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사소하다면 사소한 갈등(3)
잘했다니?
나는 두 눈을 끔뻑였다.
“아빠, 나랑 저세상이 걔네랑 왜 싸웠는지는 안 물어봐?”
“너희가 왜 싸웠는지 안 봐도 뻔하니까 말해 주지 않아도 괜찮단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주먹으로 해결하려고 들면 안 된단다.”
나는 불퉁하게 물었다.
“걔네가 먼저 시비를 걸어도?”
윤사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주먹을 휘둘렀다가 귀한 손을 다치면 안 되니까. 대신 아빠한테 말하렴.”
그러니까 윤사해가 알아서 처리를 해 주겠다는 거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녀석이 나와 저세상을 뭐라고 놀렸는지 말하면…….
‘그 자식을 쥐도 새도 모르게 땅에 묻어 버릴 것 같은데.’
아무래도 계속 주먹으로 해결해야할 것 같았다.
윤사해는 나와 저세상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말했다.
“아빠는 이만 가마. 둘이 싸우지 말고 집 잘 지키고 있으렴.”
“응!”
“네.”
윤사해가 우리의 대답에 옅게 미소를 짓고는 걸음을 옮겼다. 곧이어 두 장승이 모습을 보였다. 그 사이로 난 문이 끼익 열리는 찰나.
띵동-!
초인종이 울렸다.
<[S, 숙련 불가] 장승 행차>를 이용해 이매망량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윤사해가 미간을 좁혔다.
“택배라도 왔나 봐. 내가 확인해 볼 테니까 아빠는 신경쓰지 말고 이매망량으로 돌아가.”
하지만 윤사해는 그러지 못했다.
“으악!”
“저세상?”
저세상의 갑작스러운 비명에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데, 윤사해가 빠르게 현관으로 향했다.
“세상아, 무슨 일이니?”
나도 다급하게 윤사해의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보고 말았다.
“세상아!”
저세상이 무수히 많은 택배 상자에 깔려 있는 것을 말이다.
윤사해가 저세상 위로 쓰러진 택배 상자를 치우고는 그를 일으켜 세웠다.
“괜찮니?”
“네, 괜찮아요.”
저세상이 뒤통수를 어루만졌다. 나는 한가득 쌓인 택배 상자를 멍하니 보며 중얼거렸다.
“리오 오빠가 이것저것 많이 시키더니 한꺼번에 왔나 봐.”
그 말에 윤사해가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는 이내 발신자를 확인하고는 놀란 눈을 보였다.
“아빠?”
왜 그러나 했더니.
“엄마네?”
발신자가 ‘에일린 리’였다.
그 이름을 진작 확인했던 윤사해가 미간을 좁혔다.
“너희 선물을 보낸다더니…….”
윤사해가 혀를 찼다. 그러고는 현관문 앞에 가득 쌓인 택배 상자를 집 안으로 옮겼다.
“엄마가 나랑 세상이 선물을? 갑자기 왜?”
“고등학교 입학 선물이라고 하더구나.”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했을 말이지만, 언젠가부터 에일린 리는 나와 저세상을 챙기기 시작했다.
사실 나를 챙겨 주는 것만으로도 꽤 놀랄 일이었는데, 그녀는 저세상 역시 챙겼다.
어쨌든 나는 두근두근 괜히 가슴 설레어 하며 택배 상자 중 가장 작은 것을 들었다.
“확인해 봐도 돼?”
“물론.”
윤사해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택배 상자를 뜯었다.
“헉.”
내용물을 확인한 나는 헛숨을 들이마셨다. 다이아가 촘촘히 박혀 있는 팔찌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이를 본 윤사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쁘구나. 네 엄마가 보는 눈은 있어서 다행이지.”
“그건 그렇지만…….”
너무 과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거야?
“학교 갈 때 끼고 가면 예쁘겠구나.”
들지 않나 보다.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나중에 고등학교 졸업하고 낄래.”
“하지만, 리사. 지금 끼고 있는 팔찌는 너무 낡지 않았니?”
내 손목에는 어릴 적부터 착용해 온 팔찌가 있었다. 토끼가 그려진 연보라색 팔찌.
CW의 장천의가 만들어 준 것이었다. 참고로 저세상의 손목에도 나와 똑같은 것이 있었다.
어쨌거나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괜찮아! 천의 삼촌이 매년 끈을 갈아주고 있으니까!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는 이거 계속 끼고 있으래!”
“리사, 네가 그러고 싶으면 그러렴.”
윤사해가 옅게 미소를 그리며 자리에 앉았다.
“다른 것도 풀어 보겠니?”
어쩐지 이매망량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랑 저세상과 같이 에일린 리가 보낸 택배를 뜯어보고 싶어 하는 눈치인 것 같아 나는 말했다.
“아빠가 골라 주는 거 확인해 볼래!”
“저도요.”
윤사해가 방긋 웃고는 나와 저세상의 손에 택배 상자를 하나씩 쥐여 주었다.
우리는 좋다고 택배를 뜯었고.
“와우…….”
입술을 오므렸다.
커다란 택배의 정체는 골프 가방이었다. 그 앞에 카드가 붙어 있었는데 에일린 리가 메시지를 적어놓은 듯했다.
<너희도 이제 어른이니 취미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니?
Ps. 마음에 안 드는 녀석 있으면 그걸로 머리를 부수렴♡>
참으로 그녀다운 메시지였다.
그보다 골프채로 머리를 부수라니!
에일린 리는 나와 저세상을 살인자로 만들 생각인가 싶었다. 살인자가 된다고 해도 윤사해가 어련히 알아서 수습해 줄 것 같지마는 말이다.
어쨌든 윤사해는 카드를 확인하고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최근 골프에 취미를 붙였다더니 너희도 배웠으면 하는가 보구나.”
윤사해는 어떻게 그런 걸 알고 있는 걸까?
‘에일린 리랑 따로 연락하는 건 보지 못했는데…….’
어쩌면 우리 몰래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설마, 재결합하려는 건 아니겠지?’
문득 드는 생각에 나는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저세상이 그런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그 시선 따위 가볍게 무시했다.
윤사해는 다른 택배 상자를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리오랑 리타 것도 있구나.”
윤사해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언제는 에일린 리가 지겹다는 듯이 굴었으면서 그도 참 많이 달라졌다 싶었다.
그렇게 다함께 택배 상자를 확인하고 있을 때였다.
“길드장님!”
“류화홍 헌터?”
류화홍이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나타났다.
“서 비서님 전화도 안 받고 뭐하고 계시는 거예요? 이 택배 상자는 뭐고요!”
“린이 애들 입학 선물로 보낸 거라네. 그보다 무슨 일인가?”
“DMO의 금이현 본부장님께서 찾아오셨어요. 리오랑 리타 던전 공략 건으로 찾아오신 것 같던데요.”
“아…….”
윤사해가 얼빠진 소리를 내고는 얼굴을 와락 구겼다.
“나이를 먹더니 성질만 급해졌지. 기다리면 어련히 알아서 연락을 넣을 텐데.”
“안 넣을 거 아니까 찾아오신 것 아닐까요?”
“시끄럽네, 류화홍 헌터.”
윤사해가 류화홍의 입을 다물게 하고는 나와 저세상에게 말했다.
“아빠는 이만 가마. 택배는 모두 확인한 후에 잘 정리해 놓으렴.”
“응!”
“네, 그럴게요.”
윤리오와 윤리타에게 잔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래야했다.
윤사해는 우리를 향해 눈웃음을 지어주고는 류화홍과 함께 길드로 돌아갔다.
윤사해가 떠난 자리에는 아직 뜯어보지 못한 상자가 한가득 있었다.
“엄마도 참, 적당히 보내지.”
“그래도 좋지 않아?”
“뭐가?”
“그만큼 너를 생각하고 있다는 거잖아.”
그 말에 나는 입술을 씰룩였다.
“태어나자마자 나를 아빠한테 보낸 사람인데?”
“버리지는 않았잖아.”
저세상은 태연하게 내뱉은 목소리였지만 분위기가 순식간에 암울해진 기분이 들었다.
멍하니 그를 보는데 저세상이 내 시선을 느끼고는 물었다.
“왜?”
“……모르면 됐어.”
나는 저세상한테서 시선을 돌린 후 다시 택배 상자를 풀었다.
그렇게 모든 택배를 확인하고 나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오빠들은 오늘 늦나 보네.”
“늦어서 다행이야.”
왜 그런 소리를 하나 했더니.
“윤리사, 오늘 우리 학교에서 크게 한바탕하고 온 거 잊지 않았지?”
“아, 맞다.”
나는 멋쩍게 뺨을 긁적였다.
“일단 오빠들 오기 전에 택배 상자부터 정리하자.”
“그래.”
윤리오와 윤리타는 나와 저세상한테 상처 하나라도 있으면, 우리와 싸운 녀석들을 반 죽여 놓을 거라고 했었다.
‘그런 말은 안 했나?’
어쨌든 간에 오늘 있었던 일이 조용히 넘어가지 않을 건 분명했다.
그러니까 그 두 사람에게 책잡힐 일은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말씀!
하지만 그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윤리사, 저세상. 학교에서 왜 싸운 거야?”
얼마 있지 않아 집에 돌아온 윤리오가 엄한 얼굴로 나와 저세상에게 물었다. 윤리타는 에일린 리가 보낸 선물을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말이다.
윤리오의 앞에서 나란히 무릎을 꿇은 나와 저세상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냥 친구들끼리 사소하게 말다툼한 건데?”
“맞아요, 리오 형. 주먹 싸움은 안 했어요.”
“그래?”
윤리오가 눈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리사도 세상이도 얼굴에 왜 그렇게 할퀸 자국이 많을까?”
나와 저세상은 몸을 움찔거렸다. 광혜원이 모든 상처를 치료해 주지 않았다는 것이 뒤늦게 생각났다.
우리는 두 눈을 데굴 굴리고는 입을 열었다.
“이건, 고양이가 할퀸 거야!”
“마, 맞아요! 학교에 고양이가 있는데 걔랑 놀아 주다가 이렇게 된 거예요!”
“그렇구나?”
윤리오의 웃음이 짙어졌다. 그러고는 휴대폰을 드는데.
“여보세요? 네, 선생님. 오랜만이에요. 다름이 아니라 리사랑 세상이 때문에 전화 드렸어요.”
제인 아일리에게 전화를 걸어 버렸다.
안 돼……!
나와 저세상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째 윤사해보다 더 학부모같은 윤리오였다.
그렇게 윤리오로부터 내려질 처벌을 기다리는 순간이었다.
“얘들아, 나 오늘 하룻밤만 재워 줄 수 있어?”
류화홍이 시무룩한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류화홍, 네가 왜 나타나? 집은 어쩌고?
어리둥절하여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에일린 리의 선물을 확인하고 있던 윤리타가 미간을 좁혔다.
“사야 누나한테서 쫓겨났어요?”
“아니.”
류화홍이 허락도 없이 소파에 털썩 앉았다.
“랑야 님한테서 쫓겨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