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화. 겨울 준비(5)
사야 덕분에 무영 마을에는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
무영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사야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스킬이 풀렸기에 그런 걸 테다.
지금쯤 자신이 왜 이곳에 왔는지 혼란스러워할 테지.
무영 마을까지 함께한 후, 같이 마을을 둘러보자고 말할 것을 그랬네.
어쨌거나 나는 모른 척 순진무구한 얼굴로 사야에게 물었다.
“언니, 왜 그래요?”
“네? 아니, 그게……”
사야가 잠시 말을 더듬다가 내게 물었다.
“리사 아가씨,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제가 왜.”
“무영 마을에 있냐고요?”
“네, 그것도 아가씨와 세상 도련님과 함께요.”
“그거야 언니가 친구 찾는 데 힘을 보태 주기로 했으니까요! 그렇지?”
저세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랬어.”
“어어, 맞아!”
저세상의 대답을 뒤이어 우신우가 황급히 말했다.
“제가 그랬다고요?”
사야가 아래턱을 어루만졌다.
“그런 것 같기도 한데.”
긴가민가하는 모양이었다.
“언니, 몸이 안 좋으신 것 같으면 먼저 돌아가도 돼요.”
“아니에요, 아가씨.”
사야가 고민도 않고 대답했다.
“아무래도 제가 나이가 나이인지라 깜빡 잊은 것 같네요. 친구 분을 찾는다고 했죠? 이곳에 아가씨와 도련님의 친구라니.”
사야가 폐허가 된 마을을 둘러보며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혹시 친구 분의 체취가 묻은 물건 같은 것을 지니고 계실까요?”
“그런 건 없는데…….”
멋쩍게 뺨을 긁적일 때였다,
“나 있어!”
우신우가 한쪽 손을 들었다.
“여, 여기요!”
우신우는 곧장 사야에게 장난감을 내밀었다.
“이건 뭔가요?”
“성운이가 엄청 아끼는 장난감이요! 여기로 이사 온 후로는 만지거나 그러지 않았지만, 그래도 성운이를 찾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그 말에 사야가 싱긋 웃으며 금강호를 불렀다.
“강호.”
-크르릉.
킁킁, 사야의 손에 쥐어진 장난감의 냄새를 맡던 금강호가 돌연 소리를 내질렀다.
-크아앙!
우렁찬 포효와 함께 금강호가 무영 마을 안쪽으로 사라졌다.
“여기서 강호를 기다릴까요? 이곳에 정말 친구 분이 있다면 강호가 물고 올 테니까요.”
“무, 물고 온다고요?”
“네, 그러니 걱정 말고 편하게 기다리시면 된답니다.”
저기,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는 말인데요?
하지만 금강호도 사라지고, 사야는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이는 지금 우리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사야한테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은 우리는 곧장 재잘거렸다.
“우성운의 장난감을 줄곧 들고 다니고 있었어?”
저세상의 말에 우신우가 펄쩍 뛰며 말했다.
“아니! 그냥, 사실 오늘 경찰서에 가서 신고하려고 했거든. 성운이의 물건을 주면서 말이야.”
“그렇지만 너는 공원에 있었잖아?”
내 질문에 우신우가 침울한 얼굴로 말했다.
“막상 경찰서에 들어가려니 무서워서 그랬어. 나랑 우성운의 보호자가 로저 신부님이시니까…….”
경찰 측에서 어떤 식으로 반응을 할지 대충 예상이 갔다면서 우신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정말 내 예상대로 그렇게 반응을 할 줄은 몰랐어. 그래도 로저 신부님께서 정말 성운이가 사라진 것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안 했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 괜찮아.”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저세상이 날선 목소리를 내뱉었다.
“로저 신부가 우성운이 사라진 것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해서 뭐가 달라져?”
그의 말대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우성운은 여전히 어디로 사라진 건지 모르겠는 실종 상태였다.
“아님, 우신우. 너 집으로 돌아간 후에 로저 신부한테 따져 들기라도 하려고?”
“저세상, 그만해.”
나는 왠지 모르게 흥분한 것 같은 저세상을 타이른 후 우신우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우신우, 괜찮아. 이제 이매망량이 도와줄 테니까.”
“저, 정말?”
“응, 지금 당장도 사야 언니가 도와주고 있잖아. 참고로 사야 언니는 이매망량의 길드원들 중에서도 엘리트야!”
“그렇구나……!”
우신우가 감탄하는 그때였다.
-크르릉!
“강호!”
금강호가 돌아왔다.
몇 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이렇게 돌아온 것을 보면.
“우성운은 여기 없네.”
아무래도 우성운을 찾지 못한 모양인 듯했다.
“강호.”
-크릉, 크르릉.
금강호가 사야의 다리에 제 뺨을 비비적거렸다. 호랑이의 머리를 잠시 쓰다듬은 사야가 말했다.
“흐음, 성운이란 친구 분께서 이 마을에 머무르기는 한 것 같네요.”
“정말요?!”
우신우가 놀라 물었다.
“네, 그렇지만 지금은 없어요. 언제 떠났는지 모르겠지만 며칠 되지는 않은 것 같아요.”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면 금강호가 그의 흔적을 전혀 쫓지 못했을 거라면서 사야가 덧붙였다.
“아가씨와 도련님께서 원하신다면 강호에게 따로 찾아달라고 할게요.”
그래 주신다면 정말 고마울 것 같다면서 말을 하려고 하는데.
〖뭘 찾는단 말이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랑야?”
〖오냐, 윤사해의 불량 학생아.〗
“불량 학생이라니요! 제가 얼마나 학교생활에 충실한데!”
〖그런 녀석이 무단 조퇴를 해서 학교 밖을 돌아다니고 있느냐?〗
랑야가 내 이마에 딱밤을 때리고는 물었다.
〖그보다 사야, 뭘 찾는다고?〗
“저랑 세상이 오빠의 친구요!”
사야를 대신해서 내가 대답하며 말했다.
“얘의 하나뿐인 가족이기도 해요.”
나는 우신우를 가리키며 재잘댔다.
“실종된 지 보름이 다 되어가는 데 아무도 나서지 않아서요.”
〖그래서 한창 공부해야하는 네가 나섰단 말이냐? 겁도 없지.〗
“제가 아빠를 많이 닮아서 겁이 없어요.”
〖푸하하하! 말은 잘하는군.〗
랑야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갑자기,
“우, 우와악! 사, 사람이 늑대로 변했어! 늑대로 변했다고!”
늑대로 변했다.
랑야는 우신우를 보며 시끄럽다고 말한 후 내게 물었다.
〖혹시, 네 친구 녀석의.〗
“체취가 묻은 물건 혹시 있냐고요? 네, 있어요.”
사야가 쥐고 있던 장난감을 랑야에게 주었다.
킁킁, 냄새를 맡은 랑야가 씨익 웃었다.
〖흐음, 좋아. 사야, 너는 이만 돌아가라.〗
“괜찮으시겠어요,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따로 하고 계셨던 일이 있잖아요.”
〖괜찮다. 조금 전에 끝냈으니. 아참, 쌍둥이 녀석들은 류화홍이 돌보고 있는 중이다.〗
“네, 알겠어요. 그럼, 조심하셔요.”
〖오냐.〗
사야의 걱정이 듣기 좋다는 듯 랑야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유, 윤리사. 조금 전 형은, 아니. 아저씨는 도대체 누구야?”
“미지 영역의 거주자.”
“그, 그럼, 저 누나는.”
“조금 전 거주자님의 하나뿐인 따님이셔.”
우신우의 턱이 땅에 떨어질 듯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에게 물었다.
“그렇게 놀랄 일이야?”
“당연하지!”
우신우가 펄쩍 뛰며 외쳤다.
“거주자를, 그리고 거주자의 후손을 눈앞에서 뵙다니! 우성운한테 나중에 자랑해야지!”
우신우는 우성운이 무사히 돌아올 것이리라 굳게 믿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나 역시 우성운은 몸 성히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때 사야가 말했다.
“자, 그럼. 아가씨, 도련님? 이만 돌아가 볼까요?”
“그, 그게.”
나는 더듬거리다가 빼액 외쳤다.
“신우요!”
“네?”
“신우, 학교까지만 데려다주고 아빠한테 가면 안 될까요?”
암만 생각해도 매는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하지만 아닌 것 같았다. 다행히도 사야는 나의 간절한 부탁을 들어줬다.
그렇게 신우와 헤어진 뒤, 나는 저세상과 함께 사야의 손에 이끌려 이매망량으로 향하게 됐다.
그리고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윤리사, 저세상.”
나지막하게 울리는, 듣기 좋은 목소리가 우리의 귀를 간질거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줄 수 있겠니?”
나긋하게 묻는 목소리에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도대체 어떻게 변명을 해야 잘 했다고 칭찬을 받을까 싶은데 저세상이 말했다.
“그게, 친구가 갑자기 학교 밖으로 뛰쳐나가서요.”
나는 그 말을 뒤이어 황급히 대답했다.
“세상이 오빠한테 그 말을 듣고 바로 그 친구를 쫒아갔거든!”
“왜 그랬지?”
“그게, 위태로워 보여서.”
나는 입술을 우물거렸다.
“성운이 알지, 아빠? 우리 집에서 잔 적 있는 애.”
“그래, 알다마다. 그 친구란 아이가 성운이었니?”
“아니. 내가 말했잖아. 성운이가 계속 학교에 안 나오고 있다고.”
“아아, 그랬지, 참. 그럼, 리사 네가 말한 그 친구란 녀석은?”
“성운이 사촌 형제야. 그래서 우리도 모르게 쫓아갔어. 우신우도 우성운처럼 사라질까 싶어서. 걔들한테 로저 신부가 있지만!”
“그렇지만?”
“그 아저씨는 우성운이랑 우신우한테 관심이 없는 것 같단 말이야! 그리고 애들 학대하는 것 같았고.”
“학대라니?”
윤사해가 미간을 좁혔다.
“우리 여름 방학 때 아빠네 별장에서 친구들끼리만 놀았었잖아.”
사실,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돌아왔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나는 말했다.
“그때 봤어. 우성운이랑 우신우의 온 몸에 새겨져 있는 흉터를. 긴가민가했지만 확실해. 로저 신부는 우성운과 우신우한테 보호자로서의 의무를 전혀 취하고 있지 않아.”
“그래, 그래서 세상이와 무단으로 조퇴한 후 우신우란 아이를 쫓았단 말이구나?”
“으응.”
나는 시무룩하게 고개를 푹 숙였다. 윤사해가 그런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픽 웃었다.
잠깐, 웃었다고?
설마…….
“친구가 걱정돼서 그렇게 행동했다니, 우리 리사 기특하구나. 세상이도 정말 기특해.”
윤사해가 나와 저세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생각과는 다르게 좋게 흘러가는 분위기에 나는 활짝 웃었다.
“저, 아저씨. 저는 딱히 칭찬받을 일은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저 망할 주인공이 좋은 분위기에 재를 뿌리네!
눈치껏 대답하라고 저세상의 옆구리를 치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그래, 잘 아는구나.”
네? 뭐라고요?
“윤리사, 저세상.”
윤사해가 우리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싱긋 웃었다.
“벌을 받을 각오는 됐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