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4화. 서리 내린 날(2)
길드를 울리고 있는 자장가 소리가 듣기 참 좋았다.
“오늘 길드에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네요.”
“네? 왜요?”
“이렇게 애들 재운다고 자장가를 틀면 다들 자신들도 자고 싶다고 아우성이라서요.”
“아하.”
이매망량의 길드원들 성향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잠시만, 그런데.
“오늘 무슨 일 있어요? 길드 사람들이 한 명도 없네요?”
이매망량의 그 많은 사람이 모두 던전 공략이나 그런 것에 들어간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내 의문에 사야가 인자하게 웃는 낯으로 말했다.
“오늘 세계 각국에서 VIP들이 떼로 몰려 오는 날이라서요.”
그 말에 나는 화들짝 놀라 말했다.
“아, 맞다! 오늘부터 우리나라에서 OACD(Organization for Awaker Cooperation and Developmen, 세계 각성자 협력 기구) 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되죠?”
OACD는 내가 ‘마리아’로 있던 세계와 비교하면 세계 경제 협력 개발 기구인 OECD와 비슷한 국제기관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국제 각성자 컨소시엄으로 수년 전에 대한민국에서 한 번 개최된 적이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 컨소시엄을 계기로 내가 태어났다고 들었는데.’
이번에도 이날을 계기로 윤씨 집안에 또 다른 경사가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아니라고 믿으련다.
하여튼 며칠 전부터 OACD가 한국의 서울에서 개최된다고 법석이었는데 그걸 그새 잊고 있었다.
‘리오 오빠랑 리타 오빠도 난생처음으로 경호 임무에 서게 됐다고 엄청 야단스러웠는데!’
그런데 그걸 까먹고 있었다니!
‘내 기억력 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머리를 부여잡는데, 내 말에 사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오늘 이매망량의 대부분 인원이 그쪽 경호로 차출됐거든요. 이튿날에는 길드장님만 VIP들 경호차 가실 거랍니다.”
“아빠 혼자서요? 괜찮아요?”
질문을 던지고서야 참 바보 같은 걸 물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윤사해는 대한민국 내 S급 각성자 중에서도 가장 강하기로 소문이 난 각성자였다.
그런 그를 걱정했다니.
나 자신에게 어처구니가 없어 픽 웃는데 사야가 말했다.
“그리고 아래아의 최설윤 길드장님도 내일 같이 경호를 맡으니까요. 아가씨께서 걱정할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랍니다.”
“최설윤 길드장님도요?”
놀라 물은 사람은 내가 아니라 저세상이었다. 저세상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최설윤 길드장님께서는 아직까지 장천의 회장님을 수색 중이었던 것으로 아는데요.”
그 말에 사야가 난처하게 웃으며 대답해줬다.
“상부에서 끝내도록 압박을 넣은 모양이더군요.”
“상부라면…….”
한 곳밖에 없었다.
이번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리는 OACD를 이끌어 가야 하는 주최자 입장인 대한민국 각성자 관리 기구, AMO의 강산에 본부장님.
‘그렇다고 해도 최설윤 길드장님께서 순순히 강산에 본부장님의 말을 들었을 것 같지 않은데.’
그런 내 의문을, 이번에는 사야가 해소해 줬다.
“그리고 CW 측에서도 그만 수색을 종료해 주기를 바랐던 모양인 것 같더군요.”
“그래요……?”
의외였다.
CW라면 누구보다도 장천의, 그를 찾고자 했을 것 같았던 탓이다.
“생사불명의 장천의 회장님을 찾는 것보다는 내부를 단단히 다지는데 집중할 모양이라고 들었답니다.”
“아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천의가 자신의 실종을 염두한 건지는 몰라도, 그는 실종 전에 자신의 후계자를 미리 점찍어 놨었다.
윤리타와 친분이 있는 진분홍.
바로 그녀였다.
“여러모로 돌아가는 상황이 복잡한 것 같네요.”
“후훗, 그래도 아가씨께서는 어른들의 사정을 깊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물론, 세상 도련님도요.”
사야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복잡한 것을 생각하는 건, 어른들의 몫이니까요.”
사야가 싱긋 웃었다. 나 역시 그녀를 따라 웃었지만 속이 불편했다.
복잡한 것은 모두 어른들에게.
하지만 그 어른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문득, 불안감이 몰려 왔지만 나는 휙휙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생각하지 말자. 괜한 생각이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매망량 내에서 흘러나오는 자장가 소리에 두 귀를 쫑긋 세웠다.
***
길드를 울리고 있는 자장가 소리는 윤사해의 집무실에도 울리는 중이었다.
〖애들 낮잠 시간인가 보네.〗
“그런 것 같군.”
윤사해가 한숨을 푹 내쉬며 얼굴을 문질렀다. 그에 랑야가 물었다.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괜찮냐? 네 따님께서 걱정 많이 하시던데.〗
“우리 리사가?”
윤사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입을 열었다.
“랑야, 돌아갈 생각은.”
〖네가 부탁한 일을 다 끝내지 못했는데 무슨 낯짝으로 미지 영역에 돌아가겠어?〗
그럴 줄 알았다.
윤사해가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랑야를 노려봤다. 랑야는 키득거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너무 걱정 마. 그 녀석을 계속 지켜보니 뭔가 보이기는 하더군.〗
“그래?”
〖응, 곧 구린 것을 캐내어서 네 앞에 고이 가져다줄 테니 너는 가만히 있기나 해.〗
“그게 가능하면 내가 이렇게 피곤하지 않겠지? 자네, 오는 길에 애들 만나고 왔지?”
〖어떻게 알았지?〗
“들뜬 기분이 아주 그대로 전해져서 알았지. 제발 감정 좀 조절해 달라니까! 자네 때문에 조울증 환자라도 된 것 같다고!”
〖조울증이 뭔지 모르겠지만, 감정 조절하기 힘들다면 이참에 약을 처방받아서 복용해 보는 건 어때? 그럼 나도 좋고, 너도 좋잖아.〗
“랑야!”
〖그냥 해 본 소리였어. 거참, 별것도 아닌 일로 화내기는.〗
랑야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윤사해는 와락 얼굴을 구겼다.
“로저 신부한테서 뭐를 봤지?”
〖딱히 뭐를 본 건 아니야. 하지만 주기적으로 모습을 감추더군.〗
“그럼 그 뒤를 밟으면 될 것을.”
〖그게 됐다면 네게 말해 줬겠지. 어디로 사라지는지 말이야.〗
하지만 그의 흔적을 도저히 쫓을 수 없었다며 랑야가 말했다.
그가 상대방의 흔적을 감지할 수 없을 때는 하나뿐이었다.
유랑단.
오직, 그곳에 속한 자만이 출입을 허락하는 곳.
“설마… 로저 신부가 유랑단과 관련이 있단 말인가……?”
〖그거야 아직 모르지.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기는 해.〗
“도대체 왜 로저 신부가 유랑단과 어울리는 거지?”
윤사해가 심각하게 물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나? 그리고 윤사해. 그 녀석이 유랑단 녀석들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일 뿐이야.〗
그러니까 자신이 증거를 물어 올 때까지 잠자코 있으라며 랑야가 윤사해의 찌푸려진 미간을 꾹꾹 눌렀다.
윤사해가 짜증이 난 얼굴로 자신의 미간을 꾹꾹 누르고 있는 랑야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니 자네는 어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주게.”
〖그리고 돌아가라고?〗
윤사해가 정답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에 랑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윤사해, 우리 서로 약조한 것을 잊은 건 아니겠지?〗
“망할, 잊은 줄 알았는데.”
〖하하, 우리 거주자의 기억력을 우습게 보지 말라고?〗
미지 영역의 거주자들의 기억력이 썩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그러고 싶지 않은 건 지우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랑야는 달랐다. 그는 자신의 부인과 제 딸아이와 관련된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억했다.
그리고 그건, 자신의 딸아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러리라.
그걸 잘 알고 있는 윤사해가 괜히 성을 냈다.
“빌어먹을! 알겠으니까, 어서 내가 부탁한 일이나 빨리 처리하도록 해! 그게 아니면 약조든 뭐든 그냥 깨뜨려 버리고 미지 영역으로 돌려 버리고 말 테니까!”
〖그럼, 내 얼굴은 이제 영영 못 보겠군.〗
“그리고 너는 네가 사랑해 마지않는 손주 녀석들을 보지 못하겠지.”
파지직, 인간과 미지 영역의 거주자 사이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망할 계약자 같으니라고. 네 녀석은 정말 재수 없어.〗
“칭찬 고맙군.”
윤사해가 할 말 다 했으면 그만 할 일 하러 떠나라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싹수머리 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그 점은 이 산의 주인 녀석을 꼭 닮은 것 아냐?〗
“알 게 뭔가? 어쨌든 할 말 끝났으면 어서 로저 신부의 뒤나 캐고 오게.”
〖네네, 알겠습니다. 명 받들죠. 친애하는 계약자님.〗
랑야가 비아냥거리고는 그의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한바탕 폭풍이 휘몰아치고 간 기분에 윤사해는 기진맥진한 얼굴로 책상에 널브러졌다.
그런 그에게 망부석처럼 조용히 있던 서차웅이 다가왔다.
“길드장님, 괜찮으십니까?”
“괜찮네. 오늘 처리할 업무는 이제 끝인가?”
“네, 끝입니다. 남은 업무는 OACD에 경호로 나간 길드원들이 무사히 끝내는 것뿐입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리고 그 말은 오랜만에 일찍 퇴근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렷다.
윤사해는 속으로 만세를 부르며 시계를 흘긋거렸다.
OACD의 모든 일정이 마무리됐을 시간.
곧, 길드원들을 이끌고 나갔던 길드 내 최고 연장자인 태운한테서 연락이 올 터. 윤사해는 초조하게 휴대폰을 바라봤다.
그때, 우웅,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태운이 아닌.
-아버지.
“리오? 내가 분명 임무 중에는 그렇게 부르지 말고…….”
-아, 잠깐만요! 어머니!
윤사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머니?’
난데없이 어머니라니? 윤리오한테 있어서 어머니란 단 한 명뿐.
-안녕, 자기야!
에일린 리의 명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사해가 골치 아프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꿈에도 모를 에일린 리가 재잘거렸다.
-자기, 내일 VIP들 경호하러 온다며? 그 VIP들 중에 나도 있는 거 알지?
“아니, 몰라.”
-알면서 모른 척하기는? 자기 혼자 와? 그건 아닌 것 같던데.
에일린 리의 옆에서 사랑해 마지않는 아들이 “최설윤 길드장님도 같이 경호를 서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들렸지만.
-자기야, 혼자 오는 거냐니까?
에일린 리는 아무래도 윤사해한테 직접 대답을 듣고 싶은 모양이었다.
결국, 윤사해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그래, 하지만 혼자는 아니야. 아래아의 최설윤 길드장과 함께 경호에 서게 될 거다.”
-그래? 그럼, 우리 내일 만날 수 있는 거네?
“아니.”
윤사해가 단호하게 말하고는 입을 열었다.
“VIP들끼리 회의가 끝나자마자 나는 빠질 거다. 어차피 AMO의 인력도 배치되어 있는데 삼엄하게 경호를 서는 것이 바보 같은 짓이지.”
-그래? 그럼 우리 자기 못 보는 거야? 아쉬워라, 우리 토끼 같은 자식들한테 선물 주려고 내가 엄청 준비했는데.
“선물? 무슨 선물?”
-나랑 볼 일 없는 사람한테 알려 주고 싶지 않아.
빌어먹을.
윤사해가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고는 말했다.
“내일 회의가 끝난 후 잠시 시간 좀 내지. 선물만 받을 거야. 이야기 나눌 생각 없어.”
-아무렴, 알지. 내가 우리 자기를 얼마나 오랫동안 봤는데 그걸 모를까 봐?
에일린 리가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고는 인사를 건넸다.
-그럼, 내일 봐.
내일을 기약하는 인사에, 윤사해는 얼굴을 찌푸렸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에일린 리에게 말린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