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고하는 인사(3)
“거짓말은 좋지 않아.”
망할! 해솔이 언니, 그냥 ‘그렇구나’하고 넘어가면 안 되나요?!
넘어가면 안 되는 일이기는 했다.
지금 시간은 새벽이 훌쩍 넘은 늦은 밤, 이제 막 열일곱 살이 된 내가 돌아다니기에는 꽤 늦은 시간이었다.
“리사, 세상아. 무슨 일인지 제대로 말해 주지 않을래? 그래야, 내가 도와주든 말든 할 것 같은데.”
나는 두 눈을 데굴 굴렀다. 그때 저세상이 내 옆구리를 콕콕 찌르고는 말했다.
“해솔이 누나한테 솔직하게 말하자.”
“그래도 괜찮을까?”
“응, 너 어차피 가람한테 도움을 요청하려고 했잖아.”
“아.”
대외적으로 가람은 청해솔의 계약자라고 알려져 있었다.
‘사실 아니겠지.’
가람은 따로 계약을 맺지 않아도 자유롭게 이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런 정보가 퍼져있는 것은 청해솔이 가람을 생각해서 그런 것이리라.
어쨌든 나는 청해솔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로 했다.
“해솔이 언니, 그게 말이에요. 저한테 소중한 선생님이 지금 실종됐거든요.”
“누구?”
“제인 아일리라고, 저희 담임 선생님이에요.”
“제인 아일리……?”
청해솔이 미간을 좁혔다.
“제인 선생님께서 실종되셨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청해솔이 놀란 눈으로 우리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청해솔도 비나리 고등학교 졸업생이지.
제인 아일리는 청해솔이 졸업했던 그 시기에도 비나리 고등학교에서 재직 중이었나 보다.
어찌됐든 나는 말했다.
“자세한 상황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인 선생님의 남편 분께서 아빠한테 도움을 요청했거든요. 제인 선생님이 실종되셨다고요.”
“그래서 이 늦은 시간에 집 밖에 나와 있었다는 거구나.”
“네, 걱정돼서요.”
“아무리 걱정된대도 그렇지.”
청해솔이 짧게 혀를 찼다.
“제인 선생님은 나도 찾아 볼게. 그러니까 너희는 걱정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
“아니에요, 언니! 저희도 찾게 해 주세요!”
“안 돼.”
청해솔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에잇, 저렇게 나오면 어쩔 수 없지! 손을 번쩍 들어 <[S, 숙련 불가] 내 말이나 들어라!>를 사용하려고 했는데.
저세상이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이게 무슨 짓이야?!’
나는 한껏 눈을 부라리며 저세상을 노려봤다. 하지만 저세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 우리 둘의 머리 위로 청해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생각은 기특하다만 집에 돌아가도록 해. 너희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가는 윤사해 길드장님을 볼 면목이 없으니.”
“해솔이 언니…….”
“제인 선생님은 내가 열심히 찾아 볼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 알겠지?”
나는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해솔이 언니.”
***
다음날, 제인 아일리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백도윤도 안 나왔다. 담임 선생님이랑 같이 산다고 들었는데 무슨 일 있나?”
단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입술 안쪽을 꾹 깨물었다.
“윤리사, 왜 그래? 백도윤이 걱정돼서 그래? 오늘 학교 끝나고 집에 찾아가 볼까?”
“응? 아니야, 괜찮아!”
나는 황급히 두 손을 내저었다. 도윤이의 집안은 지금쯤 발칵 뒤집어졌을 거다.
‘괜히 찾아갔다가 무슨 민폐일지 몰라.’
나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일단, 아침 수업 끝나고 나중에 괜찮냐고 문자 보내보자.”
“응.”
하지만 아침 수업이 끝나 시간.
우리는 도윤이한테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없게 됐다.
“백도윤!”
도윤이가 등교했기 때문이었다.
단아가 놀란 눈으로 도윤이에게 달려갔다.
“너 뭐야? 아픈 거 아니었어?”
“응, 아니었어.”
그리 말하는 도윤이의 목소리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제인 아일리 때문에 그런 거겠지.’
또한, 도윤이는 억지로 등교를 한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점심이 끝날 무렵에 학교에 올 리가 없지.
그때, 도윤이네에 일어난 일을 알 리가 없는 단아가 도윤이의 뺨을 붙잡고 이리저리 살펴보며 물었다.
“백도윤, 너 진짜 괜찮아? 얼굴이 아주 죽을 상인데.”
“나 진짜 괜찮아.”
“아닌 것 같은데?”
“나 진짜 괜찮다니까?!”
도윤이가 단아의 손을 쳐내고는 신경질적으로 소리 질렀다. 단아도 당황했고 도윤이도 당황했다. 물론, 나 역시 당황했다.
도윤이가 저렇게 성을 내는 걸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백도윤, 너…….”
단아가 입을 뻐끔거리며 도윤이를 쳐다봤다.
“미, 미안.”
도윤이는 그대로 자리를 떠나 버렸다. 그에 단아가 기가 차다는 듯이 바람 빠진 소리를 냈다.
“왜 저래?!”
“너무 화내지 마, 단아야. 도윤이도 당황한 것 같았어.”
그보다…….
“단아야, 먼저 교실로 돌아가! 나는 잠깐 갈 곳이 있어서!”
“뭐? 야! 윤리사!”
나를 붙잡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간단히 무시하고는 냅다 달렸다.
“도윤아! 백도윤!”
도윤이의 뒤를 쫓기 위해서 말이다. 다행히도 나는 금방 도윤이를 찾을 수 있었다.
학교 체육관 뒤, 그곳에서 도윤이는 무릎을 굽히고는 훌쩍이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도윤이한테 다가갔다.
“……도윤아, 괜찮아?”
“응.”
대답하는 목소리가 물기에 가득 젖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곧 도윤이가 금방이라도 울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사실 나 하나도 안 괜찮아.”
“도윤아…….”
“제인 누나가 실종됐대. 우리 누나 어떻게 해? 배에, 아이도, 흑, 아이도 있는데!”
“뭐?”
“우리 누나 어쩌면 좋아? 나도, 끄흡, 나도 돕고 싶은데!”
아빠랑 삼촌이 그러지 못하게 한다면서 도윤이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멍하니 입술을 달싹이다가 학교가 떠나가라 우는 도윤이의 목소리에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도, 도윤아! 뚝! 제인 선생님은 괜찮을 거야! 그러니까 뚝!”
도윤이가 히끅거리며 눈물을 그치려고 했다. 하지만 쉽사리 그게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커다란 눈망울에서 뚝뚝 떨어지는 눈물에 가슴이 저렸다.
‘빌어먹을 탈쟁이 새끼들!’
제인 아일리를 노린 탈이 누굴까? 나는 어렵지 않게 범인을 유추해낼 수 있었다.
‘할미.’
그녀는 ‘윤설아’라는 이름으로 제일 아일리의 곁을 맴돌았었다.
‘어느 순간 안 보여서 그대로 죽었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나는 이를 으득 갈았다.
할미의 숲은 쉽게 찾을 수 없는 공간이었다. 랑야 역시 하루가 훌쩍 지난 다음에야 공간의 틈을 발견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좋지?’
나야 그 공간에서 운 좋게 저세상과 함께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제인 아일리는 그러지 못할 확률이 훨씬 더 높아.’
어쨌든 지금은 도윤이를 달래는 게 먼저였다.
“도윤아,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 아빠도 지금 제인 선생님을 찾으려고 엄청 열심인걸? 그러니까 금방 선생님의 행방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정말……?”
“응! 정말로!”
나는 환하게 웃으며 한 손을 들어 내 가슴팍을 두드렸다.
“나 못 믿어?”
도윤이가 작게 웃음을 흘렸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털이 난다고 하지만, 도윤이는 털 나도 귀여울 것 같았다.
그때였다.
“거기서 뭐하고 있는 겁니까?”
날선 목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시선 끝에 반갑지 않은 얼굴이 보였다.
“도하선 선생님…….”
이런 상황에서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도하선은 나를 보고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가 내 곁의 도윤이를 보고는 얼굴을 풀었다.
도윤이네 집안에 생긴 일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곧 수업 시작할 시간입니다. 교실로 돌아가도록 하십시오.”
도하선은 그 말을 끝으로 걸음을 돌려 가 버렸다. 나는 그 뒷모습을 향해 혀를 날름거려 주고는 도윤이에게 말했다.
“도윤아, 도하선 선생님 말 들었지? 이제 수업 시작하니까 교실로 돌아가자.”
“응…….”
도윤이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도윤이의 어깨를 토닥여 주며 함께 교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교실 안에서 우리는 잔뜩 토라진 단아를 볼 수 있었다.
단아는 우리가 돌아온 것을 알아차렸을 텐데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도윤이가 크흠, 헛기침을 터트렸다.
“저, 단아야.”
“뭐.”
“아까 전에는 미안.”
“흥!”
단아가 도윤이한테서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도윤이의 두 눈에 눈물이 다시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아이고야!
“단아야~! 도윤이가 미안하다고 하잖아?”
“윤리사, 너도 흥이야! 어디를 그리 급하게 가나 했더니, 백도윤 쫓아 간 거였어? 그런 거라면 나도 같이 데려갔어야지!”
오호라, 그것 때문에 화가 났던 거구나?
나는 배시시 웃으며 단아에게 다가갔다.
“미안해, 단아야. 내가 미처 신경 쓰지 못했어. 다음에는 이런 일 없도록 할게, 응?”
“정말?”
“나 못 믿어?”
단아가 두 눈을 뾰족하게 뜨고는 나를 쳐다봤다. 곧, 단아가 고개를 홱 돌리며 말했다.
“다음번에도 이런 일 있으면 너랑 말 안 할 거야! 물론, 백도윤! 너도야! 알겠어?”
“응! 사과받아줘서 정말 고마워, 단아야!”
휴우, 우리 단아. 사람이 참 알기 쉬워서 다행이다. 단아와의 우정을 회복한 나는 곧장 다음 수업을 준비했다.
하지만 수업이 시작되기 직전.
“어……?”
교문 밖으로 나가는 낯익은 뒤통수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