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달갑지 않은 인사(3)
결과적으로, 한태극네 세쌍둥이와 도윤이는 쫓겨났다. 양호실에서 시끄럽게 우리를 찾은 죄였다.
그리고 나와 저세상은 아침 수업을 모두 날린 후에 양호실을 벗어났다.
점심을 포기할 수 없던 탓이다.
“맛있어! 리오 오빠랑 리타 오빠가 급식을 그렇게 칭찬하더니! 그럴 만도 했네!”
나는 점심으로 나온 햄버거를 냠냠 맛있게 먹으며 방긋 웃었다. 그런 나를 보고 단아가 입술을 씰룩였다.
“윤리사, 아팠던 거 거짓말이지?”
나는 대답 대신 싱긋 웃었다. 그때, 도윤이가 말했다.
“저기, 저쪽 좀 봐. 지희준이 우리 노려보고 있어.”
“그래? 어디?”
“저기, 저쪽에.”
나는 도윤이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것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진짜네?”
저세상이 나와 똑같이 도윤이가 가리키는 곳을 보고는 픽 웃었다.
“지희준, 저 녀석은 학습 능력이 없나 봐. 저렇게 노려봐서 어쩌려고 저러는 거래?”
그 말에 단아가 급식을 먹다 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깐만 기다려봐. 오늘 입으로 급식을 못 먹게 만들고 올게.”
에헤이! 참아, 단아야!
나는 황급히 단아를 붙잡았다.
“단아야, 저 녀석한테 괜히 시간 쏟지 마. 아깝잖아.”
“맞아, 단아야.”
나와 도윤이의 만류에 단아가 씩씩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때, 단예와 단이가 나와 저세상 옆에 앉으며 우리에게 물었다.
“리사, 뭐가 아깝니?”
“무슨 일 있어요, 세상이 형?”
그 질문에 나와 저세상은 어깨를 으쓱였다.
“딱히 별일은 없어.”
“맞아, 단지 지희준이 계속 우리를 노려보고 있어서 말이야.”
“한단아가 저 자식을 한 대 치러갈 것 같아서 말린 것뿐이야.”
“맞아, 그런 것뿐이야.”
아주 죽이 척척 잘 맞는 나와 저세상이었다. 단예와 단이가 우리 말을 듣고는 지희준이 있는 쪽을 흘긋거렸다.
“정말이네요? 점심이나 먹지, 왜 노려보고 있는 거래요?”
“할 일이 없나 보지.”
저세상이 단이의 말에 심드렁한 얼굴로 햄버거 한 입을 베어 물었다. 그 말에 단아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진짜로 할 일 없게 만들어 주고 오면 안 될까?”
“셋째야, 참으렴.”
“맞아, 단아야. 할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참아.”
단아는 그제야 진정하고는 햄버를 우물거렸다. 토마토와 상추를 모두 빼고 말이다.
“단아야, 야채도 먹어야지!”
“시끄러, 백도윤. 너나 먹어.”
“나는 잘 먹고 있는데?”
단아가 도윤이를 노려보았다. 그 시산에 도윤이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어쨌거나 점심시간은 평화롭게 흘러갔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우당탕-!
요란한 소리가 급식실을 울렸다.
“아하하! 꼴사납게 넘어진 것 좀 봐! 비각성자 아니랄까 봐, 우리가 다리 줄 것도 모르고 그냥 넘어져 버렸네?”
지희준이 배를 잡고 깔깔 웃고 있었다.
비나리 고등학교에는 저세상 말고도 비각성자가 몇 명 더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중 한 명이 지희준에게 잘못 걸린 것 같았다.
“저 자식이 보자 보자 하니까……!”
저세상이 이를 으득 갈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런 그를 황급히 붙잡았다.
“왜?!”
“참아, 저세상. 여기에서 네가 나서 봤자 상황만 더 안 좋아질 거야.”
내 말에 저세상이 이를 갈았다.
“그럼 이대로 두고 봐?”
“아니.”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아도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리사?”
“기다리고 있어, 저세상. 이 누나가 해결하고 올 테니까.”
저세상이 무슨 헛소리를 하느냐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대로 지희준과 그의 무리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들 사이에서 허겁지겁 식판을 치우고 있는 남학생이 보였다. 나는 곧장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
“어? 아, 응.”
“내 손 잡고 일어나.”
“그, 그래도 돼?”
“당연히 그래도 되지!”
내 말에 남학생이 쭈뼛거리며 내 손을 잡고 일어났다. 나는 손수 남학생의 교복을 털어 주고는 지희준을 홱 노려보았다.
“뭐, 뭐야?”
지희준이 내 시선에 움찔거렸다.
어쩌면 내 뒤에서 살기등등하게 그를 노려보고 있는 단아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나는.
“지희준, 비나리 고등학교에 비각성자의 입학이 허락된 건 우리 아버지의 공이 커. 그런데 이렇게 비각성자를 괴롭히면…….”
나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고는 말을 이었다.
“우리 아버지 얼굴에 먹칠을 하는 거겠지? 감히 네가 말이야.”
“그, 그게 뭐 어쨌다고!”
지희준이 소리 질렀다.
“뭐, 윤사해 길드장님한테 일러바치기라도 하려고?! 할 테면 어디 한 번 해 봐! 하나도 안 무서우니까!”
거짓말하시네.
나는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지희준이 저렇게 빽빽 소리를 지르는 건, 겁에 질린 저를 숨기기 위해서일 거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는가?
간 작은 놈이 목소리는 더럽게 크게 낸다고.
지희준이 딱 그 꼴이었다.
그보다 망할 지희준! 윤사해가 내 아빠인 걸 비나리 고등학교의 전교생이 모두 다 알겠네!
나는 입매를 비틀었다.
“내가 아빠한테는 왜 일러? 아아, 혹시 너는 애들 싸움을 네 아빠한테 일러바쳐서 그래?”
“뭐?! 내가 언제 그랬다고!”
“아니면 아닌 거지, 왜 그렇게 열을 내고 그래. 희준아.”
나는 싱긋 웃었다.
지희준은 분하다는 얼굴을 보였다. 내가 그를 놀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알아차렸으면 어쩔 건데?’
나는 입가에 비웃음을 한껏 걸치면서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지희준에게 말했다.
“있잖아, 희준아. 이 친구가 비각성자가 아니라 각성자였어도 너는 얘한테 발을 걸고 그랬을까?”
“그거야 모를 일이지! 하지만 저 자식이 암만 각성자라고 하더라도 F급이었으면 조금 전과 똑같이 그랬을걸? 그야, F급이니까!”
“아아, 그렇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에게 물었다.
“그럼, 얘가 S급 각성자였다면? 그래도 너한테 그랬을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저딴 새끼가 어떻게 S급 각성자라고!”
“그럼, 네 앞에 있는 내가 S급 각성자라고 하면 어떻게 할래?”
“뭐?”
지희준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경악이 어린 듯한 그 눈에 나는 활짝 웃고는 손을 들었다.
“네 앞에 있는 내가.”
그러고는 그대로 지희준의 뺨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S급 각성자라고 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쫘악-!
찰진 소리가 급식실을 울렸다.
지희준은 가녀린 주인공처럼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 손으로 제 뺨을 부여잡고는 말이다.
나는 그대로 그의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고선 말했다.
“네가 넘어뜨린 저 친구한테 당장 사과해, 지희준.”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는 것도 잠시, 지희준은 곧장 저가 넘어뜨린 비각성자 친구한테 사과했다.
“미안! 미안해, 정말!”
지희준의 친구들이 그 모습에 당황한 얼굴을 보였다. 나는 그에 싱긋 웃었다.
“너희는 사과 안 해? 너희도 낄낄거리며 웃어댔잖아.”
위협적인 내 목소리에 지희준의 친구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비각성자 친구한테 사과하기 시작했다.
“미, 미안해! 앞으로는 이런 일 없을 거야! 정말 미안해!”
비각성자 친구는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나를 보기까지 했다.
나는 방긋 웃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내 말에 용기를 얻었는지, 비각성자 친구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앞으로 나한테 아는 척하지 마. 그리고…….”
비각성자 친구는 떨리는 목소리로 제 요구를 당당히 늘어놓았다.
지희준과 그의 친구들은 알겠다면서 계속 허리를 굽혔다.
나는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는 모습에 피식 비웃음을 흘리고는 단아와 함께 자리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자마자 저세상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윤리사, 너 괜찮겠어?”
“뭐가?”
“뭐기는, 네 입으로 그랬잖아. 네가 S급 각성자라고…….”
“밝힌 적 없어.”
나는 햄버거와 함께 나온 감자칩을 우물거리고는 말했다.
“내가 S급 각성자면 어떨 것 같냐고 넌지시 물어본 것뿐이지.”
겸사겸사 <[S, 숙련 불가] 내 말이나 들어라!>도 사용하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지희준은 스킬의 효과가 끝난 뒤 혼란에 빠질 게 분명했다. 내가 정말 S급 각성자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그러니까 괜찮아!”
“네가 그렇다면야…….”
저세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지만 함부로 스킬은 사용하지 마. 특히나 지희준과 같은 저런 녀석한테는.”
“맞아, 윤리사! 네 힘만 아까워. 굳이 스킬을 사용하고 싶다면 나한테 말해! 있는 힘껏 때려 줄게!”
“마음만 감사히 받을게, 단아야.”
단아가 상대를 있는 힘껏 때렸다가는, 그 상대는 세상 하직할 게 분명했다.
소중한 친구를 살인자로 만들 수는 없지.
나는 방긋 웃으며 비나리 고등학교의 점심을 해치웠다.
그렇게 식사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도 지희준은 계속 비각성자 친구를 향해 사과 중이었다.
‘스킬 효과 오래가네.’
극적인 효과를 위해 구체적으로 몇 번 사과를 하라거나 그러지 않았는데 말이다.
‘진심을 담은 사과가 아니라서 저러는 걸까나?’
어쨌든 간에 나는 비각성자 친구를 향해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는 희준에게 한껏 조소를 보냈다.
“윤리사, 가자.”
“응!”
나는 저세상의 재촉에 그대로 급식실을 나갔다. 그때까지도 지희준은 비각성자 친구를 향해 계속 사과하는 중이었다.
하하, 십 년 묵은 체증이 절로 내려가는 느낌에 기분이 좋았다.
앞으로도 종종 지희준한테 <[S, 숙련 불가] 내 말이나 들어라!>를 사용해야겠다.
나는 그렇게 저세상과 친구들과 함께 교실로 올라갔다.
그러고 시작된 5교시.
“급식실에서 함부로 스킬을 사용한 윤리사 학생, 앞으로 나오세요.”
나는 웬 선생님한테 찍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