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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271)화 (271/500)

271화. 여름의 장맛비(7)

입 안에서 피맛이 느껴졌다. 나는 깨물고 있던 입술 안쪽을 놓아주고는 말했다.

“야, 저세상.”

“왜.”

“우성운이랑 우신우, 걔들이 신경 쓰인다고 하면 나 바보지?”

“응.”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지.

괜히 두 뺨을 뚱하게 부풀리는데, 머리 위로 커다란 손이 얹어졌다.

“하지만 그게 너잖아?”

“응?”

“애초에 우성운이랑 우신우한테 바다에 같이 가지 않겠냐고 한 것도, 걔들이 신경 쓰여서 그런 거잖아.”

그 말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했다.

“윤리사?”

그런 내가 이상하다는 듯 저세상이 나를 불렀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저세상의 말을 곰곰이 생각할 뿐이었다.

‘애초에 우성운이랑 우신우한테 바다에 같이 가지 않겠냐고 한 것도, 걔들이 신경 쓰여서 그런 거잖아.’

그래. 나는 처음부터, 어쩌면 걔들이 전학을 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신경을 쓰고 있었구나.

갑자기 울컥, 이름 모를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그때였다.

“하지만, 윤리사. 걔들에 대해 너무 깊게 파고들려고는 하지 마.”

“왜?”

“그냥, 불안해서.”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내가 우성운이랑 우신우한테 다가가지 않을 줄 알아?”

“아니, 다가가겠지.”

저세상이 픽 웃으며 말했다. 내가 못 말린다는 듯이 말이다.

단아가 우리를 부른 건 그 순간이었다.

“윤리사, 저세상! 물에 안 들어올 거야?!”

단아는 그렇게 외치면서 우리를 향해 물을 뿌렸다.

“아, 진짜! 한단아!”

“불만이면 어서 들어와서 나랑 한 판 떠, 저세상!”

단아가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티 없이 맑은 웃음, 그 위로 펼쳐진 푸른 하늘.

비록 햇빛이 조금 쨍하기는 했지만 기분 좋았다.

‘로저 신부님은 아무 짓도 안 했어. 우리 몸에 새겨진 흉터는 모두 부모님이 만든 거야.’

이 자리에 없는 두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곧 기억에서 지워 버리고 나는 노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해가 질 때가 되어서야 우리는 별장으로 돌아왔다.

해가 지고 나서도 계속 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후두둑, 장맛비가 떨어지기 시작한 탓이었다.

올해 장마가 짧게 끝난다 싶더니, 뒤늦게 장맛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온 와중에!

정말 눈치 없는 날씨였다.

***

어쨌거나 돌아온 별장.

저녁은 도윤이와 단아가 전담하기로 했다. 우성운과 우신우도 돕겠다고 나섰다.

우성운과 우신우는 계곡에서의 일을 의식했는지, 검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나는 열심히 저녁을 준비 중인 친구들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뒷마당에 펼쳐져 있는 해바라기를 두 눈에 담았다.

조금씩 떨어져 내리던 빗방울은 어느새 시원하게 해바라기를 적시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입을 열었다.

“야, 저세상. 그거 알아?”

“뭐?”

“나, 어릴 적에 저기 해바라기 꽃밭에서 귀신 만났었다?”

“귀신?”

“응, 엄청 잘생긴 귀신.”

저세상이 내 말에 한쪽 눈가를 찡그렸다.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냐?”

“던전도 있고 몬스터도 있는 세상에 귀신이 왜 없겠어?”

“그렇게 말하니까 할 말이 없네.”

저세상이 멋쩍어하면서 내가 말한 ‘귀신’에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어떤 귀신이었는데?”

“엄청 잘생겼었어.”

“아니, 외모에 대한 거 말고.”

저세상이 눈살을 찌푸렸다.

“너는 가만 보면 사람 볼 때 얼굴 먼저 보는 것 같아.”

“어떻게 알았지?”

나는 놀란 척,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세상은 못 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말했다.

“어쨌거나 어떤 귀신이었는지 말해 봐. 너한테 해는 안 끼쳤어?”

“응, 그런 거 안 끼쳤어. 그냥.”

나는 어린 날 만났던 귀신, 서차윤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냥, 굉장히 슬퍼 보이는 사람이었어. 왜, 그런 사람 있잖아? 슬픈데도 억지로 웃으려는 사람.”

서차윤은 딱, 그런 사람이었다.

어릴 적의 기억 중에서 강렬하게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얼굴이었다.

“그게 끝이야?”

“응, 이게 끝이야.”

“뭐야, 싱겁게.”

저세상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구시렁거렸다. 나는 그런 그에게 뚱한 얼굴로 물었다.

“저세상, 너는 귀신 본 적 없어?”

“없어. 대신 다른 건 많이 봤지.”

“뭐?”

저세상이 입을 다물었다가 천천히 목소리를 내뱉었다.

“망령.”

“망령?”

망령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으려는 찰나.

“리사야, 세상이 형! 저녁 준비 다 됐어!”

도윤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응! 지금 갈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저세상과 함께 야외 테이블로 향했다.

저세상도 나를 뒤따라 야외 테이블로 향한 후, 느긋하게 도윤이의 옆에 앉았다.

나는 단아가 마련해 놓은 자리에 앉아 젓가락을 들었다. 단아가 맑게 웃으며 젓가락을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우성운과 우신우가 그 뒤를 따라 잘 먹겠다면서 젓가락을 들었다.

물론, 나도.

“잘 먹을게!”

그렇게 외치며 망설임 없이 고기를 집어 먹었다. 저세상은 아무 말 없이 젓가락을 들어 고기를 뒤적거릴 뿐이었다.

“단아야, 채소도 먹어야지.”

“시끄러, 백도윤. 단백질이 최고인 거 몰라?”

도윤이와 단아가 티격태격했지만 어쨌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끝난 저녁 시간.

단아가 보드게임을 꺼내 왔다.

여행 계획을 짤 때 했던 것과는 다른 게임이었다.

“자. 하자! 진 사람이 설거지하기!”

“나는 안 할래.”

저세상이 심드렁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단아가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기각이야? 그럼, 저세상이 설거지하는 것으로 결정!”

“그런 게 어디 있어?!”

저세상이 빼액 소리 지르며 자리에 도로 앉았다.

나와 도윤이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우성운과 우신우도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참는 모습이었다.

“자, 그럼. 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진 사람이 설거지하는 거야!”

이번 게임은 팀전이었다.

나와 단아가 한 팀, 저세상과 도윤이가 한 팀. 그리고 자연스럽게 우성운과 우신우가 한 팀이었다.

게임의 패배자는.

“아오, 우성운! 너 때문에 졌잖아!”

“나는 아무 잘못 없어! 신우, 네가 가지고 있는 패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서 진 거잖아!”

우신우와 우성운이었다.

저세상이 픽 웃고는 우신우와 우성운에게 말했다.

“그럼, 설거지 잘 부탁한다?”

“잘 부탁할게, 신우야. 성운아.”

도윤이가 저세상의 말에 따라 방긋 웃으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

우신우와 우성운은 불퉁하게 두 뺨을 부풀렸지만, 곧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윤리사, 우리는 2층에 남자애들 방 가서 놀자!”

“그럴까?”

“안 돼. 못 들어와.”

그렇게 말한 사람은 저세상이었다. 그 말에 단아가 말했다.

“아니, 되거든?”

단아가 저세상을 향해 혀를 날름거렸다. 저세상은 단아의 이마를 한 대 때려 주고 싶다는 얼굴로 이를 갈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단아는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나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갔다.

나 역시 웃으면서 2층으로 향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단아야, 잠깐만.”

우웅-!

주머니 속에 넣어 둔 휴대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윤사해였다.

“저세상, 아빠한테 전화 왔어.”

“아저씨한테?”

“응.”

저세상이 두 눈을 빛냈다. 친구들과 별장에 도착한 후, 가장 신난 것 같은 얼굴이었다.

나는 작게 웃고는 말했다.

“단아야, 도윤이랑 같이 먼저 올라가 있어. 아빠랑 전화 좀 하고 올라갈게.”

“네엡! 야, 백도윤. 안내해.”

“응? 으, 응!”

단아가 도윤이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간 것을 확인한 후, 나는 저세상과 함께 테라스로 나갔다.

***

“여보세요? 아빠?”

-그래, 리사. 재미있게 놀고 있니? 걱정돼서 전화했단다.

내 그럴 줄 알았지.

나는 키득거리며 웃고는 말했다.

“응! 엄청 재미있게 놀고 있지! 그치, 저세상?”

“응? 으, 응! 아저씨, 저희 엄청 재미있게 놀고 있어요!”

-그렇다니 다행이구나.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아빠한테 바로 전화하렴. 

“바로 전화할 것도 없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아빠한테 연락할 거 아니야?” 

윤사해 성격상, 별장에 이매망량의 길드원들 몇을 경호로 두고 있을 게 뻔했다.

잠시 침묵하던 윤사해가 크흠, 헛기침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우리 딸, 주변에 누가 있다고 그러니?

“아님 말고.” 

나는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하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보다, 아빠. 나 부탁할 게 있는데 들어줄 수 있어?”

-물론이지.

한 치의 고민도 없는 대답이었다.

“그럼…….”

나는 우물쭈물하다 입을 열었다.

“우성운이랑 우신우에 대해 조사 좀 해 줄 수 있을까? 로저 에스테라, 그 신부님에 대해서도 알아봐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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