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295)화 (295/500)

295화. 겨울 준비(7)

“리사가 뭐래?”

해도 뜨지 않은 새벽.

한단이의 질문에 한단예가 찻잔을 들고는 웃었다.

“괴롭히는 친구들이 있으면 가랑이 사이를 차라고 하더구나.”

“리사 답네. 그것 말고 다른 말은?”

“없었단다.”

“그렇구나…….”

한단이가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를 냈다. 그가 왜 그러는지 알겠다는 듯 한단예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첫째야, 리사는 네가 자고 있는 줄 알았을 거야.”

그래서 네 안부는 묻지 않았을 거라고 한단아가 말했다. 그 말에 한단이가 두 뺨을 붉히며 말했다.

“나도 알아.”

“그렇다면 다행이고.”

한단예가 픽 웃었다. 한단아는 그녀를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다 물었다.

“그런데 벌을 받는 사람은 리사랑 세상이 형뿐이야?”

“셋째의 말로는 그렇다고 하더구나. 무슨 문제라도 있니?”

“응, 있어.”

한단이가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우신우는 왜 벌을 안 받는 거래? 리사도, 그리고 세상이 형도 그렇게 벌을 받는 건 따지고 보면 우신우 때문이잖아.”

“그러고 보니 뭔가 이상하네. 리사한테 물어볼걸.”

“다음에 물어보자.”

“아니, 지금.”

한단예가 곧장 휴대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셋째야, 지금 전화 좀 잠깐 할 수 있을까? 그래, 안 된다고? 그래도 괜찮아.”

한단예가 웃는 낯으로 막내동생에게 물었다.

“신우는 지금 무슨 벌을 받고 있니? 갑자기 왜 그런 걸 묻냐고?”

“그냥 궁금해서.”

한단이가 한단예가 들고 있던 휴대폰을 스피커 모드로 바꾸고 물었다.

“단아야, 말해 줄 수 없을까?”

-아, 진짜! 오늘 오래간만에 일찍 자려고 했는데!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에 한단이가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동생에게 물었다.

“지금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할아버지 몰래 게임 하려고?”

-시, 시끄러! 공부하려고 그랬거든? 어쨌거나 우신우는 지금 따로 벌을 받는 중이야.

“무슨 벌?”

그렇게 물은 건 한단예였다.

-그냥, 학교 끝나자마자 사제복을 입은 아저씨한테 끌려갔어. 앞으로 일주일 동안 매일 봉사활동을 나갈 거라고 들었는데 자세히는 몰라.

“그래? 그렇구나…….”

한단예가 고민에 잠긴 듯 미간을 살포시 좁히더니 이내 말했다.

“고맙단다, 셋째야. 그럼, 잘 자렴.”

-야! 잠깐! 고작 그거 물으려고 전화한 거야?!

쨍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한단아는 망설임 없이 뚝 끊어 버렸다.

사제복을 입은 아저씨라니.

‘로저 신부님이신가?’

우신우는 로저 에스테라의 보호 아래에 있었다. 우성운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지금 잠적한 상태.

그것 때문에 한단아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을 한단예는 알고 있었다.

‘로저 신부라면 진작 성운이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우신우가 무단 조퇴를 했고, 덩달아 윤리사와 저세상도 무단 조퇴를 해 버려 벌을 받게 됐다.

‘그런데 이제 와서 로저 신부가 우신우를 직접 데리고 봉사활동을 나가게 됐다니?’

그것도 벌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뭔가 이상했다.

“첫째야.”

“응?”

“내가 괜한 걱정을 하는 걸 수도 있지만, 조만간 큰일이 생길 것 같구나.”

자신들이 아니라 한국.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말이다.

***

“얘들아, 오늘 하루도 힘차게 시작하렴.”

설윤아의 조례에 아이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네, 선생님!”

나는 그 목소리에 묻혀 입만 벙긋거렸다. 오늘 하루도 힘차게 시작하라니, 그런 생각 따위 들지 않았다.

어쨌거나 설윤아는 웃는 낯으로 교실을 나갔고.

“짜증 나.”

그 직후 단아가 불퉁하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응?”

“짜증 난다고, 저 선생님! 암만 네가 잘못했다고 그래도 못 도와주게 하다니!”

단아가 빼액 소리 질렀다.

아하, 어제 나를 도와주겠다고 나섰다가 설윤아에게 한 소리 들은 것 때문에 화가 많이 난 모양이었다.

우리 단아, 착하기도 하지!

“단아야, 설윤아 선생님께서는 내가 진심으로 반성했으면 해서 그러신 걸 거야.”

“그래도!”

“그러지 말고 우리 나중에 점심 끝나고 편의점이나 가자. 내가 아이스크림 사 줄게.”

“정말?”

단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내게 물었다. 나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앗싸! 좋아!”

언제 짜증을 냈었냐는 듯, 단아의 얼굴에는 웃음이 만연했다.

“야, 백도윤! 윤리사가 나 아이스크림 사주기로 했다!”

“정말? 이 추운 날에? 감기라도 걸리면 어떻게 하려고!”

도윤이의 걱정에 단아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감기는 바보나 걸리는 거거든?”

그때였다.

“자자, 얘들아. 자리에 앉으렴. 수업 시작한다.”

“꺄아! 선생님!”

우리 학교의 인기남, 김우재 선생님께서 반에 들어오셨다.

김우재가 아이들의 함성이 익숙하다는 듯 웃는 낯으로 손을 흔들어줬다.

그 손 인사에 아이들은 한 번 더 비명을 질렀다.

‘왜 저렇게들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지?’

김우재가 잘생긴 축에 속하기는 했지만, 우리 집 윤씨네에 비하면 별거 아니었다.

어쨌거나 수업은 시작됐고, 나는 김우재 선생님의 목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기는 개뿔.

“단아야, 나 수업 끝나면…….”

깨워 달라고 하려 했는데, 단아가 고개를 꾸벅거리며 졸고 있었다. 나는 웃음을 꾹 참고는 턱을 괴고 수업을 듣는 척 자기로 했다.

***

“리사야, 단아야. 일어나.”

“으응?”

어깨를 흔드는 손길에 나는 입가에 묻은 침을 닦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도윤아, 김우재 선생님 수업 벌써 끝났어?”

“김우재 선생님 수업은 끝난 지 오래고, 지금 점심시간이야.”

“진짜?”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시계를 쳐다봤다.

“헐, 진짜네?”

시곗바늘이 1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좀 깨워주지!”

“선생님들께서는 계속 깨웠어.”

“그래? 기억에 없는데…….”

이것 참, 누가 보면 학교에 자러 온 사람인 줄 알겠다.

나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인 후 옆에서 자고 있는 단아의 어깨를 흔들었다.

“으음, 뭐야? 수업 끝났어?”

“응, 단아야. 지금 점심시간이래.”

“벌써?!”

단아가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나는 놀란 얼굴인 단아에게 말했다.

“선생님들께서 계속 깨우셨다는데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계속 잤나 봐.”

“깨울 거면 확 깨우지!”

단아가 얼굴을 찌푸렸다.

“학교에서 잠만 잤다는 걸 할배가 알면 엄청 잔소리 할 텐데!”

단아가 말하는 할배란 한태극을 말했다. 나는 키득거리며 입을 열었다.

“괜찮아, 단아야. 설마 선생님들께서 오늘 하루 그런 거로 한태극 의원님께 연락하겠어?”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단아가 기지개를 쭉 켜고는 두 눈을 비비며 말했다.

“어쨌든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

“맞아, 세상이 형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우신우도.”

우리는 그렇게 도윤이에게 오전 수업 때 있었던 일을 들으며 급식실로 향했다.

“윤리사.”

“저세상!”

“왜 이렇게 늦었어?”

짜증 섞인 물음에 나는 두 손 모아 사과했다.

“미안, 오래 기다렸어?”

“그래.”

“진짜 미안! 잠깐 일이 있어서 그랬어!”

사실은 자다 깬 후 도윤이랑 단아랑 노닥거리다가 늦은 거지만 말이다.

“그런데 우신우는? 설마 먼저 점심 먹으러 갔어?”

“아니.”

저세상이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우신우, 학교에 안 나왔어.”

“뭐?”

“학교에 안 나왔다고. 앞으로 일주일간 로저 에스테라랑 봉사활동을 나가 있을 거래.”

“그래도 돼?”

“될 거야.”

그렇게 말한 사람은 도윤이었다.

“비나리 고등학교는 봉사활동으로 수업을 대체해도 되거든.”

“그래? 그건 또 처음 알았네.”

그런데 로저 에스테라와의 봉사활동이라니.

‘그게 우신우가 받은 벌인 건 알았지만.’

꺼림칙했다.

나는 황급히 휴대폰을 들어 우신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괜찮냐고 묻기 무섭게 답장이 돌아왔다.

[우신우 : 응, 괜찮아.]

괜찮다고 했지만 걱정이 됐다. 나는 곧장 우신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윤리사. 선생님이 보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집에 일이 있어서 아빠랑 잠깐 전화 좀 한다고 하면 돼.”

그리고 비나리 고등학교에서는 수업 외에 휴대폰을 사용하는 건 혼날 만한 일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윤사해는 정말이지, 좋은 변명거리였다. 저세상이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때, 우신우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우신우?”

-리사야, 내가 괜찮다고 했잖아.

다행히도 들려오는 목소리는 우신우의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걱정돼서 그랬지! 지금 로저 새끼랑 같이 있어?”

-새끼라니…….

우신우가 앓는 목소리를 내고는 입을 열었다.

-로저 신부님께서는 지금 할아버지랑 할머니들이랑 이야기 중이야. 요양 병원에 봉사활동 와 있거든.

“그래? 어디에 있는 요양 병원에서 그러고 있는데?”

-그건 왜?

“정말인지 확인해 보려고.”

-너도 참. 샛별 요양 병원이야. 유영구에 있는 곳이라 너도 본 적 있을 거야.

본 기억은 없지만, 휴대폰에 검색하니 나왔다.

이렇게 되니 할 말이 없었다.

“알겠어.”

-용건은 끝났지? 로저 신부님께서 부르셔서 가 봐야 해.

“으응.”

잠깐만.

“그런데, 신우야.”

-응?

“너 조금 전에 ‘리사야’라고 나를 불렀지?”

단 한 번도 그렇게 나를 부른 적이 없는데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