윤사희를 빤히 쳐다보다 무심하게 대답해 줬다.

“죽였어요.”

“흠?”

“내 앞에 나타나는 사람들을 모두 죽였다고요.”

윤사해도 윤리오도 윤리타도.

그리고 내 친구들도 모두 내 손으로 죽였다.

몇 번이고, 셀 수도 없이.

“꿈에서 깨어나려면 그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았거든요. 뭐, 지금 보니 정답이었나 보네요.”

“그래, 정답이다.”

윤사희가 뜻 모를 웃음을 보이며 내게 물었다.

“고통스럽지 않았느냐?”

“뭐가요?”

“네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고통스럽지 않았냐고??

물론, 고통스러웠다.?

꿈 속에서 나타나는 사람들은 모두 감정을 가지고 있는 듯 굴었으니까.

처음에는 죄책감에 몸부림치며 나 역시 죽어 버릴까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윤리사가 빌어준 행복을 저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심장을 쥐어뜯는 기분으로 수십 번이고 수백 번이고 끊임없이 내 앞에 나나타는 사람들을 죽였다.

그러다 보니 익숙해졌다. 무뎌졌다는 게 옳은 표현일 거다.

“할머니, 저는요.”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목소리를 내뱉었다.

“이제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 두렵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내가 상처 입는 것 역시 두렵지 않았다.?

윤사희가 내 말에 애달프게 미소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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