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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272)화 (272/500)

272화. 장맛비가 지나간 후에(1)

-우성운이랑 우신우에 대해 조사 좀 해 줄 수 있을까? 로저 에스테라, 그 신부님에 대해서도 알아봐 줘.

딸아이의 말에 윤사해는 당황스러웠다. 로저 에스테라. 그자의 이름이 도대체 왜 딸아이의 입에서 왜 나온단 말인가?

하지만 윤사해는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아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아이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응? 그래, 알겠단다.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주렴.”

-응! 고마워! 

딸아이의 밝은 목소리에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그렇게 윤리사와의 전화를 끊은 후, 윤사해는 딸아이가 부탁한 일을 생각했다.

먼저 우성운과 우신우.

그 두 사람이야 윤사해도 잘 알고 있는 이름들이었다.

그야, 윤리사와 저세상을 괴롭혔던 아이들 아닌가?

더욱이.

‘그 부모들 때문에 DMO가 한번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지.’

그때 금이현이 본부장직을 사퇴하겠다면서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고 들었었다.

그리고 마지막.

‘로저 에스테라.’

윤사해가 미간을 좁혔다.

가호(加護)의 주인인 그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던 남자였다.

하지만 그런 감정과는 별개로 딸아이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로저 에스테라를 왜 조사해 달라고 하는 거지?’

어쨌든 간에 딸아이에게 조사를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딸아이와의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하는 것이었다.

“서 비서.”

“네, 길드장님.”

“로저 에스테라에 대해 조사해 줄 수 있나? 그가 AMO로부터 맡은 일이나 그 외, 개인적으로 처리한 일들 모두.”

“알겠습니다.”

서차웅이 고개를 꾸벅였다.

“잠깐.”

로저 에스테라라면 자신의 길드원들이 제 뒤를 쫓는 것을 분명히 알아차릴 터.

“랑야에게 맡기도록 하지.”

이런 일에 인간이 굳이 나설 필요가 있나?

윤사해는 랑야를 불렀고, 그는 곧장 윤사해의 소환에 응했다.

〖무슨 일이지? 우리 손주 녀석들이 벌써 말이라도 뗐나? 그건 아닌 것 같았는데?〗

나오자마자 손주들부터 찾는 모양새라니.

팔불출 같은 모습에 윤사해가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말했다.

“언제는 사야가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굴더니. 아주 변했군그래?”

〖그거야, 사위 놈이 류화홍 그 자식이라서 그랬던 거고. 그래서 왜 부른 거야?〗

“부탁 좀 하지.”

〖무슨 부탁?〗

랑야가 관심 없는 투로 물었다.

“로저 에스테라. 누구인지 알지?”

〖당연히 알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윤사해의 말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랑야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 녀석, 우리들 사이에서 아주 유명해. 미지 영역의 거주자들을 ‘신(神)’으로 아주 떠받들며 광적으로 기도하는 미친놈이니까.〗

그들 중 여전히 자신들을 그런 존재로 생각하는 녀석들은 아주 좋아한다면서 랑야가 물었다.

〖그래서 그 자식은 왜?〗

“뒤 좀 캐 주게.”

〖얼마나?〗

“구린 것이 나올 때까지.”

〖흐음.〗

랑야가 고민하는 듯하더니 윤사해에게 물었다.

〖그 자식의 구린 것을 너한테 캐 주면, 너는 나한테 뭘 해 줄 건데?〗

“한 달 동안 바깥에 나와 있는 걸 허락해 주도록 하지.”

〖한 달 하고도 보름.〗

“한 달.”

〖아님, 두 달.〗

“빌어먹을.”

윤사해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랑야를 향해 외쳤다.

“한 달 하고도 보름 동안 바깥에 나와 있게 해 줄 테니 어서 움직이기나 해!”

〖어련히 그래야지.〗

랑야가 키득거리며 웃고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윤사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길드장님, 괜찮으십니까?”

“괜찮네.”

윤사해가 서차웅의 걱정에 별것 아니라는 듯, 손을 휘휘 젓고는 입을 열었다.

“애들 잘 놀고 있는지 물어보게.”

딸아이의 말대로, 윤사해는 강원도의 별장 주변에 이매망량의 길드원들 몇을 배치해 둔 상태였다.

혹시 모를 위협 때문이었다.

서차웅은 알겠다면서 고개를 끄덕인 후 윤사해의 집무실을 나갔다.

달칵, 닫힌 문에 윤사해는 커다란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왜인지, 이번에는 딸아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어렴풋하게 들었다.

***

윤사해와 전화를 끝내자마자.

“윤리사! 야! 너는 아저씨한테 왜 쓸데없는 걸 부탁해서 곤란하게 만들어?”

저세상은 내게 버럭 소리 질렀다.

저렇게 나올 줄 알았던지라 나는 뚱하게 말했다.

“그렇게 곤란한 목소리는 아니었는걸? 그리고 너도 들었잖아! 아빠가 흔쾌히 내 부탁 들어준다고 한 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세상이 생각이 있는 거냐면서 잔소리를 시작했다. 나는 듣는 척, 모두 한 귀로 흘려보냈다.

“저기, 윤리사. 그리고 저세상… 형…….”

우성운이 우물쭈물 우리를 부른 건 그때였다.

나는 방긋 웃으며 물었다.

“왜?”

“뭐야?”

저세상은 아주 뾰족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그를 쳐다봤다.

우성운이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팔꿈치로 저세상의 옆구리를 찌른 후 우성운에게 다시 물었다.

“무슨 일이야, 우성운?”

“그게, 같이 수박 먹자고. 신부님이 너희랑 같이 먹으라고 챙겨 준 게 있거든.”

“수박을?”

“응.”

아하, 어쩐지 짐이 무거워 보이더라니!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좋아!”

“나는 싫…….”

“저세상도 좋대.”

나는 저세상이 뭐라고 할 틈도 없이 억지로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우성운을 따라 거실로 들어가니 이미 우신우가 수박을 자르고 있었다.

도윤이와 단아는 그의 옆에서 재잘거리며 떠드는 중이었다.

“야, 수박씨는 골라 주면 안 돼?”

“신우야, 조금 더 깔끔하게 잘라봐. 모양이 안 예쁘잖아.”

“아오, 둘 다 시끄러워! 잔말 말고 어서 먹기나 해!”

우신우가 버럭 소리 질렀다. 정말 화가 나서 지른 목소리는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수박을 한 조각 들고 입에 물려고 할 때였다.

“안 돼, 먹지 마.”

경고성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화들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보이는 거라고는, 수박을 오물거리며 먹고 있는 친구들뿐이었다.

“윤리사, 왜 그래?”

저세상이 씨를 뱉어내며 내게 물었다. 나는 멍하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갑자기 환청을 들어서.”

나는 애매하게 웃고는 다시 수박을 들었다.

“먹지 말라니까!”

귓가를 찌르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들고 있던 수박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윤리사? 야, 왜 그래?”

“리사야, 괜찮아?”

저세상과 도윤이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뭐야, 윤리사. 어디 아파?”

단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하나도 안 아파. 잠깐만, 화장실 좀 다녀올게.”

나는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탁, 화장실 문을 닫자마자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아저씨.”

내게 두 번씩이나 경고를 내뱉었던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은.

“서차윤 아저씨!”

분명 서차윤이었다.

나는 파르르 입술을 떨며 물었다.

“아저씨, 지금 여기 있어요?”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나는 멍하니 입술을 달싹였다.

“뭐야, 도대체 뭔데?”

분명, 경고를 내뱉었던 목소리는 서차윤의 것이었다.

환청을 들은 것이 아니라면 분명 그랬다.

“진짜 환청이었던 거야?”

그렇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한 목소리였다. 오싹, 소름이 이는 순간.

“윤리사, 야. 괜찮아?”

똑똑, 문을 두드리며 저세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아, 응! 괜찮아!”

나는 황급히 변기 물을 내리고는 손을 씻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화장실 문을 연 후 괜히 앓는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저녁을 너무 많이 먹었나 봐. 속이 안 좋아.”

“그래? 그럼 수박은 먹지 않는 게 좋겠네.”

“으응.”

내 대답에 저세상이 말했다.

“소화제 좀 찾아볼게. 너는 방에 들어가서 쉬어. 애들한테는 내가 말해 놓을게.”

그러면서 내 이마에 손을 얹는 저세상이었다.

“열은 없는 것 같네. 어쨌든 들어가서 쉬어.”

“응, 고마워.”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대답한 후, 방으로 돌아왔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왜인지 모르게 힘이 풀렸다.

“도대체 뭐였지?”

멍하니 목소리가 흘러나왔지만, 주변은 한없이 고요했다.

여름에 만개한 해바라기가 바람에 이리저리 부딪히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그리고 그 위.

쏴아아-!

쏟아져 내리는 늦은 여름의 장맛비 소리도 고요히 방의 정적을 채우기만 했다.

서차윤을 처음 만났을 때도 지금처럼 그랬다.

그는 한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으며 해바라기 사이에 가만히 서 있었다.

서차윤. 윤사해를 배신하고 그의 아들들을 납치해 지하 길드 ‘서커스’에 팔아넘겼던, 이매망량의 부길드장이었던 사람.

그런 그에게 나는 언젠가 질문을 던졌었다.

‘리오 오빠랑 리타 오빠한테 그런 건, 아저씨가 원했던 거예요?’

‘아니.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어, 정말로. 사해한테는 말하지 마. 아무것도 말하지 마.’

그때, 나는 뭐라고 말했더라?

‘안 말해요. 그리고 다시 시작될 일 없을 거예요. 절대로.’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서차윤에게 노란 우산을 쥐여 줬었다.

‘그러니까 아저씨는 성불하세요.’

서차윤이 내 말에 힘없이 웃던 모습이 떠올랐다. 왜 이렇게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저씨…….”

나는 멍하니 서차윤을 부르고는 조용히 물었다.

“아직 성불하지 못한 거예요?”

물론, 대답이 들려올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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