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달갑지 않은 인사(4)
5교시 수업은 역사.
나는 쭈뼛거리며 역사 선생님 앞에 나갔다.
“윤리사 학생, 급식실에서 왜 스킬을 사용했습니까?”
어떻게 할까? 사실, 스킬을 사용한 게 아니라 그냥 뺨만 때린 거라고 할까?
나는 고민하다가 말했다.
“4반의 지희준이 비각성자 친구를 괴롭혀서 사용했어요.”
이런 건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다.
하지만 눈앞의 역사 선생님한테는 솔직하게 말했으면 안 됐나 보다.
“그 비각성자 친구가 불쌍해 보였습니까?”
“네? 아니요! 불쌍해 보였다니요!”
“그럼, 그 친구가 알아서 해결할 수 있게 놔뒀어야지요.”
놔뒀으면 지희준이 좋다고 더 괴롭혔을 텐데요.
나는 치미는 말을 꾹 삼켰다.
“윤리사 학생, 잘난 부모 밑에서 태어나 잘난 힘을 가졌다고 그 힘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알겠습니까?”
비꼬는 목소리에 울컥, 화를 낼 뻔 했지만 나는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네…….”
참고로 역사 선생님 같은 인간한테는 어떤 말이든 ‘네’하고 수긍하는 게 최고였다.
그러지 않으면 꼬투리를 잡아서 어떤 망신을 줄지 모르거든.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네에.”
나는 일부러 말꼬리를 늘어뜨리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털썩 앉자마자 단아가 내게 소곤거렸다.
“도하선, 너한테 왜 그래? 별 걸 가지고 꼬투리를 잡네.”
“저 선생님 이름이 도하선이야?”
“응, 꼰대로 엄청 유명하대. 성적도 자기 마음대로 준다던데?”
그런 선생님을 비나리 고등학교에서 왜 기용하고 있담?
나는 불퉁하게 입술을 씰룩였다.
“거기, 조용하십시오. 이제 수업 들어갈 겁니다.”
“넵.”
나와 단아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도하선의 수업은 재미없었다.
인기 없는 선생님이나 욕 많이 먹는 선생님은 그냥 이름으로 불린다더니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재미도 없는데 시도 때도 없이 내게 질문을 던져댔다. 예습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질문까지 말이다.
하지만 내가 누구냐!
“각성자와 비각성자가 구분된 건 100년도 채 되지 않았어요. 그 이전에는 신묘한 힘을 다룬다고 하여 신인(神人)이라고 불렀습니다.”
윤사해의 하나뿐인 딸, 세기의 천재는 아니지만 어쨌든 머리 하나는 똑똑하단 말이다!
내가 질문을 속속 맞추자 도하선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어쩔 건가?
‘틀린 거 없잖아?’
결국, 도하선은 수업이 끝날 때까지 괜히 나를 책잡지 않았다.
도하선이 나가자마자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수업 내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리사, 괜찮아?”
“도하선 진짜 짜증나! 너한테 왜 그런대?”
“그러니까! 리사를 미워할 구석이 어디 있다고 저러는 거야?”
도윤이와 단아가 나대신 씩씩거리며 화를 냈다. 내가 친구는 정말 잘 사귀었다니까?
“괜찮아, 얘들아.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는 없잖아?”
일부러 분위기를 풀고자 한 말이었는데.
“아니! 리사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니 이해할 수 없어!”
“맞아! 용납할 수 없어!”
도윤이와 단아가 너무 진심으로 반응을 해 버렸다. 부끄러울 정도로 말이다.
어쨌거나 도하선의 수업 이후로 나를 괴롭히는 선생님은 없었다.
그렇게 하교길.
도윤이는 오늘 백시준이 길고 긴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이라며 먼저 가버렸다.
오랜만에 저세상과 함께 사이좋게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가 갑자기 도하선의 이야기를 꺼냈다.
“윤리사, 도하선이 우리 교실에서 너 욕하더라.”
“뭐?”
나는 저세상의 이야기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세상이 심드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오늘 급식실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면서 너 욕하던데, 네 이름은 말 안 했지만, 오늘 급식 먹은 애들은 네 이야기인 줄 다 알았을 거야.”
“그 선생님은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런대?”
“걱정 마, 나도 욕했거든.”
“뭐엇?!”
나는 놀라 저세상을 쳐다봤다. 내 시선에 저세상이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말했다.
“나보고 힘이 없으면 힘을 기르거나 이 학교에서 나가야한다고 했어.”
“그런 말을 했다고?”
“응, 나한테 괜히 다른 애들한테 피해 주지 말라고 하더라고. 알고 보니 비각성자 혐오하는 걸로 유명하더라.”
나는 와락 얼굴을 찌푸렸다.
“비나리 고등학교는 그런 인간을 왜 기용하고 있는 거래?”
“위에 연줄이 있겠지.”
하긴, 그러니까 비나리 고등학교에서 선생질을 하고 있는 걸 테다.
“확 아빠한테 말해 버릴까 보다.”
“안 그러는 게 좋을걸?”
나는 불퉁하게 입술을 씰룩였다.
“나도 알아. 그냥 말만 해 본 거야.”
윤사해한테 말하면, 그는 당장 도하선을 비나리 고등학교에서 자르라면서 학교 측에 압박을 넣을 거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도하선은 강제로 교직에서 물러날 거다. 그리고 학교에는 소문이 퍼지겠지.
내가 윤사해의 힘을 이용해서 선생님을 강제로 밀어냈다고 말이다.
그런 소문은 사양이었다.
내가 욕을 먹는 건 상관없지만, 윤사해가 욕먹는 건 싫다고!
“도하선 수업 때는 숨도 쉬지 말아야겠어.”
그 말을 듣자 저세상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내가 불퉁하게 그를 보았다.
“지금 웃음이 나와? 나란히 성격 더러운 선생님한테 찍혔는데!”
“뭐, 어때? 그 선생님이 우리를 체벌할 것도 아닌데.”
라는 말을, 저세상은 곧 후회하게 됐다.
***
비나리 고등학교에 입학한지도 벌써 일주일, 나는 4반 교실로 올라갔다가 복도에서 벌을 서고 있는 저세상을 발견했다.
“야, 저세상!”
나는 놀라 그에게 달려갔다.
“뭐야? 혼자서 뭐해?”
저세상이 뚱한 얼굴로 말했다.
“보면 몰라? 벌서고 있잖아?”
“그러니까 왜 벌을 서고 있냐고! 이마는 왜 그렇게 빨개?”
“도하선 선생님이 쿡쿡 눌렀으니까 그러지.”
내 질문에 대답해 준 사람은 저세상이 아니었다.
“지희준!”
지희준이 비열하게 웃고 있었다.
“저세상, 저 자식이 감히 도하선 선생님한테 대들었거든. 선생님이 때리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
“너는 지금 내가 네 뺨을 한 번 더 때리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 지희준.”
지희준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나한테 뺨을 한 대 더 맞기는 싫나 보다.
“도하선한테 대들기는 왜 대들어?”
“그 자식이 아저씨를 욕했단 말이야! 같잖은 마음으로 비각성자 따위를 동정하고 있다고!”
저세상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를 욕하는 건 괜찮아! 하지만 아저씨는 안 돼!”
“……저세상.”
“여기 있다가 도하선한테 걸려서 괜히 혼나지 말고 네 교실로 돌아가. 한단예랑 한단이가 과한 처사라고 도하선 만나러 갔으니까 내 걱정은 말고.”
걱정이 안 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저세상의 말대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한테도, 그리고 저세상한테도.
나는 결국 입술을 꾹 깨물고는 그에게서 걸음을 돌렸다.
교실로 돌아가자마자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도윤이와 단아가 화르 냈다.
“도하선 선생님이 지금 세상이 형 벌 세우고 있다며?”
“미친 거 아니야?!”
“맞아,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미치신 것 같아!”
나는 씩씩거리는 둘을 겨우 진정시키고는 말했다.
“저세상은 괜찮더라고, 너무 걱정할 것 없어.”
하지만 도하선에게 엿은 한 번 제대로 먹여야할 것 같았다.
‘윤사해를 욕하고 싶지만, 그가 무서워 저세상한테 상처가 안 날 정도로 체벌하는 꼴이라니!’
비겁했다.
‘어떻게 엿을 먹이면 좋을까?’
이왕이면 크게 엿을 먹여 비나리 고등학교에서 영영 보지 않았으면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를 도와줄 사람이 비나리 고등학교에 왔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한 달간 비나리 고등학교에서 교생 실습을 하게 된 최화백이라고 합니다.”
최화백, 최설윤의 하나뿐인 조카인 그가 비나리 고등학교에 교생 실습을 오게 된 거다.
제인 아일리가 최화백을 소개하며 활짝 웃었다.
“자아, 여러분. 최화백 선생님께서는 앞으로 한 달간 우리 3반의 부담임 선생님으로 미술 수업을 담당할거예요! 다들 환영의 의미로 박수 보냅시다!”
“와아아!”
“선생님, 잘생겼어요!”
친구들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최화백을 반겼다.
최화백 역시 아이들의 목소리에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은 걸 안다는 듯 심드렁하게 반갑다고 인사했다.
그렇게 아침 조례 시간이 끝난 후, 나는 최화백의 뒤를 쫓아갔다. 최화백이 내 기척을 알아차리고는 자리에서 멈췄다.
“윤사해 길드장님의 따님, 나한테 무슨 볼 일이라도 있어?”
“히힛, 오랜만이에요. 오빠!”
내 인사에 최화백이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오빠가 아니라 선생님. 학교에서는 선생님이라고 불러야지.”
나는 방긋 웃었다.
“다름이 아니라, 선생님. 비나리 고등학교에 비각성자 입학이 가능하게 됐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그게 왜?”
“그게 마음에 안 드는 선생님이 계시더라고요.”
“그런 사람이 있어?”
“네.”
최화백이 미간을 살짝 좁혔다.
나는 두근두근 긴장감 어린 얼굴로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여기에서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라는 대답이 나오면, 두 말 하지 않고 <[S, 숙련 불가] 내 말이나 들어라!>를 사용해야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누군데? 이름 말해 봐.”
최화백은 내가 원하던 대답을 들려주었다.
나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