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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268)화 (268/500)

268화. 여름의 장맛비(4)

“그래서 걔들이 뭐래?”

“당연히 퇴짜 맞았지.”

“그럴 줄 알았어.”

저세상이 한심하다는 듯 짧게 혀를 찼다.

“우성운이랑 우신우와 함께 바다를 보러 가자니, 제정신이야?”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에 나는 불퉁하게 말했다.

“그치만, 걔들 너무 슬퍼 보였는걸?”

“너는 길 지나가다가 슬퍼 보이는 사람 있으면 붙잡고 동정할 거냐?”

“그건 아니지만…….”

나는 입술을 삐죽였다.

“그래도 너무 슬퍼 보여서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는걸? 나도 그렇게 말한 거 후회 중이니까 잔소리 좀 그만해.”

나는 두 뺨을 부풀리고는 소파에 얼굴을 묻었다. 저세상이 빤히 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왜인지 모르게 찰나 사람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우성운과 우신우는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때까지 우리를 지독하게 괴롭혔던 녀석들이었다.

‘아니, 그 정도는 아닌가?’

패드립 몇 번 쳤다가 윤사해에 의해 아주 제대로 엿을 얻어먹었었지. 그것도 가족들 전체가.

어쨌든 초등학교 때 전학을 간 이후로 잘 지냈거니, 아니. 그 두 사람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살았는데…….

‘고아가 됐다고.’

그러다 버려진 마을이라 불리는 곳에서 살다, 그곳이 불타면서 로저 에스테라의 손에 거둬진 두 사람.

암만 신경을 끄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야, 저세상.”

“왜.”

“나는 너무 착한 것 같아.”

“헛소리는 적당히 하는 게 좋아, 윤리사.”

이 자식이?

나는 고개를 들어 저세상의 가랑이 사이를 있는 힘껏 차 주었다. 네놈은 영영 후손을 못 볼 줄 알아라!

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은 저세상의 정수리를 보며 씩씩거렸다.

***

윤리사와 저세상의 가랑이 사이를 발로 차던 때는 누군가 잠들기에는 늦고, 그렇다고 하기에는 이른 시간인 밤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

“신우야, 자?”

“아니, 너는.”

“나도 안 자니까 너한테 이렇게 말을 걸었지.”

“하긴, 그러네.”

우성운과 우신우는 낡은 침대에 몸을 눕힌 상태였다.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다가 우성운의 말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보다 오늘은 기도 시간이 없나 봐. 로저 신부님이 우리를 안 찾으시네?”

“바쁜 일이라도 있나 보지. 그리고 나는 기도 시간 싫어.”

“왜?”

“왜기는 왜야.”

우신우가 뚱하게 말했다.

“아프잖아.”

그는 천장을 향해 손을 뻗으며 중얼거렸다.

“우리가 저지른 일도 아닌 것에 대해 잘못을 고하고, 그렇게…….”

목소리의 끝을 흐린 그가 이내 벽 쪽으로 등을 돌리며 말했다.

“어쨌든 싫어. 어서 자기나 해. 나중에 로저 신부님이 돌아와도 우리 자는 거 보면 기도 시간 가지지 않을 테니까.”

“으응.”

우성운이 기가 죽은 얼굴로 그리 대답하고는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렇게 잠에 들고자 할 때.

“야, 우성운.”

우신우가 난데없이 그를 불렀다.

우성운은 여전히 두 눈을 감은 채 입을 열었다.

“응? 왜?”

“너, 바다 보러 가고 싶냐?”

“아, 아니?!”

우성운이 두 눈을 번쩍 뜨며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그 모습에 우신우가 픽 웃었다.

“거짓말하기는. 하긴, 너는 어릴 때부터 거짓말하는 데 엄청 서툴렀지.”

“너, 너도 그렇잖아!”

“나는 아니거든?”

우신우가 뚱하게 말하고는 입을 열었다.

“바다 보러 가고 싶다.”

“그러게.”

우성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을 끝으로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 정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부산의 해운대 가고 싶어.”

“나는 광안리.”

우성운의 말을 뒤이어 우신우가 생각만 해도 즐겁다는 듯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엄마랑 아빠랑 마지막으로 다녀온 곳에 다시 한번 더 가고 싶어.”

“나도.”

우성운이 배시시 웃고는 말했다.

“진짜 바다 가고 싶다.”

“하지만 우리가 무슨 수로 바다를 가? 근처 한강이라면 몰라도.”

“그, 그건 그렇지.”

우성운이 시무룩하게 말했다.

“윤리사가 같이 가자고 했을 때, 알겠다고 했으면…….”

“우성운.”

우신우가 그의 말을 끊으면 입을 열었다.

“우리는 걔랑 어울리면 안 돼.”

“하지만 신우야.”

“어릴 적 일로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 아니야. 그거야 서로 사과하고 끝났으니까.”

우신우가 그렇게 말하고는 황급히 뒷말을 덧붙였다.

“무, 물론, 나는 걔나 저세상한테 딱히 사과 같은 거 하지 않은 것 같지만! 어쨌든 안 돼!”

“뭐가 안 된다는 겁니까, 신우 군?”

헙! 우신우가 숨을 들이켜 마셨다. 우성운은 애써 웃으며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남자에게 물었다.

“로, 로저 신부님. 다녀오셨어요? 오늘은 꽤 늦으셨네요?”

“네, 잡아야 할 것이 많아서 말입니다. 신이 베푼 은혜를 몰라주는 어린 양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로저 에스테라가 피가 묻은 손을 탈탈 털었다.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에 적셔졌다가 곧 흐려지는 피에 우성운과 우신우가 꿀꺽 침을 삼켰다.

로저 에스테라는 그런 둘을 보며 상냥하게 물었다.

“너무 슬프지 않습니까?”

“네, 네에. 스, 슬퍼요.”

우성운이 벌벌 떨며 말했다.

“자, 그러니까.”

로저 에스테라가 그의 어깨를 다정하게 감싸며 물었다.

“두 사람이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겁니까?”

우성운과 우신우는 로저 에스테라의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난 후.

“오, 친애하는 형제님의 따님분께서 그런 이야기를 하셨단 말입니까? 이것, 참…….”

언짢은 듯 말하는 목소리에 우신우와 우성운이 앞다투어 말했다.

“저, 저기! 안 간다고 했어요!”

“맞아요, 신부님! 저희가 걔랑 왜 놀아요!”

“걔랑 어울릴 생각하지 않았어요!”

“마, 맞아요, 아무랑도.”

“그만.”

로저 에스테라가 우신우와 우성운의 입을 가로막고는 싱긋 웃었다.

“다녀오시지요.”

“네?”

우성운과 우신우가 멍하니 물었다. 로저 에스테라는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친애하는 형제님께는 제가 말해 놓겠습니다. 그러니 두 분께서는 리사 양과 즐거운 시간 보내고 오도록 하십시오.”

“그, 그렇지만.”

“신우 군.”

로저 에스테라가 우신우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닿은 손길에 흠칫, 우신우가 몸을 움츠리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로저 에스테라는 미소를 그렸다.

“신우 군께서는 착한 어린 양이지요? 물론, 성운 군도요.”

우성운과 우신우가 겁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녀오십시오.”

마치, 명령과도 같은 말이었다.

***

다가오는 방학의 끝.

“네? 우신우랑 우성운도 같이 별장에 데리고 가라고요?”

저세상이 나와 함께 갑작스럽게 걸려 온 윤사해의 전화를 받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의 말을 들은 윤사해가 말했다.

-세상아, 네가 싫다면 아무래도 곤란하겠다고 로저 신부에게 전하도록 하마.

“아빠, 잠깐만.”

나는 황급히 말했다.

“친구들이랑 같이 이야기한 후에 다시 연락할게! 그래도 돼?”

-물론, 그래도 된단다.

“응! 오늘도 파이팅!”

-그래, 리사. 언제나 고맙구나.

윤사해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내게 인사했다. 그렇게 윤사해와의 전화를 끝낸 후.

“자, 다들 들었지? 어떻게 할래?”

나는 친구들을 보며 물었다.

방학의 마지막 주 여행을 위해 우리는 한창 계획을 짜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 집에서 말이지.

내 말에 가장 먼저 의견을 낸 사람은 단아였다.

“나는 무조건 반대!”

단아가 번쩍 손을 들었다. 도윤이는 멋쩍게 뺨을 긁적이고는 말했다.

“나는 찬성.”

그 대답에 단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소리 질렀다.

“야! 백도윤! 우신우랑 우성운, 그 자식들이 리사를 얼마나 괴롭혔는지 알면서도 그런 소리가 나와?!”

하지만 단아야, 걔들이 나를 괴롭힌 만큼 네가 배로 갚아 줬잖아.

나는 치밀어 오르는 말을 꿀꺽 삼킨 후 입을 열었다.

“저세상, 너는?”

“한단아랑 똑같이 반대.”

저세상이 뚱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째려봤다.

“윤리사, 너는 걔들한테 왜 그런 이야기를 해서.”

그에 나는 불퉁하게 두 뺨을 부풀렸다.

“설마 로저 신부님 귀에 들어갈 줄 알았겠어?”

“그럼, 안 들어갈 줄 알았어?”

저세상이 바보 아니냐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와락, 얼굴을 구기는데 단아가 내게 물었다.

“그래서 윤리사, 네 생각은 어때?”

“나는 찬성.”

단아의 말에 나는 뿌듯하게 웃으며 그리 말했다.

이렇게 2:2 동점이 됐다. 그래, 그런 줄 알았는데.

“어쩔 수 없지. 윤리사가 그 자식들이랑 같이 가고 싶다고 하면 나는 찬성.”

단아가 말을 바꿨다. 저세상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단아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단아가 뚱하게 물었다.

“뭐, 불만이라도 있어?”

저세상이 얼굴을 한껏 찡그리고는 웅얼거렸다.

“망할! 너희 마음대로 해!”

“좋아! 이렇게 우신우랑 우성운도 함께 놀러 가는 거로 확정!”

나는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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