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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290)화 (290/500)

290화. 겨울 준비(2)

“급한 일 아니라며!”

“아니잖아.”

“아니기는 뭐가 아니야?!”

나는 빼액 소리 질렀다.

우신우가 학교를 뛰쳐나갔단다.

“네 담임 선생님은?”

“모를걸? 선생님 나가자마자 가방 메고 나가 버렸으니까.”

저세상이 태연하게 말했다.

‘왜 저렇게 남의 일처럼 말해?!’

물론, 남의 일이 맞기는 하지만!

교무실에 찾아가서 우신우가 학교 무단으로 조퇴했다고 말해야하나 그런 생각이 들 때였다.

“세상아, 곧 수업 시간인데 3반에는 무슨 일이니?”

역사 선생님인 김우재가 교실로 들어왔다.

“아, 선생님.”

저세상이 김우재에게 꾸벅 인사하고는 말했다.

“곧 돌아갈…….”

“아니요! 그게 말이죠!”

나는 황급히 저세상의 말을 가로막았다. 나도 모르게 행한 일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이렇게 된 거, 나는 앞뒤 보지 않고 저지르기로 했다.

“집에 급한 일이 생겼다고 아빠한테 연락이 와서요!”

“급한 일?”

“네! 담임 선생님한테는 미리 말해 놨다고 해서요. 저희 이만 가 볼게요. 죄송합니다, 선생님!”

“뭐?”

그렇게 말한 사람은 저세상이었다.

나는 황급히 가방을 멘 후, 저세상의 어깨를 밀었다.

“뭐해, 세상이 오빠! 수업 시작하기 전에 어서 나가자!”

나는 잔뜩 당황한 얼굴인 도윤이와 단아에게 나중에 연락한다는 제스쳐를 취한 후 어안이 벙벙한 얼굴인 저세상과 교실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교실 문을 닫자마자.

“야, 윤리사!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저세상이 빼액 소리 질렀다. 나는 황급히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댄 후 말했다.

“어쩔 수 없었어. 우신우를 찾으러 가야 할 거 아니야.”

“우신우는 왜!”

“걱정돼서 그러지!”

나는 교실에는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저세상에게 소리 질렀다.

“저세상, 너는 우신우가 걱정도 안 돼? 그 애 속이 얼마나 썩어 문드러지고 있을지 걱정 안 되냐고!”

“안 돼.”

저세상이 고민도 않고 대답했다. 그 대답이 얼마나 빨랐으면 일순 정신이 멍해졌다.

나는 멍하니 입을 뻐금거리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럼, 걔 때문에 내 속이 썩어서 문드러지고 있다면?”

“뭐?”

“아니다. 우신우랑 우성운, 이렇게 둘이니까 걔들이구나?”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우신우랑 우성운.”

나는 입술에 가져다 대었던 검지를 들어 저세상의 어깨를 쿡쿡 찔렀다.

“그 망할 우씨 형제 때문에 내 속이 썩어가고 있다고.”

저세상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이내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망할. 이 일이 아저씨 귀에 들어가도 나는 모르는 일이야.”

그러니까 도와준다는 말이었다.

뭐를?

‘당연히 우신우를 찾는 일이지!’

그리고 예상하건대, 저세상은 우신우를 찾는 김에 겸사겸사 우성운의 행방을 쫓는 것도 도와줄 테였다.

‘안 도와주면 뺨 한 대 때리지 뭐.’

나한테는 <[S, 숙련 불가] 내 말이나 들어라!>가 있단 말씀!

‘그러고 보니 저세상한테는 사용한 적이 없네.’

같은 집에서 산 지 어느새 10년이 됐는데도 말이다.

윤리오랑 윤리타, 그리고 윤사해는 몇 번이나 나한테 뺨을 맞았는데, 저세상은 맞아 본 적이 없다니!

갑작스럽게 든 생각에 나는 물끄러미 저세상을 쳐다봤다. 내 시선에 저세상이 미간을 좁혔다.

“뭐해? 우신우 찾으러 안 갈 거야?”

“아, 가야지. 네가 재촉하지 않아도 알아서 찾으러 갈 거야.”

저세상, 너와 함께 말이지!

나는 저세상이 도망칠까 봐 싶어 그의 손목을 붙잡고 학교를 나섰다. 저세상이 도망칠 리가 없는데도 그랬다.

더군다나 저세상이 내 손을 뿌리칠 리가 없는데도 나는 그의 손목을 세게 끌어 잡았다.

저세상의 시선이 내 손에 닿는 것 같았지만 나는 애써 무시했다. 그렇게 교문을 나서는데 저세상이 내게 물었다.

“그런데 윤리사, 우신우를 어떻게 찾을 건데? 걔가 어디로 갔는지 예상가는 곳이라도 있어?”

“아니, 없어. 하지만 찾을 방법은 있지.”

나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너, 설마.”

“응. 저세상, 네 생각이 맞아.”

저세상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리 말하며 입을 열었다.

“스킬을 사용해서 우신우를 찾을 거야.”

“야! 아저씨가 함부로 스킬 사용하지 말라고 했잖아!”

“네가 말하는 그 아저씨, 지금 이 자리에 없잖아?”

그러니까 나는 곧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저세상에게 혀를 날름거려 주고는 말이다.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이 발동됩니다.】

【각성자, ‘우신우’를 인지합니다.】

곧, 푸른 창이 내 앞에 나타났다.

“찾았다.”

나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여기서 그렇게 멀지 않아. 학교 근처 공원에 있네. 가자.”

저세상이 뭐라 할 새도 없이 나는 여전히 꼭 붙잡고 있는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

윤리사가 저세상과 함께 학교를 무단 조퇴하고 있던 그 시간.

“길드장님, 실례합니다.”

윤사해는 간만에 눈을 붙이고 있는 중이었다. 할 일이 산더미였지만 잠시 쉴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로저 에스테라의 뒤를 캐고 있는 미지 영역의 거주자, 랑야 때문이었다.

미지 영역의 거주자도 갱년기를 겪는 건지, 감정의 기복이 하루에 수십 번은 왔다갔다하는 랑야 때문에 윤사해는 결국 몸져눕고 말았다.

그런데 그의 휴식을 서차웅이 방해한 거다.

“서 비서, 내가 분명 일어날 때까지 깨우지 말라고 했을 텐데.”

날선 목소리에 서차웅이 쭈뼛거리며 말했다.

“그게, 리사 아가씨와 세상 도련님 때문에 말입니다.”

그 말에 윤사해가 곧바로 소파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애들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리사 아가씨와 세상 도련님께서 집에 큰일이 생겼다면서 학교를 나간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속된 말로 리사 아가씨와 세상 도련님께서 무단 조퇴하신 것 같습니다. 길드장님의 이름을 팔아서요.”

윤사해가 끄응 앓는 목소리를 냈다. 딸아이가 수업을 빠지는 일이야 흔했지만.

‘무단 조퇴라니!’

그것도 자신의 이름을 팔아서 단 한 번도 속을 썩인 적 없는 저세상과 함께 말이다.

“리오랑 리타의 귀에는 아직 안 들어갔겠지?”

“네, 길드장님.”

윤사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리오랑 리타가 알기 전에 사람을 풀어 애들을 찾게.”

“길드장님은…….”

“나도 찾으러 나가 봐야지. 애들한테 무슨 일이 생겼을지 모르니.”

윤사해가 벗어 둔 두루마기 코트를 어깨 위에 걸칠 때였다.

〖잠깐, 윤사해.〗

랑야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올 줄 알았는지, 윤사해가 그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랑야, 급한 이야기가 아니면 나중에 말해 주게.”

〖급한 일이야. 그것도 네가 그토록 알기를 원했던 광신도의 일.〗

윤사해가 멈칫거리고는 랑야를 응시했다.

“간단히 본론만 빠르게 부탁하지.”

***

“찾았다.”

우신우는 학교 근처의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말이다.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를 해제한 사이, 다른 곳으로 가 버렸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인 일이었다.

그래, 그런데 말이지.

“어쩌지?”

나는 함께 수풀 뒤에 숨어 있는 저세상에게 물었다. 내 질문에 저세상이 짜증스럽게 되물었다.

“뭐를?”

“막상 찾긴 찾았는데 어떻게 다가가면 좋을지 모르겠어.”

우신우는 지금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축 늘어뜨린 어깨가 형편없이 떨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저세상이 그게 무슨 문제냐는 듯 한심하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괜히 불퉁해져 말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뭣 모르던 초등학생 때야 무슨 일 있냐고 아무것도 모른 척 다가갈 수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열일곱 살이었다.

그것도 곧 열여덟인 고등학생.

더욱이 우신우가 지금 어떤 상황을 겪고 있는지 알고 있는 나였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래도 그는 로저 에스테라의 밑에서도 꽤나 속앓이를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성운과 이렇게 연락이 안 될 리가 없으니까.

더욱이 우신우가 로저 에스테라한테 우성운의 행방을 묻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학교에 나오지 않은 첫날에 당장 물어봤겠지.’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그 망할 신부는 우성운이 종적을 감춘 것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가능성이 높았다.

‘경찰에 신고도 안 했겠지.’

윤사해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어떻게 하기는 뭘 어떻게 해. 온 땅을 다 헤집었겠지.’

그리고 나를 찾을 때까지 지하 길드를 쳐부쉈을 테다. 지하 길드가 나를 납치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윤리사, 그래서 계속 이렇게 있을 거야?”

“응? 아, 당연히 그건 아니지. 안 그래도 어떻게 다가가면 좋을까 생각 중이야.”

“생각만 계속 하려는 건 아니지?”

“시끄러. 나랑 같이 우신우한테 어떤 식으로 다가가면 좋을지 생각해 줄 거 아니면 입 다물고 있어.”

내 말에 저세상이 픽 웃었다.

그러고는.

“야, 우신우.”

수풀 위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할 새도 없이 놀란 얼굴인 우신우에게 다가갔다.

“저세상! 미쳤어?!”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저세상을 이어 갑자기 나타난 내 모습에 우신우는 이번에는 자리에서 펄쩍 뛰며 일어났다.

저세상이 그런 그를 도로 자리에 앉히며 말했다.

“안 미쳤어. 그보다 빨리 와.”

저세상의 손짓에 나는 우물쭈물하다 그에게 다가갔다. 아니, 우신우에게 다가가 그의 옆에 앉았다.

“윤리사, 내 옆에 앉아.”

“내가 왜?”

“지금 바로 아저씨한테 전화할까?”

망할 저세상 같으니라고!

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저세상의 옆에 앉았다. 내가 제 옆에 앉는 것을 만족스럽게 본 저세상이 입을 열었다.

“우신우, 학교는 갑자기 왜 뛰쳐나간 거야?”

우신우가 입술을 달싹이다가 뚱한 얼굴로 말했다.

“네가 알 거 없잖아.”

“네가 아니라 형.”

저세상이 우신우의 말을 고쳐 줬다.

“나 너보다 두 살 많아.”

“알고 있거든?”

“그럼 형이라고 제대로 불러.”

“윤리사도, 그리고 한단아도 너한테 ‘오빠’라고 안 하잖아!”

“한단예는 해.”

저세상의 말에 우신우가 할 말을 잃은 얼굴을 보였다. 그에 저세상이 피식 웃고는 물었다.

“그래서 학교는 갑자기 왜 땡땡이 친 건데?”

“몰라서 물어?”

“그건 아니야. 보나마나 뻔하지.”

우성운 때문일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까지 그러면 어떻게 해? 백도윤이랑 한단아. 그리고 나랑 윤리사가 우성운을 얼마나 걱정 중인지 몰라서 그래?”

우신우가 입을 꾹 닫았다.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저세상이 우성운을 걱정하고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각성, 그 후』에서와는 다르게 싸가지를 내다버렸다지만, 그래도 정은 있나 보구나.’

다행인 일이었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그려졌다. 나는 그대로 너그럽게 웃는 낯으로 우신우에게 물었다.

“신우야, 경찰한테 연락은 했어?”

“못했어.”

안 한 게 아니라 못했단다.

“왜?”

“로저 신부님이…….”

우신우가 고개를 푹 숙이며 웅얼거렸다.

“괜히 일 키우지 말라고 해서.”

“뭐?”

“경찰이 개입하거나 그러면 학교에 막 찾아오거나 그럴 거 아니야. 안 좋은 소문도 막 날 거고, 그럼.”

“우성운이 너한테 실망할 거라고, 로저 새끼가 그러든?”

“응? 응. 아니, 잠깐. 지금 뭐라고? 로저 새끼? 지금, 신부님한테 ‘새끼’라고 한 거야?”

“응, 그랬는데? 그보다 지금 당장 일어나.”

나는 웃는 낯을 지우고는 우신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우성운 찾으러 가자.”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지.

하지만 내 말을 어떻게 오해했는지 우신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는 내 어깨를 붙잡아 흔들었다.

“뭐야, 윤리사! 우성운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 거야?!”

“아니? 모르는데……?!”

“모르면서 찾으러 가자고 하는 거야? 거짓말이지?! 너 우성운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 거지?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말할 리가 없어!”

“아니, 모른다니까?! 잠깐만, 사람 말 좀 들어!”

나는 우신우의 뺨을 찰싹 때려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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