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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204)화 (204/500)

204화. 달갑지 않은 인사(5)

“도하선이라고, 역사 선생님이에요.”

“도하선…….”

최화백이 역사 선생님의 이름을 한 번 읊조리고는 내게 말했다.

“알겠어, 잘 지켜보고 윤사해 길드장님한테 넌지시 알려 줄 테니 그만 교실로 돌아가 봐.”

그 말에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는 잘 지켜보라는 말도, 아빠한테 일러 주라는 말도 안 했는데요?”

“그럴 의도로 나한테 ‘도하선’이란 선생님의 이야기를 꺼낸 거잖아. 아니야?”

“맞아요.”

나는 방긋 웃었다. 새삼스레 최화백이 비나리 고등학교에 교생으로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성, 그 후』에서 최화백은 억지로 아래아의 부길드장을 맡은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머리 하나는 잘 돌아갔던 사람이니까.’

그러니 그라면 분명 내가 ‘도하선’의 이야기를 꺼내는 의도를 쉽게 알아차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야, 비나리 고등학교에 입학한 비각성자 중에는 윤사해가 도맡아 보호하고 있는 ‘저세상’이 있으니까.

최화백은 내 이야기에서 도하선이 저세상을 괴롭히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거다.

“선생님 똑똑해요.”

“선생님이니까 똑똑하지. 그보다 곧 1교시 시작할 거야. 어서 수업 들으러 돌아가.”

“네엡!”

나는 활짝 웃으며 3반 교실로 돌아갔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단아가 물었다.

“그 못생긴 선생님이랑 무슨 이야기 하고 왔어?”

못생긴 선생님이라니…….

최화백은 절대로 못난 외모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단아는 윤리타한테도 못생겼다고 한 적이 있었지?

단아의 미적 기준이 얼마나 높은지 가늠이 안 됐다.

어쨌거나.

“별 이야기 안 나눴어. 우리 옛날에 최화백 선생님이랑 같이 뱀 섬 놀러갔던 거 기억나지?”

“으음, 글쎄.”

“나는 기억해!”

단아는 기억이 나지 않는 듯했지만 도윤이가 기억이 난다면서 손을 번쩍 들었다.

나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기억난다니 다행이네. 최화백 선생님과는 그 이후로도 몇 번 만난 적이 있거든. 그래서 아는 척을 조금 한 것뿐이야.”

“그래? 이왕 아는 거, 저 선생님한테 부탁하는 건 어때?”

“무슨 부탁?”

“도하선 있잖아! 그 선생님 좀 어떻게 해 달라고 부탁하는 거야!”

속으로 뜨끔했지만 나는 베시시 웃으며 말했다.

“에이, 그런 부탁을 어떻게 해!”

저세상이 봤다면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면서 혀를 찼을 거다.

어쨌든 나는 최화백이 부디 도하선에게 엿을 선사해 주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바랐다.

***

최화백은 비나리 고등학교 1학년 교무실에 들어선 후, 선생님들을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최화백이라고 합니다. 비나리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선생님들과 함께 교단에 서게 됐습니다.”

제인 아일리를 비롯하여 여러 선생님이 그를 반겼다.

“오랜만이다, 화백아! 네가 선생이 되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그렇게 오래 가지 않았다. 팔짱을 끼고 있던 도하선이 한마디 보탠 탓이었다.

“최화백 선생님께서는 최설윤 길드장님의 조카 분이라고 하던데, 그분께서 학교에 꽂아 달라고 로비라도 했나 봅니다.”

최화백이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를 반기던 선생님들은 당황하여 말했다.

“도하선 선생! 그게 무슨 말이야!”

“맞아요, 선생님! 최설윤 길드장님께서 그럴 분 아니란 거 알면서!”

“그냥 농담 좀 한 것뿐입니다.”

도하선이 수업 때 사용할 자료를 정리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수업이 있어서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최화백 선생님,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네, 뭐.”

최화백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도하선은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보이고는 그대로 교무실을 나섰다.

드르륵, 탁!

교무실 문이 닫히자마자 최화백은 제 은사들에게 물었다.

“저 선생님은 언제 오신 분이래요? 처음 뵙는 분인데.”

“1년 전에 처음 오신 분이야. 원래 계셨던 분께서는 퇴직하셨어.”

“아아, 그렇구나.”

최화백이 아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어떻게 들어온 거래요? 비나리 고등학교에 들어오기 쉽지 않을 텐데, 꽤 똑똑하신가 봐요.”

“그건 아니고.”

평소에 도하선을 좋지 않게 보던 선생님 하나가 입을 열었다.

“우리 학교, 이번에 비각성자도 입학 가능하도록 교칙 변경된 거 알지?”

“네, 알아요.”

“그 일환으로 뽑힌 거야.”

“네?”

최화백에게 도하선에 대해 정보를 알려주던 선생님이 얼굴을 한껏 찌푸렸다.

“도하선 선생, 비각성자라고. 그런데 같은 비각성자 학생들을 못살게 굴고 있다고 원성이 자자하니.”

그 말을 뒤이어 다른 선생님이 말했다.

“학부모 측에서 민원 들어오면 바로 잘릴 사람이니까 최화백 선생님께서는 너무 신경 쓸 필요 없어요.”

“그렇군요…….”

최화백이 굳게 닫힌 교무실 문을 보며 픽 웃음을 흘렸다.

처음, 윤리사한테서 도하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의문이었다.

‘왜 학교에서 안 자르고 있는 거지?’

그런데 그 이유를 조금 저에 알게 됐다.

도하선이 비각성자라면 쉽게 자를 수 없을 거다.

비각성자의 입학을 허용하는 일환으로 뽑은 비각성자 선생님이라고 하지 않나?

‘뭐, 비나리 고등학교에서는 예전부터 비각성자인 선생님을 뽑고는 했지만…….’

뽑힌 사람은 하나같이 특정 분야에서 이름을 알리던 사람들이었다.

즉, 공개 채용은 아니었다는 거다.

‘도하선이라고 했나? 저 선생님께서는 공개 채용으로 뽑힌 사람이겠지. 아마, 언론에 대대적으로 알리면서 뽑은 사람일 거야.’

그러니 함부로 자를 수가 없는 걸 거다. 그랬다가는 분명 대중의 지탄을 받을 게 분명하니.

“재미있는 분이네.”

도하선 역시 그걸 알고 제 주제도 모르고 함부로 입을 놀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같은 비각성자를 차별하면서, 또한 저보다 뛰어난 배경을 가진 각성자를 질투하면서 말이다.

‘추잡해.’

최화백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자자, 다들 도하선 선생님은 그만 신경 쓰고 이제 수업 하러 가요! 최화백 선생님, 미술실 모르죠?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네,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최화백은 도하선에 대한 관심을 거두고 제인 아일리의 뒤를 졸래졸래 따라갔다.

‘도하선과는 언제 한 번 크게 부딪칠 일이 있을 것 같으니까 그때 처리해야지.’

속 편하게 그리 생각하면서.

***

1교시 수업 종료 후, 나는 책상 위에 늘어졌다.

“단아야. 우리 2교시 뭐야?”

단아가 나와 똑같이 책상 위에 늘어지며 도윤이에게 답을 구했다.

“백도윤, 우리 2교시 뭐야?”

“역사야.”

나는 단아와 함께 앓는 목소리를 냈다. 단아가 얼굴을 와락 찌푸리고는 말했다.

“다음 수업 도하선이야? 진짜 싫어. 완전 끔찍해.”

“동감이야.”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책상 위에 얼굴을 묻었다.

“그냥 잘까?”

“안 돼, 리사야. 그랬다가는 도하선 선생님이 가만 안 둘걸?”

“아아, 진짜 싫어.”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 싫어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도하선 선생님, 수업 하러 오다가 넘어져서 코 뼈 부러지면 좋겠다.”

내 말에 단아가 키득거리며 웃고는 내게 물었다.

“윤리사, 우리 아프다고 거짓말 치고 양호실에 가지 않을래?”

“좋은 생각이야!”

역시, 내 친구!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양호실로 가려던 우리의 계획은 무산됐다.

“윤리사 학생, 한단아 학생. 곧 수업 시작할 시간인데 두 사람 지금 어디 갑니까?”

가던 도중에 도하선을 만났기 때문이다. 나는 어색하게 웃었고, 단아는 입술을 삐죽였다.

“양호실 가는데요. 아파서요.”

단아야, 아픈 목소리가 아니잖아.

도하선이 단아의 말에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고는 말했다.

“괜찮아 보이는데 어디가 아프다고 그럽니까?”

단아는 두 눈을 데굴 굴렸다. 나 역시 마땅한 변명거리가 없어 두 눈을 데굴 굴리는데.

“생리통이요.”

“뭐라고요?”

“오늘 그날이거든요. 배가 너무 아프네요. 아야야.”

우리 단아, 연기는 절대 안 되겠다. 그보다 생리통이라니. 기가 막힌 변명이었다.

도하선의 얼굴은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생리통이라는데 어쩐 건가?

‘확인할 수도 없고 말이지.’

결국, 도하선은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우리 둘에게 말했다.

“그렇다니 어쩔 수 없군요. 다음 수업 때는 약이라도 먹으십시오.”

“네에.”

나는 단아와 함께 후다닥 양호실로 향했다. 우리는 도하선의 시선에서 멀어지자마자 하이파이브를 했다.

“후우, 그대로 교실로 돌아가라고 하면 어쩌나 걱정했네!”

내 말에 단아가 키득거렸다.

“도하선이 그 정도로 꽉 막힌 사람은 아니라서 다행이야.”

“그러게 말이야.”

우리는 그렇게 사이좋게 양호실에 도착했다.

양호 선생님께도 생리통 때문에 아프다니 뭐니 꾀병을 부려 우리는 나란히 수업을 땡땡이 치게 됐다.

“아아, 좋다. 이대로 오늘 수업 모두 날리고 싶어.”

“하지만 그랬다가는 단예랑 단이가 단아, 너를 가만 안 둘걸?”

단아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그 얼굴에 나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윤리사, 그만 웃고 한숨자.”

“응, 단아 너도.”

나는 단아와 인사를 나눈 후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비나리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아직 한 달도 안 됐는데 벌써 두 번째 땡땡이다.

‘윤리오가 알면 난리나겠네.’

무조건 비밀로 해야지.

그렇게 두 눈 꼭 감고 편안하게 잠에 드는데.

“선생님, 계십니까?”

“도하선 선생님! 또 오셨네요? 오늘은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달갑지 않은 이름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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