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화. 여름의 장맛비(2)
괜히 대답을 피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도 청해진은 바로 말했다.
“그게 말이야. 저 바보들이 던전 공략 중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식물을 발견했는데…….”
그게 어떤 아이템인지 파악 좀 해 보겠답시고 서로 난리를 피우다가 그만 먹게 됐다면서 청해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오빠는?”
“나? 당연히 안 먹었지.”
청해진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원래 던전 내에 있는 것들은 몬스터를 제외하고 함부로 건드리고 먹는 거 아니라고 배웠거든!”
청해진이 이렇게 상식적인 말을 하는 날이 올 줄이야!
나는 충격을 먹은 얼굴로 내 마음을 그대로 전했다.
“오빠, 변했어!”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그게 무슨 소리인지는 알 필요 없고, 나는 랑야에게 물었다.
“그런데 랑야 님이 리오 오빠랑 리타 오빠를 왜 들고 온 거예요?”
〖불만이면 놔주마.〗
“으아악! 그렇게 바로 놓아 달라는 게 아니었다고요!”
랑야에게 짐짝처럼 들려 있던 윤리오와 윤리타가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희게 질린 얼굴로 윤리오와 윤리타를 흔들었다.
“리오 오빠, 리타 오빠! 괜찮아?”
“리사… 윤리사…….”
“응, 리오 오빠.”
윤리오가 초점이 흐릿한 눈으로 나를 보고는 배시시 웃었다.
“우리 리사, 인어 같아.”
이게 무슨 개소리래?
“맞아, 우리 리사는 인어야. 그리고 우리 세상이는 왕자님이지.”
“네?”
저세상이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리오야, 리타야. 너희 괜찮니?”
때마침 도착한 광혜원이 두 사람에게 물었다.
윤리오와 윤리타는 여전히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 눈으로 헤실거렸다.
“혜원이 누나아.”
“그래.”
“누나, 결혼 언제 할 거예요?”
“맞아, 누나 결혼 안 해요?”
윤리타가 윤리오의 맞장구치며 물었다. 광혜원은 할 말이 많은 얼굴로 두 사람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제정신이었다면 한 대 맞았을 게 분명했다.
두 사람을 데리고 온 랑야는 픽 웃고는 말했다.
〖저런 꼴이라서 윤사해가 나를 불렀다. 잡으려고 하면 계속 도망치고 아주 환각에 미쳐 버려서 말이지.〗
그 말에 청해진이 말했다.
“하필이면 한강 근처의 던전에서 공략이 이뤄져서 완전 난리도 아니었어!”
“그래서 아빠를 불렀다는 거야?”
“응.”
청해진이 무슨 문제라도 되냐는 듯 나를 불렀다.
“그럼, 아빠는?”
“아빠 여기 있다.”
잔뜩 지친 기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활짝 웃으며 목소리가 들린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빠!”
그리고 숨을 들이마셨다.
‘홀리, 쉣.’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하나님께 감사 인사를 올렸다.
윤사해는 물에 빠진 생쥐 꼴은 무슨, 그리스 신화의 세상 제일가는 미남이 환생한 모습이었다.
“리사야, 세상아?”
윤사해가 젖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나와 저세상을 불렀다.
“아……!”
나는 그 목소리에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아빠, 괜찮아?”
“물론, 괜찮지. 그보다 리오랑 리타가 걱정이구나.”
윤사해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윤리오와 윤리타에게 다가갔다.
“광혜원 헌터, 애들은 어떤가?”
“일단 의무실로 옮겨 봐야겠는데요. 해진아, 애들이 먹은 풀떼기 채집해 왔지?”
“네, 여기요.”
“오케이.”
광혜원이 청해진한테서 알 수 없는 식물 채집본을 받아 들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보자, 손이 남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
사야와 류화홍이 있었지만, 두 사람은 랑야와 함께 아이들을 보느라 정신없었다.
결국, 광혜원이 입을 열었다.
“해진아, 네가 둘 다 옮겨 줄래?”
“그거라면 내가.”
“에헤이, 길드장님은 젖은 옷부터 갈아입고 오도록 하세요!”
“그건 청해진 헌터가.”
“길드장님, 그거 비싼 정장 같은데 바싹 말려져도 괜찮나요? 그래도 괜찮다면 제가 온 힘을 다해 길드장님의 정장을 말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청해진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그에 윤사해가 끙, 앓는 소리를 내고는 말했다.
“리오와 리타를 부탁하네, 청해진 헌터.”
“네!”
청해진이 힘차게 대답했다.
윤사해는 걱정된다는 얼굴로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렇게 그가 사라진 후.
“오, 세상아! 형 도와주는 거야?”
청해진은 윤리오와 윤리타, 두 사람 모두를 옮길 필요가 없게 됐다.
청해진이 윤리오를 업어 든 저세상을 보고는 활짝 웃었다. 저세상은 그를 보며 말했다.
“네, 그리고 내일부터 방학이라 교복 정도 젖어도 상관없거든요.”
“우와, 벌써 방학이야?! 시간 한 번 정말 빠르네. 나도 방학 가지고 싶다.”
“그건 퇴사하면 가질 수 있어.”
“혜원이 누나!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제가 어떻게 이매망량에 들어왔는데!”
청해진과 저세상이 광혜원과 함께 천천히 멀어져갔다.
‘나도 따라가야 하나? 하지만 별 도움은 안 될 것 같은데.’
그렇게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였다.
“므아!”
“므니아!”
“사하야, 홍랑아!”
류사하와 류홍랑, 귀여운 쌍둥이가 나를 불렀다. 나는 활짝 웃으며 아이들에게 달려가 꼭 끌어안았다.
“너희는 내가 제일 좋지?”
아이들이 대답 없이 올망졸망 두 눈을 떴다. 그 모습에 랑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니라고 하는 것 같은데, 윤사해의 따님.〗
랑야의 말에 아이들은 여전히 올망졸망 두 눈을 빛내기만 했다. 그 모습에 랑야가 얼굴을 찡그렸다.
〖이 망둥이 같은 녀석들아, 너희 이 할아비가 제일 좋지?〗
쌍둥이는 여전히 두 눈을 반짝거릴 뿐이었다. 그에 나는 그를 비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아니라고 하는 것 같은데요, 랑야 님?”
〖그럴 리가! 류사하, 류홍랑! 어서 이 할애비가 제일 좋다고 말해보도록 해라!〗
그 말에 붉은 눈을 반짝거리고 있던 아이들이 아장아장 걸으며 사야와 류화홍에게 두 팔을 벌렸다.
사야가 제 딸을 안아 들고는 미소를 그렸다.
“이런, 아버지. 사하랑 홍랑이는 아무래도 저와 화홍이 제일 좋은 모양이네요.”
류화홍은 아들을 안아 들며 뿌듯하게 말했다.
“하하, 이것 참. 장인어른, 그래도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애들이 장인어른을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누구보고 장인어른이라고 하는 거야! 그 입, 안 닥쳐?!〗
“아버지, 애들이 들어요.”
〖애들한테는 안 들리게 내가 어련히 알아서 잘 조절했다!〗
보기 좋은 가족이었다.
‘저 모습을 『각성, 그 후』에서는 못 봤지.’
나도 모르게 흐뭇하게 미소가 그려졌다.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야, 윤리사.”
저세상이 물에 빠진 생쥐 꼴로 나타났다.
주인공답게 잘난 얼굴이긴 하지만, 역시 윤사해에 비해서는 보잘것없는 외모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물었다.
“리오 오빠랑 리타 오빠는? 해진이 오빠는 어쩌고 너 혼자 돌아와?”
“해진이 형은 리오 형이랑 리타 형 묶고 있는 중.”
“묶고 있다고? 왜?”
“계속…….”
저세상이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우물쭈물했다.
“계속?”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런 내 질문에 대답해 준 사람은 랑야였다.
〖한강 횡단을 하겠답시고 난리를 치고 있는 모양이지.〗
랑야가 류사하와 류홍랑의 앙증맞은 손을 하나씩 잡고는 어화둥둥 웃으며 말을 이었다.
〖윤사해, 그 녀석. 지금쯤 골머리를 앓고 있을 중일 거다. 네 오라비들이 한강에서 난리를 떠는 모습을 주변 인간들 모두가 다 봤거든.〗
나는 이마를 짚었다.
‘우리 오빠들, 장가가기는 다 글렀네. 뭐, 아빠가 알아서 언론 통제 중일 테니 상관없으려나?’
나는 윤사해가 무사히 언론을 통제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
안타깝게도 윤리사의 진심 어린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어느 정도 이뤄지기는 했다.
-두 배로 줘. 얼마나 많은 사람의 동영상 등등을 해킹해야 하는데! 제시한 보수의 두 배!
“알겠으니까 어서 우리 애들 찍은 것들 좀 모두 해킹해 주게! 사이트에 올라간 것 있으면 그것들도 좀 삭제해 주고!”
-요구하는 게 많네, 아저씨?
“급하니까 이러지!”
윤사해가 전화 너머의 상대, 이운조에게 버럭 소리 질렀다.
이운조는 킬킬 웃으며 말했다.
-오케이, 제시한 보수의 세 배로 해 주면 지금 당장 작업 들어가 줄게! 어때?!
“세 배든 뭐든 어서 좀 해 주게!”
-네네, 고객님. 작업 끝나면 바로 달려오겠습니다요. 빠른 입금 좀 부탁할게, 아저씨?
이운조가 그렇게 말하고는 뚝, 전화를 끊었다. 윤사해는 골치 아프다는 얼굴로 후,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서 비서, 사이트에 애들 기사 올라온 거 있나?”
“아직까지 없습니다.”
“그래, 잘 감시하도록 하게. 각 언론사에 경고는 모두 보냈지?”
“네, 보냈습니다.”
“좋아.”
그렇게 윤사해가 한숨 돌리고 있을 때였다.
우웅, 휴대폰이 울렸다.
윤사해가 와락 얼굴을 구겼다. 안 그래도 정신없어 죽겠는데 도대체 누구인지.
윤사해는 걸려 온 전화를 무시하려고 했지만, 발신인을 보고는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전화를 받아 들었다.
“무슨 일이지?”
-안녕, 자기야? 인사부터 좀 해주지, 다짜고짜 무슨 일이냐고 묻는 거야?
“안녕하지 못하니까 어서 할 말이나 말해. 네가 허투루 전화하는 일 없는 거 아니까.”
-매정하기도 하지.
에일린 리, 윤사해의 전 부인이 우는 소리를 내고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애들, 수영 잘하더라?
“뭐?”
윤사해가 고장 난 기계처럼 삐걱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