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화. 겨울 준비(6)
“시바.”
무단 조퇴하고 다음날.
“아아악! 왜! 왜 이렇게 된 건데!”
“윤리사! 소리 지를 시간에 빨리 청소 끝내! 화홍이 형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저세상이 옆 화장실에서 고함을 내질렀다. 그는 지금 남자 화장실을 청소 중이었다.
그리고 보다시피 나는.
“시바!”
여자 화장실을 열심히 청소 중이었다. 혼자서 말이다.
단아가 도와준다고 했지만, 빌어먹을 담임 선생님이 그럼 벌이 아니라면서 그녀를 쫓아내 버렸다.
“아오! 변기 물은 내려라, 진짜!”
나는 짜증스럽게 대답한 후, 변기 물을 내렸다. 그리고 끼고 있던 고무장갑을 구석에 던진 후 화장실을 나왔다.
“드디어 다 끝냈냐?”
먼저 화장실 청소를 끝낸 저세상이 내게 물었다.
“응. 손에서 냄새나는 것 같아.”
“고무 냄새겠지.”
“고무 냄새가 이렇게 고약하냐?”
나는 저세상에게 손을 들이밀었다.
“윽.”
저세상이 황급히 코를 막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고무장갑 바꿔달라고 해.”
“그냥 내가 사서 들고 올래.”
나는 그렇게 말한 후 교무실로 향했다.
“설윤아 선생님, 화장실 청소 끝냈어요.”
“그러니? 얼마나 깨끗하게 청소했는지 볼까?”
아직 퇴근을 하지 않은 설윤아가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그녀와 함께 화장실로 돌아왔는데.
“리사, 물기는 깨끗하게 닦아야지. 다시 청소하고 검사받으러 오렴.”
시바! 물기가 얼마나 남아 있다고 저러는 거야?!
하지만 나는 억지로 웃으며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네에, 선생님.”
그렇게 설윤아가 나가자마자 저세상이 내게 물었다.
“윤리사, 통과했어?”
“아니. 너는?”
“나는 통과했어.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기다리고 있지만 말고 나 좀 도와주지.
하지만 암만 학생들이 하교한 시간이라고 하나, 남자인 그를 여자 화장실에 들일 수는 없었다.
“에휴, 내 팔자야.”
나는 구시렁거리며 다시 화장실을 청소했다.
하지만 나는 그 후로도 두 번 더 검사를 받았고, 네 번째 청소를 끝낸 후에야 설윤아로부터 집에 가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아오, 짜증나!”
이 짓을 앞으로 일주일 내내 해야 한다니!
“끔찍해!”
“윤리사, 학교에서의 벌이 이 정도로 끝난 걸 다행으로 여겨.”
“나도 그러고 싶어! 하지만 너도 봤잖아! 설윤아, 저 망할 담임 선생님이 되도 않는 트집을 잡으면서 계속 청소 시키는 거!”
“그렇기는 했지. 윤리사, 너. 혹시 담임 선생님한테 찍힌 거 아니야?”
“우와, 도하선 선생님에 이어 담임 선생님한테 찍히다니! 나 왜 이렇게 인기가 많담?”
저세상이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어쨌든 화장실 청소를 끝내고 학교를 나섰다.
“리사 아가씨! 세상 도련님!”
“화홍이 오빠!”
“화홍이 형!”
교문 쪽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류화홍이 잔뜩 심통이 난 얼굴로 다가왔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학교에 쳐들어가서 억지로 두 분을 데리고 가 버릴까 엄청나게 고민했다고요!”
류화홍이 빼액 소리 지르고는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바로 가요.”
“네에.”
나는 입술을 삐죽이며 류화홍의 한 쪽 손을 꼭 잡았다. 저세상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그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찰나의 순간에 주변 환경이 바뀌었다.
“리사, 세상아. 왔어?”
집으로 돌아온 거였다.
“리오 오빠. 오늘 일찍 퇴근했네?”
“응, 할 일이 없어서 너희 돌아올 시간 맞춰서 그냥 왔어.”
조금 더 이매망량에 있지 그랬냐는 말이 튀어나갈 뻔했지만, 나는 꿀꺽 그 말을 집어 삼킨 후 말했다.
“그랬구나!”
“응, 그래서 이렇게. 너희 공부 봐줄 거 확인하고 있었지.”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어쨌거나 윤리오는 싱긋 웃으며 류화홍에게 말했다.
”화홍이 형, 애들 데려다줘서 정말 고마워요.”
“별 말씀을! 그럼, 저는 이만!”
류화홍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리사, 세상아. 멍하니 있지 말고 어서 손 씻고 앉아.”
들린 말에 나도 저세상도 한숨을 푹 내쉬었다.
화장실 청소 후, 보충 수업이라니.
그것도 거실에서!
‘끔찍하다, 끔찍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무턱대고 우신우를 따라 무단 조퇴하지 않았을 텐데…… 는 무슨!
‘이렇게 될 줄 알았어도 똑같이 행동했겠지.’
그러지 않았다면 몇날 며칠을 끙끙 앓으며 후회했을 테니까.
나는 결국 한숨을 푹 내쉬며 벌을 달게 받기로 했다.
***
“아, 피곤해.”
윤리오와의 수업을 끝마친 나는 침대 위에 풀썩 누웠다. 좀 쉬려는데,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윤리사, 리오 형이 정말 저녁 안 먹을 거냐는데?”
“응, 안 먹어.”
“리오 형이 준비 중인 저녁이 네가 좋아하는 토마토 파스타라고 해도?”
나는 멈칫하고는 끄응, 앓는 목소리를 냈다.
“저녁 다 준비되면 말해 줘.”
저세상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픽 웃었다.
“알겠으니까 쉬고 있어.”
뭔가 말린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토마토 파스타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 그렇지!’
어쩔 수 없다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데 갑자기 휴대폰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누구지?”
단아가 걱정돼서 전화라도 한 건가 싶었지만.
“단예?”
화면에 뜬 이름은 그녀의 둘째 형제의 것이었다.
나는 황급히 몸을 일으키고는 전화를 받았다.
“단예야!”
-응, 리사. 나야.
“꺄아! 단예야! 자, 잠깐, 미국은 지금 아침 아니야? 학교 갈 준비해야 하지 않아?”
-괜찮아. 아직 새벽이거든.
“아아, 그렇구나.”
……가 아니라.
“새벽 몇 시인데?”
-이제 5시 조금 지났어.
도대체 왜 그 시간에 일어나 있는 거니, 단예야?
“안 피곤해?”
-응, 원래 잠이 없어서 그런지 일찍 일어나도 그렇게 피곤하지가 않구나. 그보다, 리사. 학교에서 화장실 청소 벌을 받게 됐다면서?
“단아가 말했구나?”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응, 조금 그런 일이 있어서 저세상이랑 같이 화장실 청소 중이야.”
나는 앞으로 일주일 동안 화장실 청소를 도맡아 해야 한다면서 구시렁거렸다.
“진짜 끔찍해! 담임 선생님은 왜 또 그렇게 깔끔을 떠는지!”
오늘 화장실 청소만 네 번을 했다면서 단예에게 하소연하자 단예가 웃었다.
-후후, 너를 놀리는 게 좋으신가 보네. 담임 선생님이 바뀌었다고 하더니, 제인 선생님이었다면 너그럽게 봐주셨을 텐데 말이야.
“그러니까 말이야!”
나는 입술을 씰룩이다가 배시시 웃었다.
“그래도 좋다. 이렇게 단예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니.”
단예한테 전화를 하고 싶어도 마음 편하게 할 수가 없었다.
미국과의 시차 때문이었다.
이곳이 저녁이면, 그곳은 새벽이고.
이곳이 아침이면, 단예가 있는 미국은 또 밤이었으니까.
내 말에 단예가 말했다.
-언제든 편하게 전화해 줘, 리사. 네 전화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받을 테니.
“됐네요, 됐어요!”
나는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린 후 말했다.
“미국에서 공부 열심히 한 후, 돌아와서 단이랑 같이 한태극 의원님보다 더 성공해 줘.”
-물론이지.
“그 다음에 나 부양해 줘. 단아랑 같이.”
-후후, 알겠어.
도란도란 단예와 간만에 이야기를 나누니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그때 눈치 하나 기가 막히게 없는 저세상이 방문을 열었다.
“윤리사, 저녁 다 됐대.”
“벌써?”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미안해, 단예야. 이만 전화를 끊어야 할 것 같아.”
-괜찮아. 다음에 또 전화할게.
“응! 고마워! 잘 지내! 못되게 구는 새끼들은 가랑이 사이 발로 차 버려야 해! 알겠지?”
저세상이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가볍게 무시했다.
-후후, 알겠어. 그럼, 이만 끊을게.
“응!”
뚝, 전화가 끊겼다.
“한단예?”
“응. 단아한테서 내가 학교에서 벌 받고 있는 이야기를 들었나 봐.”
“고작 그 이야기 들었다고 너한테 전화라니.”
“세상이 오빠, 아쉬워?”
“뭐가?”
“단예가 세상이 오빠한테는 전화하지 않아서.”
내 말에 저세상이 말을 더듬었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어서 나오기나 해!”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던데?”
“시끄러!”
저세상이 버럭 소리 지르고는 쾅! 문을 닫아 버렸다.
하여튼 성질머리 하고는.
나는 쯧쯧, 혀를 찬 후 침대에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