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화. 혹독한 겨울맞이(8)
저세상이 사라졌다.
또, 다시 한 번 더.
‘왜?’
두 손을 꽉 주먹 쥐었다.
저세상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왜 집을 나간 건지, 그 무기는 뭔지.
그리고.
‘어떻게 각성을 한 거냐고.’
나는 두 눈 역시 질끈 감았다가 작게 숨을 내쉬며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우성운과 우신우를 찾아.’
‘뭐?’
‘두 사람은 로저 에스테라의 성당에 있어. 너라면 찾을 수 있을 거야. 구할 수도 있을 거고.’
그 말을 듣고 저세상에게 되지도 않는 억지를 부렸지마는.
‘가자.’
저세상이 게이트가 터진 이 상황에서 그런 이야기를 꺼낸 건 분명 이유가 있을 터.
나는 몸을 일으켰다.
“으윽…….”
때마침 도윤이가 눈을 떴다.
“도윤아.”
“리사야!”
도윤이가 다급하게 물었다.
“괜찮아? 다친 곳은?!”
저세상이랑 똑같은 걸 묻네.
‘너 어떻게……!’
‘괜찮아?’
‘뭐?’
‘다친 곳은.’
저세상은 그렇게 묻고는 내 뺨을 쓸었었다. 뺨에 닿았던 온기는 이미 차갑게 식은 지 오래.
나는 씁쓸하게 미소를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없어. 그보다 도윤아.”
나는 도윤이에게 다가가서는 그와 눈을 맞췄다.
“단아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가.”
“리사, 너는?”
“나도 금방 갈 거야.”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우리 집에서 만나자.”
그러고는 몸을 돌렸다.
“잠깐만, 리사야! 윤리사!”
도윤이가 황급히 나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윤리사!”
나는 이미 친구들한테서 벗어나 로저 에스테라의 성당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
로저 에스테라의 성당은 무척이나 평화로웠다.
겉보기에는 그렇게 보였다는 거다.
4개 길드 중 한 곳인 가호(加護).
그 주인인 로저 에스테라의 보금자리는 주변에서 게이트가 터졌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그 고요함이 주는 평화가 꺼림칙하게 느껴져 나는 미간을 좁혔다.
‘이곳에 우성운과 우신우가 있단 말이지.’
두 사람이 이곳에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애초에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으로 본 게 있었다.
어떻게 된 이유인지, 이후 두 사람을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으로 전혀 볼 수가 없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나는 크게 숨을 내쉰 후에 성당을 둘러봤다.
우성운과 우신우의 이름을 부르며 두 사람을 찾아 볼까 했지만 그만뒀다.
그렇게 이름을 불러 찾을 수 있었다면 진작 찾을 수 있었을 거다.
나는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을 이용해 류화홍을 찾았다.
그가 가지고 있는 이동 스킬을 이용해 성당 구석구석을 찾아볼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으아아아악!”
갑작스럽게 들려온 비명 소리에 나는 스킬을 사용하는 것을 그만뒀다.
처절한 목소리는 내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의 것이었다.
“우성운!”
나는 다급하게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뛰어갔다.
“우성운! 여기 있어?!”
낡은 성당의 문을 열어젖혔다.
성당 안에는 우성운이 있었다. 저세상만큼이나 애타게 찾아다니고 있던 나의 친구가 엉망진창인 꼴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우성운…….”
그런데 성당 안에는 우성운만 있던 게 아니었다.
우성운이 누군가를 꼭 끌어안고는 엉엉 울고 있었다.
그 누군가란.
“우신우?”
우신우였다.
우성운의 사촌 형제, 그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
그런 그가 심장 부근에 검이 박힌 채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바닥을 적시고 있는 피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게…….”
나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두 사람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양다리에 무거운 추가 매달려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다리를 질질 끌다시피 걷다 곧 뜀박질을 시작했다.
“우성운! 우신우!”
두 사람에게는 내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다시 한 번 더 소리 질렀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두 사람을 향해 뛰던 양다리도 멈춰 버렸다.
〖아아, 아가야. 나의 아가야.〗
소름끼치도록 고운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슬프니? 슬프냐?〗
목소리는 사방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에 우성운이 우신우의 뺨에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
“주, 죽었어. 다 죽었어. 모두가 다 빼앗아 버렸어.”
우성운에게는 내가 보이지 않는 듯 했다.
그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신우를 뺏으려는 사람들은 모두 내가 죽였는데, 그런데 결국 모두가 신우를 뺏어가 버렸어. 내 유일한 가족을.”
우성운이 이를 악 물었다.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해? 왜 다들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아가야. 나의 아가야.〗
“다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 나한테서 신우를 뺏어간 만큼 모두가 불행해졌으면 죽겠어.”
〖그렇게 해 줄까?〗
고저 없는 목소리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왜인지는 모른다. 분명 들려오는 목소리는 구슬같이 맑았다.
하지만 왜일까?
〖너의 바람대로 만들어 줄까?〗
저 목소리에 분노가 실린 것 같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말하렴, 아가. 네가 원한다면 내 모든 것을 걸고 그렇게 만들어 주도록 하마.〗
목소리가 형태를 이뤘다.
〖너는 나의 아이. 내 마지막 남은 후손.〗
나타난 것은 남자였다.
남자가 맞는지는 모른다. 확실한 건 그는 사람이 아니란 것.
〖너를 불행하게 만든 것을 내 모든 걸 걸고 부숴 주도록 하마. 그것이 이 세상이라고 할지라도.〗
미지 영역의 거주자가 우성운에게 손을 내밀었다.
우신우를 끌어안고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던 그가 멍하니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 순간 본능적으로 느꼈다.
우성운의 입을 막아야한다고, 있는 힘껏 그를 불러야한다고.
나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쥐어짜냈다. 동시에 움직여지지 않는 두 다리에 힘을 줬다.
“우… 성운……!”
목소리가 겨우 나왔다. 다리에 힘도 들어갔다. 나는 그대로 우성운을 향해 달려가며 그를 불렀다.
“우성운, 안 돼! 멈춰!”
우성운이 흠칫 몸을 떨었다.
〖너는…….〗
우성운에게 말을 걸던 미지 영역의 거주자가 나를 보고는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그는 우성운과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방인이었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그와 우성운이 무척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돌리고는 우성운을 향해 소리 질렀다.
“네가 그동안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모르겠지만 멈춰, 우성운.”
“유, 윤리사.”
우성운이 파르르 입술을 떨었다.
“신우가…….”
“안 죽었어.”
가까이 다가오니 보였다.
우신우가 차갑게 식어 있는 것이.
정말로 죽은 거다.
우신우가.
우성운의 사촌 형제가.
나의 친구가.
차갑게 식어 세상을 떠나 버렸다.
우성운이 우신우를 꼭 끌어안고는 흐느꼈다.
“정신을 차리니 죽어 있었어. 신우가, 내 유일한 가족이.”
죽어 있었어.
우성운은 그 말만을 내뱉으며 흐느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이 세상이 멸망해 버렸으면 좋겠어. 나를, 신우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도 모두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
“성운아.”
“그렇게 해 줘.”
그 말은 나를 향해 내뱉은 것이 아니었다.
〖그래, 나의 아가야.〗
조용히 서 있던 미지 영역의 거주자를 향해 내뱉은 말이었다.
거주자의 두 눈에서 피눈물이 뚝뚝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 주마. 너의 바람을 들어주도록 하마. 네가 당한 것만큼 이 세상의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어 주도록 하마.〗
“안 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 터.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막아야 하는 거지?
상대는 미지 영역의 거주자다.
‘그래, 미지 영역의 거주자!’
나는 이를 악 물고는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주위로 솟구쳐 오르고 있던 검은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이야.〗
“미지 영역의 거주자는 인간을 해칠 수 없어.”
그랬다.
미지 영역의 거주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을 해칠 수 없었다.
내 말에 거주자가 미소를 그렸다.
〖하지만 나는 내 마지막 후손을 위해서라면 뭐든 해칠 수 있단다. 세상이든, 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이든.〗
거주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몸이 붕 떠올랐다.
〖그렇게 하여 내가 소멸하게 된다고 할지라도 나는 내 마지막 후손을 위해 뭐든 할 수 있어.〗
거주자의 몸에서 흉흉한 기운이 다시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리사!”
우성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그를 쳐다봤다.
거주자가 일으킨 흉포한 기운에 우성운의 몸이 반쯤 먹혀 있었다.
“우성운……!”
우성운이 파르르 입술을 떨다 애써 미소를 그리며 내게 말했다.
“미안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우성운이 거주자의 기운에 완전히 먹혀 버렸다.
“우성운!”
나는 황급히 몸을 일으켜 우성운을 향해 달려갔다.
콰앙-!
하지만 갑작스럽게 일어난 폭발에 얼마 가지 못하고 밖으로 튕겨나가고 말았다.
붕 떠진 몸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왜?’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그럴 리가 없지만 차라리 꿈을 꾸고 있었으면 했다.
그만큼 오늘 일어난 모든 일이 비현실적이라서.
하늘 높이 뜬 몸이 힘없이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부딪친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고.
“리사!”
누군가 나를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