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330)화 (330/500)

  330화. 꿈(3)

“네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겠어. 진짜가 나타났다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지?”

나는 화들짝 놀라 ‘윤리사’를 쳐다봤다.

“어떻게 알았냐는 듯한 눈빛이네?”

조용히 입을 다물고서 그녀를 쳐다봤다. 내 시선에 윤리사가 어깨를 으쓱였다.

“너무 그렇게 노려보지 마. 참고로 네 몸을 빼앗는다거나 그럴 생각 따위 없으니까.”

“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물음이었다.

그런 내 질문이 의외라는 듯 윤리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냐고? 정말 몰라서 물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고갯짓에 윤리사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우와! 귀신같이 눈치 빠른 녀석이 자기 일에는 눈치 더럽게 없는 것 좀 봐!”

놀리는 듯한 목소리에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하하! 얼굴 좀 펴!”

장난이었다면서 윤리사가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 곧 그녀가 웃음을 멈추곤 물었다.

“있잖아, 윤리사. 너는 우리 가족이 어떻게 행복해졌다고 생각해?”

“그건…….”

“너 덕분이야.”

윤리사가 내 말을 끊었다.

“너도 알잖아. 우리 가족이 얼마나 개판이었는지.”

윤리사의 말대로였다.

우리 가족은 정말 개판이었다.

윤리오는 윤사해를 볼 때마다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지, 윤리타는 그런 둘 사이에서 눈치만 보지.

“네가 아니었다면 줄곧 그랬을 거야. 나는 너처럼 행동하지 못했을 테니까. 애초에 그런 힘도 가지지 못했을 거고.”

윤리사가 말하는 힘이란 스킬을 가리키는 것일 터.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가 가졌을 수도 있잖아.”

“아니.”

윤리사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못 가졌을 거야. 네 데이터가 내 몸에 덧씌워지지 않았다면 나는 그 던전에서 그대로 죽었겠지.”

“그걸 어떻게 확신하는데?”

“봤으니까. 윤리사, 너는 정말 네가 우연히 내 몸에 들어온 거라고 생각해?”

“나는…….”

솔직하게 말하면 모른다.

내가 어쩌다 ‘윤리사’가 됐는지를 말이다.

나는 그저 『각성, 그 후』에서 차애의 죽음에 울부짖으며 작가님을 원망했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눈앞에 나타난 시스템창에 YES를 누르니 나는 ‘윤리사’가 되고 말았다.

“윤리사.”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너, 뭔가 알고 있지?”

윤리사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뭔가 알고 있는게 분명했다.

“말해 줘, 윤리사.”

“윤리사는 너인데?”

“장난치지 말고!”

목소리가 절로 높아졌다.

나는 으득 이를 갈며 그녀에게 물었다.

“넌 도대체 뭘 알고 있는 거야?”

“내가 알고 있는 거야 좀 많은데?”

윤리사가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먼저 아빠랑 오빠들이 너를 엄청나게 좋아한다는 걸 알지. 그리고 단예랑 단아, 단이랑 도윤이도 너를 엄청나게 좋아하고. 또…….”

흐려졌던 목소리가 곧 선명해졌다.

“사실은 저세상을 죽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지.”

쿵, 심장이 내려앉았다.

나는 억지로 입꼬리의 끝을 끌어 올리며 물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사실 저세상을 죽이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고?

그럴 리가!

“저세상은 우리 가족을 망쳤어. 그 자식 때문에 아빠랑 오빠들이!”

“사라지고 쓰러지고 상처받았다고?”

윤리사가 내 말을 끊으며 물었다.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서 그녀를 노려봤다. 내 시선에 윤리사가 눈웃음을 지었다.

내 얼굴이 저렇게 재수 없어 보일 줄은 몰랐다.

어쨌거나 그녀는 말했다.

“윤리사, 사실 궁금하지? 저세상이 도대체 왜 그랬는지.”

“아니, 하나도 안 궁금해.”

“거짓말.”

윤리사가 싱긋 웃었다.

“궁금하잖아?”

도대체 왜, 무슨 이유로 우리 가족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 건지.

“왜, 너를 ‘주인공’이라고 불렀는지 궁금하잖아.”

“안 궁금하다고!”

나는 빼액 소리 질렀다.

“네가 뭔데 나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이 굴어? 네가 뭔데!”

“나는 너니까.”

윤리사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당연히 알지. 십 년이 넘는 세월동안 너와 함께 모든 걸 봐 왔으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어쨌든 잘 생각해 봐. 저세상이 네게 했던 말의 의미를.”

저세상이 내게 했던 말의 의미?

수십 번도 더 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에 대한 원망만 커졌다.

“잠깐, 너 몸이 왜 그래?”

“아, 이거?”

윤리사가 투명해지는 몸을 살피곤 활짝 웃었다.

“사라지는 거야. 네 죽음을 내가 대신 막아 줬거든.”

“뭐……?”

“네가 꿈이라고 생각했던 건 모두 현실이었어. 정확히는, 네 몸만 말이야.”

“뭐?”

“그러니까 네가 보고 들은 건 모두 거짓이었지만, 네 몸은 살아 있는 그대로였다고.”

나는 멍하니 입술을 달싹였다.

“거짓말.”

“거짓말 아니야.”

윤리사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환상과 환각이 어우러진 공간이라 알아차리기 쉽지 않았을 거야. 내가 나설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 안 그럼 너 정말 죽었어.”

윤리사가 그렇게 말하고는 웃었다.

“고마워, 윤리사.”

“뭐……?”

느닷없는 감사 인사에 나는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그런 나를 보며 윤리사가 웃었다.

***

‘윤리사’는 결핍이 많은 아이였다.

태어나자마자 어미의 젖 한 번 못 물어보고 한국에 보내졌던 아이다.

그렇게 윤사해와 살게 되었지만, 그는 아이의 존재를 외면했다.

다행히도 윤리사에게는 두 오빠가 있었다.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정 많은 오빠들이 말이다.

그러나 아이는 언제나 끊임없이 사랑을 바랐다.

바로, 윤사해한테서.

아이의 결핍은 그렇게 시작되어 끝도 없이 불어났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기 위해 친구를 때리며 일부러 못되게 굴었다. 혼이라도 났으면 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받은 건 한심하다는 듯이 자신을 쳐다보는 매몰찬 시선뿐.

아이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리오 오빠, 리타 오빠.”

“응?”

“아빠는 왜 리사를 싫어해?”

“리사……!”

그래도 괜찮았다.

아낌없이 자신을 사랑해 주는 오빠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 정말 괜찮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이는 하나뿐인 아버지의 사랑을 원했고.

그렇게 들어서게 됐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던전에.

던전에 들어가면 각성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각성자가 되면 윤사해가 사랑을 줄지도 모른다.

아이는 그런 생각 하나만으로 던전에 들어갔다.

어리석게도.

“으아앙……!”

낯선 환경 속에서 아이는 울었다.

던전에는 무서운 괴물들이 산다고 하던데, 그 괴물들이 나를 먹으려고 들면 어떻게 하지?

아이는 온갖 생각에 벌벌 떨었다.

“리오 오빠! 리타 오빠!”

애타게 불러도 들려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아빠아!”

윤사해도 마찬가지.

아이는 코를 훌쩍이며 자리에 주저 앉아 버렸다. 누군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은 건 그때였다.

윤리사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빠?”

윤사해가 아니었다.

“안녕하십니까, 리사 양.”

“어……?”

윤리사가 두 눈을 끔벅였다.

분명 어디에서 본 적이 있는 사람 같은데, 누군지 모르겠다.

“어, 그러니까, 그게.”

윤리사가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괜찮습니다. 많이 당황스러우실 만도 하지요.”

남자가 싱긋 웃었다.

윤리사는 입술을 우물거리며 남자에게 물었다.

“리사 구해 주러 온 거예요?”

“죄송하지만 그건 아니랍니다.”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괴롭다는 듯이, 아주 서글프게 말이다.

“리사 양, 지금부터 저는 당신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보여 줄 겁니다.”

“뭐, 뭘 보여 줄 건데요?”

“미래지요.”

“미래요?”

“네, 리사 양과 리사 양의 가족 분께 일어날 미래.”

남자가 아이의 말간 얼굴을 두 눈에 담고선 미소를 그렸다.

“저는 그것을 보여 줄 겁니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윤리사의 이마를 가볍게 건드렸다.

아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족의 모습이 눈앞에서 펼쳐졌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가족은 계속해서 싸웠고 언성을 높였다. 시간이 암만 흘러도 그들은 계속해서 그랬다.

종국에는…….

“거짓말이죠?”

아이가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는 물었다.

“지금 리사한테 장난치는 거죠? 리사가 함부로 던전에 들어왔다고, 못된 짓 했다고 장난치는 거죠?”

남자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를 향해 윤리사가 날선 목소리를 내뱉었다.

“아빠가 왜 죽어요? 리타 오빠는 또 왜 죽는데요? 리오 오빠는 왜 그렇게 변하는 거예요? 왜요?”

여전히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대신, 그는 한쪽 무릎을 굽히고선 아이와 눈을 맞췄다. 그러고는 다정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리사 양, 이 미래를 바꿀 방법은 하나뿐이랍니다.”

“뭔데요? 뭐든 할래요. 리사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요.”

윤리사가 다급하게 말했다.

간절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에 남자가 애틋하게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리사 양의 몸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 주는 겁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