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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198)화 (198/500)

198화. 사소하다면 사소한 갈등(6)

꽃이 흐드러지게 핀 정원, 손님은 한 사람뿐이었다.

“오랜만이에요, 선비 씨.”

선비가 옆에 뒀던 탈을 들었다. 얼굴 마주 보기 껄끄러운 사람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이매?”

“그냥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해서 찾아왔어요.”

이매가 싱긋 웃었다.

“싱거운 일로 찾아오셨군요.”

선비가 그대로 꺼지란 말을 애써 삼키며 탈을 얼굴 위에 덮어썼다.

“하하, 제가 원래 그렇잖아요? 그보다 그 소식 들었어요?”

“초랭이 소식이라면 궁금하지 않습니다.”

“초랭이 씨 말고요.”

이매가 웃는 낯으로 입을 열었다.

“할미 씨께서 거하게 사고를 칠 모양이더라고요.”

“할미……?”

오랜만에 듣는 이름에 선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녀석 살아 있었습니까?”

“멀쩡히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사람 취급하고 있었던 거예요?”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그 녀석, 수장님께 벌을 받은 이후 단단히 미쳐 버렸지 않습니까?”

그래서 분명 어디에서 칼맞고 죽었을 것이라 믿었다. 그에 이매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이번에 새로 오신 양반 님과 재미난 일을 준비할 건가 보더군요.”

“허, 참. 양반께서는 오자마자 사고를 친다고 합니까?”

“한창 의욕이 넘칠 때잖아요? 백정께서도 흥미를 보이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매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선비 씨는요?”

“뭐가 말입니까?”

선비가 미간을 좁혔다. 이매는 싱글벙글 웃는 낯으로 말했다.

“선비 씨께서는 흥미가 없으신가 해서요.”

“없습니다.”

“그래요? 아쉽네, 저는 할미 씨한테 붙을 생각이거든요.”

“뭐라고요?”

선비가 놀란 눈을 보였다. 그에 이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렇게 놀란 얼굴이세요?”

“수장님의 명령이 없는 한, 당신께서 움직이는 일 따위 없었으니까요. 그러니 놀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가요?”

이매가 흐음, 콧소리를 내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나중에 흥미가 있으면 말해요. 끼워 줄 테니.”

“그럴 일 없습니다.”

“네네, 그러시겠죠.”

이매가 능청스럽게 걸음을 돌렸다.

“아참, 선비 씨.”

짝, 손뼉을 친 이매가 목소리를 내뱉었다.

“새로 오신 분들께 얼굴 좀 비춰 주세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계속 얼굴 볼 사이잖아요?”

선비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탈에 가려진 얼굴이라고 하더라도 이매는 그 표정이 다 보인다는 듯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이만.”

이매는 그 인사를 끝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가 사라진 자리를 물끄러미 보던 선비가 중얼거렸다.

“재수없는 놈.”

***

“지금 뭐라고 했나?”

“재수없다고 했는데? 윤사해 길드장, 지금 나이 좀 먹었다고 귀가 가버린 거야?”

윤사해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난데없이 왜 욕을 하는건지 모르겠군, 최설윤 길드장.”

“아니, 사실이잖아? 윤사해 길드장이 재수없는 거! 그렇지, 장천의 회장?”

“네, 최설윤 길드장님 말씀은 모두 옳습니다.”

장천의가 사람 좋게 웃었다. 그와는 달리 윤사해의 얼굴은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지금, 그러니까 이게 무슨 상황이냐면 말이지.

“자자! 어쨌든 한 잔 더!”

“좋습니다, 한 잔 더!”

나잇값 못하는 어른들이 거하게 취한 상황이다.

아, 윤사해는 제외하고.

윤사해는 지금 최설윤과 장천의에게 한껏 시달리는 중이었다. 나와 저세상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냈지마는 말이지.

‘미안, 아빠.’

도저히 그를 구원해 줄 수 없었다.

그렇게 윤사해를 외면하는데 술기운이 확 풍겨 왔다.

“리사야~! 예쁜 리사!”

“우왓……!”

최설윤이 내 목을 팔로 꼭 끌어안은 탓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젊고 아름다운 최설윤이 내 뺨에 얼굴을 부비며 말했다.

“리사, 너는 어째 크면 클수록 에일린을 닮아가니? 어릴 적에는 네 아빠 판박이더니!”

“최설윤 길드장, 리사는 어릴 때도 린을 닮았었다네.”

“어휴, 말하는 것 좀 봐! 윤사해 길드장, 솔직하게 터놓고 말해 봐. 린한테 아직 마음 있지?”

“취했다고 보이는 게 없나 보군.”

윤사해가 날선 목소리를 내뱉었다.

오금을 저릴 만큼 차갑기 그지없는 목소리였지만 최설윤과 장천의는 킬킬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잠깐만, 말하는 걸 보니 최설윤은 에일린 리와 꽤 친분이 있는 것 같은데 말이지……?

나는 고민하다가 줄곧 궁금해하던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있잖아요, 최설윤 길드장님.”

“네에, 윤사해 길드장님의 예쁜 따님.”

우리 최설윤 길드장님, 취해도 단단히 취한 모양이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최설윤 길드장님은 아빠랑 엄마가 저를 어떻게 가졌는지 아세요?”

“당연히 알지!”

최설윤이 활짝 웃었다.

“정말요?”

“응, 정말!”

최설윤은 당장에라도 말해 줄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나는 두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그럼, 알려 줄 수 있어요?”

“리사.”

윤사해가 나를 나지막하게 불렀다.

“알아 봤자 좋을 것 없단다.”

“왜 좋을 게 없는데? 설마, 아빠. 혹시 내가 태어난 건 실수야?”

“실수라니! 그런 거 아니란다!”

“그럼, 알려 줘! 최설윤 길드장님이 말하는 게 싫다면 아빠가 알려주면 되잖아!”

“그, 그건…….”

윤사해가 당혹감에 잠긴 얼굴을 보였다. 나는 뚱한 얼굴로 입술을 씰룩였다.

윤사해가 에일린 리와 이혼한 후, 도대체 어쩌다가 나를 가지게 됐는지는 내가 가장 궁금해하고 있는 것 중 하나였다.

윤사해에게 은근슬쩍 물어보기도 했건만 그는 언제나 이 주제를 피했었다.

그러니까.

“최설윤 길드장님, 말해 주세요!”

“흐음, 말해 줄까~?”

최설윤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말해 주지 말까~?”

“장난치지 말고요!”

내 외침에 최설윤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윤리오와 윤리타는 이야기가 궁금한 것 같았지만, 걸려 온 전화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국 나는 저세상과 함께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최설윤의 입에서 떨어질 이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리사는 윤사해 길드장한테 황새가 물어다 준 아이지!”

“그게 뭐에요!”

최설윤, 취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나는 뚱한 얼굴을 보였고 최설윤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이지, 못된 아줌마였다.

***

최설윤이 윤리사를 한껏 놀리고 있던 그때.

“아, 고모 오늘 늦는대.”

그녀의 조카인 최화백은 오랜만에 친구와 회포를 푸는 중이었다.

“그래? 아쉽네, 오랜만에 얼굴 좀 보고 갈까 했는데 못 보겠네.”

청해솔이 잔을 기울이며 물었다.

“최설윤 길드장님 왜 늦으신대?”

“윤사해 길드장님과 장천의 회장님이랑 이야기 좀 나누신대. 윤사해 길드장님 집에서.”

“그래……?”

청해솔이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그런 그녀를 보고서 최화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청해진, 그 녀석 저녁에 리오랑 리타한테 놀러간다고 했던 것 같아서. 뭐, 북적북적하게 즐거운 시간 보내겠네.”

청해솔이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잔을 단번에 비웠다.

“그런데 해솔아, 너는 무슨 일로 올라온 거야?”

“휴가.”

“휴가……?”

최화백이 못 들을 걸 들은 사람처럼 그녀에게 물었다.

“가주님이 그래도 돼?”

“내가 그러겠다는데 뭐 어쩔 거야? 그리고 괜찮아.”

청해솔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중요한 보고는, 따로 올리라고 했고. 나머지는 보좌관한테 맡겨 뒀으니까.”

“보좌관이라면…… 거주자님과 함께 다니고 있는 그분?”

“응.”

청해솔이 청정하를 떠올리고는 키득거렸다.

“보기보다 일을 잘해. 툴툴거리면서도. 뭐, 오랜만에 얼굴 보니 좋네. 류화홍도 있었으면 좋겠지만…….”

“신혼이잖아. 아, 맞다. 해솔아, 너 들었어?”

“뭐를?”

“못 들었으면 됐어.”

최화백이 키득거렸다.

“뭐야, 무슨 일인데?”

“류화홍한테 직접 들어. 아마, 깜짝 놀랄걸?”

“뭐야, 애라도 생겼어?”

잔을 들던 최화백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진짜야?! 와아, 류화홍 그 자식. 능력도 좋아.”

진심으로 감탄하는 목소리에 최화백이 키득거렸다.

“거주자의 후손으로서 나중에 조언 좀 해 줘.”

“내가 조언은 무슨, 사야 님이 계시잖아? 사야 님이 알아서 하겠지.”

핏줄로 따지면 저보다 위인 사야였다. 청해솔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다시 잔에 술을 따랐다.

우웅, 휴대폰이 울린 건 그때였다.

“해솔이 인기 많네.”

“시끄러.”

청해솔이 사납게 일갈하고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발신 제한 번호 : 하이, 해솔이? 올라왔다며?]

이런 문자를 보낼 사람은 한 명 뿐이었다. 청해솔이 피식 웃고는 번호를 눌렀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언니? 오랜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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