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화. 혹독한 겨울맞이(7)
“안 돼!”
생각할 겨를 따위 없이 무작정 달려 나갔다.
“리사!”
도윤이가 나를 불렀지만 나는 이미 드래곤의 앞이었다.
나는 윤사해에게 곧장 <[S, 숙련 불가] 너는 많이 좋고 나는 그냥 좋고>를 적용하여 사용 가능하게 된 스킬로 드래곤을 공격했다.
드래곤을 막으려면 <[S, 숙련 불가] 너는 많이 좋고 나는 그냥 좋고>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키야아아악!
솟구쳐 오른 그림자에 드래곤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단아를 붙잡았다.
“달려!”
단아를 도윤이에게 넘긴 후 소리 질렀다.
드래곤이 물러났다고 하나 저 몬스터는 먹잇감을 포기하지 않을 터.
내 말에 도윤이가 단아의 손을 잡고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나 역시 도망쳤다.
-키에엑!
단아를 놓쳐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드래곤이 비명을 내질렀다.
곧 날개를 활짝 펼친 것이 우리를 쫓아왔다. 나는 윤사해의 <[S, 숙련 불가] 부리는 영(影)>을 사용해 드래곤의 앞을 막아섰다.
“리사야!”
“윤리사!”
도윤이와 단아가 비명을 질렀다.
“괜찮으니까 계속 도망쳐!”
……라고 내가 소리 질렀지만.
“싫어!”
애들이 도망칠 리가 없었다.
화르륵-!
도윤이의 불꽃이 그림자와 어우러져 드래곤을 위협했고.
“이 빌어먹을 도마뱀아!”
단아가 주먹을 꽉 쥐고는 바닥을 부쉈다.
콰광!
솟구쳐 오르며 여기저기 튄 파편이 드래곤을 맞췄다.
-키야아아악!
드래곤이 분노 어린 목소리를 내질렀다.
“어떻게 하지? 엄청 화난 것 같은데.”
도윤이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나는 비딱하게 웃었다.
“어떻게 하기는 어떻게 해.”
스스스!
나는 그림자를 움직였다. 드래곤의 온몸을 결박했다.
윤사해의 <[S, 숙련 불가] 부리는 영(影)>을 옛날에 사용해 본 적이 있어 다행이었다.
처음 사용하는 거라면 이렇게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없었을 테니까.
-키에에엑!
드래곤의 입에서 침이 뚝뚝 흘러내렸다.
먹잇감을 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게 많이 분한 모양이었다.
자, 이제 어떻게 한담?
이대로 주춤거리며 물러나다 도망칠까? 아님, 몬스터를 직접 쓰러뜨릴까?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면 쓰러뜨리는 게 좋아.’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드래곤의 약점은 역린.
목 안쪽에 있는 독특한 색의 비늘을 부수는 순간 드래곤은 모든 힘을 잃고 말았다.
문제라면 드래곤이 역린을 지키는데 필사적이라는 것.
‘그것 때문에 윤사해도 지금 애를 먹고 있는 것 같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인지의 눈으로 펼쳐진 창에서 윤사해가 드래곤을 무찌르는 게 보였다.
‘됐다!’
내가 윤사해에게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스킬을 사용하면서 그가 큰 힘을 얻은 모양이었다.
그렇다면야.
나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리사야?”
“윤리사?”
부르는 목소리에 나는 답했다.
“이대로 도망치자.”
뒤로 물러가던 나는 냅다 드래곤에게 등을 보이며 도망쳤다. 도윤이와 단아도 함께였다.
“어디로 도망쳐?!”
“당연히 우리 집!”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 집만큼 안전한 곳도 없었다.
하지만.
-키야아아악!
“윽!”
분명 온몸을 묶어 놓았을 드래곤이 앞발을 이용해 나를 바닥에 쓰러뜨리고 말았다.
“리사야!”
“윤리사!”
도윤이와 단아가 빼액 소리 질렀다. 친구들이 드래곤을 향해 공격했지만 역부족.
“으악!”
결국 둘 다 드래곤이 휘두른 앞발에 그대로 맞아 넉다운이 되고 말았다.
“도윤아! 단아야!”
힘없이 축 늘어진 것이 아무래도 기절한 것 같았다.
벽에 머리를 부딪쳤으니 당연했다.
나는 이를 악 물고는 드래곤을 노려봤다. 드래곤이 나를 덮칠 때, 쓰러지면서 바닥에 이마를 박은 터라 모든 스킬의 사용이 해제됐다.
“이 빌어먹을 도마뱀 새끼가!”
까드득,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아니, 하나 있기는 했다.
나는 주머니를 뒤져 스프레이 하나를 꺼냈다.
항상 구비하고 다니는 호신용 아이템이었다.
윤사해나 윤리오, 윤리타가 억지로 가지고 다니게 하던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나는 곧장 드래곤의 눈을 향해 스프레이를 뿌렸다.
치이익!
후춧가루가 눈에 들어가자 드래곤이 발광했다.
-캬아아악!
이때다!
나는 내 등을 짓누르고 있던 앞발이 사라지자마자 엉금엉금 기어 친구들에게 다가갔다.
“도윤아, 단아야! 정신 차려봐!”
친구들의 이마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소매를 뜯어 지혈을 시작했다.
이 와중에 드래곤이 발광하던 것을 멈춰 버렸다.
-크르르르!
드래곤의 성난 목소리와 함께 그것의 앞발이 다시 나를 짓눌렀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크… 윽……!”
드래곤이 내 가슴팍을 누르면서 고개를 기울였다.
-키에에……!
드래곤의 입에서 떨어진 침이 내 뺨에 묻었다.
끔찍했다.
다시 한번 더 드래곤의 눈을 향해 스프레이를 뿌려 볼까 했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 빌어먹을……!”
숨쉬기가 답답해졌다.
나는 드래곤의 앞발을 주먹으로도 때려보고 꼬집어 보기도 했다. 당연히 드래곤에게 전혀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것을 보며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분해하는 내가 웃긴다는 듯, 드래곤이 웃었다. 망할 몬스터의 입꼬리가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가있는 것처럼 보였다.
곧, 그것의 아가리가 벌어졌고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빠!’
윤사해를 간절히 떠올리는 순간.
콰과광-!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내 가슴팍을 짓누르고 있던 앞발이 사라졌다.
-키야아아악!
드래곤이 비명을 질렀다.
나는 잔기침을 토해내며 몸을 일으켰다.
“아빠……?”
윤사해가 온 건가 했지만 아니었다.
나는 두 눈에 담기는 뒷모습에 입술을 달싹였다.
“저세상?”
남자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그제야 알아차렸다. 저세상의 어깨가 참 넓다는 것을.
나는 파르르 입술을 떨다가 소리 질렀다.
“저세상, 너!”
“잔소리는 나중에 들을게.”
저세상이 그렇게 말하고는 땅을 박찼다. 그의 손에 사슬이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
저건 『각성, 그 후』에서 저세상이 즐겨 사용하던 무기였다.
그뿐이랴?
저세상은 도저히 비각성자라고 생각할 수 없을 몸놀림으로 드래곤을 농락하기 시작했다.
-키아아악!
저세상의 사슬에 눈을 찔린 드래곤이 날뛰기 시작했다. 저세상은 그 흉악한 몬스터를 참 쉽게 제압했다.
-키에에엑!
드래곤이 아가리를 크게 벌렸다. 브레스를 쏘려는 거다.
하지만 저세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몬스터의 입에 사슬을 찔러 넣었다.
-키아아악!
몬스터가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얼마 있지 않아 드래곤이 힘없이 쓰러졌다.
저세상이 몬스터를 물리친 거다.
저세상은 작게 한숨을 내쉰 후 내게 다가왔다.
“너 어떻게……!”
“괜찮아?”
“뭐?”
“다친 곳은.”
나는 멍하니 두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없어.”
“거짓말.”
저세상이 손을 들어 내 뺨을 살짝 문질렀다.
“다쳤잖아.”
그는 한쪽 무릎을 살짝 꿇은 채 나와 눈을 맞추고 있었다. 나는 파르르 입술을 떨다 그에게 물었다.
“나한테 할 말이 그것뿐이야?”
저세상이 입술을 꾹 닫았다가 곧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미안해.”
그 말에 감정이 솟구쳤다.
“뭐가 미안한데?!”
저세상은 말이 없었다.
“아빠랑 오빠들이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나도!”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분노어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나도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냐고! 뒤늦게 사춘기가 왔다고 해도 그렇지, 가출을 하면 어떻게 해!”
저세상이 파르르 입술을 떨다 애달프게 미소를 그렸다.
“미안해.”
그러고는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려고?!”
나도 모르게 그를 붙잡았다.
저세상이 멈칫하다가 자신을 붙잡은 내 손을 억지로 떼어냈다.
“저세상!”
“우성운과 우신우를 찾아.”
“뭐?”
“두 사람은 로저 에스테라의 성당에 있어. 너라면 찾을 수 있을 거야. 구할 수도 있을 거고.”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멍하니 두 눈을 깜빡이다가 그에게 물었다.
“너는?”
저세상이 입을 닫았다.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어린아이처럼 소리 질렀다.
“네가 구해도 되잖아! 왜 나한테 맡겨?”
“윤리사.”
“아니면 같이 가자!”
진심이 터져 나왔다.
나는 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이 상황에서 나 혼자 어떻게 로저 에스테라를 찾아가? 어떻게 그 자식의 성당을 찾아 가냐고! 찾아가서는? 우성운과 우신우를 또 어떻게 구해내라는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너랑 또 헤어지는 거 싫어!”
저세상이 다시 나를 떠나는 걸, 우리 가족을 떠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 물을게. 그러니까 가지 마. 내 곁에 있어.”
나는 다시 한 번 더 저세상을 붙잡았다.
저세상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미안해.”
사과를 내뱉으며.
“정말 미안해.”
그를 붙잡고 있는 내 손을 다시 한 번 더 떼어내 버렸다.
매몰차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