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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276)화 (276/500)

276화. 장맛비가 지나간 후에(5)

붉게 뜬 시스템 창에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알 수 없는 오류라니? 그게 뭔데? 의문을 가질 새도 없이 유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 하하, 아하하!”

로저 에스테라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광기 섞인 그 웃음소리에 나도 모르게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로저 에스테라는 내게 얻어맞은 뺨을 문지르며 입꼬리를 올렸다.

“친애하는 형제님과 똑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성격까지 이렇게 닮을 줄은 몰랐습니다.”

나를 훑어보는 붉은 눈이 소름 끼칠 정도로 오싹했다.

지금까지 붉은 눈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이제껏 많이 만나봤지만, 이런 식으로 오싹한 감정을 느껴보는 건 처음이었다.

어쨌거나 로저 에스테라는 내게서 몸을 돌려.

“성운 군, 신우 군.”

우성운과 우신우에게 다가가 사과했다.

“아팠지요? 미안합니다.”

우성운과 우신우는 금붕어처럼 입술을 달싹이다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아니, 내 눈치는 왜 살펴?! 다시는 그러지 말아 달라고 자신의 주장을 명확하게 펼쳐야지!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하기도 전에 로저 에스테라가 물었다.

“자, 됐습니까?”

기특하게 잘했다면서 칭찬이라도 해 달라는 목소리였다.

어처구니가 없어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는 찰나.

“로저 에스테라, 여기 있나?”

윤사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사해가 병실 문을 드르륵 열고는 놀란 얼굴을 보였다.

“리사?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니? 세상이는 어쩌고?”

“아, 아빠.”

나는 잠시 당황했다가 곧 변명거리를 생각해냈다.

“리오 오빠랑 리타 오빠가 저세상 엄청 걱정한 것 같아서 잠시 친구들 보러 왔어. 그러는 아빠는?”

“나는 저치와 볼 일이 있어서 왔단다. 그런데 로저 에스테라, 자네 뺨이 왜 그런가?”

“제 뺨이요?”

로저 에스테라가 내게 얻어맞은 뺨을 어루만지고는 싱긋 웃었다.

“제게 관심을 가질 줄이야. 이것 참, 사랑해 마지않는 저의 신께서 기뻐하시겠군요.”

“헛소리를.”

윤사해가 불쾌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고는 내게 말했다.

“리사, 친구들이랑 이야기 끝나면 세상이한테 가렴.”

“으, 응.”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로저 에스테라, 자네는 나와 이야기 좀 나누도록 하지.”

“기꺼이 그러지요.”

그렇게 윤사해가 로저 에스테라와 함께 병실을 나간 후, 손바닥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로저 에스테라에게 스킬이 통하지 않았어.’

아니, 애초에 사용이 불가능한 존재라고 떴다.

【알 수 없는 오류로 인해, 대상에게 스킬을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눈앞에 떴던 불길하기 짝이 없는 시스템 창을 떠올리며 꿀꺽 침을 삼켰다.

‘알 수 없는 오류란 게 도대체 뭐지? 저 인간, 정말 로저 에스테라가 맞는 거야?’

그렇게 의문이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질 때.

“야! 윤리사! 너 미쳤어?!”

“로저 신부님을 그렇게 때리면 어떻게 해?! 그것도 뺨을 때리다니!”

우신우와 우성운이 나란히 소리를 빼액 질렀다.

“그러다 로저 신부님이……!”

우성운이 말을 하다 말고 멈췄다.

나는 심드렁하게 보고 있던 손바닥을 탈탈 털어내며 무심하게 물었다.

“로저 에스테라가 뭐?”

우성운과 우신우가 나란히 입을 다물었다.

“너희, 그 새끼가 잠잘 곳도 주고 먹을 것도 줘서 그러나 본데.”

나는 와락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암만 그래도 로저 에스테라, 그 새끼가 너희 몸을 함부로 대할 권리는 없어.”

부모가 제 자식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 그치만.”

우성운이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우리는 죄인이라고. 그러니까 잘못한 일은 벌을 받아야 한다고.”

“누가 그래?”

우성운이 입을 다물었다.

“로저 에스테라가 그래?”

우성운이 흠칫 몸을 떨었다. 우신우도 겁에 질린 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험악하게 얼굴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헛소리하지 말라고 그래. 아니, 개소리하지 말라고 그래! 너희가 왜 죄인이야?”

“그, 그건.”

우성운이 말을 더듬다가 할 말이 없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를 터트리고는 입을 열었다.

“이유도 말해 주지 않으면서 죄인이래? 약자를 가장 생각해 주고 배려해 주는 곳이 바로 ‘가호(加護)’라더니, 헛소문이었나 보네.”

안 그래도 구겨졌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어쨌거나 나는 말했다.

“잘 들어, 우성운. 그리고 우신우.”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너희는 죄인 맞아. 나랑 저세상한테 한 짓거리를 보면 죄를 지은 거지. 그런데 그 죄가 용서받지 못할 그런 건 아니야. 애초에 나도 저세상도 그때의 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어.”

그야, 우리의 뒤를 윤사해가 든든하게 받쳐 주고 있으니 그랬다.

그러지 않았다면 아파 큰 상처를 입고, 저 두 사람을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저세상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로저 에스테라. 그 빌어먹을 새끼가 한 번만 더 너희를 함부로 대하면 똑똑하게 말해.”

나는 우성운과 우신우를 향해 검지를 치켜들며 두 사람의 귀에 때려 박듯이 말을 쏟아냈다.

“너희는 죄인이 아니라고. 애들 뺨이나 때리는 시원찮을 신부 새끼보다는 나은 놈들이라고! 알겠어?”

우성운과 우신우가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에 나는 만족하며 웃었다.

“그럼, 나는 이만. 두 사람 다 몸조리 잘해.”

나는 그렇게 우성운과 우신우의 병실을 나갔다.

하지만.

“이런, 시바 새끼.”

우성운과 우신우의 병실 문을 닫자마자 욕설이 절로 튀어나왔다.

로저 에스테라, 그에게 왜 스킬이 통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빌어먹을 신부 새끼는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새끼였다.

‘일단, 진정하자.’

로저 신부가 우성운과 우신우를 어떤 식으로 대하고 있는지 확실치는 않다.

하지만 학대하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

‘나중에 상황이 진정되면 아빠한테 말해 보자. 아님.’

진짜 무작정 우리 최애님을 만나러 가거나.

나는 그리 생각하며 저세상의 병실로 향했다.

단아와 도윤이에게 들르고 싶었지만, 둘 모두 한태극과 시준이 삼촌한테 간호를 받는 중이라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들어선 저세상의 병실.

“리오 오빠랑 리타 오빠는?”

윤리오와 윤리타가 보이지 않았다.

내 질문에 저세상이 말했다.

“아저씨랑 의사 선생님 만나러 갔어. 내가 왜 이렇게 됐고 언제 퇴원할 수 있는지, 퇴원이 가능은 한 건지 물어보러 간대.”

아이고, 저세상의 담당 주치의 선생님께서는 불쌍하기도 하지. 윤사해한테 그렇게 시달리더니, 이제 그 아들들에게 시달리게 됐네.

조용히 의사 선생님의 명복을 빌어 주는데 저세상이 내게 물었다.

“너는 어디 갔다가 왔어?”

내가 사라졌던 걸 알았나 보다.

“밖에 좀 돌아다니고 왔지. 그보다 몸은 좀 어때?”

“빨리도 물어보네.”

저세상이 픽 웃고는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퇴원시켜 달라고 할 정도로 많이 좋아졌어.”

“거짓말하시네.”

아직 얼굴이 희게 질린 채로 식은땀을 뚝뚝 흘리면서. 나는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뭐야, 갑자기 왜 손을 잡아?”

“우리, 어릴 적에 손 많이 잡았었잖아. 기억 안 나?”

“안 나거든?!”

저세상의 손을 잡았다.

나보다 두 마디는 훨씬 더 길어진, 아니. 커진 그의 손을 말이다. 나는 저세상이 질색하든 말든 그의 손을 꼭 잡으며 입을 열었다.

“있잖아, 나 조금 전에 엄청 이상한 경험하고 왔다?”

“무슨 경험?”

“그냥…….”

로저 에스테라에게 아무 저항도 않고 학대 받고 있는 우성운과 우신우를 봤다면 주인공인 네가 했을 말을 내가 했다는 것.

“윤리사?”

“아니야, 아무것도. 생각해 보니 별거 아닌 경험이었어.”

주인공이 네가 겪었다면, 별것 없는 경험이었을 거다.

나는 괜히 저세상의 손을 꼭 쥐며 배시시 웃었다. 저세상은 그런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두 뺨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뭐야? 실없게.”

그러면서 내 손을 놓지 않는 저세상이었다.

후두둑, 병원에 오기 전부터 내리던 뒤늦은 장맛비의 빗소리가 조금씩 수그러들었다.

곧, 늦여름의 장맛비가 그치고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와 저세상은 그때까지 두 손을 꽉 쥐었다.

세상이 멸망해도 놓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참 안심이 됐다.

이상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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