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화. 혹독한 겨울맞이(6)
비나리 고등학교에서 벗어나는 일은 그렇게 순조롭지가 않았다.
곳곳에 널려 있는 시체들로 인해 몇 번이고 구역질이 올라왔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꾹 참으며 최대한 빠르게 다리를 움직였다.
-키에에엑!
드래곤이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까이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온몸을 절로 오싹하게 만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돋은 느낌이었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느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무, 무서워. 눈 마주쳤다가는 죽을 것 같아.”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단아야.”
도윤이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금 드래곤은 윤사해 길드장님이 상대하고 계시잖아. 우리한테 신경 쓸 여유 따위 없을걸?”
하지만 불행히도 드래곤은 우리한테 신경을 쓰고 말았다.
그러니까 드래곤이 우리를 발견하고 만 것이다.
-키아아아!
드래곤이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펼치며 곧장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으아악!”
“뛰어!”
나는 사이좋게 비명을 지르는 단아와 도윤이의 손을 붙잡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붙잡히면 죽는다!
그런 마음으로 내달릴 때였다.
“리사!”
“아빠!”
윤사해가 타이밍 좋게 드래곤을 막아섰다. 그림자를 피워내 방어벽을 형성한 그가 내게 물었다.
“괜찮니? 다친 곳은?”
“없어!”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눈물을 꾹 참고 씩씩하게 말했다.
“아빠는?”
“아빠도 없단다.”
윤사해가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꼭 끌어안았다.
“무사해서 다행이구나. 정말 다행이야. 아빠는, 우리 리사가…….”
목소리의 끝을 흐리며 윤사해는 몇 번이고 내 뺨을 쓰다듬었다.
나는 그의 손길을 조용히 받아들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서울 전역에 게이트가 열렸단다. 계속해서 몬스터가 쏟아지는 중이고.”
“그런……!”
그래서 구조대가 오지 않았구나?
“리오 오빠랑 리타 오빠는?”
“괜찮단다. 비교적 안전한 곳에 배치해 뒀어.”
“후우, 다행이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나였구나?
“그보다 리사.”
“응?”
“여기서 도망치렴.”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윤사해와 함께 드래곤을 잡을 생각 따위 하지 않았다. 나는 내 주제를 잘 알았다.
여기 있다가는 윤사해의 발목만 잡을 게 분명할 터.
윤사해가 내 대답에 미소를 그리고는 말했다.
“그래, 길을 열어 줄 테니 곧장 나가렴. 알겠니?”
“응!”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윤사해를 꼭 끌어안았다.
“아빠, 조심해야 해. 다치면 안 돼?”
“그래.”
윤사해가 내 등을 토닥거리며 뺨에 짧게 입을 맞췄다.
“우리 딸도 다치지 말렴. 아빠가 금방 지켜주러 갈 테니.”
“응.”
나는 입술을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윤사해가 그런 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고는 입을 열었다.
“너희도 리사 곁에 꼭 붙어 있으렴. 참고로 한태극 의원도 백시준도 모두 무사하니까.”
단아와 도윤이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윤사해는 내 친구들을 향해 퍽 다정하게 굴었다.
“백시진 팀장은 잘 모르겠구나. 하지만 역시 무사할 거다.”
“감사합니다, 윤사해 길드장님.”
도윤이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단아도 진심으로 고맙다는 듯 윤사해를 향해 인사했다.
윤사해는 괜찮다는 듯이 손을 휘휘 저어주고는 말했다.
“그림자를 풀면 곧장 교문을 향해 뛰어가렴. 드래곤은 내가 상대하마.”
“응!”
“네!”
우리는 우렁차게 대답해다.
윤사해가 픽 웃고는 그림자를 풀었다. 드래곤이 크게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브레스(breath).
숨결 만으로도 지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죽일 수 있다는 드래곤의 공격.
“지금!”
윤사해는 그 앞에서도 흔들림 없었다. 그저 우렁차게 외치며 우리가 도망칠 타이밍을 알려줄 뿐.
나는 단아와 도윤이와 함께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문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쿠구궁!
뒤쪽에서 큰 폭발음이 들려왔다.
-키야아아아!
드래곤이 울부짖는 소리도 고막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윤사해의 비명 따위 들리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그는 무사할 거다.
나는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비나리 고등학교의 교문을 향해 달려나갔고.
“됐어! 나왔다고!”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교문 밖으로 나오자마자 검은 구체가 비나리 고등학교를 감쌌다. 나는 그것이 무언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그림자.
윤사해가 내가 친구들과 함께 도망친 것을 확인하고는 그림자로 비나리 고등학교를 에워싸 버린 거다.
“우, 우리 이제 괜찮은 거지? 몬스터랑 만날 일 없는 거지?”
단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마도.”
나는 교복을 털고는 말했다.
“우리 아빠가 그랬잖아. 서울 전역에 게이트가 일어났다고. 언제 어디서 몬스터를 만날지 몰라.”
비나리 고등학교에 있다가 학교 밖으로 도망친 녀석들도 꽤 많을 터.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마. 우리 아빠가 하는 말 들었잖아?”
윤사해는 금방 나를 지켜주러 온다고 말했다.
그 말을 지킬 모양인지, 윤사해가 드래곤을 맹렬하게 몰아붙이는 것이 보였다.
단아와 도윤이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거다.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을 사용하는 중이었으니까.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스킬을 사용하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네.’
하지만 혹시 모를 일인지라, 나는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을 계속 사용하고 있기로 했다.
‘사용할수록 눈이 뻑뻑해지겠지만, 뭐. 괜찮을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친구들에게 말했다.
“우리 집으로 가자. 지금은 우리 집이 제일 안전할 거야.”
학교에서 적당히 떨어져 있기도 하고 말이지.
내 말에 도윤이와 단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그렇게 학교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그냥 사람들이 없는 거라면 좋을 텐데.
“윽…….”
거리 곳곳에 핏자국이 흥건하게 맺혀 있었다.
나는 핏자국 위에 널브러진 것들을 못 본 척 무시하며 최대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내 뒤를 단아와 도윤이가 따랐다.
나는 그렇게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그러는 사이, 윤사해가 창을 들어 드래곤의 목을 찔렀다.
목 부근에 자리한 역린을 노린 모양이었다.
역린.
드래곤의 유일한 약점.
아슬아슬하게 그것을 비켜 간 윤사해의 창이 다시금 휘둘러졌다.
나는 속으로 열심히 기도했다.
‘아빠, 제발!’
제발 다치지 말고 그 빌어먹을 도마뱀을 처리해 줘! 그리고 빨리 나를 지키러 와 줘!
언제 어디서 몬스터가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이라 무서웠다.
도윤이와 단아와는 다르게 겉으로 내색은 하고 있지 않지만 말이다.
그렇게 숨을 죽인 채 집으로 가고 있을 때였다.
-캬르르……!
우리 앞에 몬스터가 나타났다.
골목길 너머로 살짝 모습을 비춘 것은 우리가 체육관에서 만난 몬스터와 같은 거였다.
나는 재빠르게 친구들과 시선을 주고받았다.
“어떻게 하지?”
목소리 죽여 질문하자 단아와 도윤이가 대답했다.
“큰길 쪽으로 돌아가자.”
“안 돼! 이런 상황에서 큰길 쪽은 너무 위험해!”
도윤이의 말대로였다.
주택이 즐비한 이곳에도 몬스터가 나타났는데, 큰길이라고 아닐까?
아마 더하면 더할 거다.
“단아야, 너무 걱정하지 마.”
나는 두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매달린 단아를 안심시켰다.
“우리끼리 잡자.”
“몬스터를?”
“응.”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마리뿐인 것 같아. 그리고 저거, 체육관을 나올 때 본 몬스터잖아? 기억하지?”
이번에는 단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이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을 열었다.
“내가 먼저 나설게.”
“아니.”
그렇게 말한 사람은 단아였다.
“비켜, 백도윤. 내가 저 망할 몬스터를 잡아 버릴 테니까.”
언제 울먹였냐는 듯, 단아의 목소리는 한없이 단호했다. 그렇다고 해도 겁이 나기는 한 모양인지, 벌벌 떨고 있었지만 말이다.
“혼자서 괜찮겠어, 단아야?”
“응, 나만 믿어.”
단아가 씩씩하게 말했다.
“계속 울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
단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땅을 박찼다. 그러면서 주먹 쥔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 모습은 흡사, 두더지 잡기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망치를 높이 들고 금방에라도 두더지를 잡으려 하는 사람.
단아는 그렇게 보였다는 거다.
“저리 꺼져!”
단아가 그렇게 말하며 주먹 쥔 손으로 몬스터의 머리를 내리쳤다.
-캬륵……?!
몬스터가 새된 비명을 내지르면서 그대로 쓰러졌다. 단아가 단숨에 몬스터를 처리한 거다.
“우와, 단아야!”
“잘했어, 단아야!”
나는 도윤이와 함께 펄쩍 뛰며 단아를 향해 달려갔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어때? 나 대단하지? 울고 불며 겁쟁이처럼 굴던 나는 잊어줘!”
쾌활하게 말하는 단아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그 그림자는 단아를 한 번에 집어삼킬 정도로 무척이나 컸다. 곧, 단아도 제 머리 위에 진 그림자를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들었다.
-크르르르.
비나리 고등학교에서 본 것보다는 체구가 작은 드래곤이 단아를 노려보며 침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어… 어어…….”
단아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단아야!”
나는 곧장 단아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때를 맞춰.
-캬아아아!
드래곤이 단아를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