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화. 겨울 준비(8)
“여보세요, 신우야?”
-응? 아, 그게 말이야. 로저 신부님과 함께 봉사 활동을 온 곳이 요양 병원이라고 했잖아.
그래서 그런 식으로 부르게 됐다면서 우신우가 말했다.
“아하, 그렇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물었다.
“알겠어. 무슨 일 없지?”
-응, 없지. 걱정하지 마.
“성운이는? 로저 새끼랑 봉사 활동 중이라며? 성운이 소식은 물어봤어? 뭐래?”
우신우는 대답이 없었다.
“신우야?”
-아아, 그게 성운이 소식은 로저 신부님도 모르겠대.
“그런데 계속 얌전히 있을 거래?”
-그건 아니고, 로저 신부님께서도 계속 찾고 있는 중이래.
“거짓말하시네.”
나도 모르게 날선 목소리가 튀어 나갔다.
“어쨌든, 우신우. 몸조심해.”
-리사, 너도.
“나야 언제나 몸조심하고 있지.”
내 말에 우신우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로저 신부님이 나 찾으셔. 나중에 또 연락할게.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말이다.
우신우가 먼저 연락을 하겠다니!
어르신들 앞이라고 너무 친절하게 구는 것 같았다.
어쨌거나 나는 말했다.
“응? 으응, 그래.”
그 말을 끝으로 우신우와의 전화가 끊겼다. 나는 끊긴 전화에 미간을 좁히고는 휴대폰을 바라봤다.
‘뭔가 이상해.’
암만 요양 병원에서 봉사 활동 중이라고 해도 그렇지. 나한테 이렇게 예의를 차릴 게 뭐람?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쾌한 감정에 미간을 좁히는데 도윤이가 물었다.
“신우가 뭐래?”
“별 일 없다지?”
“우신우한테 별 일이 있는 게 더 이상해 보여.”
저세상의 말을 뒤이어 단아가 말했다. 나는 방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응, 딱히 별 일 없는 것 같아.”
“성운이 소식은 들었대?”
“아직.”
내 말에 도윤이가 시무룩한 얼굴을 보였다.
“그래도 곧 성운이 찾을 수 있을 거야. 로저 신부님께서 따로 행방을 찾고 있다는 것 같았어.”
“그 사람이?”
저세상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신우가 그렇게 말하더라고. 로저 신부한테 들은 게 있으니까 그러는 거겠지.”
“흐음.”
저세상은 뭔가 생각하는 듯싶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겠지.”
로저 에스테라는 『각성, 그 후』에서 수상쩍은 인물로 자주 묘사되고는 했지만 선역이었다.
그러니까 저세상에게 여러 가지로 도움을 많이 준 사람이었다는 거다.
“자자, 우리는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 우신우가 나중에 또 연락한다고 했으니까.”
“뭐? 왜?!”
저세상이 짜증 가득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그냥 연락을 하겠다고 하던데?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 아니. 그건 아니지만.”
저세상이 우물쭈물하다 와락 얼굴을 구겼다.
“됐어.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
저세상은 그렇게 말하고는 휙 몸을 돌려 급식실로 가 버렸다.
“뭐야, 저세상 갑자기 왜 저래?”
“글쎄?”
도윤이가 단아의 말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저세상의 뒷모습을 보다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뭐해? 다들 안 와?!”
우리를 재촉하는 저세상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
“흐음.”
로저 에스테라가 전화가 끊긴 휴대폰을 물끄러미 보다가 웃었다.
“신우 군, 친구 분을 정말 잘 두셨군요.”
“으… 으윽…….”
우신우가 앓는 목소리를 토해냈다.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예요……?”
“성운 군을 위해서입니다.”
난데없이 들린 가족의 이름에 우신우가 미간을 좁혔다.
로저 에스테라가 사지가 결박당한 우신우의 앞에 다가와서는 미소를 그렸다.
“성운 군의 행방을 물으셨죠? 성운 군을 돌아오게 만들려면 이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게, 우성운을 돌아오게 만드는 방법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히죽거리는 로저 에스테라의 얼굴에 우신우가 까드득 이를 갈았다.
그는 분명 하교 후, 로저 에스테라와 함께 봉사 활동을 나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뒤통수에 충격이 가해지며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 보니.
‘여기였어.’
우신우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자신이 지금 갇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우성운과 함께 로저 에스테라의 앞에서 고해성사를 하던 그 장소였다.
로저 에스테라는 자신들이 저지르지 않은 죄를 나열하며 채찍질을 하고는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충분히 반항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로저 신부님.”
“네, 신우 군.”
다정하게 대답하는 목소리에 우신우가 험악하게 얼굴을 구기며 물었다.
“로저 신부님의 힘, 알려진 게 전부가 아니죠?”
대외적으로 알려진 로저 에스테라는 한 마디로 정의를 내리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였다.
받은 대로 갚아 주는 것.
그리고 지은 죄만큼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것.
그게 바로 로저 에스테라의 힘이었지만.
‘그게 끝이 아니야.’
분명했다.
우신우의 말에 로저 에스테라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그렸다.
우신우는 그가 보이는 웃음이 마치 자신을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져 으르렁거렸다.
“솔직하게 말해 주세요. 어차피 제가 안다고 해도 어떻게 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지요.”
로저 에스테라가 눈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단 말입니다. 신우 군이 아니라 성운 군이 더 가깝다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
“곧 알게 될 겁니다. 이 세상에 신이 강림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요.”
“신이라니요……?”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우신우는 로저 에스테라가 말하는 ‘신’이 미지 영역의 거주자임을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미지 영역의 거주자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였다.
그들을 부르는 호칭 중에서 ‘신’이란 이름이 있다는 것을 우신우는 진작 알았다.
‘그런데 미지 영역의 거주자가 왜 로저 신부님의 입에서 나오는 거지? 도대체 왜?’
그의 직업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이상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불길해.’
이유를 알 수 없는 불길함이 엄습해 오고 있다는 거였다.
우신우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윤리사한테 알려야 해!’
왜 지금 이 상황에서 윤리사가 떠올랐는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우신우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자신을 구해 주고, 로저 에스테라의 의미심장한 계획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윤리사뿐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윤리사에게 연락을 할 수 있지?’
자신의 휴대폰은 로저 에스테라에게 빼앗겼고, 그는 지금 제 흉내를 내고 있는 중이었다.
더욱이 제 온몸은 쇠사슬로 결박당해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지?’
우신우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상황에서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비릿한 맛 때문인지 불쾌했다.
***
“하하, 시바.”
짜증스럽게 내뱉은 욕설과 함께 손에서 수저가 떨어졌다.
“리사야?”
“윤리사?”
도윤이와 단아가 걱정스럽게 나를 불렀다.
“윤리사, 갑자기 욕은 왜 해?”
저세상도 두 사람과 똑같이 무슨 일이냐는 듯 나를 불렀다.
나는 대답 대신 눈앞에 펼쳐져 있는 푸른 창에 집중했다.
‘이 빌어먹을 로저 새끼가. 뭔가 쎄하다 싶었더니.’
로저 에스테라의 앞에서 우신우가 온몸이 결박된 채 감옥 같은 곳에 갇혀 있었다.
나는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 내가 무척이나 수상쩍게 보였나 보다.
“윤리사, 갑자기 왜 그렇게 웃어?”
“내가 뭐?”
“뭔가 작당을 논의하는 악당처럼 웃고 있어.”
누가 주인공 아니랄까 봐!
“너는 몰라도 돼.”
“아니. 알아야겠어. 네가 그렇게 말하면 꼭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단 말이야.”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저세상, 네가 뭘 모르나 본데 끈질긴 남자는 매력 없어.”
“뭐라는 거야? 어서 무슨 생각 중인지 말이나 해.”
명령이나 다름없는 목소리에 나는 대답을…….
“싫은데?”
……해 주기는 개뿔.
“그보다 세상이 오빠.”
“왜 갑자기 ‘오빠’래? 불안하게.”
저세상이 질린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의 이마에 딱밤을 때려 줄까 하다가 웃는 낯으로 물었다.
“한 번 더 무단으로 조퇴하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될 것 같은데?”
이미 대답을 알고 있지 않느냐는 듯 묻는 말에 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이대로 얌전히 있을 수 없는 나였다.
안 그래도 방과 후 화장실 청소에 윤리오의 보충 학습을 받고 있는 중인데, 여기서 무단 조퇴를 한다?
‘끔찍해.’
도대체 어떤 벌을 받게 될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그러니까 나는 이번에 머리를 굴려 보기로 했다.
“야, 윤리사! 또 누구한테 전화를 걸려고?”
“네가 아주 잘 아는 사람.”
“당연히 아는 사람이겠지!”
저세상이 빼액 소리 질렀다. 나는 들은 척 만 척하며 상대방이 전화를 받기를 기다렸다.
곧, 수신음이 끊겼다.
-여보세요? 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