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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289)화 (289/500)

289화. 겨울 준비(1)

청사초롱이 두둥실 떠다니고 있는 저택의 한복판.

“그러니까, 드디어 찾았다는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로저 에스테라는 성별이 불분명한 자에게 싱긋 웃으며 그리 말했다.

“오래도 걸렸군.”

“사실, 금방 찾을 수 있었지만 시간이 필요해서 말입니다.”

“무슨 시간?”

“고통을 치를 시간 말이지요.”

로저 에스테라가 웃는 낯으로 말을 이었다.

“뭐, 그것도 이제 곧 끝일 테지만 말입니다.”

“그래, 그 후손에게 칼을 쥐여 줬다지. 무슨 선택지를 고르려나?”

로저 에스테라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자는 바로 유랑단의 수장이었다.

수장은 생각만으로도 즐겁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그는 로저 에스테라로부터 그간의 일을 모두 들은 참이었다.

우성운과 우신우.

두 형제 중 거주자의 후손에 더욱 가까운 자가 누구인지, 그 후손에게 무슨 선택지를 내밀었는지 말이다.

유랑단의 수장이 낮게 읊조린 말에 로저 에스테라가 나지막하게 웃음을 흘렸다.

“성운 군은 어떤 선택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 말에 수장이 미간을 좁혔다.

“그걸 알면서도 너는 그 아이에게 칼을 내민 거니?”

“네, 수장님.”

로저 에스테라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고통을 치를 시간이 필요했다고요.”

“그 시간은 이제 곧 끝이라고 조금 전에 네가 말했지 않느냐?”

“그랬지요.”

로저 에스테라의 고갯짓에 유랑단의 수장이 고민하는가 싶더니 씨익 웃었다.

“아하,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 그 아이의 고통이.”

로저 에스테라는 대답 대신 눈웃음을 보일 뿐이었다.

“암만 생각해도 아쉽단 말이지. 너 같은 아이가 내 탈이 아닌 것이.”

“하하,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로저 에스테라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훗날, 성운 군의 시간이 끝나면 저와 약속한 일이나 잘 지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렴, 그래야지.”

수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내 바람을 친히 이뤄 주겠다는데 내가 너와 약조한 일을 지켜 주지 못할 이유가 있겠니?”

유랑단의 수장은 제 앞에 놓인 찻잔을 어루만지며 나긋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걱정 말고 너는 그 아이의 고통을 어서 끝내 주려무나.”

“그러지 않아도 그럴 생각입니다. 새로운 해가 다가오기 전.”

로저 에스테라 역시 제 앞에 놓인 찻잔을 만지며 미소를 그렸다.

“그래요, 완전한 겨울이 찾아오기 전에 끝내는 게 좋겠군요.”

그 말을 끝으로 로저 에스테라는 찻잔을 비웠다.

그는 유랑단의 수장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 후 저택을 떠났다. 그렇게 로저 에스테라는 돌아가려고 했지만.

“이제야 수장님과의 이야기가 다 끝났나봐?”

자신을 붙잡는 목소리에 걸음을 멈춰 세웠다. 로저 에스테라가 뒤를 돌아보고는 싱긋 웃었다.

“오랜만입니다, 자매님.”

“그렇게 오랜만은 아니지.”

할미가 미소를 그리고는 탈을 벗어 로저 에스테라에게 인사했다.

“안녕, 학부모님.”

로저 에스테라가 멍하니 두 눈을 끔뻑거리다 웃음을 터트렸다.

“이것 참, 당신들이 쓰는 그 탈은 아무리 생각해도 참 신기하단 말이지요. 그래도 오랜만입니다, 성운 군의 새로운 담임 선생님인 자매님.”

“나를 부르는 이름이 너무 긴 것 아니야?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름을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저한테 이름이 불리고 싶으신가 보군요.”

“끔찍한 소리하지 마.”

할미가 불쾌하다는 얼굴로 신경질을 냈다.

“그보다 수장님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일이 아주 술술 풀리고 있나보네? 나는 아주 곤욕을 겪었었는데.”

“아아, 남해에서의 일은 진작 들었습니다. 아주 탈탈 털렸다지요? 하지만 그 일, 수장님과 함께 진행한 일이었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당신 혼자서 설친 것으로 아는데요.”

“시끄러.”

할미탈이 성난 목소리를 내뱉었다.

“너, 이렇게 될 줄 알았지?”

“무엇을 말입니까?”

“우리의 힘이 청(淸)의 가주에게 미치지 못할 것을!”

까드득, 이를 가는 날선 목소리에 로저 에스테라가 싱긋 웃었다.

“몰랐습니다. 애초에 저는 당신들이 남해에서 수작질을 벌이는 것도 나중에서야 알았는걸요?”

“거짓말.”

“저는 신의 사제입니다. 그런 제가 어떻게 자매님 앞에서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말은 참 잘한단 말이지? 그 입을 아주 찢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말이야.”

“하하, 수장님을 모시는 탈 아니랄까 봐 그분과 똑같이 저를 칭찬하는 솜씨가 일품이군요.”

로저 에스테라는 기분 좋다는 듯이 활짝 웃었다. 그 웃음이 불쾌하다는 듯 할미가 험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네가 수장님과 무슨 일을 진행하고 있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 일 제대로 성공시켜야 할 거야. 안 그럼 내가.”

성큼, 로저 에스테라에게 다가선 할미가 이를 드러냈다.

“정말로 네 입을 찢어 버리러 친히 찾아갈 테니. 그러니까 어서 찾아서 수장님 앞에 대령하도록 해.”

“누구를 말입니까?”

“그걸 몰라서 물어?”

할미가 한쪽 눈가를 찡그렸다.

“우성운.”

들린 이름에 로저 에스테라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그렸다. 할미는 그 얼굴에 키득거렸다.

“네가 후견을 자처하고 있는 아이가 지금 일주일이 다 되도록 학교에 나오지 않고 있는 건 알겠지?”

모를 리가 없을 거다.

로저 에스테라, 그는 지금 우성운의 보호자였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너는 그 아이는 전혀 걱정하지 않고 있는 눈치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그 애새끼가 열쇠라는 거지. 너와 수장님이 진행하고 있는 일을 수월하게 끝낼 아주 중요한 열쇠.”

“하하, 아하하!”

로저 에스테라가 웃음을 터트린 후 키득거리며 말했다.

“똑똑하시군요. 하지만 자매님.”

로저 에스테라는 할미의 붉은 눈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성운 군은 저와 수장님께서 진행 중인 일을 끝낼 열쇠가 아닙니다.”

로저 에스테라의 입매가 호선을 그렸다.

“시작할 열쇠이지요.”

할미는 의미를 모르겠다는 얼굴을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로저 에스테라는 웃는 낯으로 그녀에게 인사한 후 길을 떠나 버렸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할미가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재수 없는 새끼.”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할미 역시 곧 모습을 감췄다.

내일은 월요일, 로저 에스테라에게 아까운 시간을 더는 쏟지 말아야했다.

그러니까 비나리 고등학교의 ‘설윤아’로 수업 준비를 해야 했다는 말이다.

“짜증나는데 학교를 통째로 내 숲에 옮겨 버릴까?”

문득, 괜히 비나리 고등학교에 잠입했다는 생각이 드는 할미였다.

***

주말이 끝났다.

그리고 그 말은, 월요일이 시작됐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우성운.”

교탁에 선 설윤아가 들리지 않는 대답에 미간을 좁혔다.

“우성운, 오늘도 안 왔니?”

“네, 안 왔어요…….”

아이들이 우물쭈물 말했다.

우성운이 등교를 하지 않은 지 일주일이 넘었다. 나와 도윤이, 그리고 단아가 차례로 전화를 걸어봤지만 받지도 않았다.

‘저세상의 연락도 받지 않고 있고.’

당연히 사촌인 우신우의 전화에도 전혀 응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 때문에 우신우의 낯빛은 하루가 다르게 어두워졌다.

‘그럴 수밖에 없지.’

나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담임인 설윤아를 쳐다봤다.

“반장, 성운이 오면 교무실로 와달라고 해 주렴.”

“네에.”

우리 3반의 담임 선생님께서 매번 저런 식으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란 듯이 나오고 있으니까!

‘선생님 맞아?’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우성운 정도야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한테는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우성운을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덕분에 그를 걱정하느라 속으로 열심히 끙끙 앓는 중이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폭발해 버렸다.

“선생님.”

“응?”

“성운이의 보호자와는 연락해 보셨나요?”

손을 번쩍 들고 설윤아에게 날선 목소리를 내뱉고 만 거다.

설윤아가 싱긋 웃었다.

“성운이의 사촌인 신우와는 이야기해 봤단다.”

“우신우랑만 이야기할 게 아니라, 성운이의 보호자와도 연락을 해봐야하지 않을까요?”

“리사.”

나를 다정하게 부른 목소리가 곧 말을 이었다.

“성운이한테는 보호자가…….”

“있어요.”

나는 차갑게 그녀의 말을 끊은 후 입을 열었다.

“로저 에스테라 신부님.”

반 아이들이 한순간 웅성거렸다. 나는 그 소음을 무시한 채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성운이도 그리고 우신우도 로저 신부님이 운영 중인 보육원에서 지내고 있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저도 그렇게 들었어요!”

설윤아가 뭐라 할 새도 없이 단아가 내 말에 동조했다.

“저도요!”

도윤이도 손을 번쩍 들고는 고개를 한껏 끄덕였다.

“그러니? 육아 휴직 중인 제인 선생님한테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 한번 연락을 해 봐야겠네.”

그 말에 도윤이가 한쪽 눈가를 살짝 찌푸렸다.

“그러니까 그 말은, 제인 선생님이 제대로 인수인계를 하지 않고 갔다는 말인가요?”

“그럴 리가 있겠니? 선생님이 실수했다는 말이지. 어쨌거나, 반장.”

설윤아가 여전히 웃는 낯으로 입을 열었다.

“혹시라도 성운이가 오면 내가 찾고 있다고 말 좀 해 주렴.”

도윤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조금 전, 제인 아일리를 언급한 내용에 앙금을 품은 듯 불만 가득한 얼굴을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도윤이는 학생이었고.

“반장?”

설윤아는 선생이었다.

결국, 도윤이는 설윤아의 재촉에 답지 않게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웅얼거렸다.

“네, 선생님. 그렇게 말할게요.”

“그래, 부탁할게. 그럼, 다들 오늘 하루도 힘내렴.”

설윤아는 그 말을 끝으로 교실을 나가 버렸다.

그렇게 교실 문이 닫힌 후.

“백도윤, 화났어?”

단아가 도윤이를 향해 물었다. 도윤이는 뚱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니.”

“화난 것 같은데?”

“아니야.”

그렇게 말한다고 들을 리가 없는 단아였다.

“윤리사, 백도윤 화났어.”

“단아야, 그런 건 못 본 척 무시하고 넘어가는 거야.”

내 말에 도윤이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나는 그에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도윤아, 너도 담임 선생님 말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런 의도로 말한 건 아닐 거야.”

“나도 알아. 그렇지만 왜인지 모르게 비꼬는 것처럼 들려서…….”

도윤이가 부끄럽다는 듯 목 언저리를 긁적였다.

“리사, 나 바보 같지? 뒤늦게 사춘기가 온 것도 아닌데.”

“에이, 그럴 수도 있지! 너무 부끄러워하지 마!”

“맞아, 백도윤. 뒤늦게 사춘기가 온 건 절대로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단아의 말에 도윤이가 펄쩍 뛰며 말했다.

“단아야! 나 사춘기 안 왔어!”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지.”

“진짜 안 왔는데!”

도윤이는 놀리는 맛이 있었다. 그 말은 즉, 단아는 도윤이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계속해서 그를 놀렸다는 거다.

나는 한 발자국 물러나 피식 웃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윤리사.”

“저세상? 곧 수업 시간인데 무슨 일이야?”

“잠깐 이야기할 게 있어서. 바쁘면 나중에 올게. 그렇게 급한 일도 아니거든.”

“괜찮아. 어차피 수업 시작하기까지 어디 보자…….”

3분도 안 남았네?

“본론만 간단히. 빨리 말해.”

“알았어.”

저세상이 시계를 흘긋거리고는 입을 열었다.

“우신우가 조례 끝나자마자 밖으로 나갔어.”

“뭐? 어디로 갔는데?”

“그거야 모르지.”

저세상이 어깨를 으쓱였다.

“학교 밖으로 뛰쳐나갔으니까.”

그 말에 나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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