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화. 여름에 태어난 축복(2)
안타깝게도 기쁜 날은 오래가지 못했다.
사야와 류화홍의 사이에서 난 쌍둥이가 잘못된 건 아니었다. 물론, 사야가 잘못된 것도 아니었고.
더욱이 쌍둥이를 노리는 지하 길드가 침입을 시도했거나 그런 일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데도 내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 이유는.
“후우, 빌어먹을 랑야.”
미지 영역으로 돌아갈 생각을 않는 랑야 때문에 윤사해가 고생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마를 짚는 윤사해의 모습에 함께 저녁을 먹고 있던 그의 두 아들들이 난리를 피워댔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저희가 랑야 님께 찾아가서 그만 미지 영역으로 돌아가 달라고 말해 볼까요?”
“맞아요, 도대체 지금 며칠째 밖에 나와 있는 거예요?”
“그래도 되는 거예요, 아빠?”
윤리오와 윤리타가 투덜거리면서 그에게 물었다. 아들들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윤사해가 미소를 그렸다.
“아빠는 괜찮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말렴. 감정 조절이 잘 안 돼서 그런 거니까.”
윤사해가 말하는 감정이란 부정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감정들일 게 뻔했다.
윤사해는 모르는 것 같지만, 그의 입꼬리가 계속 위를 향해 씰룩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지 영역의 거주자랑 계약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네.’
더욱이 랑야와 같은 거주자와 계약을 한다면.
‘와우, 상상하기도 싫은데.’
역시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게 가장 편했다.
아, 물론 우리 가족은 예외!
나는 암만 나이가 들어도 윤사해 곁에 찰싹 붙어 있을 생각이었다.
윤사해 못지않은 외모의 남자가 내게 고백을 한다면 몰라도 말이지!
‘하지만 그런다고 해도 윤사해 곁에서 떨어질 수 있을까?’
윤사해가 분명 내게 고백한 남자를 시험하려고 들 게 뻔했다. 윤사해만 그럴까?
‘윤리오랑 윤리타도 그러겠지.’
그때였다.
“야, 윤리사.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응?”
“아저씨가 몇 번이나 불렀는데 왜 대답이 없어?”
“헉! 정말? 미안, 아빠! 그게,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고 못 들었어.”
“괜찮단다, 리사. 그보다 우리 딸,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했니?”
윤사해가 다정하게 물었다. 나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냥, ‘아빠 못지않은 남자가 내게 청혼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그런 생각?”
뚜둑, 윤사해가 쥐고 있던 숟가락이 반으로 접혔다. 그뿐이랴? 쥐죽은 듯 정적이 찾아왔다.
나는 황급히 말했다.
“아, 아빠! 진정해! 아빠같이 멋진 세상에 있을 리도 없고, 그리고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나는 고백 안 받아 줄 거야! 물론!”
“물론?”
나지막하게 되묻는 윤사해의 말에 나는 황급히 대답했다.
“그게, 으음. 아빠나 리오 오빠, 그리고 리타 오빠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면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내 말에 윤사해가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그럴 일은 없을 거란다, 리사.”
“맞아.”
윤리오가 그의 말을 뒤이어 웃는 낯으로 말했다.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절대로.”
“암, 그렇고말고!”
윤리타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남자가 윤리사, 네 앞에 나타나면!”
“나타나면?”
“곧바로 정수리에 총알을 박아 줄게. 걱정하지마.”
‘걱정하지 마’는 무슨 ‘걱정하지 마’야! 살인이라도 저지를 생각인 거야, 윤리타?!
경악하여 그를 쳐다보는데 조용히 있던 저세상이 입을 열었다.
“아저씨, 형들. 진정해요. 윤리사한테 그런 남자가 어떻게 나타나겠어요? 그럴 일 없을 거예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야, 내가 감시할 테니까.”
“누구를? 나를?”
“응.”
저세상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심드렁하게 말을 이어갔다.
“너만 감시할 것 같아? 너한테 들러붙는 남자들 다 감시한 후에 아저씨랑 형들한테 보고할 거야.”
그 말에 윤씨네 삼부자가 안도하며 말했다.
“그래, 세상아. 너만 믿으마.”
믿기는 뭘 믿어요!
“맞아, 세상아. 우리 리사 좀 잘 부탁할게.”
믿었던 윤리오까지!
“에효, 윤리사가 우리 세상이의 반만 닮아도 참 좋을 텐데.”
“너 지금 뭐라고 했냐? 우리 리사가 세상이에 비해 많이 모자라다는 거야? 물론, 세상이가 많이 잘난 게 맞지만!”
“악! 잠깐만,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아! 아빠! 윤리오가 나 때려요!”
윤리타 저 자식은 매를 벌어요!
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소란의 현장에서 벗어났다. 그런 줄 알았는데 말이지.
“윤리사, 나 좀 봐.”
저세상이 나를 붙잡았다.
“이미 보고 있는데?”
나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저세상이 내 말에 와락 얼굴을 구겼다.
“말장난할 기분 아니거든?”
쳇, 갑자기 왜 저렇게 무게를 잡고 난리람? 조금 전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는 잘도 떠들어댔으면서.
나는 뚱하게 물었다.
“무슨 일인데?”
“아저씨랑 형들한테 괜한 소리 좀 하지 마.”
“내가 무슨 소리를 했다고 그래?”
“조금 전에 했잖아.”
“조금 전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그냥, ‘아빠 못지않은 남자가 내게 청혼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그런 생각?’
내가 윤사해 앞에서 시집가는 이야기로 왔구나!
“하지만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잖아! 아빠도 미리 대비를 해야지!”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라니?”
“그야, 나는 결혼 생각 있으니까!”
“네가?”
저세상이 놀라 물었다. 나는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
“응! 우리 가족처럼 행복한 가정을 가지는 게 내 오랜 꿈이었는걸?”
그리고 이 꿈은, ‘윤리사’가 되기 전부터 꿈꿔 왔던 미래이기도 했다.
저세상은 예상치 못한 대답이라도 들은 것처럼 입을 뻐금거렸다. 금붕어처럼 말이다.
“야, 저세상. 괜찮아?”
“응? 으, 응, 괜찮아. 괜찮기는 한데. 네가 결혼이라고?”
“꼭 못할 거라는 것처럼 들린다?”
“아니, 그게 아니라……!”
저세상이 빼액 소리 질렀다.
“아무것도 아니야. 어쨌든 아저씨랑 형들한테 괜한 소리 좀 하지 마! 아저씨는 특히나 랑야 님 때문에 예민할 텐데!”
“네네, 잘 알겠습니다요.”
“내 이야기에 집중 좀 해!”
“집중하고 있거든? 너야말로 그렇게 빽빽 소리 좀 지르지 마!”
그렇게 티격태격하는데.
“리사, 세상아. 둘이 싸우는 거 아니지?”
“네에! 아니에요!”
윤사해의 말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우리는 똑같이 대답했다. 곧, 나와 저세상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
오랜만에 가족끼리 가진 화기애애한 식사 자리가 즐겁게 끝이 났다.
깊은 밤, 저세상은 천장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잖아! 아빠도 미리 대비를 해야지!’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라니?’
‘그야, 나는 결혼 생각 있으니까!’
‘네가?’
‘응! 우리 가족처럼 행복한 가정을 가지는 게 내 오랜 꿈이었는걸?’
오랜 꿈이었다니,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
“윤리사가 결혼이라니.”
그녀라면 오랫동안, 아니. 죽을 때까지 이 집에서 가족과 화목하게 지낼 줄 알았다.
곁에 오직 자신만 두고…….
‘아니,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저세상이 두 손을 들어 얼굴을 덮었다.
윤리사와, 그리고 그녀의 가족과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많은 것을 잊고 지내 버렸다.
저세상이 얼굴을 덮고 있던 두 손을 내렸다. 곧, 그의 앞에 붉은 시스템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봉인이 풀리기까지 앞으로 ‘132일’ 남았습니다.】
1년의 절반도 남지 않은 시간.
정확히 135일이 지난 후, 자신이 스무 살이 되는 날에 봉인 당했던 모든 힘이 풀린다.
‘그때는…….’
정든 이곳을 떠나야 할 거다. 곳곳에서 지난 세계의 이야기가 시작될 테니까.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유랑단이 활개를 치며 다닐 거고, 세상은 지하 길드로 인해 쑥대밭이 되고 말 거다.
모두 자신이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일어났던 게이트로 인해 말이다.
“그 덕분에 각성도 하고, 여러 사람을 만났지만.”
또한, 여러 사람을 잃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그 목숨을 거둔 적도 많았다.
“세상아, 자니?”
지금, 똑똑 문을 두드린 남자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저세상이 누워 있던 몸을 바로 세우고는 말했다.
“아니요, 아저씨. 안 자요.”
“그럼 잠시 들어가도 될까?”
“네, 물론이죠.”
이윽고 문이 열렸다.
윤사해가 조심스럽게 문을 닫으며 싱긋 웃었다.
“세상아, 시간이 이렇게 늦었는데 안 자면 어떡하니?”
“그러는 아저씨는 왜 아직도 안 주무시고 계셔요?”
저세상이 짓궂게 물었다. 그 말에 윤사해가 크흠, 헛기침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빌어먹을 어느 도깨비가 제 손주들 보느라고 기분이 많이 좋은 모양인가 보더구나. 자려고 해도 심장이 계속 두근거려서 잘 수가 없어서 말이지.”
그 말에 저세상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저씨, 저도 형들이랑 같이 랑야 님께 말해 볼까요? 이제 그만 미지 영역에 돌아가 달라고요.”
“뭐?”
윤사해가 놀라 물었다. 저세상은 불퉁하게 말했다.
“사야 님이랑 화홍이 형 사이에서 애들이 태어난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잖아요! 이제 그만 돌아가도 될 텐데 말이에요.”
저세상의 투덜거림에 윤사해가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세상아, 거주자란 녀석은 제 자식들에게. 아니, 제 핏줄을 이은 모든 아이에게 관심이 크단다.”
“알고 있어요.”
저세상의 낯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미지 영역의 거주자.
그들이 제 후손들을 끔찍하게 아끼는 사실이야 아주 명확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세상아, 괜찮니?”
“네? 네, 괜찮아요. 그보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어요?”
“저녁에 한 말이 걸려서.”
“저녁에 한 말이요?”
저세상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희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아, 죄송해요. 제가 너무 주제넘게 나섰죠.”
“아니란다. 절대로 그런 게 아니야, 세상아.”
윤사해가 황급히 저세상을 달래며 방긋 웃었다.
“오히려 너무 고마웠는걸? 그리고, 세상아.”
윤사해가 저세상의 어깨에 큰 손을 올리며 미소를 그렸다.
“너라면 허락하마.”
“네?”
저세상이 영문을 몰라 물었다. 그 질문에 윤사해가 진지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말했다.
“네가 리사의 곁을 평생 함께하겠다고 하면 기꺼이 허락한다고 말했단다. 나를 비롯해 리오와 리타, 두 사람 모두 그럴 거야.”
저세상은 멍하니 두 눈을 끔벅이다가 빼액 소리를 질렀다.
“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윤리사는 저한테 있어서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이성적으로 보인다거나 전혀 그렇게 안 보인다고요!”
저세상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횡설수설 말을 늘어놓았다.
윤사해는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흐뭇하게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손길에 저세상이 뚱하게 입을 열었다.
“아저씨, 제가 고등학교 1학년생이라 자꾸 잊는 모양이신데 저 열아홉 살이에요.”
“물론, 우리 세상이가 내년에 어른이 된다는 거 아주 잘 알지. 하지만 스무 살이 된다고 해도 내 눈에는 여전히 어린 아이처럼 보일 거란다.”
윤사해가 환하게 웃었다. 그 순간 저세상의 두 눈이 살짝 떨렸다.
지난 삶, 그가 저런 식으로 웃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생에서도 그랬다.
지난 삶보다 웃는 것을 많이 봤지만, 저런 식으로 더할 나위 없이 환하게 웃는 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딱 한 번 있었다.
‘……고맙다.’
자신이, 그의 목숨을 앗아가던 그때. 그 순간에.
“세상아? 괜찮니?”
윤사해는 더할 나위 없이 환하게 웃었었다.
저세상의 울컥 차오르는 감정에 두 손을 꽉 주먹 쥐었다. 그러고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네, 괜찮아요.”
괜찮아요, 아저씨.
저세상은 치밀어 오르는 말을 꾹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