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여름에 태어난 축복(1)
딸이랑 아들이라니!
“화홍이 오빠, 랑야 님이 사야 언니가 임신한 애는 한 명뿐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것도 딸이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딸이랑 아들이라니요?”
“쌍둥이란 말이에요?”
나와 저세상은 번갈아 가며 류화홍한테 물었다. 류화홍은 싱글벙글 웃는 낯으로 말했다.
“응, 딸이랑 아들이야. 장인어른도 당황한 눈치더라고.”
그럴 만도 하겠지. 듣기로는 윤사해한테 손녀가 곧 태어날 거니 뭐니 엄청나게 자랑했다는데.
“어쨌거나, 자. 어서 가자. 애들 보고 싶지?”
“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대답하며 류화홍의 손을 덥석 잡았다.
곧, 주변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뒤늦게 단아랑 도윤이한테 인사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랐지만.
‘애들한테 인사는 나중에 메시지로 하면 되니까!’
지금 중요한 건 사야가 낳은 아이들이었다. 이매망량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말했다.
“손! 손부터 씻어야 해!”
“아, 맞아, 그렇지!”
내 말에 저세상이 허겁지겁 화장실을 찾아 들어갔다. 나 역시 화장실로 들어가 손을 씻고 나왔다.
그런 우리가 귀여웠는지 류화홍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자, 그럼 갈까?”
“네에!”
이번에도 우리는 짜맞춘 것처럼 함께 대답하며 활짝 웃었다.
류화홍이 사야와 함께 거처하고 있는 곳은 스킬로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이라고 했다.
애초에 귀수산 자체가 각성자들에게 있어서 힘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곳이라고 했다.
‘이매망량의 건물만이 예외적으로 스킬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지?’
또한, 오직 이매망량의 주인인 윤사해만 길드 건물을 제외한 귀수산 내에서 스킬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고 들었다.
어쨌거나.
“리사, 세상아. 왔니?”
“아빠!”
“아저씨!”
우리는 사야와 류화홍의 신혼집에 먼저 와 있던 윤사해에게 달려갔다.
나는 윤사해에게 두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아기들 보러 들어가도 돼?”
〖아니, 안 된다.〗
“랑야!”
〖쉿.〗
랑야가 입술 위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우리 딸 잠을 깨울 생각이 아니라면 큰 소리를 내지 말도록 해라, 윤사해의 따님.〗
그에 나는 뚱하게 말했다.
“아기들 보고 싶은데.”
나의 투정 어린 목소리에 윤사해가 입을 열었다.
“랑야.”
〖안 그래도 우리 딸 잠을 깨울까 봐 밖으로 데리고 나오려고 했어.〗
랑야가 쯧 혀를 찼다.
〖류화홍, 뭐하고 있냐?〗
“네?”
〖우리 딸의 아이들이기는 하지만, 네 자식들이기도 하잖냐. 한 명은 네가 안아야지.〗
“그, 그래도 되나요?”
랑야가 별 해괴한 소리를 다 들었다는 얼굴로 류화홍을 쳐다봤다. 그에 류화홍이 멋쩍게 웃었다.
“장인어른께서 애들 보는 걸 못마땅해할 것 같아서요.”
〖물론, 못마땅하지. 네가 사야의 남편이란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하지만 네 자식들이지 않냐?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그러면서 랑야는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문이 닫힐세라 류화홍이 랑야를 따라 냉큼 방 안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나온 두 사람의 품에 안겨 있는 아이들은.
“우와아! 천사 같아!”
천사처럼 너무나도 예뻤다. 나도 모르게 감탄할 정도로 말이다.
“누가 딸이고, 누가 아들이에요?”
저세상의 물음에 류화홍이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했다.
“내 머리칼을 닮은 애가 딸이고, 누나를 닮은 애가 아들이야.”
‘누나’라는 소리에 랑야의 붉은 눈이 번뜩여진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나는 착각으로 치부하기로 했다.
〖그래도 두 녀석 다 우리 딸의 눈을 꼭 물려받았다. 외모도.〗
“에이, 장인어른. 그건 아니죠! 첫째 딸은 아빠 닮는 거 몰라요? 봐요, 저랑 붕어빵이죠?”
랑야가 아기들과 똑같은 붉은 눈을 빛내며 류화홍을 노려봤다. 거시서 조금만 더 입을 나불대면 혀를 뽑아내겠다는 듯이 말이다.
류화홍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는 품에 안은 아들에게 괜히 방긋 웃으며 장난을 쳤다.
랑야는 쯧, 혀를 차고는 말했다.
〖어떠냐?〗
“네?”
〖애들 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냐, 윤사해의 따님.〗
랑야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내 손주 녀석들을 본 소감은?〗
랑야가 뿌듯하게 웃으며 물었다. 나는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랑야, 사야 언니 배 속에는 딸애만 있을 거라고 하더니 틀렸네요?”
〖크흠, 흠. 지나간 일은 꺼내지 말고 어서 소감이나 말해!〗
“랑야, 우리 리사에게 괜히 큰 소리 내지 말게.”
윤사해가 엄하게 말했다. 랑야는 쯧, 혀를 찰 뿐이었다. 나는 키득거리며 웃고는 랑야가 좋아할 만한 말을 건네줬다.
“사야 언니를 닮아 애들이 다 한 외모 하는데요? 미래가 훤히 그려지네요.”
〖무슨 미래?〗
랑야가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내게 물었다. 나는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얘네한테 온갖 러브레터가 날아오는 미래요!”
그 말에 랑야의 얼굴이 굳어졌다.
〖윤사해, 러브레터라면 그거지? 연애편지.〗
“그래, 맞다.”
윤사해의 긍정에.
〖절대로 안 돼!〗
랑야가 빼액 소리 질렀다.
〖내 귀한 손주 녀석들에게 이 자식들이 주제도 모르고!〗
저기, 랑야? 얘네 태어난 지 하루도 안 된 갓난아기들인데요? 그런 미래가 그려진다고 했지만, 아직 러브 레터의 ‘러브’도 받지 못했다고요.
‘뭐, 사랑은 듬뿍 받을 것 같네.’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는 윤사해를 꼭 닮은 여자아이의 뺨을 콕콕 누르며 말했다.
“아기 이름은 뭐예요?”
〖손녀는 사하, 손주 녀석 이름은 홍랑이라고 지었다.〗
“애기들 성(姓)은 없어요?”
“당연히 있죠!”
류화홍이 싱글벙글 웃는 낯으로 말했다.
“쌍둥이 둘 다 제 성을 따르게 됐어요. 류사하, 류홍랑이요.”
그 말에 랑야가 불퉁하게 입술을 씰룩였다.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그보다 랑야, 용케도 남자아이의 이름을 지었네요? 딸아이 이름만 계속 생각한 거 아니었어요?”
〖그랬지. 설마 남자아이가 태어날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해서.〗
“류화홍 헌터의 이름과 사야의 이름에서 각자 하나씩 따와 지었다고 하더구나.”
윤사해의 말에 랑야가 버럭 소리 질렀다.
〖시끄러! 그리고 원래 우리의 자식들은 그런 식으로 이름을 지어!〗
“네 자식이 아니라, 사야와 류화홍 헌터의 자식이지 않나?”
〖어쨌든! 우리 딸이 낳은 귀한 내 손주들 그만 보고 다들 이매망량으로 돌아가기나 해!〗
“저, 저도요?”
류화홍이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랑야는 사위에게 가차없이 굴었다.
〖그래! 너도!〗
그때였다.
“아버지.”
방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랑야가 재빠르게 움직였다. 품에 안고 있던 손녀를 윤사해의 손에 순식간에 넘기고는 말이다.
얼떨결에 사야와 류화홍의 딸아이를 넘겨받은 윤사해는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뭐, 덕분에 나는 아이의 얼굴을 자세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우우, 아아.”
갓난아이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리사, 잡아 보렴.”
“그, 그래도 돼?”
“물론, 아이도 잡아 달라고 이러는 것 같구나.”
윤사해의 말에 나는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의 손을 잡았다.
너무 작고, 또 여렸다.
잘못 만지면 부서질 것 같은 유리 조각을 손에 잡은 느낌이었다. 쿵쾅쿵쾅 괜히 심장이 뛰는데.
〖사야! 일어났냐?! 몸은!〗
랑야의 호들갑이 들려왔다.
“괜찮아요. 그보다 애들은요?”
“여기 있어요, 누나!”
류화홍이 두 뺨을 붉게 붉히며 아들을 안고 들어왔다. 물론, 윤사해의 품에서 딸도 함께 안고 들어갔다.
암만 갓난아이라도 두 아이를 드는 건 힘들 텐데.
“아빠는 아빠라는 건가?”
“뭐?”
“아니, 그냥 혼잣말.”
나는 저세상의 말에 태연하게 대꾸하고는 윤사해에게 물었다.
“아빠.”
“응?”
“리오 오빠랑 리타 오빠가 태어났을 때도 저랬어?”
“으, 응?”
윤사해가 갑작스러운 질문에 놀란 듯 나를 쳐다봤다. 나는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막, 랑야나 화홍이 오빠처럼 기뻐했어?”
내 말에 윤사해가 입술을 살짝 벌리고는 이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 얼굴이 정말…….
‘맛집으로 평가하자면 머슐랭 별 다섯 개.’
……라고 생각이 될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윤사해는 꿈에 잠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정말 기뻤지. 온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단다.”
“나도 그랬어?”
“그래.”
윤사해가 고민도 않고 대답했다. 의외였다. 나는 윤사해가 에일린 리와 이혼한 후 그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이지 않나?
‘더욱이 하룻밤 실수로 생겼다고 들었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윤사해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처음에는 우리 리사가 내 품에 와서 당황했지만, 무척이나 기뻤단다. 세상이 너도.”
“네?”
저세상이 난데없이 들린 자신의 이름에 놀란 얼굴을 보였다. 그에 윤사해가 웃는 낯으로 말했다.
“네가 커 가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게 되어 무척 기뻤다는 소리란다, 세상아.”
저세상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곧, 그는 새빨개진 얼굴로 더듬거리며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 저, 저도 아저씨랑 함께 살 수 있어서, 그러니까, 리오 형이랑 리타 형이랑도 함께 지낼 수 있어서 기뻤어요.”
저세상이 저렇게 당황한 얼굴은 처음 본다. 그렇기에 나는 짓궂게 그에게 물었다.
“나는?”
“응?”
“나랑도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쭉 함께 지냈는데, 그건 기쁘지 않았나 봐?”
“그, 그건!”
저세상이 목소리를 높였다가 고개를 푹 숙이며 입을 열었다.
“기뻤어.”
저세상이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그 대답에 왜인지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정말이지, 기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