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화. 여름의 장맛비(5)
이렇게 우성운과 우신우의 합류가 결정됐고.
“지금 어떻게 놀지 계획 짜고 있으니까 신우랑 성운이도 부르는 게 좋지 않을까?”
“그건 그렇네.”
도윤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친구들에게 물었다.
“혹시, 우성운나 우신우 전화번호 있는 사람?”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그때, 도윤이가 멋쩍게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성운이, 아무랑도 이야기 안 하잖아. 반에서도 매일 혼자 있고. 유일하게 신우랑만 이야기하지 않아?”
“그치.”
단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세상, 너희 반에서도 그래?”
“뭐가?”
“우신우 말이야. 걔도 우성운처럼 그러냐고.”
내 말에 저세상이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
“몰라, 관심 없어서. 지희준이 가끔 시비 걸면 욕하는 모습은 간간이 본 것 같아.”
어쨌든, 우신우도 친구 하나 없다는 말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반 친구들 번호 모두 저장해 두는 거였는데.”
도윤이가 시무룩하게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그런 도윤이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는 말했다.
“도윤아, 괜찮아.”
그러고는 휴대폰을 흔들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누구 딸인지 잊은 거야?”
귀하디귀한 S급 각성자인 윤사해의 따님이란 말씀!
나는 곧바로 윤사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빠? 우성운이랑 우신우랑 같이 놀러 가려고 하는데, 로저 신부님한테 걔들 번호 좀 알려 줄 수 있어? 아니면 우리 집으로 와 달라고 해 줘.”
윤사해의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러마.
***
우리는 우성운과 우신우가 우리 집에 도착하기 전에 여행 계획을 대충 짜기 시작했다.
“이동은 신경 쓰지 마. 화홍이 오빠가 우리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화홍이 형이라면, 공간계 각성자인 형 말하는 거지?”
“정답.”
나는 도윤이에게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단아는 류화홍의 이름에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고 말했다.
“그럼, 바다 좀 보고 가자. 나 바다 보고 싶어.”
“안 그래도 바다에 가자고 하려고 했지!”
내 말에 단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헤실거렸다.
“히힛, 윤리사랑 통했다.”
“단아야, 통한 게 아니라 그냥 우연의 일치로 얻어맞은 것…….”
“얻어맞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해, 백도윤.”
“응.”
도윤이가 깨갱 꼬리를 내렸다. 어쨌거나 그렇게 열심히 계획을 짜고 있을 때였다.
손님이 찾아왔음을 알리는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우성운이랑 우신우가 왔나 보네. 내가 나가 볼게.”
대화에서 줄곧 빠져 있던 저세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우성운과 우신우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우성운과 우신우의 손에는 간식거리가 들려 있었다.
“뭐야?”
뾰족하게 묻는 단아의 목소리에 우성운이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로저 신부님께서 손에 먹을 거라도 챙겨서 들고 가라고 하셔서.”
“뭘 아시는 분이네.”
단아가 우성운의 손에서 과자를 빼앗듯이 들고는 말했다.
“자, 너희도 어서 앉아. 빨리 계획 짜고 놀아야 하니까.”
“논다고?”
“싫으면 계획 다 짜고 로저인지 뭔지 하는 신부님께 가.”
우성운과 우물쭈물할 때, 우신우가 입을 열었다.
“아니, 우리도 놀래.”
“시, 신우야!”
“뭐 어때? 나는 놀고 싶어.”
우신우가 그렇게 말하고는 내게 물었다.
“그래서 계획은 어디까지 짰는데?”
“아, 계획 말이야.”
여름 방학이 끝나기 직전 세워진 여행 계획은 꽤 단순했다.
부산의 모든 바다를 한 번씩 찍은 후, 강원도의 별장으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신이 나게 고기 파티.
“고기 구울 줄 아는 사람 있어?”
“저요! 아빠 옆에서 요리 많이 도와줬었거든요! 그래서 웬만한 건 다 할 줄 알아요!”
도윤이가 저세상의 말에 신이 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좋아, 바다에서는 뭐할 건데?”
“당연히 수영이지.”
단아가 저세상의 말에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저세상이 와락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수영을 무슨 부산의 모든 바다에서 하냐? 한 곳만 정해.”
“한 곳만 정했다가 사람이 너무 많거나 그러면? 다른 곳 가야지!”
“맞아, 류화홍인가 뭔가 하는 오빠가 우리 이동하는 거 도와준다면서? 선택지는 많을수록 좋지.”
단아가 뿌듯하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말도 몰라, 저세상? 나도 아는 말인데.”
저게 지금 이 상황에서 쓰는 말인가 싶었지마는 나는 말했다.
“어쨌든! 해운대에 사람 많으면 그 다음은 광안리야!”
“그래도 사람이 많으면?”
“음, 다대포나 아니면…….”
“그냥 별장 가서 놀자.”
저세상이 내 말을 끊고는 말했다.
“바다 구경 실컷 했다고 생각하고 별장 가서 놀자고. 별장에도 물놀이 할 곳 있잖아.”
그건 그랬다.
어쨌든 간에 우리의 계획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계획이 끝나자마자 단아가 책가방 안에서 보드게임을 꺼냈다.
“자, 이제 놀자!”
단아가 잔뜩 신난 얼굴로 말했다.
우리는 좋다면서 달려들었다. 물론, 저세상은 생각 없다고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좋은 말로 할 때 앉아, 저세상. 이거 사람 많을수록 재미있는 게임이라고.”
앉지 않으면 주먹맛을 맛보게 될 거라는 단아의 살벌한 경고에 자리를 지키게 됐다.
그렇게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그랬는데.
“우리는 이만 가 봐야 해.”
“아! 벌써 시간이……!”
우신우와 우성운이 시간을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한참 재미있는데 간다고?”
못마땅하게 묻는 단아의 목소리에 우신우가 대답했다.
“응, 이 시간이면 꼭 해야 하는 일이 있거든.”
“그게 뭔데?”
“고해성사.”
“고해성사?”
우신우의 말에 단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 역시 단아와 똑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해성사라니?
그건 자신의 죄를 신부에게 털어놓는 거잖아. 그걸 왜 저 두 사람이 한다는 거야?
살포시 미간을 좁히는데 우신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너는 몰라도 되는 게 있어. 그럼, 다음 주에 여행 갈 때 봐. 야, 우성운. 가자.”
“으응.”
우성운이 시무룩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현관문을 나서는 줄 알았더니.
“저, 저기!”
우성운이 우리를 보고는 고개를 푹 숙이며 웅얼거렸다.
“오늘 재미있었어. 사실, 같이 바다 가자고 했을 때.”
우성운이 잠시 말을 멈췄다가 고개를 들며 환하게 웃었다.
“그때 무척 기뻤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성운이 그토록 환하게 웃는 모습은 처음 봤기에. 그 때문에 나는 그가 집을 나서는 순간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
어쨌거나 여름의 끝자락.
“우와! 바다다!”
우리의 여행이 시작됐다.
먼저 도착한 곳은 부산의 해운대!
였는데…….
“사람 엄청 많네.”
“그러게. 물 반, 사람 반이야.”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러게, 아가씨. 제가 말했잖아요. 원하시는 해수욕장에 친구분들과 놀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고요.”
당장, 이매망량에는 청(淸)의 가주인 청해솔의 동생인 청해진이 입단해 있는 상황이었다.
그가 청해솔에게 부탁하면 해운대에서 따로 청(淸)이 관리하는 바다에 들어갈 수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어릴 때는 그랬겠지만, 저는 다 컸다고요.”
“그래서요?”
“제 사사로운 일을 위해 길드의 힘을 사용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에요! 무슨 말인 줄 알겠죠?”
“아니요, 모르겠지만 리사 아가씨가 정신적으로 성숙했다는 건 잘 알겠어요.”
“칭찬이죠?”
“물론이죠.”
류화홍, 이 자식. 오늘 하루만 우리들 자가용 노릇을 하게 돼서 화가 난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아, 생각해 보면 이미 내 사사로운 개인적인 일을 위해 길드의 힘을 빌린 건가?’
이매망량의 주요 전력인 류화홍을 이렇게 부려먹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빠가 마음껏 부려먹으라고 했는걸?’
무엇보다 류화홍은 육아휴직을 낸 상태라고 했다. 어쨌거나 길드의 일을 사사롭게 이용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
나는 그렇게 속편하게 생각하기로 하고는 친구들에게 물었다.
“다른 바다로 가 보자. 어디 가지?”
“광안리.”
우신우가 말했다.
“광안리에 가 보고 싶은데.”
괜찮으냐는 듯이, 우신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가 의견을 낸 것이 꽤나 의외였지만, 나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광안리에 가 보자!”
그리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부산의 바다 중 어느 곳에도 발을 담그지 못했다.
해운대는 물론, 광안리도. 그리고 다대포든 어디든 말이다.
“아오! 다들 할 짓 없나? 아니면, 바다가 부산밖에 없어?”
단아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고래고래 고함을 내질렀다. 도윤이가 그런 단아를 진정시켰다.
“사람들 휴가랑 겹쳤다고 생각하자. 아니면, 날을 잘못 잡았거나.”
결과적으로, 우리는 강원도의 별장에 오게 됐다. 그것도 한 끼도 못 먹고 점심이 지난 무렵에 말이다.
정말이지, 여행 시작부터 뭔가 잘못됐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에이, 착각이야.’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잡생각을 털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