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화. 남은 감은 까치에게 준다더니(5)
까치.
전래 동화에 흔히 등장하는 이 새는 복(福)을 물어 준다고 했다.
하지만 내게는 전혀 아니었다.
내게 있어 까치는 불길함의 상징이었다. 그야, 그 새는 유랑단의 연락 수단으로 익히 등장하고는 했으니 말이지.
더군다나 김우재는 도하선의 빈자리를 채우게 된 역사 선생님이지 않나?
‘물론, 비나리 고등학교 측에서 엄선해 고른 사람이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게 없는 것이 바로 이 세상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수한 아이처럼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응?”
“선생님은 꿈이 뭐였어요?”
“꿈?”
“네.”
나는 방긋 웃고는 말했다.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었어요? 아님, 다른 꿈이 있었어요?”
“글쎄.”
김우재가 고개를 비스듬하게 기울었다가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기는 했어. 그랬다가 소방관이 되고 싶었고, 또 경찰관이 되고 싶었지.”
여느 아이들과 똑같았다.
다들 그러지 않는가? 어릴 적에는 선생님을 꿈꿨다가, 또 경찰을 꿈꿨다가 하는.
“어쨌든 그렇게 많은 꿈 중에서 하나를 이뤘으니 된 거 아닐까? 그러니까 너희도 다양하게 미래를 설계해 봐.”
“다양하게요?”
“그래, 미래란 알 수 없는 법이거든. 성장할수록 더더욱.”
김우재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던 그때.
“선생님! 저희가 이겼어요!”
단아를 앞세운 여자아이들이 결국 이기고 말았다.
“그래? 그럼, 짝피구로 결정됐네. 성운아, 리사야. 너희는 계속 쉬고 있을 거니?”
우리는 약속한 것도 아닌데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웃겨 나는 키득거리며 웃고는 말했다.
“저희는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다양하게 미래나 설계하고 있을게요. 그치, 성운아?”
“응? 으응.”
우리의 대화에 김우재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그러렴, 그게 너희에게 더 이득일 테니까.”
그 말이, 조언이 아니라 날이 서린 경고로 들린 것은 내 착각일까?
“김우재 선생님! 어서 와요!”
“그래, 빨리 갈게. 선생님이랑 짝할 친구는 누구니?”
“저요, 저!”
“아니요, 저요!”
김우재가 여학생들의 아우성을 진땀을 빼며 말렸다. 김우재와 짝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남학생중에서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조금 전에 경고로 들렸던 말은, 아무래도 내 착각이었던 것 같지?’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만큼 김우재는 아이들의 다툼을 화기애애하게 조율하고 있는 완벽한 ‘선생님’으로 보였었기에.
***
짝피구는 김우재 선생님의 팀이 승리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김우재 선생님과 짝을 먹은 사람이 바로 단아였기 때문이었다.
단아가 원해서 김우재와 짝이 된 건 아니었다.
아이들은 계속 서로 김우재와 짝이 하고 싶다 말썽이었고, 그는 결국 제비뽑기를 하게 됐다.
그렇게 김우재와 짝이 된 단아의 불꽃 슛에 반 친구들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야말로 폭군, 그 자체였지.”
나는 저세상에게 역사 수업 시간 때 있었던 일을 말해 주며 뿌듯하게 웃었다. 짝피구에 참가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 참. 도윤이는 우리보다 먼저 하교했다. 제인 아일리에게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지금쯤이면 배가 많이 불렀을 테니, 설마 출산 때문에 그런가?’
그렇다면 저녁에 한번 연락을 해봐야겠다. 도윤이에게 조카라니! 내 일이 아닌데도 너무 기뻤다.
그리고 단아는 여느 때와 똑같이 한태극이 보낸 수행 비서에 의해 심통이 난 얼굴로 하교를 했고.
‘우성운과 우신우도 오늘 우리보다 일찍 하교했지? 로저 에스테라가 일이 있다고 불렀다면서.’
그 일이 불길한 것일까 봐 걱정했지만, 나의 걱정에 우성운과 우신우는 웃으면서 말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윤리사. 네가 로저 신부님의 그… 뺨을 때린 이후로, 로저 신부님께서는 우리 안 괴롭히니까…….’
‘맞아, 오히려 엄청 잘 해 주시는 걸? 우리가 정말 친자식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야!’
그래도 사람의 본성이란 건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니, 뭐가 그리 웃긴지 키득거리며 제 갈 길을 떠난 두 사람이었다.
‘아니야, 바뀌어. 너랑 우리 사이가 바뀐 것처럼.’
‘우성운 말이 맞아, 윤리사.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가 필요한 일이 있어서 부른 걸 테니까.’
라는 말을 남기면서 말이다.
어쨌거나 오랜만에 저세상하고만 하교하는 길.
“너는 역사 시간에 뭐했어?”
“그냥 수업했는데.”
저세상이 뚱하게 말했다.
“정말? 우리는 날 좋다고 밖에서 놀았는데!”
“그래서 짜증 난 거 안 보여? 너희 반은 날 좋다고 수업 안 했으면서 우리는 수업 하다니!”
저세상이 씩씩거렸다.
“나도 축구 하고 싶었는데!”
“오, 뭐야. 너도 김우재 선생님 좋아해?”
“좋아하기는 무슨!”
저세상이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냥 수업 안 하고 노는 게 좋은 거거든? 그리고 나, 김우재 선생님 별로 안 좋아해. 별로 안 좋아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엄청나게 안 좋아해!”
누가 뭐라고 했나?
왜 저렇게 부정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심드렁하게 물었다.
“그래도 영어 시간에 놀았다며?”
“놀기는 뭘 놀아?”
저세상이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오직 수업 시간 때 영어로만 말하라는 게 뭐가 놀이야? 그냥 한글 배척 수업한 거지.”
한글 배척 수업이라니!
나는 그만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내가 골목이 떠나가라 웃음을 터트리자, 저세상이 당황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뭐야? 갑자기 왜 웃어?”
“아니, 너무 웃겨서.”
나는 눈꼬리 끝에 매달린 눈물을 닦아내고는 키득거렸다.
“그렇게 말하니까 윤설아 선생님이 꼭 매국노 같잖아.”
내 말에 저세상이 뜨끔한 얼굴로 말을 더듬거렸다.
“따, 딱히 그런 의도로 말한 거 아니야.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알지, 알아.”
나는 인자하게 웃으며 저세상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내가 우리 세상이 오빠의 마음을 모를까 봐?”
“너는 나 놀리거나 그럴 때만 꼭 ‘오빠’ 소리 붙이더라?”
저세상이 자신의 어깨에 걸쳐져 있는 내 팔을 매섭게 쳐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은근하게 물었다.
“계속 오빠라고 불러 줄까?”
“하지 마, 징그러워.”
저세상이 그렇게 말하고는 내 팔을 휙 잡아당겼다.
왜 그러나 했더니.
“우왓!”
내 앞에 웬 주황색 덩어리가 떨어졌다.
“뭐, 뭐야?”
“감이네.”
“감? 웬 감?”
그보다 저세상은 감이 떨어질 거라는 걸 어떻게 안 거지?
어리둥절한 얼굴로 멍하니 두 눈을 데굴 굴리는데 저세상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여기 마당에서 감나무라도 기르고 있던 모양인데?”
저세상이 위를 보라면서 고개를 까닥거렸다. 저세상의 고갯짓에 위를 보니 정말 감이 튼실하게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었다.
“우와, 진짜 감이네. 떨어진 거 주워 갈까? 리오 오빠랑 리타 오빠, 감 좋아하잖아.”
“더럽게 땅에 떨어진 걸 왜 주워? 주울 생각은 하지도 마!”
“그럼, 서리는?”
“서리는 무슨 서리야!”
저세상이 빼액 소리 질렀다.
나는 괜히 불퉁해져 입술을 삐죽하게 내었다. 그런 나를 보고 저세상이 말했다.
“가는 길에 사 가는 건 몰라도.”
“좋아! 물론, 돈은 세상이 오빠가 내는 거겠지?”
“뭐?”
“원래 말을 꺼낸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하잖아. 안 그래?”
나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저세상에게 물었다. 저세상은 못 당하겠다는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그래, 내가 낼게. 낸다, 내!”
그래야 평화로운 하교길이 이뤄질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건 정답이었다.
역시, 저세상.
『각성, 그 후』의 주인공답게 눈치 한 번 빠르지.
“그런데 저렇게 튼실하게 열렸는데 왜 안 따지? 못 먹는 것들인가?”
“그건 아닐걸?”
저세상이 어깨를 으쓱였다.
“까치 주려고 남겨 뒀나 보지.”
“까치…….”
나는 저세상이 내뱉은 새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었는지 몰라도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와 감을 쪼아 먹기 시작했다.
정말 가을이 됐구나 싶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세상, 있잖아.”
저세상이 말해보라는 듯 나를 쳐다봤다.
나는 가방끈을 꼭 쥐며 말했다.
“나는 까치가 싫어.”
저세상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래.”
왜 그 역시 까치를 싫어하는지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유랑단의 탈들 곁에는 까치가 함께인 경우가 많았으니까. 어린 날, 선비가 까치를 시켜 내게 길을 알려주지도 않았던가?
지난 일이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도 까치가 싫었다.
문득, 김우재의 어깨 위에 앉아 있던 까치가 떠올랐다. 그 새는, 짝피구가 시작되자마자 날아가 버렸지만.
‘그래도 싫었지?’
싫었다기보다는 거북했다.
유랑단과 얽혔던 수많은 일이 절로 기억나게끔 해서.
나를 죽이고자 했던 탈과 지키고자 했던 탈, 끝내 져 버리고 만 탈.
그들의 얼굴도, 목소리도 이제 흐릿해졌는데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이 지끈거려서 말이다.
“윤리사, 그만 가자.”
“응? 응.”
나는 저세상을 뒤따라가며 뒤를 흘긋거렸다. 감을 쪼아먹고 있던 까치는 진작 날아가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