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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307)화 (307/500)

307화. 혹독한 겨울맞이(9)

나를 붙잡는 단단한 팔에 나는 슬쩍 눈을 떴다.

“……아빠?”

윤사해였다.

윤사해가 나를 붙잡은 거다.

“아빠!”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나는 윤사해를 꼭 끌어안았다.

“아빠…! 아빠아……!”

“그래, 리사. 아빠란다. 이제 다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윤사해가 나를 달랬다.

나는 어린아이라도 된 것처럼 그의 품에 꼭 안겨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꼭 일곱 살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나는 윤사해의 옷을 끌어 잡으며 울먹였다.

“세상이 오빠, 흑. 세상이 오빠를 만났어.”

“뭐……?”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무슨 소리니, 리사? 세상이를 만났다니? 어디에서!”

묻는 목소리에 나는 답하지 못했다. 대신 횡설수설하며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런데 떠나 버렸어. 미안하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또 나를, 우리를 떠나 버렸어.”

“리사.”

나는 흐느끼며 울음을 토했다.

“그리고 신우가…! 우신우가……!”

저세상의 말을 쫓아 로저 에스테라의 성당에 찾아왔더니 우신우가 죽어 있었다.

그의 하나뿐인 가족의 품 안에서 두 눈을 꼭 감은 채로 차갑게 식어버렸다.

내가 어떻게 할 새도 없이.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물었다.

“신우 어떻게 해? 아빠, 어떻게 하면 좋지?”

“리사.”

윤사해가 내 뺨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아빠가 다 해결해 주마.”

나는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성운이가 저 안에 있어. 신우랑 같이.”

“그래.”

“구해 줘, 아빠.”

우성운도 우신우도.

두 사람 모두 내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와 줘.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 말을 삼켰다. 하지만 윤사해는 내가 삼킨 말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듯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다 구해 주마.”

나는 입술을 꾹 닫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나의 머리 위로 무언가 떨어졌다.

“아빠?”

윤사해의 두루마기 코트였다.

그가 항상 이매망량의 주인으로서 움직일 때 걸치고 다니는 것.

그것이 바로 내 머리 위에 떨어져 있었다.

“가지고 있으렴. 너를 보호해 줄 테니.”

“그럼, 아빠는!”

“걱정하지 마렴.”

윤사해가 싱긋 웃으며.

“다치지 않으마.”

다정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멀쩡히 리사 앞에 돌아올게.”

힘있는 목소리.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윤사해는 자신의 코트로 나를 꼭꼭 싸매고는 걸음을 옮겼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형제님, 어디를 가려고 합니까?”

“로저 에스테라.”

가호(加護)의 주인이 나타나지만 않았으면 그랬을 거다.

윤사해의 앞에 나타난 로저 에스테라가 웃는 낯으로 말했다.

“이미 늦었습니다.”

“뭐가 늦었다는 건지 모르겠군.”

“어린 자매님의 바람을 들어주기에도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막기에도 모두 늦었다는 겁니다.”

그 말에 윤사해가 미간을 좁혔다.

“저 폭발의 정체를 알고 있나 보군.”

“당연하지요.”

로저 에스테라가 키득거렸다.

“제가 그토록 바라던 순간의 전조인데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뭐?”

윤사해가 얼굴을 찌푸렸다. 로저 에스테라는 그를 향해 선심쓰듯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형제님. 저는 말입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미래를 봐 왔답니다. 신께서 보여 주셨지요.”

“네가 미지 영역의 거주자와 계약하고 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는데.”

“미지 영역의 거주자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로저 에스테라가 희죽거렸다.

“제가 말하는 건 신.”

로저 에스테라는 두 팔을 하늘로 향해 펼치며 말했다.

“한낱 공간에 갇혀 있는 작자들이 아닌, 이름 그대로의 신을 말하는 거랍니다.”

윤사해가 헛웃음을 흘렸다.

“자네가 광신도란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정말 미쳐 있을 줄은 몰랐군.”

“하하, 마음대로 생각하십시오.”

로저 에스테라가 키득거렸다.

“저는 신의 뜻에 따라 교황의 사랑을 독차지했지요. 교황은 거주자에 대해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존재이니 말입니다.”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 본다만.”

“그럴 겁니다.”

로저 에스테라가 눈웃음을 지었다.

“교황청 소속의 신부가 아닌 이상 알 수 없는 사실이니까요.”

교황청 소속의 신부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알 수 있는 사실이라면서 로저 에스테라는 뿌듯하게 말했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겁니다. 저의 신께서 바라는 미래를 그리기 위해 해야 할 일을!”

로저 에스테라의 입에 광기 어린 미소가 걸렸다. 흠칫 몸이 떨릴 정도로 소름이 끼치는 미소였다.

그는 붉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거주자는 후손을 끔찍하게도 사랑하죠. 거주자와 계약 중인 형제님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 거주자의 후손이 지독한 고통을 겪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윤사해가 미간을 좁혔다.

로저 에스테라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분노할 겁니다. 그 옛날, 청(淸)이 제 후손을 괴롭힌 아이에게 저주를 내린 것처럼 말이지요!”

그러면서 로저 에스테라는 말했다.

“저의 신께서 원하는 게 바로 그거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실이 지금 이뤄지려고 하고 있지요!”

우성운과 우신우.

“그 두 사람이 거주자의 후손이었다는 거야?”

“오, 자매님.”

로저 에스테라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그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청(淸) 가문에 비할 바가 못 되는 미약한 피를 타고났지만 두 사람 역시 거주자의 후손이었답니다.”

솔로몬.

“성운 군과 신우 군은 이 세상을 가장 큰 혼란에 빠뜨렸다는 악마들을 모두 봉인한, 위대한 거주자의 후손이었지 뭡니까?”

로저 에스테라가 키득거렸다.

“교황께서 알려 주지 않았다면 몰랐을 겁니다. 이 땅에 솔로몬의 후손들이 있다는 것을요.”

아주 운이 좋았다면서 로저 에스테라는 말했다.

“그러니 방해는 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저의 신께서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압니까?”

“헛소리를.”

윤사해가 로저 에스테라를 향해 창을 치켜들었다.

“할 말 다 했으면 이제 그만 죽도록 해라.”

“오, 형제님.”

로저 에스테라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며 미소를 그렸다.

“참으로 오만하십니다.”

“그걸 이제 알았나?”

윤사해가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원래 오만했다.”

그 말과 함께 윤사해가 로저 에스테라를 향해 땅을 박찼다.

“아빠!”

“리사! 너는 피해 있으렴!”

나는 후다닥 자리를 피했다.

윤사해의 발목을 잡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로저 에스테라.

『각성, 그 후』에서 그는 그 누구보다 자애롭고 자비심 넘치는 사람으로 나왔었지만.

‘지금은 아니야.’

눈앞의 남자는 180도 돌아 버린 미치광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우성운과 우신우가 거주자의 후손인 것을 알고 의도적으로 두 사람에 접근한 그였다.

‘그리고.’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거주자는 후손을 끔찍하게도 사랑하죠. 거주자와 계약 중인 형제님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 거주자의 후손이 지독한 고통을 겪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우성운과 우신우가 그동안 겪은 불행의 원인.

그게 바로 로저 에스테라일 거다.

‘우성운과 우신우의 부모님들이 서로를 죽인 것도, 두 사람이 몸을 담았던 무영 마을울 불태운 것도.’

그리고.

‘우신우를 죽인 것도.’

다 로저 에스테라란 말이야?

두 눈이 떨렸다. 입술도 파르르 떨렸다. 나는 도망치다 말고 뒤를 돌아보며 버럭 소리 질렀다.

“로저 에스테라!”

윤사해와 공방을 펼치고 있던 미친 남자가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를 향해 저주했다.

“지옥에나 떨어져 버려.”

***

“하하!”

로저 에스테라가 윤리사의 말에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지옥에나 떨어져 버리라니! 그 얼마나 달콤한 말인가!

하지만 그와는 달리 윤사해의 표정은 한없이 굳어 있었다.

“형제님, 왜 그런 얼굴입니까?”

로저 에스테라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윤사해에게 말을 걸었다.

“형제님의 따님께서 제 죽음을 저리 바라고 계시는데 들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입 닥쳐.”

“후후.”

로저 에스테라가 낮게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

“형제님, 어차피 늦으신 거 좋은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지요.”

“듣고 싶지 않다만.”

후욱!

갑작스럽게 일어난 그림자가 로저 에스테라를 덮쳤다. 로저 에스테라는 그것을 가볍게 피하고는 입을 열었다.

“제 신께서는 형제님에 대한 것도 많이 보여 주셨었지요.”

윤사해가 미간을 좁혔다. 로저 에스테라는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형제님뿐만이 아닙니다.”

윤리오와 윤리타, 그리고 윤리사.

“형제님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아끼는 어린 형제님들과 자매님에 대해서도 많이 보여 줬었지요. 궁금하지 않습니까?”

제가 무엇을 봤는지요.

덧붙여 묻는 목소리에 윤사해가 까드득 이를 갈았다.

“궁금하지 않다.”

그러니 그 입 닥쳐라.

그 말을 내뱉으려는 순간이었다.

“제가 본 건 죽음이었습니다.”

윤사해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로저 에스테라는 그 얼굴을 보고는 씨익 웃었다.

“형제님과 형제님이 아끼는 자녀 분들의 죽음.”

저의 신께서는 그 광경을 보여 주셨답니다.

나긋하게 말하는 목소리에 윤사해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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