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사소하다면 사소한 갈등(5)
류화홍은 결국 돌아갔다.
〖류화홍, 이 자식 어디 있어?! 당장 튀어 나와!〗
윤사해와 함께 우리 집을 방문한 랑야에게 붙잡혀서 말이다. 어쨌거나 우리 집은 평화를 되찾았다.
“아버지, 오늘 늦으신다면서요?”
“랑야, 그 자식 때문에 일찍 돌아왔단다. 다들 저녁 먹었니?”
“아직이요! 아빠, 오늘 오랜만에 치킨 시켜 먹어요! 이왕이면 숯불로! 숯불에 구운 치킨이랑 밥 먹고 싶어요!”
그 말에 윤사해가 잔잔히 미소를 그렸다.
“리타, 오늘 사고 치지 않았니?”
“사고요?”
윤리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고는 리사랑 세상이가 쳤잖아요. 저는 친 거 없는데. 야, 윤리오. 너 무슨 사고 쳤어?”
“바보야, 우리 오늘 던전 하나 박살 내고 왔잖아.”
“아, 맞다.”
윤리타가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나저나 던전 하나를 박살 내고 왔다니, DMO 쪽에서 고생하고 있겠네.
“그래도 리타, 네가 먹고 싶은 것으로 먹자꾸나. 시키렴.”
“앗싸!”
윤리타가 환호하며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는 곧장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점에 전화를 걸었다.
“어? 안 받네. 그냥 이번에 새로 생긴 가게에 시켜야겠다. 괜찮죠, 아빠?”
“마음대로 하렴.”
“저는 밥 좀 안칠게요.”
윤리오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어찌됐든 류화홍이 떠난 후 찾아온 평화로운 저녁 시간이었다.
그때, 윤사해가 내 옆에 앉고는 나와 저세상을 불렀다.
“리사, 세상아.”
“응?”
“네?”
“리오한테 혼은 안 났니?”
그 질문에 나와 저세상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응! 안 났어! 타이밍 좋게 화홍이 오빠가 나타나 줬거든!”
“화홍이 형 덕분에 형들은 저랑 윤리사가 학교에서 싸운 일을 까맣게 잊은 것 같더라고요.”
……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됐다.
“아 참, 윤리사. 너 학교에서 왜 싸운 거야? 세상아, 너도 같이 싸웠다면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 그랬지.”
부엌에 있던 윤리오가 윤리타의 말을 듣고는 거실로 나왔다.
“아버지가 밥 좀 안쳐 주세요. 저는 리사랑 세상이와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그래.”
망했다.
나와 저세상은 윤사해에게 구원의 눈길을 보냈지마는.
‘미안하구나.’
윤사해는 눈짓으로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피해 버렸다. 그를 대신해 윤리오가 자리에 앉았다.
“자, 그럼. 윤리사, 저세상.”
싱긋, 윤리오가 웃음을 짓고는 우리에게 물었다.
“학교에서 왜 싸운 거야?”
나와 저세상은 우물쭈물하다가 앞다투어 말을 쏟아냈다.
학교에서의 이야기는 윤리타가 시킨 숯불 치킨이 도착할 때가 돼서야 끝이 났다.
“그러니까 우리 잘못은 없다고!”
“맞아요, 형. 그 자식이 먼저 잘못한 거예요.”
“리오 오빠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리타 오빠!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
“그 자식이 잘못했기는 했네.”
“그치?!”
앗싸, 아군을 얻었다!
하지만 윤리타는 윤리오의 매서운 시선에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그래도 싸우면 안 되지.”
그 말에 나는 불퉁하게 두 뺨을 부풀렸다.
“누구는 싸우고 싶어서 싸운 줄 알아? 말했잖아! 그 자식이 먼저 내 머리에 신발을 던졌다고!”
얼떨결에 맞은 거지만, 어쨌든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됐었나 보다.
“리사, 그래도 친구한테 주먹을 휘두르면 안 돼. 그러다가 네 손이 다치면 어쩌려고? 그런 건 윤리타랑 나한테 맡겨야지.”
“응?”
“걔 이름이 뭐라고? 지희준?”
“응, 그렇기는 한데…….”
왜인지 모르게 불안감이 엄습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 ‘지희준’이란 녀석이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아세요? 리사랑 세상이 보호자 되는 입장에서 그 자식 보호자와 가볍게 이야기를 나구고 싶어서요.”
본능적으로 알았다.
윤리오는 절대로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 거란 것을 말이다.
다행히도 윤사해가 당장에라도 지희준의 집을 찾아가려고 하는 아들을 말렸다.
“리오, 그 녀석의 보호자와는 아빠가 따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단다. 네가 괜히 힘쓸 필요 없어.”
“하지만…….”
“아빠만 믿고 있으렴. 무엇보다 그 녀석 보호자가 아빠가 잘 아는 녀석이더구나.”
“아는 사람이라고요?”
윤리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 AMO 소속의 유예준 부장이더구나. 너희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기억하고 있어요! 저랑 윤리타가 각성자 등록하러 갔을 때 만났던 분 맞죠?”
윤사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윤리타는 입술을 오므렸다.
“그 아저씨, 아직도 AMO에서 일하고 있구나?”
“부장이잖아. 돈 많이 벌 텐데 너 같으면 회사 때려치겠어?”
“하긴.”
윤리오와 윤리타가 세속적인 대화를 나눌 때 초인종이 울렸다.
“치킨 왔나 봐. 내가 가지고 올게.”
윤리타가 잔뜩 신난 얼굴로 튀어나갔다. 그렇게 치킨을 들고 싱글벙글 웃으면서 돌아올 줄 알았건만.
“어엇?!”
윤리타는 돌아오는 대신, 당황한 목소리를 내질렀다.
무슨 일이지?
나와 저세상은 시선을 한 번 교환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타, 무슨 일이니?”
“윤리타, 뭐해? 아는 사람이 배달이라도 왔어?”
윤사해와 윤리오도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와 함께 현관 쪽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네에! 아는 사람이 배달을 왔답니다, 리오 군!”
“천의 삼촌?”
“짜잔, 나도 있지!”
“최설윤 길드장님까지?”
윤리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란히 모습을 보인 장천의와 최설윤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윤사해에게 인사했다.
“윤사해 길드장, 안녕!”
안녕이고 자시고 윤사해는 문을 쾅, 소리 나게 닫아 버렸다.
“야! 윤사해 길드장! 문 열어!”
“좋은 말로 할 때 문 열어 주시기 바랍니다, 고객님!”
쾅쾅쾅!
최설윤과 장천의가 시끄럽게 문을 두드려댔다. 윤사해가 그 소리에 앓는 목소리를 내었다.
“저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자식들이…….”
두 사람은 쉽게 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때였다.
“윤사해 길드장님! 숯불 두 마리 시키셨죠? 여기에 더해 저희 가게의 인기 메뉴인 파닭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도 문을 안 열어 주실 겁니까?!”
“맞아! 윤사해 길드장 생각해서 시원한 맥주도 가지고 왔는데!”
그 말에 윤리타가 침을 꿀꺽 삼켰다. 아침 일찍 나간 던전을 회복 불능의 상태로 만들었다고 하더니만.
‘배고픈가 보네.’
그것도 엄청.
그보다 ‘저희 가게’라니. 장천의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업을 하는 중인 걸까?
어쨌거나 윤사해는 그런 아들을 흘긋 보고는 문을 열어 줬다.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말이다.
열린 문에 장천의와 최설윤이 씨익 웃었다.
“실례하겠습니다.”
“그럼, 들어갈게!”
장천의와 최설윤은 윤사해가 뭐라 할 새도 없이 후다닥 거실에 들어가 버렸다.
“저 망할 자식들이…….”
“이렇게 된 거 같이 먹어요. 북적북적하고 좋은데요, 뭘.”
“맞아요!”
윤리타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거실로 향했다. 장천의와 최설윤이 반가워서 저러는 것보다는.
‘치킨 때문에 저러는 거겠지.’
정말이지, 알기 쉬운 오빠였다.
“가자, 저세상.”
“으음.”
저세상은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분명 장천의 때문에 그러는 것이리라.
어째, 수년이 지나도 장천의를 향한 저세상의 적의는 변함이 없었다.
『각성, 그 후』에서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소리는 역시 개소리인 게 분명했다.
어찌 됐든 우리는 찾아온 손님들과 함께 즐겁게 저녁을 가졌다.
“도대체 무슨 일로 찾아온 건가?”
“에헤이, 우리가 딱히 볼 일이 있어야만 보는 사이야?”
“그런 사이이지 않나?”
“매정하네.”
최설윤이 잔에 맥주를 가득 따르고는 말했다.
“장천의 회장이랑 같이 CW에서 이번에 새로 낸 치킨 브랜드점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거든. 그런데 때마침 윤사해 길드장네에서 주문이 들어왔다는 거야!”
“그래서 온 거랍니다. 겸사겸사 얼굴도 보고 리사 양과 세상 군의 고등학교 입학도 축하할 겸 말입니다.”
“맞아! 리사랑 세상이, 오늘 고등학교 입학했지? 어땠어?”
나는 닭다리를 뜯어먹으며 웅얼거렸다.
“재미있었어요!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요.”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이후로 내게 친구들은 한태극네 세쌍둥이와 도윤이밖에 없었다.
저세상도 내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담임 선생님도 좋으세요.”
“그래? 그것참 다행이네.”
최설윤이 방긋 웃었다.
“우리 화백이가 곧 비나리 고등학교에 교생으로 나갈 텐데, 만나면 아는 척 좀 해 줘.”
“화백이 오빠가 교생으로 온다고요?”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최설윤이 웃는 낯으로 말했다.
“미술 과목으로 갈 거야. 대학원에서 학위를 딴다느니 뭐라느니 아주 난리를 치더니 결국 선생 쪽으로 진로를 잡은 모양이더라고.”
그렇게 말하는 최설윤의 목소리에는 조카를 향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그러니까 잘 부탁할게. 화백이, 그 녀석이 누구를 잘 가르치는 성격이 아니라서 많이 걱정되거든.”
“네, 알았어요!”
“화백이 형 만나면 아는 척할 게요. 인사도 꼬박꼬박하고요.”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네.”
최설윤이 눈웃음을 지었다. 나 역시 방긋 웃어 주며 생각했다.
‘최화백이 선생님이라…….’
『각성, 그 후』에서 그는 최설윤의 길드인 ‘아래아’의 부길드장이었다. 어쩌다가 그 자리에 오르게 됐는지는 모른다.
최화백은, 지금과는 달리 의욕 없고 생기 없는 부길드장으로 나왔었으니 말이다.
‘최설윤과의 관계도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마는.’
뭐, 많은 것이 바뀐 지금 그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거다.
……라고 이때는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