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고하는 인사(4)
‘도하선?’
어디를 가는 거지?
평소라면 그가 학교를 나가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을 거다.
아니, 그냥 저대로 나가서 영영 돌아오지 말아 달라고 악담을 퍼부었을 테다.
하지만 제인 아일리의 실종 때문일까? 도하선의 사라진 뒷모습이 자꾸만 신경 쓰였다.
결국, 나는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을 사용하기로 했다.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이 발동됩니다.】
【비각성자, ‘도하선’을 인지합니다.】
학교를 빠져나간 도하선은 인적 드문 공원으로 향했다. 뭐가 그렇게 급한지 공원에 들어선 그는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빠르게 바뀌는 주변의 풍경에 눈이 어지러웠지만 참았다.
‘그보다 공원에는 도대체 무슨 볼 일이지?’
곧 나는 도하선이 왜 공원을 찾은 건지 알게 됐다.
푸석한 검은 머리칼을 한껏 틀어 올린 여자가 보였다.
여자는 붉은 눈을 휘게 접으며 도하선을 반겼고, 그는 한달음에 그녀에게 달려갔다.
여자는 부드럽게 웃으며 도하선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사납게 얼굴을 찌푸리며 입술을 움직였다.
‘누구야, 너.’
여자는 분명 내가 있는 쪽을 쳐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우당탕!
“윤리사!”
단아가 놀라 나를 부르는 외침과 함께 친구들의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사야, 괜찮아?”
도윤이가 내게 손을 내밀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응? 아, 응. 괜찮아.”
나는 도윤이의 손을 잡고 일어나며 눈가를 만지작거렸다.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은 사용 종료된 상태였다. 나도 모르게 놀란 마음에 사용을 중단한 모양이었다.
그때 선생님께서 내게 다가왔다.
“리사, 괜찮니?”
“네? 네, 괜찮아요. 죄송합니다.”
나는 멋쩍게 웃고는 의자를 바로 세워 자리에 앉았다.
‘도대체 언제 수업이 시작된 거지?’
아니, 그보다.
‘그 여자는…….’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분명 본 적이 있는 얼굴인데 기억이 불분명했다.
‘탈쟁이인가.’
유랑단의 아홉 탈, 그들은 탑을 씀과 동시에 자신의 얼굴을 상대한테서 지울 수 있었다.
‘설마, 할미는 아니겠지.’
그녀는 지금 제인 아일리를 자신의 숲 속에서 한껏 닦달하고 있을 터.
‘하지만 정말 할미라면.’
나는 입술 안쪽을 꾹 깨물었다.
틈만 나면 내게 시비를 걸어대는 비각성자, 도하선.
그는 할미와 무슨 사이인 걸까?
그 여자가 할미가 아니라고 해도 문제였다. 비나리 고등학교의 선생이 유랑단과 인연을 맺고 있는 거였으니까.
‘일단, 나중에 생각해 보자.’
나는 눈가를 꾹꾹 눌렀다.
***
도하선은 하교 시간에 가까워질 무렵에야 학교로 돌아왔다. 매 시간마다 교무실을 방문한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윤리사 학생, 교무실에는 무슨 일로 찾아왔습니까?”
“최화백 선생님을 만나러 왔는데 자리에 안 계시네요.”
나는 교무실에 없는 선생님을 대충 한 명 골라 변명거리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도하선에게 인사한 후 나는 곧장 교무실을 나왔다.
지금 그에게 유랑단의 탈과 무슨 사이이냐고 물어볼 수는 없었으니까 말이지.
어쨌든 간에 드디어 하교 시간.
“윤리사, 너 쓰러졌었다며?”
저세상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쓰러진 적 없는데?”
“거짓말하지 마. 3반 애들이 지희준한테 말하는 거 다 들었어. 네가 수학 시간 도중에 쓰러졌었다고.”
“아아.”
나는 바람 빠진 소리를 한 번 내고는 말했다.
“쓰러진 거 아니야.”
“그럼?”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을 사용하다가 웬 여자한테 걸려서 놀라 넘어진 거라고는 절대로 말 못하지.
나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졸다가 넘어진 것뿐이야. 수학 시간이었잖아?”
“너도 참…….”
저세상이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도윤이는 마지막 수업 종이 치자마자 집으로 돌아갔고, 한태극네 세쌍둥이는 자신들을 데리러 온 검은 세단을 타고 돌아가 버렸다.
그러니까 나는 저세상과 함께 단 둘이서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어쨌든! 별 일 아니었으니까 아빠랑 오빠들한테 괜히 이야기해 주려고 하지 마.”
“나도 네가 수학 시간 때 졸다가 넘어졌다는 이야기는 아저씨랑 형들한테 해 줄 생각 없어.”
진짜 얄미운 자식!
나는 저세상을 향해 뚱한 얼굴을 보이고는 홱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집으로 열심히 다리를 움직이려고 했는데.
〖리사 아씨.〗
“가람?”
새벽에 몰래 찾아 나서려고 했던 가람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가람! 무슨 일이에요?!”
나는 환하게 웃으며 그에게 달려갔다. 가람은 부드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 새벽에 쇤네를 찾았다고 하여 이리 왔습니다.〗
“해솔이 언니가 말했나 봐요?”
가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리사 아씨께서 제인이란 처자를 찾고 있는 것도 들었소.〗
“네, 맞아요! 혹시 제인 선생님 찾으셨나요?”
나는 기대감 어린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에 나는 실망했다.
〖찾지 못했소이다.〗
“그렇군요…….”
〖하지만 곧 비가 내릴 테니, 제인 처자를 찾을 수 있을 거요.〗
“비가 내리는 거랑 제인 선생님을 찾을 수 있는 게 무슨 상관인데요?”
〖이 세상에 비가 스며들지 못하는 곳은 없소. 있다면 그곳은 용암지대뿐이지.〗
그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리의 아스팔트도 비를 흡수하지 못하는데요?”
〖아스팔트라면 도로 위에 깔려 있는 그 해괴망측한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네, 맞아요.”
〖물론, 그것 아래로 빗방울은 스며들지 못하오. 하지만 옆길로 새는 통로가 있지 않소?〗
배수로를 말하는 건가 보다.
〖이렇듯 비가 가지 못하는 길은 없다오. 예외라면 하나, 태랑 성님께서 만드시는 특수한 공간과 같은 곳일 것이요.〗
특수한 공간, 그에는 할미가 만든 ‘사령(死靈)의 숲’도 해당이 됐다.
“그래서 비가 내리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란 말이네요?”
『각성, 그 후』에서 그랬다.
미지 영역의 거주자나 각성자가 만드는 특수한 공간은, 사실 현실의 공간을 일부 비틀어 만들어내는 내는 거라고.
내 말에 가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이다. 당장 오늘 밤에 비가 내릴 듯싶으니…….〗
그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곧 리사 아씨께서 찾으시는 처자의 행방을 알 수 있을 거요.〗
“꼭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부디 제인 아일리가 무사했으면 좋겠다.
〖그럼, 쇤네는 이만 가 보겠소이다. 처자를 찾으면 다시 찾아오겠소.〗
“가람.”
나는 뒤돌아 자리를 떠나려는 그를 붙잡고는 말했다.
“제발 꼭 좀 부탁드릴게요.”
가람이 맡겨만 달라는 듯이 싱긋 눈웃음을 짓고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윤리사, 이야기는 다 끝났어?”
“응, 이제 집에 가자.”
나는 애써 밝게 웃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저세상이 그런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왜?”
“미지 영역의 거주자와 제인 선생님 관련으로 이야기 나눴지?”
숨길 생각도 없었지만 바로 맞출 줄이야!
나는 뚱하게 말했다.
“응, 별 다른 이야기는 안 했어. 제인 선생님 꼭 좀 찾아 달라고 부탁했을 뿐이지.”
“정말?”
“사람을 왜 이렇게 못 믿어?”
“그야, 너니까.”
이 자식, 묘하게 신빙성 있는 말을 한다.
나는 입술을 씰룩이고는 말했다.
“어쨌든 제인 선생님 찾으러 갈 생각은 없으니까 안심해.”
“걱정도 안 했어.”
순간 저세상의 입술을 한 대 때려 버릴 뻔했다. 우리 주인공님, 왜 시간이 지날수록 얄미워지는 것 같지?
그냥 한 대 때려 버릴까, 타이밍을 노리는데 저세상이 갑자기 내게 물었다.
“그런데 너, 마음만 먹으면 제인 선생님 찾을 수 있지 않아? 분명 그런 스킬이 있을 텐데.”
저세상이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 나를 쳐다봤다.
‘어떻게 알았지?’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어릴 적, 저세상의 앞에서 아주 보란 듯이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을 사용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응, 있어. ‘인지의 눈’이라고, 상대의 진명(眞名)과 그 얼굴만 안다면 어디에 있든 찾을 수 있지.”
“그런데 왜 사용하지 않고 있는 거야? 그 스킬이라면 제인 선생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금방 찾을 수 있을 텐데.”
“아니, 못 찾아.”
나는 단호하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설사 찾을 수 있다고 해도 제인 선생님이 ‘할미의 숲’에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걸?”
지금 상황에서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을 사용하면 제인 아일리가 처한 아주 끔찍한 상황만 나의 두 눈에 비치고 말 테다.
‘할미의 숲이 형성된 그 정확한 위치는 알아내지 못하고 말이지.’
그리고 나는 그게 두려웠다.
제인 아일리가 이미 사령에게 목숨을 빼앗기고 원혼이 되어 숲을 떠돌고 있을까 봐.
어릴 적, 나를 괴롭혔던 사령의 울음기 섞인 목소리가 내 귀를 간질거리게 될까 봐.
‘그때 저세상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죽었을 거야.’
문득 떠오르는 어릴 적 기억에 입술 안쪽을 꾹 깨물 때였다.
“하지만 혹시 모를 일이잖아. 네가 제인 선생님을 찾을 수 있을 지도.”
“내가 찾을 수 있었으면 진작 아빠랑 아저씨들이 제인 선생님을 찾았겠지.”
“그건 그렇지.”
저세상이 맞는 말이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곧 그는 나보다 먼저 한 걸음 떼고는 말했다.
“집에나 가자.”
“그래.”
나는 저세상과 발맞춰 집으로 향했다. 우리 뒤로 지는 노을이 왜인지 모르게 을씨년스러웠다.
나는 내 앞으로 길게 진 그림자를 보며 생각했다.
‘제인 아일리, 윤설아. 아니, 할미.’
그리고.
‘도하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