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화. 남은 감은 까치에게 준다더니(2)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완전히 고개를 든 날, 우성운과 우신우가 드디어 퇴원했다.
“야, 우성운! 괜찮냐?!”
“으, 응!”
우성운이 단아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우물쭈물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에 도윤이가 걱정스럽게 우성운에게 물었다.
“병원에서는 왜 이렇게 치료가 늦은 거래? 우리는 곧바로 몸을 회복했었잖아.”
“그게, 병원도 모른대.”
“뭐? 그 병원에 돌팔이들밖에 없는 거 아니야?”
단아야, 그 병원 우리 이매망량과 협력 관계에 있는 곳인데…….
나는 굳이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우신우는 좀 어때? 괜찮아?”
“신우는 아직 많이 아파.”
“그런데도 퇴원을 했다고?”
나는 놀라 물었다. 그에 우성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혼자 있기 싫다면서 같이 퇴원하고 싶다고 했어.”
“누구한테? 그 로저인가 뭔가 하는 신부한테?”
우성운이 단아의 말에 내 눈치를 살피며 입술을 우물거렸다. 단아가 정확하게 답을 내놓은 모양이었다.
“성운아, 잠깐만 나 좀 보자.”
“응? 으, 응.”
우성운이 다행히도 아무 말 없이 나를 따라왔다.
단아가 함께 가자고 말했지만, 나는 정중히 거절하고는 인적 드문 곳으로 우성운을 데리고 왔다.
나는 주변에 인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곧장 그에게 물었다.
“그날 이후에 로저 새끼가 너희 때리거나 그러지 않았지?”
“로저 신부님께 ‘새끼’라니!”
우성운이 경악했다. 나는 와락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로저 시발 새끼라고 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
“조, 조금 전에 했잖아.”
“어쨌든!”
나는 우성운을 다그치며 다시금 물었다.
“너희 때리거나 그러지 않았지?”
“응…….”
우성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 잘해 주셨어. 그리고 퇴원한 후에 기도 시간 같은 거 가지지 않았어! 이제 우리한테 엄청 잘해 주셔! 정말로!”
“기도라면 ‘고해성사’인가 하는 그거 맞지?”
“응, 맞아.”
우성운이 밝게 말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로저 에스테라가 도대체 왜 우성운과 우신우에게 고해성사를 하게끔 했는지 모른다.
두 사람이 그에게 고해성사를 할 만큼의 잘못을 저지른 거였다면 몰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건 아니겠지.’
암만 잘못을 저질러도 친구와 싸웠거나 그런 정도의 잘못일 텐데, 그것가지고 고해성사를 요구한다?
‘다정하게 타이르는 거라면 몰라, 고해성사라니.’
분명 그것을 시킨 꿍꿍이가 있을 터. 더욱이 우성운과 우신우의 몸 곳곳에 있던 흉터들.
나는 하루밖에 즐기지 못했던 여름 방학의 여행을 떠올리고는 입을 열었다.
“성운아.”
“응?”
“우리는 이제 친구야. 네가 암만 어릴 적에 나한테 엄마가 없다니 뭐니 그런 소리를 했어도 단아나 도윤이와 똑같이 소중한 친구라고.”
어릴 적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우성운이 두 뺨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우성운의 손을 꼭 잡고는 말했다.
“로저 새끼가 또 너희한테 폭력을 휘두르거나 그러면 나한테 말해.”
“너, 너한테 말하면……?”
뭔가 달라지는 것이 있냐는 듯한 질문에 나는 짓궂게 웃으며 그에게 되물었다.
“우리 아빠가 누구인지 잊었어?”
“그래도 로저 신부님인데…….”
“그 새끼보다 우리 아빠가 훨씬 더 셀 걸?”
사회에 미치는 파급력이야, 약자를 수호하고 배려하는 ‘가호(加護)’에 조금 못 미치겠지만, 가지고 있는 힘은 이매망량이 우세했다.
‘압도적으로 말이지.’
내 말에 우성운이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좋아, 이제 교실로 갈까?”
“자, 잠깐만!”
우성운이 다급히 나를 붙잡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한테 말하면 로저 신부님한테서 벗어날 수 있는 거야?”
나를 붙잡은 손길이 파들파들 떨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교복의 옷자락을 붙잡은 그의 상처투성이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는 말했다.
“응, 안 된다고 해도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그렇게 벗어나면?”
“응?”
“나랑 신우가 갈 곳이 있어?”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얼빠진 채로 있지 않았다.
“응, 있어.”
곧장 단호하게 대답하며.
“어디?”
“우리 집.”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도 저세상이랑 똑같이 우리 집에 눌러 살아. 기꺼이 가족으로 받아들여 줄 테니까.”
우성운이 멍하니 입술을 벌렸다. 나는 그런 그를 향해 키득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한 짓이 있으니까 눈칫밥 먹을 각오는 하는 게 좋을 거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우성운과 우신우가 우리 집에 들어온다? 윤리오와 윤리타가 각자의 무기를 들고 기꺼이 두 사람을 환영할 터였다.
우성운은 내 대답에 멍하니 입술을 살짝 벌리다가 이내 대답했다.
“응!”
밝기 그지없는 대답이었다.
“좋아, 이제 진짜 교실에 가자. 곧 조례 시간이야.”
“응, 알겠어!”
우성운이 밝은 얼굴로 고개를 한껏 끄덕였다. 비나리 고등학교에서 다시 만난 이후로 처음 본 그의 가장 환한 웃음이었다.
나는 그렇게 우성운과 함께 교실로 돌아갔다.
교실에 돌아가자마자 단아가 단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했냐는 둥의 추궁을 받았지만…….
“비밀!”
“윤리사, 너무해! 나한테 비밀을 만들다니!”
단아가 변했다면서 우는 소리를 냈지만 말해 줄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우성운과 단 둘만의 비밀 아닌 비밀을 만들고 말았다.
***
윤리사가 악연을 인연으로 만들어 가고 있을 때.
“할미에게 들었단다. 그 두 아이를 괴롭히지 마라 했다며?”
“네, 수장님.”
로저 에스테라는 유랑단의 수장을 만나는 중이었다.
하늘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곳.
유랑단의 수장을 위해 선비가 특별히 만든 공간에서 로저 에스테라는 그인지 그녀인지 모를 수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유랑단의 수장이 술잔을 기울이며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로저 에스테라에게 물었다.
“그 두 아이를 철저하게 사회로부터 고립시켜 달라고 그리 부탁하더니, 왜 마음을 바꿨는지 물어봐도 되겠느냐?”
“당연히 더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그랬지요.”
로저 에스테라가 싱긋 웃고는 입을 열었다.
“수장님께서는 인간이 힘없이 무너지는 때가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일어날 기력도, 생각도 없을 정도로 완전히 무너지는 때 말입니다.”
“흐음, 글쎄.”
유랑단의 수장이 아래턱을 어루만지며 먼 옛날을 떠올렸다.
“내 오랜 친우였던 녀석은 자식과 다름없던 아이를 나의 손에 잃었을 때 그랬던 것 같은데…….”
목소리의 끝을 흐렸던 수장이 곧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그 녀석은 좌절한 채로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나 내 목을 베어 버렸던 전적이 있으니 논외로 치자꾸나.”
“그러지요.”
로저 에스테라가 싱긋 웃고는 말을 이었다.
“수장님, 저는 말입니다. 믿었던 이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도리어 그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힐 때가 인간이 가장 손쉽게 무너지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에 유랑단의 수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자라면 이해가 가나, 후자는 이해가 가지 않는구나.”
예상했던 대답이었던지라 로저 에스테라가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십시오, 수장님. 보잘것없는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준 친구가 죽을 만큼의 상처를 입게 됐는데, 그것이 자신으로 인해 입은 상처라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그 상처를, 또한 되돌릴 수 없게 된다면?”
로저 에스테라가 상상만 해도 즐겁다는 듯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평범한 인간은 좌절하겠지요, 그리고 그 두 아이는 평범한 인간이랍니다. 아, 각성자인 건 논외로 치도록 하지요.”
유랑단의 수장은 즐겁다는 듯이 말하는 로저 에스테라의 목소리에 살포시 미간을 좁히고는 입을 열었다.
“흐음, 그래도 그것만으로 말을 바꾼 것은 아니겠지?”
“물론입니다.”
로저 에스테라의 입가에 환한 웃음이 걸렸다.
“우성운과 우신우.”
로저 에스테라가 오랫동안 찾아 헤매다가 결국 손에 넣은 두 사람의 이름을 내뱉으며.
“제가 찾은 거주자의 후손 중, 누가 더 짙은 피를 타고났는지 알아냈답니다.”
광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호오?”
유랑단의 수장이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그리며 그에게 물었다.
“그게 누구인지 물어봐도 되겠느냐? 궁금하구나.”
“당연히 말해 드릴 수 있지요.”
로저 에스테라가 눈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같은 목표를 향해 잡은 손이지 않나?
로저 에스테라는 기꺼이 유랑단의 수장에게 우성운과 우신우 중, 누가 더 거주자의 피를 짙게 타고났는지 알려 줬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유랑단의 수장이 미소를 그렸다.
“그렇구나, 그래.”
유랑단의 수장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럼, 나머지 한 명은 곧 필요가 없어지겠구나?”
“네.”
로저 에스테라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머지않아, 그 아이 앞에서 제거해 버릴 생각입니다. 그럼, 더더욱 절망할 테고.”
“그 아이의 선조 되는 신 녀석은 더욱 분노할 테지.”
“제가 하고 싶은 말이 그 말이랍니다, 수장님.”
로저 에스테라가 웃는 낯으로 수장의 빈 잔에 술을 따랐다.
선비가 신경 써서 만든 수장만의 공간, 그곳에는 벚꽃나무가 있었다. 바람이 불어 올 리가 없는데 벚꽃나무가 흔들렸다.
수장은 떨어진 벚꽃 잎이 잔에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보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인간성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눈앞의 미치광이 인간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