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화. 혹독한 겨울맞이(2)
우성운에 이어 저세상이 사라져 버렸다.
‘신우도 있지.’
우신우는 로저 에스테라에 의해 감금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세상이 사라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됐다.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의 스킬이 통하지 않게 됐다는 말이었다.
‘도대체 왜?’
그리고 그건 저세상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우성운한테도 여전히 통하지 않고 있었고.
‘왜?’
초조해졌다.
‘혹시라도 세 사람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거라면, 그래서 스킬이 적용되지 않는 거라면 어떻게 하지?’
나는 입술을 꾹 깨물며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의 정보창을 눈앞에 띄웠다.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
-찾고자 하는 대상의 위치를 파악하여 시야에 투시합니다.
-찾고자 하는 대상의 수적 제한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 단, 적용 대상의 ‘진명(眞名)’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 단, 적용 대상의 구체적인 생김새를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한 글자씩 자세히 살폈다.
‘스킬 정보창에 그런 내용은 없어. 그럼 도대체 왜 스킬이 통하지 않는 거지?’
깨문 입술이 따끔거렸다. 상처가 조금 생긴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더욱 입술을 세게 깨물 뿐이었다.
‘왜…….’
두 손을 꽉 주먹 쥐며.
“도대체 왜 안 보여 주는 거야.”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입 밖으로 내뱉어 버렸다.
“윤리사?”
“아.”
단아가 나를 부르고 나서야 생각을 입 밖으로 내보내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황급히 변명했다.
“그냥 혼잣말이었어.”
“그건 아는데, 윤리사 너 괜찮아? 입술에서 피 나.”
“그래?”
나는 황급히 입술을 닦았다. 손등에 피가 묻어나온 것이 보였다.
“괜찮아?”
“응, 괜찮아.”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정말로 괜찮아.”
단아가 할 말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입술을 달싹이다가 휙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고 보니 최근 단아랑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일이 없었네.’
옆자리 짝꿍인데도 그랬다.
‘도윤이랑도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그런 일이 없었던 것 같아.’
분명 같이 수업을 듣고 함께 점심을 먹고 그랬는데도 말이다.
‘아님,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단아와 도윤이는 나한테 말을 걸었는데…….’
생각이 끊어졌다.
“야, 윤리사!”
단아가 갑작스럽게 나를 불렀기 때문이었다.
“으응?”
“백도윤이 지금 너를 몇 번이나 불렀는지 모르지?”
“불렀다고? 누구를? 나를?”
“그래!”
단아가 와락 얼굴을 구겼다.
“우성운도 우신우도 그리고 저세상도 사라져서 네가 많이 예민해진 거 알아! 그렇지만!”
우당탕! 단아의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 자리에서 일어난 단아가 나를 내려다보며 소리 질렀다.
“나랑 백도윤이 있잖아! 우리도 생각해 주면 안 돼?”
“다, 단아야, 나는 괜찮은데.”
“내가 안 괜찮아!”
빼액 소리를 내지른 단아가 금방에라도 울 것처럼 말했다.
“윤리사, 그거 알아? 나 며칠 전부터 언제나 너보다 일찍 등교하고 있다는 거.”
그럴 리가.
단아는 지각은 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나보다 늦게 교실에 들어왔었다.
‘아니, 그랬던가?’
아무 말도 못하는 내게 단아가 말했다.
“거봐, 모르지? 모르겠지! 너는 학교에 오자마자 멍하니 창밖만 보고 있을 뿐이니까!”
내가 그랬던가?
‘잘 모르겠어.’
나는 물끄러미 창밖을 쳐다봤다.
12월 1일.
날이 밝자마자 내리기 시작한 겨울의 첫눈이 조금씩 약해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왜 그렇게 일찍 등교하게 됐는 줄 알아?!”
나는 다시 시선을 돌려 단아를 쳐다봤다.
“너 때문이야! 너도 사라질까 봐!”
단아는 울고 있었다.
두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말이다.
“단아야, 나는…….”
“우성운도 우신우도 저세상도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어! 어른들이 별일 없을 거라고, 금방 찾을 거라고 몇 번이고 말했는데도 아직도 소식이 없어!”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내 머리 위로 단아의 울음기 섞인 목소리가 떨어졌다.
“나는… 윤리사, 너도 그렇게 될까 봐 너무 무서워. 그래서 너보다 일찍 등교하는 거야…….”
단아가 흐느끼며 말했다.
“네가 학교에 오는 걸 보고 안심하려고. 그런데 너는 하나도 몰랐지? 내가 어떤 마음으로 너를 보고 있었는지.”
몰랐다.
그렇기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단아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 내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윤리사, 너는 진짜 바보야!”
단아가 교실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얘들아, 자리에 앉… 잠깐, 단아야! 이제 곧 수업 시작할 건데 어디 가는 거야……?!”
때마침 교실에 들어오고 있던 역사 선생님인 김우재가 당황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나는 쾅! 닫힌 교실 문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제가 데리고 올게요.”
“리사야?”
“저도요.”
“도윤아, 너까지 간다고?!”
도윤이가 나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그대로 단아를 쫓아 3반을 나가 버렸다.
***
……그때는 몰랐다.
우리가 1학년 3반.
이 교실에 돌아올 일이 없어질 거란 것을.
***
“단아야! 한단아!”
나는 비나리 고등학교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분명 학교를 벗어나지 않았을 텐데 단아를 찾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찾기만 해 봐, 아주……!
‘아주, 뭐?’
나는 입술 안쪽을 꾹 깨물었다.
단아의 말대로 나는 지난 며칠 동안 누구한테도 신경을 쓰지 못했다.
우성운과 우신우, 그리고.
‘저세상.’
사라진 친구들과 가족을 걱정하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고 있는지 몰랐다.
나는 한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한심해.’
저세상이 사라진 걸 알았을 때는 금방 그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윤사해와 그의 길드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을 사용하면 금방 그를 찾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대상을 인지할 수 없습니다.】
우성운도 우신우도 저세상도!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을 사용해 그들을 찾으려고 할 때마다 모두 똑같은 문구가 나타나 내 눈을 막아 버렸다.
어떻게 보면 자만의 대가였다.
바보 같지.
내가 아무리 S급 스킬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속이 빈 깡통 같은 것들뿐이었는데.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아래로 긁어내렸다.
마음 같아서는 얼굴에 상처를 새겨 놓고 싶었다. 고통이 느껴지면 생각이 조금 정리될 것 같았다.
내 옆에 저세상이 있었다면 바보 같다면서 하지 말라고 했겠지.
“리사야, 그러지 마.”
그러나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도윤이었다.
저세상은 어디에도 없었다.
“……도윤아.”
내뱉은 목소리가 떨렸다. 도윤이는 다정하게 내 손을 잡고는 말했다.
“잘못하다가 얼굴이 손톱에 긁히면 어떻게 해? 삼촌이 엄청 속상해하실 거야.”
“그래… 그렇지…….”
나는 한껏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중얼거렸다.
“아빠가 엄청 속상해하겠지.”
일그러뜨린 얼굴 위로 억지로 미소를 보였다.
“안 그래도 저세상 때문에 속이 말이 아닐 텐데 말이야.”
나는 도윤이한테 붙잡힌 손을 빼내고는 사과했다.
“미안해, 도윤아.”
“그 말은 단아한테 해 줘.”
도윤이가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단아 찾았어.”
단아는 체육관 뒤쪽에서 쪼그려 앉아 세상이 떠나가라 울고 있었다.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가 봐, 리사.”
그런 나를 도윤이가 떠밀었다.
나는 비틀거리며 걸음을 떼고선 단아에게 다가갔다. 엉엉 울고 있던 단아가 나를 보고선 울음을 멈췄다.
“단아야.”
단아가 나한테서 휙 고개를 돌리고는 훌쩍였다. 나는 단아의 옆에 조심스럽게 앉고는 사과했다.
“내가 미안해. 너랑 도윤이가 나를 그렇게 걱정하고 있을 줄 몰랐어.”
“그럼 걱정하지 않을 줄 알았어?!”
단아가 나를 쳐다보며 빼액 소리 질렀다. 나는 배시시 웃어 줄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어.”
“알아서 다행이네!”
단아가 불퉁하게 말하고는 두 눈을 세게 비볐다. 그러고는 붉게 달아오른 눈가로 내게 말했다.
“저세상은 돌아올 거야.”
“응.”
“우성운도 우신우도 돌아올 거야.”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너는 사라질 생각하지 말고 나랑 백도윤이랑 함께 있어 줘야 해. 알겠지?”
그 바보들이 돌아오면 잘 왔다고 인사를 해 줄 사람이 필요하니까.
단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응, 알겠어.”
내뱉은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나는 크흠, 헛기침하고는 미소를 그렸다.
“약속할게, 단아야.”
나 역시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그렇게 약속을 하려는 찰나.
쿠구궁-!
땅이 무너질 듯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