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 장맛비가 지나간 후에(3)
나는 밖으로 나가 류화홍을 다급하게 불렀다.
“화홍이 오빠! 2층으로 올라와!”
그렇게 말하자마자 류화홍이 2층의 복도에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류화홍은 열린 방으로 들어간 후.
“아이고! 세상아!”
죽어가고 있는 저세상을 보고는 어쩜 좋냐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저세상 말고 다른 애들도 봐봐.”
“헉, 왜 이래요?”
“몰라, 식중독이나 뭐 그런 거에 걸린 것 같은데?”
내 말에 류화홍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아가씨는 왜 멀쩡하세요?”
“나도 아팠으면 좋겠어?”
“설마요!”
류화홍이 화들짝 놀라고는 말했다.
“약은 먹였어요?”
“아니, 못 먹겠대.”
“그럼, 어쩔 수 없죠. 애들 한 명씩 바로 병원으로 이동시킬게요.”
“지금 이 시간에 문 연 병원 있어? 없지 않아?”
“당연히 없죠.”
류화홍이 저세상을 제일 먼저 부축하고는 말했다.
“이매망량이랑 협력 관계인 병원에 데리고 갈 거예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류화홍이 그 말을 끝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모습에 아이들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방금 전에 그 사람… 이매망량의 이동계 S급 각성자지……?”
“응, 맞아. 잘 아네?”
“신우가 이매망량에 관심이 많이 있꺼든…….”
“우성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우성운이 그렇게 말하고는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곧 류화홍이 다시 돌아왔다.
“다음은 누구 옮길까요?”
“제일 아파 보이는 사람부터.”
“그럼, 도윤이 먼저 옮길게요. 얘, 도윤이 맞죠? 백시진 님 조카.”
“응, 맞아.”
류화홍이 내 대답에 맞춰 도윤이를 데리고 곧장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그는 우성운과 우신우를 차례대로 병원에 데려다준 후.
“아! 단아! 단아도 옮겨 줘!”
단아를 마지막으로 병원에 옮겨다 줬다.
정말로 다사다난한 밤이었다.
***
병원에 도착한 직후, 저세상을 비롯한 아이들은 모두 검사에 들어갔다. 나는.
“리사! 리사야!”
“아빠!”
할 일 없이 윤사해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윤사해에게 달려갔다.
윤사해가 놀란 얼굴로 내 몸을 살피며 물었다.
“괜찮니? 다친 곳은?”
“없어! 애들 다 다친 곳 없고 멀쩡해! 그냥 배가 아프다니, 머리가 아프다니 끙끙 앓고 있을 뿐이지.”
“리사, 너는?”
“나는 괜찮다니까?”
암만 그렇게 말해도 윤사해는 몇 번이고 내게 답을 들은 후에야 안심했다.
“길드장님, 저 이제 가도 되죠? 저도 한 집안의 가장이랍니다.”
“아, 그래. 류화홍 헌터. 수고했네. 이만 가 보게.”
류화홍이 윤사해의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윤사해를 찾으러 갔으나, 던전 공략에 들어가 있어 우리가 아프다는 말만 전했다고 했었다.
그러니까 윤사해는 지금.
“아빠 몸에서 피 냄새 나.”
“아아, 미안해. 던전 공략 끝나자마자 바로 달려온 거라. 바로 벗을게.”
“잠깐만!”
아니 내가 암만 피냄새가 난다고 해도 그렇지! 옷을 여기서 홀라당 벗으려고 하면 어쩝니까, 아버지!
물론, 그래 주신다면야 제 눈이 무척 즐겁지만 여긴 공공장소라고요!
나는 황급히 윤사해를 말렸다.
“사해야! 우리 도윤이는?!”
“이봐, 윤사해 길드장! 우리 단아 어디 있나!”
시준이 삼촌과 한태극 의원이 도착한 건 그때였다.
“시준이 아저씨! 한태극 의원님!”
나는 두 사람을 반갑게 불렀다. 시준이 삼촌이 나를 보고는 인사했다.
“리사야, 안녕?”
“안녕하세요.”
“안녕이고 자시고 우리 손녀는! 우리 단아 지금 어디 있나?!”
한태극이 다급하게 물었다.
“아, 단아라면…….”
“1507호, VIP 병실에 입원시켜 둔 상태입니다. 제 이름 대면 바로 보러 갈 수 있을 겁니다.”
윤사해의 말에 한태극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쌩 사라졌다. 그의 보좌관들이 ‘대표님!’하고 뒤따라갔다.
“사해야, 우리 도윤이는?”
“바로 그 옆 병실.”
“고마워. 리사야, 나중에 제대로 인사 나누자.”
“네!”
나는 다급히 달려가는 시준이 삼촌의 뒤를 향해 밝게 인사했다. 그것이 윤사해는 못마땅했나 보다.
“리사.”
“응, 아빠.”
“저런 놈과 인사 나눌 필요 없으니까 우리도 세상이 보러 가자꾸나.”
“응!”
나는 고개를 한껏 끄덕였다. 윤사해가 그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서차웅에게 물었다.
“서 비서, 애들 보호자 다 왔나?”
“아니요, 아직입니다.”
서차웅이 안경을 치켜올리고는 입을 열었다.
“우성운 군과 우신우 군의 보호자인 로저 에스테라 신부님께서 아직 도착하지 않으셨습니다.”
윤사해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 망할 신부에게 한 번 더 연락 넣어보도록 하게.”
“네, 알겠습니다.”
서차웅이 고개를 끄덕였고, 윤사해는 내 어깨에 손을 얹은 후 말했다.
“그럼, 우리는 세상이 보러 가자꾸나.”
“응, 아빠!”
나는 밝게 웃으며 윤사해와 함께 저세상을 찾아갔다.
***
저세상을 비롯한 아이들은 모두 이매망량과 협력 관계인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치료비는 모두 이매망량이 부담.
한 가지 문제인 점은.
“병명을 모르겠다?”
“네, 그게, 증상으로 보면 식중독에 걸린 것 같은데…….”
“그런데?”
“그게, 식중독과는 다른 병인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 병의 이름은?”
“과, 관련 논문이나 다른 전문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얼마나?”
윤사해가 저세상의 담당 주치의의 말을 끊고는 물었다.
“내가 얼마나 더 기다려줘야 하는 거지?”
분에 찬 목소리에 저세상의 담당 주치의가 겁에 질린 듯 꿀꺽 침을 삼켰다.
아이고, 이러다 사람 잡겠네.
나는 괜히 울상을 지으며 윤사해의 손을 잡았다.
“아빠, 이러다 세상이 오빠 깨겠어. 밖에 나가자.”
“아, 그래.”
윤사해가 급히 저세상을 살피고는 나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는 그제야 진정이 된 얼굴로 저세상의 담당 주치의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 후.
“후우, 미안하구나. 아빠가 못난 꼴을 보였어.”
윤사해는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내게 사과했다. 그 사과에 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빠. 하나도 안 못났어!”
지금 VIP 병동에서 가장 소란을 피우고 있는 사람은 한태극이었다.
“원인을 모르겠다니! 병명을 모르겠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이봐, 보좌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 좀 불러오게!”
“네? 네, 알겠습니다!”
허둥거리는 보좌관의 모습에 윤사해가 짧게 혀를 차고는 한태극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대표님.”
참고로, 한태극은 다음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대한애국당의 당대표였다.
“의원님, 진정하시죠. 병원 관계자들이 곧 손녀분을 치료해 줄 겁니다.”
“장담할 수 있나?!”
“네, 장담하겠습니다. 그런 것도 못 하는 수준에서 우리와 협력 관계를 맺고 있었다니. 원인은 몰라도, 병명은 알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윤사해가 싱긋 웃었다.
그가 그린 미소를 본 병원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꿀꺽 침을 삼켰다. 새삼스레 그들이 안쓰러워졌다.
‘다들 힘내시기를.’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를 해 주고는 어른들 사이의 대화에서 몰래 빠져나왔다.
그렇게 향한 곳은 저세상이 누워 있는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야, 저세상. 괜찮아?”
“괜찮아 보여?”
잠들어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나는 놀란 것도 잠시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많이 괜찮아진 것 같기는 한데?”
수액이나 뭐 이것저것 주사를 맞아서 그런지 저세상의 상태는 꽤 호전된 것처럼 보였다.
나는 하룻밤 사이에 핼쑥해진 저세상의 뺨을 꾹꾹 누르며 물었다.
“뭐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아?”
“몰라. 아마도 수박?”
“이유는?”
“우신우의 말대로, 백도윤이 구운 고기 때문에 이렇게 된 거라면 너도 아파야 하니까.”
“그렇기는 하네. 그런데 수박 잘못 먹었다고 보통 이렇게 아파? 그리고 애초에 수박이 상할 수가 있나?”
그것도 손으로 두드리면 통통, 맑은 소리가 울리던 수박이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
내 말에 저세상은 짜증스럽게 얼굴을 찌푸렸다.
“내가 어떻게 알아? 그보다 아프니까 그만 말 시켜.”
“싫은데에.”
“그럼, 옆에서 계속 재잘거려. 자장가 삼아서 좀 자게.”
자장가라.
나는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엄마가 섬그늘에…….”
기껏 노래를 불러 주려는데 저세상이 뾰족하게 물었다.
“뭐하는 거야?”
“자장가 불러 달라며?”
“내가 언제?”
“옆에서 계속 떠들어 달라며. 자장가 삼아서 자겠다고. 그러니까 자장가 불러 주는 건데?”
저세상이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곧, 통증이 올라오는지 얼굴을 찌푸렸지마는.
저세상이 끄응, 앓는 소리를 내고는 말했다.
“윤리사, 너 진짜 특이해.”
“너한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거든? 그러니까 어서 자기나 해.”
나는 뚱한 목소리로 다시 자장가를 이어갔다.
저세상은 내가 불러 주는 자장가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다가 곧 새근새근 잠들었다.
나참, 자는 얼굴은 언제 봐도 천사 같다니까?
나는 잠든 주인공의 얼굴을 빤히 구경하며 윤사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드르륵, 병실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