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화. 혹독한 겨울맞이(3)
“으아악!”
단아가 비명을 질렀다.
나는 황급히 단아의 머리를 숙이게 만들고는 주위를 살폈다.
“가, 갑자기 무슨 일이지?”
얼마 지나지 않아 땅울림이 멈췄다. 주변이 거짓말처럼 고요해졌다.
그것이 왜인지 모르게 불길했다.
‘하늘.’
붉게 물든 하늘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았다.
첫 눈을 쏟아 붓느라 먹구름이 가득했던 잿빛 하늘은 지옥에 들어온 것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골똘히 생각하기도 전에.
“리사! 단아야!”
도윤이가 달려왔다.
“괜찮아? 다친 곳은?”
“없어! 도윤이, 너는?”
“나도 없어!”
도윤이가 내 말에 안심하라는 듯이 외쳤다.
“다행이야. 그럼, 일단 교실로.”
돌아가자고 말하기도 전에.
삐이이-!
날카로운 소음이 귀를 울렸다.
“윽! 이게 무슨 소리야?”
나는 황급히 귀를 막았다. 단아도 도윤이도 얼굴을 한껏 찌푸리며 두 손을 들었다.
그때 방송용 스피커에서 선생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학생들에게… 지직! 알립니다! 근처에서 게이트가…… 지지직!
노이즈 낀 목소리가 끊겼다.
나는 멍하니 있다 입술을 달싹이며 친구들에게 물었다.
“지금 게이트라고 했지?”
“응…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분명 그렇게 말했어…….”
도윤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게이트(Gate).
일어나는 시기와 장소를 특정 지을 수 없는 재앙이 비나리 고등학교에 도래하고 말았다.
곧, 째질 듯한 비명이 곳곳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니, 비명이 아니다.
-끼야아아악!
-키에에엑!
몬스터였다.
던전에서만 볼 수 있는 그것들이 길게 울음소리를 냈다.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 아주 즐겁다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꺄아악! 선생님!”
“괜찮아! 창문에서 물러나!”
“선생님들 모두 학생들을 최우선으로 보호하십시오!”
“너희 창가에서 떨어져! 바깥 구경하다가 죽어!”
비나리 고등학교 안에서 학생들과 교직원이 아우성대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황급히 체육관 뒤쪽에서 빠져나왔다. 교실로 돌아가 몬스터들의 위협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비나리 고등학교는 AMO 산하의 공립 고등학교로 온갖 방어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정말 학교 주변에서 게이트가 일어난 거라면 최대한 빠르게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래, 그래야만 했는데.
“……!”
나는 제자리에 멈춰 섰다.
“유, 윤리사.”
“쉿.”
나는 단아를 조용히 시켰다.
도윤이가 우리 교실이 있는 쪽을 흘긋거리고는 말했다.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을 것 같아. 몬스터들이 너무 많아.”
그 말대로 학교 주위에 몬스터들이 우글대고 있었다.
비나리 고등학교에 설치되어 있는 방어 장치 때문에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수가 너무 많았다.
학교를 에워싸고 있는 몬스터들이 마치 바퀴벌레처럼 보였다.
“어떻게 하지?”
“일단 몸을 숨기자.”
내 말에 도윤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상황에서 몸을 숨길 만한 곳이라고는 한 곳밖에 없었다.
체육관.
“문 열려 있겠지?”
“열려 있을 거야.”
우리는 최대한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도 체육관 안에 들어올 때까지 몬스터들을 만나지 못했다.
다만.
-캬륵? 캬르륵?
체육관 안이 문제였다.
“히익……!”
단아가 놀라 비명을 지르려고 했다. 나도 도윤이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단아의 입을 막았다.
“쉿.”
체육관 안에 있는 몬스터들은 눈이 안 보이는 것 같았다. 두더지처럼 생긴 것 같더라니만.
하지만 대체로 시력이 퇴화된 것들은 다른 감각이 발달하기 마련.
우리는 최대한 숨을 죽인 채 창고로 향했다.
‘제발 문이 열려 있기를!’
창고 손잡이를 살짝 돌리자 문이 열렸다.
‘다행이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후다닥 창고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 버렸다.
꼭 잠그는 것도 잊지 않았다.
“후아아!”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나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미친! 갑자기 이게 무슨 난리야? 게이트라니!”
『각성, 그 후』에서 게이트에 관한 묘사가 때때로 등장하기는 했다.
하지만 비나리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게이트가 일어났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없었다.
당연히 읽은 적도 없었고.
“구조대 오겠지?”
“올 거야.”
나는 단아의 걱정을 덜어 줬다.
“몬스터들이 처치될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고 있자.”
혹시 몰라 휴대폰을 켜봤지만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게이트가 일어나면서 통신이 마비된 것이다.
그 와중에 체육관 바깥의 몬스터들은 계속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캬륵? 캬르륵?
-캬르륵!
우리의 냄새를 맡은 듯했다.
문 가까이에서 몬스터들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이대로 갇히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도윤이가 애써 웃으며 말했다.
“곧 구조대가 올 거야! 이렇게 큰 소란이 일어났는데 아무도 안 올까 봐? 그치, 리사야?”
“응? 으응. 걱정하지 마, 단아야. 금방 구조될 거야.”
내 말에 단아가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단아야?!”
“왜 그래!”
나와 도윤이가 당황하여 단아를 살폈다. 하지만 다친 곳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단아가 끅끅 울음을 삼키며 훌쩍거렸다.
“미, 미안해. 내가, 내가 괜히 밖에 나와서, 흑.”
“아니야, 단아야!”
나는 황급히 단아를 달랬다.
“뚝 하자, 뚝. 그리고 이미 지나간 일이잖아? 지금에 집중해야지.”
“리사 말이 맞아, 단아야.”
도윤이가 단아의 눈물을 닦아 주며 미소를 그렸다.
“괜찮으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정 사과하고 싶으면 구조된 후에 해 줘. 알겠지?”
“으응.”
단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새삼스레 도윤이가 많이 어른스러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도윤이는 항상 어른스러웠는데 말이다.
일찍 철이 들었다고 하지?
나와는 딴판이었다.
어쨌거나 우리는 조용히 구조대를 기다렸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꺄아아악!”
“으아악!”
“선생님! 선생님!”
비명 소리뿐이었다.
그 속에서 몬스터의 단말마가 들려오기는 했지만.
“구조대, 아직도 안 왔어.”
구조대가 몬스터를 처치하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오히려 비명 소리가 점점 더 커져가기만 했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지금쯤이면 AMO든 길드든 누구라도 와야 했다.
그런데 아무도 오지 않았다.
방어 장치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는지, 비나리 고등학교의 선생님들이 처절하게 싸우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얘들아.”
나는 바깥의 소음을 애서 무시하며 말했다.
“혹시 모르니 먹을 것을 찾아보자. 창고 안에 뭐라도 있을 거야.”
내 말에 도윤이와 단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게이트는 비나리 고등학교 근처에서만 터진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니 구조대가 오지 않는 거겠지. 아님, 오지 못하고 있는 걸 수도 있다.
어쨌거나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야 했다.
“초코바 찾았어!”
“나는 물! 그런데 이거 마실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챙겨!”
내 말에 단아가 한 눈에 봐도 무거워 보이는 물통을 어깨에 짊어지었다.
“찾은 건 문 앞에 모아 두자.”
“응!”
의외로 창고 안에는 먹을 것이 많았다.
초코바에 과자, 그리고 물.
이 정도면 하루에서 삼 일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화장실이 문제였다.
그리고.
“이거 다 먹을 때까지 구조대가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해?”
그 시간을 넘어가서도 구조되지 못하는 것도 문제였고.
단아의 걱정에 나는 애써 쾌활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구조대 올 거라니까? 단아야, 나 못 믿어?”
“아니, 믿어!”
단아가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기운을 차린 모습에 나는 싱긋 웃었다.
“그리고 설사 구조대가 오지 않는다고 해도 단아네 할아버지가 가만히 계실까?”
한태극 의원이라면 길길이 날뛰면서 당장 구조대를 보내라고 고함을 지를 게 분명했다.
‘그리고 아빠도.’
나는 윤사해를 떠올리며 두 손을 꽉 주먹 쥐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티자.”
“응.”
단아와 도윤이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들과 함께라 다행이었다.
나 혼자였다면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을 통해 윤사해에게 말을 걸면서 제발 좀 빨리 구하러 오라고 벌벌 떨었을 거다.
윤사해에게 내 목소리가 들릴 리가 없는데도 말이지.
어쨌거나 우리는 서로 모여 함께 두려움을 떨쳐냈다.
바깥에서 몬스터들의 울음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이 계속해서 들려왔지만 그것들을 못 들은 척 무시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다른 애들 괜찮겠지?”
단아가 꺼낸 이야기는 무시하지 못했다.
그럴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