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사소하다면 사소한 갈등(2)
“백도윤! 반장이라는 애가 애들을 말려야지, 싸우면 어떻게 해요!”
“……죄송해요, 선생님.”
“윤리사.”
“죄송해요, 하지만 시비는 쟤들이 먼저 걸었어요.”
“우리가 언제 시비를 걸었다고!”
지희준이 빼액 소리를 질렀다. 나는 와락 얼굴을 구기고는 말했다.
“저세상한테 실패한 인생이라고 했잖아.”
“그런 적 없어!”
“거짓말 하시네.”
단아가 팔짱을 끼고는 말했다.
“비각성자는 진화가 덜 된 인간들이라고 했으면서?”
그 말에 교무실이 조용해졌다.
그때, 4반의 담임 선생님께서 얼굴을 구기고는 지희준에게 물었다.
“희준아, 애들 말이 정말이니?”
“저는 그냥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요. 비각성자가 진화가 덜 된 인간인 건 맞잖아요!”
“지희준.”
4반 담임 선생님께서 엄하게 그의 이름을 부를 때였다.
“희준아! 지희준!”
“형!”
교무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지희준에게 비각성자는 진화가 덜 된 인간이니, 뭐니 그런 이야기를 나불댔다는 그의 형인 듯했다.
형제 사이는 보통 좋지 않기 마련인데.
“누구야! 어떤 새끼가 애 얼굴을 이렇게 만든 거야?!”
지희준은 그의 형과 사이가 무척 좋은 모양이었다.
“승민아, 진정 좀 하고…….”
“진정하게 생겼어요? 애 얼굴을 좀 봐요!”
지희준은 뺨은 붉게 부풀어 있었고, 이마에는 혹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지희준의 형이 저렇게 흥분할 만도 했다는 거다.
어쨌든 간에.
“저 새끼가 잘못한 건데 엄청 지랄하네.”
단아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 줬다. 하지만 지희준의 형은 그 말에 두 눈을 뾰족하게 세웠다.
“야,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단아는 못 들은 척, 입술을 삐죽였다. 그게 지희준과 그의 형의 성질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저게……!”
누가 형제 아니랄까 봐, 두 사람은 동시에 외쳤다. 그와 함께.
“단아, 네 이 녀석아!”
한태극이 모습을 드러냈다.
“할배?!”
단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희준과 그의 형도 단아와 똑같이 놀란 눈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태극은 대한민국의 여당인 대한애국당의 당대표였으니까.
“할배, 어떻게 왔어? 왜 온 거야?”
“왜 왔기는! 네 녀석이 학교에서 사고를 쳤다 해서 왔지!”
지희준이 두 눈을 데굴 굴렸다.
한태극이 비각성자인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 지희준은 지금 머리를 엄청 굴리고 있을 거다.
“할배, 있잖아! 저 자식이 비각성자는 진화가 덜 된 인간들이래!”
……라고 일러바칠까 봐 말이지.
단아의 말에 지희준이 화들짝 놀라 외쳤다.
“내, 내가 언제!”
“우와, 발뺌하는 것 좀 봐! 저세상, 윤리사, 백도윤! 너희도 다 들었지?”
우리는 사이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태극이 미간을 살포시 좁히는 찰나, 교무실 문이 또 한 번 열렸다.
“안녕하세요, 지희준 보호자입니다. 애 부모가 지금 해외 출장 중이라서 제가 대신 왔는데…….”
“외삼촌!”
“지희준.”
지희준의 삼촌이 다소 성난 목소리로 그에게 다가왔다.
“고등학교 입학 첫날부터 사고야? 도대체 누구를 닮아서 이래?”
“아야!”
“삼촌, 애 때리지 마요. 안 그래도 다쳤는데!”
“이게 뭐가 다친 거야? 그냥 흠씬 두드려맞은 거지.”
정답입니다.
아무래도 지희준의 삼촌은 그와는 다르게 사고가 제대로 돌아가는 인물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낯짝,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 좀 해 보려는데.
“어랏?”
어릴 적에 안면을 튼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지희준의 삼촌도 나를 보고는 “어랏?”하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 윤사해 길드장님의 따님이지 않니? 그리고…….”
지희준의 삼촌이자 AMO 각성자 등록‧관리 부서의 부서장인 유예준이 놀라 외쳤다.
“한태극 대표님?!”
“오랜만이군, 유예준 부장.”
“넵, 오랜만입니다.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자네와 같은 이유일세.”
유예준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도.
“실례하겠습니다.”
윤사해가 등장했다.
***
저세상은 고개를 푹 숙였다.
‘아저씨한테 폐를 끼치는 행동 따위 하고 싶지 않았는데!’
하지만 부모를 욕한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그 부모가 저세상에게 있어서는 윤사해나 다름없었기에.
“세상아, 얼굴 좀 보자.”
느닷없이 들린 목소리에 저세상이 흠칫 몸을 떨고는 말했다.
“저는 괜찮아요, 윤리사 먼저 봐주세요. 저 자식이 던진 신발에 머리를 맞았었거든요.”
“뭐?”
윤사해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지희준과 그의 보호자들이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쌤통이다.’
저세상이 속으로 지희준을 비웃는 찰나.
“리사는 괜찮다는구나. 그러니까 세상아, 얼굴 좀 들어보렴.”
윤사해가 제 얼굴을 억지로 잡고는 들어 올렸다. 한껏 찌푸려진 얼굴이 보였다.
저세상은 황급히 윤사해의 손아귀에서 얼굴을 홱 돌렸다. 윤사해는 끄응 앓는 소리를 내고는 말했다.
“선생님, 애들 양호실은 다녀왔는지요?”
“네, 아버님.”
그 말에 윤사해가 미간을 좁혔다.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군요.”
그러고는 말했다.
“애들 병원에 좀 다녀와야겠습니다. 많이 다쳤군요.”
“그…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그렇게 많이 다친 건 아닌데요……?”
제인 아일리의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윤사해는 단호하게 말했다.
“선생님, 애들 얼굴 좀 보십시오. 뺨에도 긁히고 이마에도 긁히고 다 긁히지 않았습니까?”
맞는 말이기는 했다.
그러니까 저세상과 윤리사의 얼굴에 난 상처는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었다는 거다.
하지만 윤사해는 단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애들 싸운 건 나중에 어른들끼리 따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죠.”
“네? 아니, 그런…….”
제인 아일리가 당황한 얼굴로 윤사해를 말리려고 했지만.
“좋은 생각이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유예준 부장?”
“네? 넵.”
보호자들이 멋대로 수긍해 버리고 말았다.
“그럼.”
윤사해가 제인 아일리에게 가볍게 고개를 꾸벅이고는 말했다.
“리사, 세상아. 일어나렴.”
“네에!”
윤리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세상은 머뭇거리다가.
“저세상, 뭐해?”
윤리사의 재촉에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
앗싸, 조퇴다!
고등학교 입학 첫날부터 조퇴라니, 윤리오와 윤리타가 알게 되면 뒷목을 잡고 말 거다.
아무래도 싸우기를 잘한 것 같다.
그렇게 싱글벙글 웃고 있는데.
“윤리사, 저세상.”
앞서가던 윤사해가 나지막하게 우리를 불렀다.
“왜 싸웠니?”
나는 저세상을 흘긋거렸다. 저세상이 내 시선에 고개를 저었다. 싸운 이유를 말하지 말라는 거겠지.
그렇지만 나는 윤사해에게 재잘거렸다.
“유예준 부장님 조카가 저세상한테 실패한 인생이라고 했어.”
“야! 그런 말은 안 했잖아? 그냥 비각성자는 진화가 덜 된 존재들이라고 했어요!”
“뭐? 그게 정말이니?”
윤사해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짧게 혀를 차고는 신경질적으로 제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유예준 부장의 조카란 놈이 그런 말을 하다니.”
나는 유예준의 명복을 조용히 빌어 주었다.
“일단, 가자꾸나.”
“아저씨, 저 괜찮아요.”
“내가 안 괜찮단다.”
윤사해는 척척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집이었다. 병원에 간다고 하더니 왜 집에 왔는가 했는데.
“길드장님! 사람을 불러 놓고 자리를 비우면 어떻게 해요? 저 바쁜 사람인 거 알면서!”
“광혜원 헌터, 자네가 이매망량 내에서 가장 한가로운 사람인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만.”
이매망량의 힐러, 광혜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광혜원은 윤사해의 말에 짧게 혀를 차고는 나와 저세상을 살폈다.
“아가씨, 도련님. 고양이한테 냥냥 펀치라도 맞았어요? 어디에서 이렇게 긁혔대?”
나와 저세상은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곧, 광혜원의 손이 닿은 곳을 중심으로 따뜻한 빛이 퍼져나갔다.
“흉터가 남을 곳만 치료했어요. 다른 곳은 그냥 연고만 발라 주세요.”
“다 치료해 줬으면 하는데.”
“그러다가 나중에 크게 다쳤을 때, 제 능력이 안 먹힐 수도 있는데요? 그래도 괜찮아요?”
윤사해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에 광혜원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볼게요.”
“마음대로 하게나.”
얼마 지나지 않아 류화홍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가씨, 고등학교 입학 첫날부터 싸웠다면서요? 리오랑 리타가 엄청 벼르고 있던데!”
“저 혼내려고요?”
“아니요! 리사 아가씨 몸에 상처라도 있으면 싸운 녀석을 죽이려고요! 아, 물론 세상이 너도야!”
나는 유예준에 이어 지희준의 명복도 조용히 빌어 주었다.
류화홍은 그대로 광혜원을 데리고 사라졌다. 그 모습이 자못 다정해 보였다.
그러나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지만, 광혜원은 류화홍의 부인이 아니다.
류화홍의 부인은…….
“윤리사, 저세상.”
윤사해의 목소리에 생각이 끊어졌다. 우리는 괜히 침을 꿀꺽 삼키고는 윤사해를 쳐다봤다.
짙은 보랏빛 눈이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내 들려온 목소리는.
“잘했단다.”
칭찬이었다.